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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인 의견서



사 건 2003형제 국가보안법위반
피의자 송 두 율

위 사건에 관하여 피의자의 변호인은 다음과 같이 변론 의견을 밝힙니다.

다 음

1. 피의 사실 요지.

피의자의 변호인이 이 사건 국정원이나 검찰의 수사기록을 전혀 볼 수 없었던 관계상 피의자 송두율 (이하 ‘송 교수’라 약함)의 진술과 언론 보도를 통해 나타난 송 교수의 피의사실을 요약해 보면,

① 1973년 조선 노동당에 당원으로 가입한 사실(국가보안법 제3조 제1항 제3호 단순가입)

② 1991년 김일성을 면담하는 등 1973년부터 2003년까지 18차례에 걸쳐 북한을 오가며 북한측 사람들을 만난 사실(위법 제6조 잠입 탈출, 제8조 회합 통신)

③ 1994년 5월 김일성 주석 장례식 (혹은 1991년 5월 김일성 주석 면담시) 무렵 북한의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선출 가입하여 후보위원으로 임무를 수행한 사실(위법 제3조 제1항 제2호 간부기타 지도적 임무에 종사 가입)

④ 1985년 오길남을 입북토록 유인한 사실(제4조 유인 목적 수행)

⑤ 1973년부터 2003년 까지 방북하면서 여행경비 기타 공작금등 15만불을 받은 사실(위법 제5조 금품 수수)

⑥ 1995년부터 2003년 까지 6차례에 걸쳐 지령을 받고 남북 해외 통일 학술회의를 열어 남한 학자들을 포섭한 사실(위법 제4조 유인목적 수행)
이 있다는 것입니다.

2. 노동당 입당.

가. 송 교수가 1973년 노동당에 입당한 사실에 대해서는 본인이 자발적으로 자백한 바 있습니다.

나. 서울 지방법원에서 송 교수가 황장엽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과정에서 국정원은 2001.1.30자 사실조회 답변을 통해“ 김철수의 입당시기는 구체적으로 알 수 없으나… 1970년대 후반보다 상당기간 이전으로 추정할 뿐 정확한 시기는 북한 공작 부서 관계자들만 알 수 있음”(증제1호증; 2001. 1. 30.자 국정원 사실조회)라고 답변하여 국정원도 송 교수가 조선 노동당에 가입했을 것 이라는 심증만 있었을 뿐 구체적 증거가 없는 상태에서 송 교수는 자발적으로 1973년 가입사실을 밝힌 바 있습니다.

다. 노동당 탈당

(1) 송 교수가 첫 방북을 하고 당 가입을 한 당시인 1973년은 10월 유신 직후의 엄혹한 군사독재 시절이라는 점을 참작하여 주시기 바라며

(2) 송 교수는 이미 국정원에 제출된 나의 입장이라는 진술서를 통해 수사기관에 탈당의사를 명백히 밝힌바 있고 앞으로 실정법을 준수하겠다는 뜻도 분명히 했으며

(3) 2003. 10. 2. 공개적으로‘노동당 입당 같은 문제들에 대해 저에게 애정을 가지고 지켜보아준 많은 분들, 민주화 운동에 애쓴 분들, 국민들께 깊이 사죄’의 뜻을 밝혔습니다.

(4) 체포영장을 무릅쓰고 가족들과 한국에 들어온 것은 송 교수로서는 분명히 대한민국을 선택한 것임을 고려해 주시기 바랍니다.



3.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선출되어 ‘간부기타 주도적 임무 종사’에 가입하고 그 임무를 수행하였는가?

가. 송 교수의 진술.

(1) 송 교수는 ① 1994년 7월 김일성 사망 직후 북한의 베를린 주재 관계자로부터 장례식 참가 제의를 받고 처음에는 학회 참가를 이유로 거절하였으나 ② 관계자는 ‘송 교수님이 김철수라는 이름으로 장의위원에 초청되었으니 꼭 가셔야 한다’는 권유를 받고 ③ 송두율 명의의 독일 여권을 가지고 평양에 갔으며 ④ 평양에서 로동신문에 장의위원명단에 23번째로 ‘김철수’란 이름이 나열되어 있는 것을 본 사실은 송 교수가 스스로 진술한 바 있습니다.
⑤ 로동신문에는 김철수가 정치국 후보위원이라는 기재는 전혀 되어있지 않고 ‘김철수’라는 이름만 나열되어있었으나 송 교수는 평소 소련, 중국, 북한 등 사회주의 국가의 권력구조 등을 연구하여 23번째쯤 나열 된 것은 ‘후보위원급“이라는 점을 알고 있어 자신이 장의위원 명단에서는 후보위원급으로 대우를 받고 있는 사실을 알게 된 바 있습니다.

(2) 국정원에서의 송 교수 진술.

(가) 변호인으로서 위 진술조서를 지금까지도 볼 수 없어 그 내용을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언론보도를 보면 송 교수가 1991년 김일성을 면담할 때부터 이미 후보위원으로 선출되었음을 통고받아 알고 있었다는 취지로 자백을 한 것으로 되어 있는 듯합니다.

(나) 입회의 문제; 무기 대등의 원칙.

① 우리 형사소송법은 피고인과 수사기관이 대등한 지위에서 공격방법을 제출하고 법원의 판단을 구하게 되어 있습니다.
② 헌법 제12조 4항은 ‘누구든지 체포 또는 구금을 당할 때에는 즉시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있음을 규정하고 있으며 이 정신에 비추어 피의자로서 입건된 피의자는 입건 즉시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③ 변호인 조력의 핵심은 수사절차에의 입회입니다.
수사기관 특히 국정원 같은 곳에서는 변호사들도 접견시 위축을 느끼는데 하물며 피의자 신분으로 그것도 40년 가까이 외국에서 살다와 막 귀국하여 시차도 극복 안된 상태에서 한국의 실정을 전혀 모르는 독일 국적의 송 교수를 수사함에 있어서는 법의 명시적 규정이 없더라도 독일정부와 약속한대로 변호인이 입회 하도록 했어야 할 것이며 최소한 조서에 서명 날인 할 때만이라도 본인의 의사가 조서에 정확히 반영되었는 지를 살필 수 있도록 했어야 합니다.
④ 검찰과 경찰은 이미 신문시 변호인 입회를 제한적이나마 시행하고 있으며 법무부는 신문과정에의 변호인 참여를 보장하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마련한 바 있습니다.

(다) 송 교수는 국정원이나 검찰에서 일관되게 위 가의 ① 내지 ④항?진술했을 뿐 본인이 1991년이나 그 뒤에 후보위원 선출 통고를 받았다는 취지의 진술을 한 바가 전혀 없습니다. 만약 조서가 그렇게 기재 되어 있다면 이는 잘 못된 것이며 변호인이 조서 서명 날인 시라도 입회 했더라면 이러한 논란은 없었을 것입니다.

(라) 이미 체포영장이 발부되어 있어 구속처벌까지도 각오하고 귀국자진 출두한 마당에 한번 진술했던 이야기를 아니라고 다시 번복할 이유가 없으며 송 교수 입장에서는 자신의 행위들에 대해 시시비비를 명확히 하여 실정법에 위반된 부분은 처벌 받고 아닌 것은 아닌 것으로 분명히 하고자 하는 뜻임을 살펴 주시기 바랍니다.

(3) 결론적으로 송 교수는 1994년 김철수라는 이름으로 장례식에 초청되어 입북한 후 로동신문에 23번째로 김철수라는 이름이 기재된 것을 보고 자신이 후보위원급으로 대우를 받고 있음을 짐작 했을 뿐 국가보안법 제3조 소정의 ‘간부기타 지도적 임무에 종사’하는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가입한 사실은 전혀 없습니다.

(4) 국정원은 황장엽, 이한영, 오길남, 박병엽의 진술을 근거로 들고 있는 듯하나 그 증언내용을 보더라도

① 이한영은 “구주위원장이 김철수”라는 이야기뿐(증제5호증; 20쪽)이었고,
국정원 스스로도 “우리 원은 이한영의 진술에서 김철수가 송두율임이 확인되었다고 밝힌 바는 없다”고 법원에 사실조회 회신을 하였습니다(증제1호증; 20쪽).

② 또한 오길남은 “평양체류시 송두율이 처 정정희와 함께 북한을 왕래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비밀당원으로 북한 대남공작망의 거물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내용일 뿐(증제5호증; 20쪽) 송 교수가 정치국 후보위원이라는 증언은 전혀 없습니다.

③ 박병엽은 “김철수는 비공개 정치국원 후보위원인 남한 출신의 대남공작 관련 인물”이라 진술했다는 것인바(증제5호증; 20쪽) 뒤에서 살피는 대로 수많은 ‘김철수’ 중 어느 ‘김철수’를 말하는 지가 전혀 특정되어 있지 않고 송 교수는 남쪽에 입국도 할 수 없어 대남공작을 할 래야 할 수도 없는 상태였으며, 정치국 후보위원은 북한의 헌법적 기구라는 성격상 비공개라는 것은 있을 수가 없다는 점에서 박병엽의 진술을 근거로 송 교수가 김철수라 단정할 수는 결코 없습니다.

④ 황장엽은 그 스스로 주체사상 이론을 확립한 북한 최고의 학자이면서도 정치국 후보위원에 들지 못하였는데, 무슨 특별한 공로나 활동이 전혀 없는 독일국적의 송 교수가 북한의 최고 권력기관인 정치국 후보위원이라는 말을 통일전선부장 김용순으로부터 들었다는 동인의 진술은 전혀 앞뒤가 안맞는 전문진술일 뿐입니다.

⑤ 국정원은 북한에서 “김철수가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이라는 사실을 지금까지 한번도 공식발표한 적이 없는데 송두율이 95. 8. 저술한 「통일의 논리를 찾아서」 책자에서 김철수가 후보위원이라고 지적하고 있어 누구도 모르는 사실을 적시한 점으로보아 송두율=김철수임이 간접입증” 된다고 주장합니다.
우선 위 책자에서는 김철수를 특정하여 후보위원이라 표현한 바 없습니다. 송 교수는 러시아, 중국, 북한 등 사회주의 권력구조에 관심을 가져오면서 위 책자에서 기본적으로 5, 6차 전당대회에서 북한이 공표하는 정치국 위원, 비서명단 등을 기준으로 권력구조를 분석하다가 책을 쓸 당시인 94년 현재의 자료는 없으므로 자신이 참석했던 김일성 장례식의 장의위원 명단을 일응의 기준으로 삼은 뒤 김철수 아래 위치한 김기남은 비서임이 이미 공지의 사실이었으므로 비서 앞은 후보위원이라는 당연한 상식에 따라 비서 김기남 앞에 적혀있는 김철수까지를 ‘이상 정치국위원’이라 기재한 것일뿐 이를 가지고 송 교수가 자신이 후보위원임을 자백한 것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장의위원 명단에 이미 김철수가 기재되어 있었으므로 비서임이 확실한 김기남 앞 김철수까지는 ‘이상 정치국원’이라 기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송 교수가 그 책을 쓸 당시인 1995년 현재 그 김철수가 송 교수 본인임을 알고 있었더라도 대외적으로 공포된 장의명단에서, 나는 후보위원으로 선출되거나 통고받은 바 없다는 이유로 김철수라는 이름을 뺄 수는 없었습니다.
한편, 뒤에서 살피는 대로 김일성, 오진우 장의위원 명단에 김철수가 언급된 것 이외에는 북한의 공식기구인 정치국 위원명단에는 한번도 김철수라는 이름이 올라 있지 않은 사실은 통일부, 국정원, 북한자료 모두에서 일치되는 사실입니다.
송 교수가 장의위원 명단을 기준으로 정치국 위원과 비서 등을 분류한 것은 공식 정치국 위원명단이 엄연히 존재하는 상황에서는 학문적으로도 오류가 있는 분류임은 북한 전문가라면 누구라도 금방 알 수 있는 일입니다.
송 교수는 장의위원 명단에 7번째 기재되어 있는(증제3호증의 1; 21쪽) 김병식 부주석도 위 책자 기재 분석표에서는 빼먹고 기재하는 등 또다른 실수를 하기도 하였습니다.

⑥ 국정원은 송 교수가 97년 황장엽이 망명하자 黴탔?후보위원으로 활동한 것이 탄로날 것이 두려워 김경필에게 내 신분이 드러나지 않게 해달라 부탁하며 당신이 김철수인 것을 잘 모를테니 걱정마라는 답변을 했다는 김경필의 증언을 그 근거로 대고 있습니다.
송 교수는 94년 장의위원 명단에 자신의 이름이 올랐던 것이 불안하여 상의를 했을 뿐 후보위원 신분을 숨기려 한 것은 아닙니다. 나아가 송 교수는 아무런 위험이 없던 95년 이미 약봉지에 김철수란 이름이 씌어진 것을 항의한 사실이 북한측 자료에 나와 있습니다.

나. 정치국 후보위원의 지위와 역할

① ‘북한의 정치국과 정치국 상무위원회는 실질적인 북한 권력의 핵심기구이자 절대 권력기관으로 당의 모든 정책이 정치국에서 수립되고 있습니다.
② 정치국 위원은 당 규약 제 24조에 의해서 당중앙위원회전원 회의에서 선거 하도록 되어 있으며 위원의 수도 여기서 결정됩니다(증제2호증의 1; 북한 권력 구조 및 권력 엘리트변화에 대한 연구-95 통일원 연구과제 32쪽).
③ 정치국 정위원과 후보위원의 숫자는 대체로15~19명선이며(증제2호증의 2; 육군사관학교 북한학 81쪽)
④ 당규약 제 24조에 따르면 정치국은 “당중앙위원회 명의로 당의 모든 사업을 조직 지도한다”고 되어 있어 20명내의 정치국 정위원 및 후보위원은 북한 권력의 핵심중 핵심입니다.

다. 송 교수는 한번도 정치국 후보위원 명단에 오른 일이 전혀 없으며 다만 김일성, 오진우의 장의위원 명단에 각각 23번째 22번째로 김철수라는 이름이 써 있을 뿐 후보위원이라고 직책이 써 있었던 적도 전혀 없습니다.

(1) 통일부의 사실조회 회신(증제3호증).

(가) 통일부는 위 황장엽 명예훼손 소송 과정에서 정치국 후보위원은 “당중앙위원회전원회의”에서 선출 된다면서 80년 이후 현재까지 정치국원 명단을 법원에 회신한바 있습니다.

(나) 통일부 회신 내용을 보면 80년 이후 현재까지 한번도 김철수가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된 적이 없음이 명백합니다.

(2)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조직별 인명부, 서울신문사 북한인명사전, 북한 연구소 북한통감(증제2호증의1; 45~46쪽)

(가) 정치국 정위원과 후보위원은 북한 권력의 핵심중 핵심으로 지극히 공적인 기관이어서 그 구성원의 변동사항은 대 내외적으로 전혀 비밀 사항이 아니며 이는 우리나라에서 국정원등 비밀 수사기관이 가명을 쓸 수는 있어도 국회의원이나 국무위원 같은 공적인 기관이 가명을 쓰거나 비밀 구성원이 있을 수 없음과 마찬가지 입니다.

(나) 황장엽조차도 위 명예훼손 재판에 나와서 “정치국 후보 위원중 가명을 사용한 사람이 있었는가요”라는 질문에 “없었습니다”라고 답변한 바 있습니다(증제4호증; 서울지방법원 황장엽 당사자 본인 신문조서 4쪽).

황장엽은 국정원측 변호사의 신문에서는 “대남사업을 하는 사람…들은 전국적으로 한사람만을 후보위원으로 뽑아 왔습니다. 그런데 이선실이 더 이상 대남사업활동을 할 수가 없게 되었기 때문에 그 다음부터는 인텔리 등을 포섭하기 위하여 김철수를 후보위원으로 뽑는 것으로 생각된”다며 “가명을 사용한 사람은 김철수뿐”이라고 번복을 하고 있으나,
대남사업을 하는 이선실은 뒤에서 보듯이 1980년 이래 일관되게 이선실이라는 본명으로 후보위원에 선출, 그 명단이 공표된 바 있으며 이선실 대신 김철수가 들어간 것이 아니라 현재까지도 “이선실”만이 후보위원 명단에 들어 있을 뿐 김철수란 이름은 들어있지 않습니다.


(3) 국정원 사실조회 회신(증제5호증).

국정원이 2000. 11. 20.자로 법원에 보낸 회신에 따르면 정치국원의 선거기관, 선출절차, 시기, 정치국 위원 변동 내용이 상세히 나와 있는 바,
위 국정원 회신에 따르더라도 김철수는 한번도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나타나고 있지 않으며(대남사업을 총괄한다는 이선실은 본명으로 계속 나타나고 있습니다) “단지 김일성, 오진우 장의위원 명단 발표시 갑자기 등장하여 각각 서열 23위, 20위로 거명된 바 있으나 구체적인 인물자료는 파악된 바 없음”이라고 답변하고 있습니다.

국정원은 “통상 국가장의위원 명단 발표시 서열 20위권은 정치국 후보위원급에 해당”이라 하여 후보위원으로 한번도 기록된 바 없으나 장의위원 명단에 20, 23위로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정치국 후보위원”도 아니고 “후보위원급”이라는 식으로 송 교수를 억지로 후보위원인 양 옹색한 덮어씌우기를 하고 있습니다.

(4) 외국인을 후보위원에 선임?

황장엽은 법원에서 “김철수는 서열은 높아도 권한이 없다”거나
“외국인 또는 해외동포가 정치국 상무위원이나 정위원, 후보위원으로 선출된 적이 … 지금까지는 없었습니다”(증제4호증; 본인 신문조서 16쪽)라고 답변하였던바 북한이 1993년 독일국적을 취득한 외국인인 송 교수를 후보위원으로 선출한 적이 없음을 드러낸 바 있습니다.


아무리 북한이 대남공작이 필요하다 해도 헌법적 지위에 있는 당 규先瓚?기관이자 국가 최고권력기관인 정치국 후보위원에 비밀위원을 두거나 가명을 쓰거나 외국국적인을 선출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북한의 주체사상을 확립한 황장엽과 송 교수를 관리하는 등 대남사업을 총괄하는 김용순조차도 후보위원이 되지 못하였습니다).

(5) 결론적으로

이처럼 북한권력의 핵심중 핵심인 그리고 중앙위원회의 선출이라는 공개적인 절차를 거쳐 공표되는 공적인 자리인 정치국후보위원에 김철수는 한번도 그 명단에 오른 적이 전혀 없으며 단지 김일성, 오진우 장의위원 명단에만 그것도 ‘후보위원’이란 직책표시도 없이 ‘김철수’란 이름만 두 번 오른 일이 있을 뿐입니다. 대남사업을 하는 이선실도 초지일관 본명으로 20년 이상 후보위원 명단에 올라있음에 비추어,

송 교수는 장례식 때 국정원의 회신내용처럼 “후보위원급”으로 대우를 받았을 뿐 국가보안법 제4조 소정의 간부나 지도적 임무에 종사하는 ’조선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에는 전혀 선출된 적 자체가 없음은 너무나도 명백합니다.

라. 김철수란 이름의 거절.

(1) 송 교수는 장례식 참석차 김철수라는 이름으로 초청을 받았고 참석자 명단에 김철수가 후보위원급으로 대우받은 적이 있을 뿐이고 그 무렵 북측이 제공한 약봉지에 김철수란 이름이 다시 씌어있을 것을 보고 “내가 송두율이지 왜 김철수냐”고 항의하여 그 이후에는 김철수란 이름이 전혀 쓰이지 않았습니다. 이는 국정원이 보유하고 있는 북한측의 자료에 명백히 나와 있습니다.

(2) 북한이 송 교수가 학자로서 널리 알려져 있음을 이용하려고 포섭목적으로 융숭한 대접을 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북한이 송 교수를 이용하려고 장의위원 명단에 23번째로 김철수란 이름을 올려 후보위원급 대우를 하였더라도 송 교수 자신으로서는 후보위원으로 선출되었음을 북한측으로부터 통지받거나 구두로라도 이야기들은 바가 전혀 없습니다.

나아가 김철수란 이름을 더 이상 쓰지 말아 달라고 항의함으로써 후보위원과 관계없음을 명시적으로 밝힌 바 있습니다.

마. 수많은 김철수.

(1) 북한은 과거 송 교수뿐 아니고 수많은 사건에서 ‘김철수’를 필요에 따라 사용하여 왔습니다.

(2) 주서독 한국대사관 영사증명서(국정원 자료에 들어 있을 것입니다)에 따르면 1989. 9. 7. 송치한 홍성담 사건과 관련하여 국정원은 위 영사증명서를 유죄의 증거로 제출했던 바 동 증명서에는 ‘김성수가 김철수’라고 확인되었고

(3) 국정원의 서경원 간첩사건 사건수사 발표문(증제6호증의 1; 36, 37쪽)에도 “서경원은 88. 8. 16. … 북한공작지도원 40대 이모 등을 접선하고 그들이 제공한 김철수 명의의 북한 공무여권을 이용하여 체코프라하 공항에 도착하여 … 평양으로 출발하였”다고 되어 있어 이번 송 교수와 유사한 방식으로 입북한 사례가 드러나고 있으며,

(4) 민족민주혁명당 간첩사건의 국정원 발표문에도(증제6호증의 2; 5쪽)
“89. 7.초 한겨레사회연구소 연구원 '김철수‘로 위장한 남파간첩 윤택림(56세, 현 북한대외연락부5과장)에게 포섭되어 노동당에 현지 입당”하였다고 되어 있습니다.

(5) 이처럼 국정원의 주장에 따르더라도 북한은 ‘김철수’라는 이름을 여기저기 사용하여 왔는바, 북은 서경원의 경우처럼 송 교수를 김일성 장례식에 초청하면서도 김철수란 이름을 썼고 장의위원 명단에, 다른 사람에게도 여기저기 사용되었던 김철수라는 이름을 한번 올렸던 점에 비추어 송 교수가 항구적으로 김철수라는 가명을 사용하는 정치적 후보위원이라 볼 수는 결코 없는 것입니다.

바. (1) 국정원은 김일성의 추도대회 주석단 아래 세번째단 송 교수가 중앙 우측바로 옆에 서 있는 노동신문 사진을 들어 송 교수가 특별대우를 받은 양 주장하고 있습니다.

(2) 그러나 위 사진은 당시 행사장에 수백명의 사람들이 서 있어 한 장에 다 담을 수가 없어 부분을 오려붙인 것으로 우연히 송 교수가 속한 부분이 오려져 가운데 배치된 것일 뿐입니다.

(3) ‘주석단’은 김정일과 핵심 권력자 20여명이 서 있는 맨 윗단만을 의미하며 송 교수가 서열 23번째의 핵심후보위원이었다면 바로 이 주석단에 서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송 교수는 주석단 아래 아랫단에 중앙우측 20-30m 떨어진 곳에 수백명의 사람들 속에 서 있었습니다.

(4) 국정원 자료(증제1호증; 11쪽)에 의하더라도 1994. 7. 20. 추모대회에는 “재미교포 손원태, 서순옥, 이재덕, 장금천, 최홍희 국제태권도연맹 총재, 임민식 범민련 사무총장, 양동민 범민련 해외본부 부의장, 선우학원 범민련 미국본부 고문, 박보희 세계일보 사장, 문명자 여류기자, 송두율 독일 뮌스터 종합대 교수…” 등 수십명이 주석단 아래아래칸에 서 있었습니다.

(5) 송 교수는 많은 해외동포를 포함, 수백명의 참석자 중 하나였을 뿐입니다.

사. 통일전선 대상으로서의 송두율.

(1) 통일전선이란 “정면 공격이 가능하지 않을 경우 상대편 내부의 갈등과 대립을 이용하고 동맹 가능한 부동층과도 타협하거나 협조하는 것을 의미하며… 공산당이 일정한 혁명단계에서 주적을 타도하는데 공산당 세력만으로는 불가능할 때 필요한 동조세력을 획득하고자 그들과 잠정적인 동맹체를 형성하여 투쟁하는 기법”을 말합니다.

“북한이 이 전술을 적용함에 있어서 강조하는 원칙으로서는 하층 통일전선을 기본으로 삼아 상층 통일전선을 유기적으로 결합할 것”이 제시되고 있습니다(증제3호증의2; 육군사관학교 북한학 385쪽).

(2) 따라서 통일전선 대상이란 공산당 자신이 아닌 상대편 또는 그 중간에서 부유하는 부동층을 뜻합니다.

(3) 국정원의 북한측 내부자료.

(가) 국정원은 북한측 내부자료를 보유하고 있는바 여기에는 북한 관계자가 송 교수를 관찰하면서 그 평가 및 대응방안을 상부에 보고한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이 자료에는 북한 측이 송 교수를 “상층 통일전선대상”으로 표현하고 있는 대목이 수도 없이 나옵니다.

(나) 이는 결국 송 교수가 통일전선의 주체로서의 북한의 핵심권력기구인 정치국 후보위원이 될 수 없으며 오히려 북한의 통일전선의 대상 즉, 혁명의 대상인 상대편 또는 부동층의 위치임을 명백히 보여주고 있는 증거입니다.

북한의 핵심중 핵심인 정치국 후보위원이 통일전선 대상이라는 것은 ‘네모난 동그라미’라는 말과 같은 차원의 이야기입니다.

(4) 황장엽의 법원진술(증제4호증 17쪽).

(가) 황장엽은 “나는 역사의 진리를 보았다”는 책자와 명예훼손사건 법정진술을 통해, 북한의 통일전선부장 김용순이 자신에게 “송두율은 주겠다는 것인지 달라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말만 하는 미치광이여서 상대하기가 어렵소. 황 비서께서 좀 영향을 주어 그의 머리를 고쳐주시오”라고 이야기 하였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나) 한나라 최고 기관인 정치국 후보위원에게 혁명의 상대방을 관리하는 통일전선부장 김용순이 ‘미치광이’라며 ‘머리를 고쳐주’라는 말을 할 수는 결코 없습니다. 이 발언 자체가 이미 송 교수가 정치국 후보위원이 아니라 한낱 통일전선의 대상에 불과함을 잘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일부 정치권에서 ‘해방이후 최대의 거물간첩’이라 표현하고 있는 정치국 후보위원이, 후보위원도 못되는 북한의 통일전선부장으로부터 머리를 고쳐야 할 미치광이 취급받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아. 결론

(1) 송 교수 본인의 국정원 등에서의 진술과 상관없이 송 교수가 북한 최고기구인 중앙위원회에서 정치국 후보위원에 선출된 적이 결코 없음은 통일부, 국정원, 그리고 북한측의 객관적 자료들이 너무도 분명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송 교수는 그저 통일전선 대상으로 북한이 이용하기 위하여 장례식 때 후보위원급 대우를 해준 것뿐이며 이것이 이번 사건의 진상입니다.

(2) 송 교수가 비밀기관도 아니고 사실상 북한 최고 헌법적 기관인 정치국 후보위원에 선출되었고 본인이 이를 수락한 객관적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는 한 북측에서 일방적으로 후보위원급 대우를 한 사실만 가지고 송 교수 본인이 국가보안법 소정의 지도적 임무에 가입했다고 보아서는 결코 안 될 것입니다.

4. 오길남 입북권유 여부.

가. 오길남은 송 교수가 자신에게 입북을 권유하였다는 취지로 진술한 바 있습니다(증제7호증의 1; 오길남 1992. 5. 28.자 진술서).

나. 오길남의 1992. 5. 24.자 국정원 진술(증제7호증의 2).

그러나 오길남은 당초 국정원에서 야채상 김종한의 권유로 북한대사관 백서기관을 만나 입북을 결심하고 “85. 11. 29. 오후 2시 가족과 함께 Kiel에서 Hamburg로 가서 … Berlin에 도착했는데 출발 전날 송두율에게 북한에 가게 됐다는 사실을 말하면서 만날 약속했기 때문에 … 송두율과 그의 가족을 만났”다(증제5호증의 2. 36~37쪽)고 진술하여 입북결심을 굳히고 이미 북한으로 가는 도중에 비로소 송 교수를 만났음을 명백히 하고 있습니다. 그뒤 이어지는 진술에서도 당시 송 교수가 “북한도 변해야 하는데 오형이 북에 가서 경제학자로서 활약해 주기 바랍니다”라고 하여 기왕 북에 가는 길이라면 북한의 변화를 위해 일하라는 취지의 말을 한 것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다. 1993. 2. 25. 발행 오길남의 저서(증제7호증의 3; 306~308쪽).

오길남은 1993년 자유문학사에서 “김일성 주석 내 아내와 딸을 돌려주오”라는 책을 펴내면서 탄원문에서 자신의 입북과정 관련 인물로 윤이상, 직접권유자 김종한을 들고 있을 뿐 송 교수는 전혀 이름이 나오지 않습니다.

라. 오길남은 현재 국정원 관련 기관에서 일하고 있는 바 그의 현재 진술은 과거 위 두 진술에 비추어 믿을 수 없습니다.

바. 송 교수는 오길남은 물론 그 어느 누구도 입북을 권유한 사실이 전혀 없습니다.

5. 금품수수에 관하여.

가. 항공비 등 보조.

송 교수는 73, 79, 84, 88, 91년까지 7~8차례 왕복항공비 등으로 도?약 2만불 가량을 보조받았다고 자진하여 진술한 바 있습니다.
이 부분은 본인이 명백히 반성의 뜻을 밝혔습니다.

나. 자료비 6, 7만불.

(1) 국정원은 송 교수가 공작금으로 15만불 가량을 받았다고 자백했다고 말하고 있으나 어차피 송 교수가 얼마를 받았는지는 수사기관도 아무런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송 교수가 수사에 적극 협조하여 자발적으로 밝힌 내용입니다.

(2) 송 교수는 80년대 중반까지 독일 오펜바하시에 있었던 “한국학술연구원”(원장은 뷔르쯔부르그대학 정치학 박사 김길순으로 80년대에 귀국하여 90년대에 사망하였습니다.)을 되살리기 위해 경비가 필요하여 북측에 학술지원 요청을 하여 6~7만불을 보조받았습니다.

이 돈으로 남?북 해외에 있는 남북한 관련 자료를 구입하고 연구원 인건비 지급하는데 썼으며 훔볼트대학에 초빙교수로 가게 된 1994년 여름학기부터는 시간에 쫓겨 이 일을 그만두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자료를 독일 에센시에 있는 재단법인 ‘아시아재단’의 한국연구소에 기증하였으며 이 연구소는 베스트팔렌 주정부의 제정지원으로 운영되면서 모든 자료를 전산화하여 한국문제를 연구하는 독일, 유럽, 한국학자들에게 큰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추후 동 연구소의 진술서를 제출하겠습니다).

이 6, 7만불은 결코 공작금이 아닙니다. 국정원은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의 공작에 쓰인 것인지 객관적 증거를 통해 명백히 밝히면서 공작금 이야기를 하여야 할 것입니다.

6. 남북-해외통일학술회의에 관하여.

가. 국정원은 송 교수가 북한의 지령을 받고 남북해외통일학술회의를 주도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으나 이는 사실을 크게 왜곡한 것입니다.

나. 학술회의 자료집(증제8호증의 1).

① 위 학술회의는 6차에 걸쳐 열렸던 바 이 회의의 결과물은 자료집으로 집대성된 바 있고 동 자료집에는 “남북?해외학자통일학술회의가 성사되기까지“라는 경과문이 실려 있습니다.

“회의를 주관한 한국일보사와 관계학자들은 이번 회의가 남북학자들이 분단후 처음으로 공동개최하는 학술심포지엄이라는 사명의식을 가지고 일을 추진했(으며)… 심포지엄의 단초는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가 92년부터 남북한 정치학자 대회를 추진한 데서 비롯되… 한국정치연구소의 이같은 의사는 평양을 방문한 제3국의 한 학자를 통해 북측에 전달되(었으나)… 북측이 마지막 순간에 불참을 통고해 무산되(었으며)… 한국정치연구소 소장인 길승흠 교수와 독일 훔볼트대 송두율 교수와의 만남으로 새로운 전기를 맞아… 베를린을 방문한 길 교수는 송 교수에게 협조를 요청했고 송 교수는 최대한 노력을 약속했… 송 교수는 심포지엄의 성사에 적극적이었… 남북 양측은 끝까지 페어플레이를 했다”(증제8호증의 1; 184, 185쪽)고 밝혔습니다.

② 그 이후 남측통일포럼의 제안으로 2차 남북학술회의가 성사되는 과정도 동 자료집 234쪽 이하에 상세히 나와 있습니다.
“난항을 거듭한 끝에 … 백영철 교수의 해박한 지식과 온화하면서도 논리적인 설득력, 송두율 교수의 균형잡힌 조정, 그리고 북측 대표단의 인내와 타협정신을 들지 않을 수 없”다고 평가된 바 있습니다(증제8호증의 1; 236쪽).

다. 길승흠, 백영철 교수의 신문인터뷰(증제8호증의 2; 한겨레기사).

(1) 길승흠 교수는 신문인터뷰에서 위 자료집에 나와 있는 내용으로 학술회의가 추진되었으며 “북한 노동당이나 김용순 비서 등이 개입하지 않은 순수한 학문교류 차원에서 열린 행사였(으며)… 한국일보사가 대우그룹에서 지원받은 돈 가운데 1억원 정도를 후원했”다고 진술하였고,

(2) 백영철 건국대 교수도 “통일학술회의는 한국학자들이 제안하고 중앙일보 등 언론사와 에스케이, 삼성, 엘지, 대우 등 한국기업에서 지원을 받아 이루어진 순수한 학술회의(로서) 북한 쪽에서 단1원도 받지 않았”다면서
“통일학술회의가 북한의 통일전선 공작에 이용됐다는 주장은 이념을 넘어 남북간 학술교류에 상당한 업적을 쌓은 남북문제 전문가들을 폄하하는 것”이고
“송 교수는 남북한 학자들 사이에 회의주체를 두고 이견이 있을 때 조정자 구실을 했을 뿐”이었다고 진술하고 있습니다.

라. 결국 국정원은 송 교수가 북한의 핵심 권력기관인 정치국 후보위원이라면 후보위원에 걸맞는 무슨 엄청난 활동을 하였는지를 밝혔어야 할 것임에도 기껏 오길남 입북권유나 남북학술대회조종 등을 그 근거로 끌어대는 것은 매우 옹색하고도 무리한 논리 전개가 아닐 수 없습니다. 94년 현재 연형묵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주체사상을 이론적으로 확립한 황장엽이나 통일전선 사업을 총괄하는 김용순도 들어가지 못한 정치국 후보위원에 들어갔다는 김철수가 겨우 남측이 제안한 학술대회나 조종하고 있다는 것은 상식 밖의 주장입니다.

8. 공소시효의 문제.

가. 송 교수가 정치국 후보위원이 아니라면 노동당 가입에 관한 공소시효 완성 ㈉?논란을 별론으로 하고 나머지 피의사실은 모두 공소시효가 지났습니다.
국정원이 그토록 정치국 후보위원에 집착하는 이유의 일부가 여기에 있는 듯도 합니다.

나. 당초 우리 대법원은 반국가단체 가입은 탈퇴하지 않는 한 공소시효가 계속된다는 계속범설의 입장이었으나 ① 가입이라는 행위를 처벌하는 것인데 가입은 처음 가입하는 행위로 완료된 것이고 ② 탈퇴하지 않아 위법상태가 계속되는 것을 가지고 범죄행위 자체가 계속되는 것으로 보아서는 안된다는 논거 하에 1960. 4. 5.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로 가입절차완료로써 범죄행위가 완성되는 즉시범이라고 판례 변경한 바 있습니다. 그 이래 현재까지 대법원의 입장은 변함이 없습니다.
따라서 송 교수의 노동당 가입역시 공소시효는 완료되었습니다.
결국 송 교수의 피의사실은 모두 공소시효가 완성되었습니다.

9. 결론.

가. 현재 송 교수에게 중요한 것은 사실을 숨기거나 공소시효 완성 주장 등을 통해 처벌을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 본인의 행동을 국민들로부터 이해받고 받아들여지는 것입니다.

나. 형사소송법상 피고인이 내용을 부인하면 증거능력이 전혀 없는 국정원의 조서(그것도, 실제 조서를 보지 않아 정확한 내용은 알 수 없으나 진술내용과 달리 기재되었다고 의심되는)를 가지고 정치권 일부에서 언론에 흘려 일종의 여론재판을 하는 것은 아무리 피고인이 중한 범죄를 지었다 해도 근대 민주사법제도를 가진 국가에서는 있을 수 없는 부끄러운 일입니다.

이런 식으로 여론재판으로 끝나면 합리적 의심의 여지없는 엄격한 증명(Proof beyond the reasonable doubt)을 통해서만 유죄를 인정하는 재판제도는 형해화되고 말 것입니다.

다. 남북의 정상이 서로 만나고 핵심권력자들이 상호 왕래하면서 화해를 위해 나가는 이 시점에서 공소시효 완성이 논란이 될 정도로 오래된 과거의 일을 가지고 체포영장을 무릅쓰고 들어와 잘못된 부분에 대해서는 사죄의 뜻을 밝히고 있는 피의자 송두율 교수에 대해 ‘해방이후 최대 간첩사건’이라는 냉전적 잣대를 들이대는 태도나,
그 반대로 송 교수를 높이 추어주다가 국정원의 발표하나로 송 교수를 멀리하는 태도 모두 우리 사회의 현 수준을 보여주는 서글픈 지표입니다.

라. 송 교수가 시대상황에 비추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형편이었다해도 노동당 입당원서를 쓰거나 장례식 때 후보위원급 대우를 받을 정도로 북쪽에 기울어진 점은 지금상황에서 보면 송 교수 본인이 자처하는 ‘경계인’의 역할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이제 대한민국에 민주적인 정권이 들어선 상황에서 송 교수는 과거의 북에 치우친 활동 자체를 국민 앞에 명백히 사죄합니다.

마. 송 교수의 ‘경계인’은 양쪽의 회색지대에 있는 사람을 뜻하는 것이 아니고 보다 적극적으로 이질적인 두 사회를 소통시키고 교류시키는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을 뜻합니다.

70년대초 유신 독재에 저항하다 남쪽에 올 수 없게 되었던 많은 이들이 반사적으로 북쪽에 가까울 수밖에 없었던 아픈 역사는 이제 미래를 향한 관용으로 보듬어야 합니다.

송 교수 자신이 2000. 6. 14. 동아일보에 기고한 “하나된 미래 관용으로 열자”는 글에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남과 북이 똑같다면 통일 이야기를 꺼낼 필요도 없을 것이고 서로 완전히 다르다면 통일을 논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남과 북은 상대방을 각각 자기 속에 있는 타자로서 바라보려는 태도가 필요하다. 자기와 똑같지 않으면서도 남이 아닌 타자로서 상대방을 대할 때 남과 북은 관점을 서로 바꾸어 볼 수 있는 합리성과 함께 관용과 여유를 배울 수 있다.”

마. 이제 체포구속을 무릅쓰고 가족들을 데리고 이 땅에 돌아왔습니다.
소설가 황석영의 말마따나 이땅에서 추방되면 ‘우주의 미아’가 될지도 모릅니다.
“사죄할 것은 사죄하고 해명할 것은 해명하고 실정법적인 처벌을 받을 사항이 있으면 감당함으로서 한국사회의 이방인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참여자가 되어 남북 모두를 끌어안는 화해자로서의 새로운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피의자 송두율의 진정을 편견없이 미래를 향한 관용으로 받아들여 주시기 바랍니다.
일제 식민통치와 남북분단 군사독재에 싸우면서 민주화를 이루어내고 민족화해를 향해 미래로 나아가고 있는 우리사회가 받아달라고 들어온 송두율이라는 사람 하나를 품어주지 못한다면 다른 나라와 아니 우리 스스로에게 두고두고 부끄러운 일로 남을 것입니다.

입 증 방 법

1. 증제 1 호증 국정원 사실조회 회보(2001. 1. 30.)
1. 증제 2 호증의 1 북한 권력 구조 및 권력 엘리트변화에 대한 연구
(95 통일원 연구과제 32쪽)
1. 〃 2 육군사관학교 북한학(81쪽)
1. 증제 3 호증의 1 통일부의 사실조회 회신
1. 〃 2 육군사관학교 북한학(385쪽)
1. 증제 4 호증 황장엽 당사자 본인 신문조서(4쪽)
1. 증제 5 호증 국정원 사실조회 회신
1. 증제 6 호증의 1 서경원 간첩사건 수사결과 발표문
1. 〃 2 민족민주혁명당 간첩사건 수사결과 발표문
1. 증제 7 호증의 1 오길남 진술서(1992. 5. 28.)
1. 〃 2 오길남의 국정원 진술서(1992. 5. 24.).
1. 〃 3 오길남의 저서(1993. 2. 25. 발행, 306~308쪽)
1. 증제 8 호증의 1 학술회의 자료집
1. 〃 2 한겨레신문 기사

2003. 10. .

피의자 송두율의 변호인
변호사 김 형 태
서울지방검찰청 공안1부 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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