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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송두율교수의 학문세계: 개관
송두율교수 석방과 사상.양심의 자유를 위한 대책위원회
송두율 교수는 지금까지 철학 및 사회과학 분야에서 8권의 독일어 저서와 수십 편의 독일어 및 영어 논문을 발표했고, 우리말로도 9권의 저서와 100여 편의 글을 발표하는 등 왕성한 학문 활동을 해왔다. 독일어로 쓴 저서 중 다수가 우리말로 번역되었지만, {현대의 변화}, {현대의 명암: 철학·사회학·정치학의 동서 대화} 등 몇 권은 아직 우리에게 소개되어 있지 않다. 지난 15년간 송 교수는 우리말로 {계몽과 해방: 헤겔과 마르크스와 베버의 동양세계관}, {소련과 중국}, {현대와 사상}, {전환기의 세계와 민족지성}, {통일의 논리를 찾아서}, {역사는 끝났는가}, {21세기와의 대화}, {민족은 사라지지 않는다}, {경계인의 사색} 등 9권의 저서를 출판했다.
이 책들의 제목과 부제에서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듯이, 송 교수의 학문적 관심과 지적 스펙트럼은 단순하게 몇 마디 말로 평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송 교수를 마치 북한의 주체사상 선전 요원 정도로 폄하하는 일부의 시각은 엄연한 객관적 사실에 대한 의도적인 왜곡 이외에 다른 아무 것도 아니다. 사실 송 교수의 학문적 탐구 영역은 서양 사상가들의 동양관에서부터 사회주의 사상과 현실 사회주의 문제,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논쟁, 민족 문제와 제3세계 문제 등 큰 이야기에서부터 생태계의 위기, 시민 생활, 여성의 지위와 권리 등 작은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매우 넓고 다양하다. 광범위한 주제를 다루는 송 교수의 학문적 경향은 보편적 사상가를 키우려는 독일 대학의 오랜 지적 전통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그의 스승인 하버마스의 철학은 보편성과 다원성을 화해시키고, 이를 구체적인 현실에 적용하려는 노력으로 집약될 수 있는데, 송 교수의 지적 작업은 하버마스의 이러한 접근방식으로부터 강한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우리는 이 대목에서 송 교수의 대표적인 저서 {역사는 끝났는가]에 대한 이영희 선생(전 한양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의 추천 글을 참조해 볼 필요가 있다.
"나는 가볍게 책을 추천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러나 나는 이 책을 사회주의 체제의 붕괴의 의미와 앞으로의 세계의 존재양식에 관해서 모색하고 고민하는 지식인에게 꼭 읽어보라고 권고한다. 나는 이 책을 우리나라에서 새로운 이데올로기로 등장한 이른바 '세계화', '무한경쟁', '경제지상주의'의 열렬한 신봉자에게도 그 반대자에게도, 그리고 그 중간에서 미래의 인류(인간)의 삶의 모습에 염려와 회의를 품는 지식인에게도 일독하기를 권한다. '인류의 장래', '세계적 신질서', '탈냉전', '민족과 국가' … 등의 '큰 담론'에 관심을 갖는 지식인은 물론, 바로 나와 가족과 이웃의 생활과 생명과 직결된 공해, 생태계, 시민적 생활환경, 여성의 권리와 지위… 등등, '작은 담론'에 관심을 갖는 남녀에게도 반드시 읽어야 할 책으로 천거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반세기 동안 분단된 채 지금도 같은 민족간의 대립과 증오와 군사적 위협과 핵전쟁 위기에서 두려워하고 갈피를 못 잡고 있는 모든 한국인이 이 책을 통해서 맑은 지식과 정확한 판단 능력을 갖게 되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한(조선)반도의 위기구조의 본질이 어떤 것이며, 휴전선 북쪽의 국가·사회·제도·사상, 그리고 인민대중의 정서와 세계관의 진실한 모습에 대해서 지적(知的)이고도 철학적인 이해를 원하는 지식인에게는 이 책은 분명히 刮目(눈에 번쩍 뜨이는)의 놀라움과 기쁨을 줄 것이다. 송두율 박사의 이 책은 위에서 열거한 바와 같은 넓은 철학적 시야와 수준 높은 지적 모색의 과정을 통해서 신선한 '통일철학'으로 우리를 이끌어준다. 이 목적지에 도달하면서 우리는 우리가 얼마나 많은 인식적 오류 속에 살고 있(었)는가를 깨닫게 될 것이다. 나 자신은 송두율 교수의 이 책 속의 철학과 지식을 통해서 시대사상과 세계인식의 한 단계 높은 수평에 서게 된 것을 고백해둔다."
송 교수의 그 동안의 학문적 성과는 국내에서 뿐만 아니라 독일 학계에서도 호평을 받아왔다. 송 교수는 독일 학계에서 하버마스 비판철학의 방법론적 전통 내에서 모더니즘 논쟁, 사회주의와 제3세계 문제, 한반도 통일 문제 등의 분석을 통해 독창적인 이론을 내놓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국내 학계에서도 송 교수의 학문적 방법론과 철학은 특히 한반도 민족 문제 해결을 위한 학문적 논의의 장에서 적지 않게 언급되어 왔다. 여기에서 우리는 송 교수의 이론적 주장과 성과 전체를 일일이 다 검토할 수는 없다. 그러나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그의 내재적-비판적 방법론과 통일의 철학의 핵심을 간략하게 짚어 볼 필요가 있다.
내재적-비판적 방법론의 학문사적 뿌리
송 교수가 한반도 민족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원용한 내재적-비판적 방법론은 한편으로는 서양 철학자 칸트(I. Kant)의 {순수이성비판}에, 다른 한편으로는 세계적인 물리학자 하이젠베르크(W. Heisenberg)의 {부분과 전체}와 프랑스의 수학자이자 철학자인 미셀 세르(M. Serres)의 이론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 1985년에 출판한 자신의 박사논문 {계몽과 해방: 헤겔과 마르크스와 베버의 동양적 세계관}의 추고(追稿)에서 송 교수는 양자택일적 이분법을 극복할 수 있는 이론들에 주목하고 있다. 여기서 송 교수는 "상호모순적 이분법을 가장 근본적으로 비판하는 이론들 중의 하나가 바로 현대 양자이론이다"고 말하면서 하이젠베르크의 {부분과 전체}를 인용하고 있다.
우리들의 사고는 가장 간단한 것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합목적적일 것이라는 식으로 행해지며, 가장 간단한 것은 긍정 아니면 부정, 존재 아니면 비존재, 선 아니면 악이라는 식의 양자택일이다. 이러한 양자택일이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식으로 그렇게 생각되는 한은, 더 이상 아무것도 이것으로부터 생겨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양자이론으로부터 양자택일에는 반드시 긍정 아니면 부정이라는 대답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긍정 혹은 부정의 가능성이 확정되고, 특히 언명가치를 지닌 긍정과 부정 사이의 일정한 중간형태(Interferenz)가 정해지는 또 다른 형태의 상호보완적인 대답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 아리스토텔레스 논리학적 의미에서의 이분(二分)은 확실히 파울리(Pauli)가 말한 대로 악마적 속성을 지닌 것이고, 그것은 반복하게 되면 우리를 오로지 혼란으로만 이끌 뿐이다. 그러나 양자이론적 상호보완과 함께 나타난 제 3의 가능성은 좋은 결과를 맺을 수 있고, 반복에 의해서 우리를 진정한 세계의 공간 속으로 이끈다.({계몽과 해방}, 190쪽)
1995년에 나온 {통일의 논리를 찾아서}라는 책에서 송 교수는 자신의 방법론적 관점을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이 연구에 사용된 방법은 한반도의 두 국가를 내재적으로 비판하는 내재적-비판적 방법론이다. 이 연구는 가능한 한 많은 단면들을 드러내기 위하여 포괄적인 자료와 여러 가지 양상들을 비판적으로 검토하였다. 일찍이 물리학자 볼프강 파울리(Wolfgang Pauli)가 '악마의 상징'이라 칭했던 양가치(兩價値) 논리(Zweiwertige Logik)를 프랑스의 수학자이자 철학자인 미셸 세르(Michel Serres)는 다시 한 번 문제삼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신인가, 아니면 악마인가? 배제인가, 아니면 통합인가? 정(正)인가, 아니면 반(反)인가? 이에 대한 대답은 하나의 스펙트럼, 하나의 고리, 하나의 연속성 위에 있다. 우리는 더 이상 예(긍정)와 아니오(부정)라는 대답만으로 사태의 본질에 대한 물음에 답할 수 없을 것이다. 안과 밖, 예와 아니오, 그리고 0과 1사이에 무수히 많은 가치 단위들이 존재하고, 무수히 많은 대답들이 존재한다고 할 것이다. 수학자들은 이러한 새로운 엄밀성을 '불확정한(unscharf)' 것이라 부른다. 즉 불확정한 혼합수(Untermengen) 내지는 불확정 위상(位相) 기하학(Topologie)이라 부른다." 오래 전부터 한국 연구에 이러한 관점에 선 메타비판을 채용할 필요가 있었다는 점에 주목하여, 이 연구에서는 망원경적이거나 현미경적인 접근방법 대신에 통일의 여러 문제를 보여주는 '만화경적'인 관찰방식을 사용하였다."
{통일의 논리를 찾아서}라는 책의 말미에서 송 교수는 한반도 통일 문제와 관련한 자신의 접근방식과 문제인식을 제시하고 있다.
"내재적-비판적 접근방식은 타자의 이해를 위해서는 우선 타자의 본질을 타자의 내부에서 찾아야만 하지, 선험적으로 구성된 가치체계를 절대화해서 타자에게 그것을 받아들이도록 강요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엄격한 자기비판과 자기상대화를 위해 늘 타자의 시각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경탄할 만한 시도는 '뿔 달린 사람'이 산다고 종종 이야기되는 북한의 경우에는 특히 어렵다. 이러한 타자에 대한 무한한 저주와는 반대로 타자를 이상화하는 경향도 있다. 이러한 인식의 전형을 우리는 종종 남한의 재야세력에게서 발견할 수 있다. 이와 동시에 우리는 위에 지적한 타자를 악마시하는 태도에도 동의하지 않고 우울한 자기비판과 타자의 이상화에도 거리를 취하는 또 다른 인식의 전형을 볼 수 있다. 이 마지막 형태는 비정치적이고 개인주의적이며, 동시에 허무주의적이면서도 실용주의적인 입장이고 민족문제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고 있다. 통일은 결국 이렇게 현재 공존하고 있는 다양한 인식과 태도에 직면해서 분단비극의 객관적인 기본구조를 파악하고, 이에 근거한 끈질긴 계몽작업을 우선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위의 인용문이 시사하는 것처럼, 내재적-비판적인 철학 방법론을 한반도 민족 문제라는 구체적인 현실에 적용한 송 교수의 학문적 관심은 다름 아닌 민족분단의 객관적인 구조를 파악하고, 이를 기초로 문제 해결의 대안을 모색하는 데에 있다. 우리는 이러한 방법론이 현 시점에서도 여전히 충분히 유효한가라는 질문을 던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분명히 지적할 점은 그것이 북한을 옹호하기 위한 의도에서 고안된 것이 아니라, 학문의 유구한 역사에서 추출한 대안적 사고방식이라는 점이다.
한반도 통일 문제에 대한 송두율 교수의 철학적 관점
송 교수가 자신의 여러 저술들에서 밝힌 통일의 철학을 몇 개의 테제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통일은 실체적 개념이 아니라 상생(相生)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실체(實體)라는 개념은 변하지 않는 그 무엇을 전제한다. 이에 반하여 상생의 관계(關係) 개념은 실체를 상대화시켜 보는 개념이다. 현재 남북을 가르는 <휴전선>은 남북을 서로간에 배제(排除)시키기도 하지만 동시에 서로간에 삼투(渗透)를 가능케 한다. 가령 불교에서는 연기(緣起)나 주변함용(周偏含用)이라고 표현하고 수운(水雲)은 동귀일체(同歸一體)라고 이야기했다. 이러한 생각은 서양에서도 가령 화이트헤드(N. Whitehead)가 이야기하는 공영(共榮)이나 "나는 타자의 인질"이라고 주장한 레비나스(E. Levinas) 등에게서도 엿볼 수 있다. 이러한 생각은 독일의 통일 과정에서 회자된 "한번 같이 속한 것은 함께 자라야 한다"(Zusammenwachsen)는 주장과 일맥상통한다.
(2) 전쟁도 평화도 아닌 휴전 상태를 상생의 평화 체제로 전환시켜야 한다.
노르웨이의 평화학자 갈퉁(J. Galtung)은 평화를 소극적 의미와 적극적 의미로 구분한다. 이러한 구분에 따르면 한반도는 현재 평화적 수단에 의해 평화를 구조적으로 정착시킨 적극적인 평화 상태도, 전쟁이 없다는 의미에서의 소극적인 평화 상태도 아니다. 전쟁도 평화도 아닌 어정쩡한 <휴전> 상태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휴전> 체제를 <평화> 체제로 바꾸어야 하고, 이를 바탕으로 <적극적>인 의미의 평화 체제라고 할 수 있는 상생의 통일 체제를 지향해야 한다.
(3) 통일은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일련의 과정이어야 한다.
통일이 어느 날 하나의 <사건>처럼 다가올 수 있다는 의미에서 독일 통일을 예로 들곤 한다. 물론 이러한 관찰이 전혀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과정>을 생략한 통일은 있을 수 없다. <상생>의 철학이 실체 개념을 부정하고 있듯이, 통일을 과정으로 보는 철학적 입장에서 보면, 통일은 어떤 <사건>처럼 어느 날 갑자기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과정>의 <연속>과 <불연속>의 종합적 결과라고 할 수 있다.
(4) 통일 문제를 <민족과 탈민족>, <세계화와 주체화>, 그리고 <동시성과 비동시성>의 긴장의 눈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민족과 탈민족>의 긴장은 오늘날 남한과 북한 사회에서 <세계화와 주체화> 개념의 대립으로 구호화되고 있다. 그러나 통일은 남북 사이의 긴장과 대립이 담고 있는 <동시성과 비동시성>이 일차원적으로 충돌해서 생산하는 결과물로 주어지지 않는다. 한반도 통일 문제는 오히려 이 둘 사이를 지양하는 <동시성과 비동시성>의 <동시성> 속에서 해소될 수 있다. 이러한 문제 해결 방식으로 한반도가 통일된다면, 한반도는 <지구화>의 격랑 속에서 동북아의 중심 고리의 위상을 획득할 수 있다.
(5) 한반도 통일은 인류 화해를 지향하는 아름다움의 표현이어야 한다.
동북아의 중심 고리를 지향하는 통일의 이념은 단순히 우리 주변의 강대국 사이에서 우리 자신을 지킬 수 있다는 강함의 표현일 수도 있다. 그러나 한반도 통일은 이러한 민족적 의지의 표현을 넘어서 새로운 세기에 인류의 화해를 가져오고 희망을 구현하는, 그런 아름다움의 표현으로 승화되어야 한다.
(6) 통일은 <과거의 고향>을 복원하는 것이 아니라, 아직 아무도 밟아보지 못한 <미래의 고향>을 전체 민족구성원이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통일은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 세대의 희망이다. 그러나 이 희망은 동시에 미래의 세대에 대한 책임을 동반하고 있다. 한반도에서 미래의 세대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조건을 준비하는 것이 곧 우리 세대의 책임이다. 따라서 통일은 관용과 연대 속에서 새로운 삶의 원형을 창출하는 일일 뿐만 아니라, 독일의 철학자 블로흐(E. Bloch)가 말했던 것처럼, 우리 모두의 유년기에는 있었으나 우리 중 어느 누구도 아직 가본 적이 없는 <미래의 고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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