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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67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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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 날짜: 2004.08.06
글쓴이: 황두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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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정수장학회 약탈 낱낱이 밝혀내어 원소유주에게 돌여주어야 한다.
작성자 황두완 작성일 2004.08.06 조회 1
북일장학회는 부산일보(100%), 부산문화방손국(30%)소유주인 김지태(전 부일장학회회장)씨와 부인등을 박정희도당이 외화유출 죄명으로 중앙정보부에서 구속시킨 상태에서 강탈한것이다.
김지태씨 부부를 고문의 대명사로 불리는 공포의 중앙정보부에서 구속시키고 총칼로 사형이야 아니면 헌납이야 양자택일을 강요한 날강도가 이니었던가.
그런데 열린우리당의 진상규명 과정에서 부일장학회 땅 10만평(부산소재)이 박정희5.16장학회에 기증되고, 국방부에 공짜로 양여한 사실이 새로히 드러났다.
이거 참 요지경속이 아닌가. 우리는 부일장학회 10만평 땅(약 1조원)이 박정희도당의 5.16장학회에 강탈된 후 어떤 과정을 거처서 국방부에 역시 공짜로 공여된것을 알아내고 민법상 시효가 넘었다면 9월 국회에서 법을 고처서라도 원 소유주에게 찾아주어야 한다.
이 사회에서는 사필귀정(事必歸正)이 글로만 존재하지, 현실에서 적용되지 않는것을 바로잡아야한다.
아마 생각컨데 이런 불법약탈과정에서 5.16쿠테타 주동자 몃사람의 사복을 채웠을 것으로 추정된다.
박정희는 5.16쿠테타와 자기를 비판하지 앉으면 어느정도 부정에는 오불관여의 태도를 견지하였다.
물론 이번 땅 10만평 사건에 박정희도 예외없이 깊숙히 관여하였슴은 두말할 필요가 있겠는가. 이렇게 조사하다 보면 박정희도당의 여죄가 반드시 밝혀지리라!
그런데 5.16장학회는 63년 이 문제의 땅을 국방부에 무료양여하고 구방부는 이땅을 군사기지로 사용하다가 80년 대 부터 민간인과 부산시민에게 매각하였다고 하는데, 그 매각대금은 누가 받았으며, 누가 사복을 취했는지도 조사하여야 한다.
61년 5.16쿠테타 당시 박정희도당은 나라의 기틀를 바로잡고 부정부패 숙청하면 원대복귀 즉 군으로 도라간다고 공언한 바 있으나, 빨간 거짓말이었다.
그당시 영남에서 박정희 쿠테타에 호응한것은 이승만 정권은 주로 친일파와 북측인사들로 구성된것을 역이용하여, 이들을 다 내쫓고 영남인사들을 중용한다는 감언이설로 영남 민주세력을 무마시킨것이다.
비근한 예를 들면 민주당 구파이며, 저명한 인사 박준규의원(후 국회의장)등 영남정치인들을 설득하여 그들의 협력을 얻어낸것이다.
정일권 씨는 북한출신이지만 인사에 개입않한다는 조건으로 승승장구한것이다.
그당시 박정희의 공포정치는 많은 기업주들이 영어의 몸이 되었으나, 군사정권에 절대복종한다는 서약을 쓰고 석방된것이다.
여담이지만 박의 졸개인 전두환도당도 박정희의 쿠테타성공 비결인 공포정치를 80년 5월 17일 재연하여 얼마나 많은 민주인사들이 죽음에 이르거나, 구금되고 그중에는 김종필씨,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등이 권력형 부정축재로 낙인찍혀, 재산을 자진 헌납형식으로 뺐기고 석방된것이다.
그러나 권혁형 부정축재자가 아닌 예컨데 김치열 전 법무장관은 강요에 못이겨 약 200여억원을 국가에 헌납하였으나, 작년 소송을 제가하여 찾아간 분도 몃사람있었다.
박근혜대표는 합법적 절차에 의해서 이루러젔으니, 결백운운하고 있으나, 이는 하나의 궤변으로 문어지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박대표는 돈이 별로 없다고 말하는데, 이를 증명하려면 박대표의 친인척의 모든 게좌 추적을 허용하여, 이를 입증하여야 한다. 항간에는 부정축재 말이 없는것도 아니다.
땅 10만평이 63년 경 박정희 5.16장학회에서 군부에 무상양여된 사실이 밝혀지고 있기때문이다. 말만들어도 울던아이도 울음을 멈춘다는 살생부 주앙정보에서 1962년 김지태 부부을 구속, 죽인다고 위협하는 마당에(아마 고문도 하였을것이다)어디 생명보다 더 귀중한것이 어디 있단 말인가.
이런 인간도살자들은 김지태씨 구속만으로는 별 효과가 없을것 같아, 김회장 부인도 구속, 결국 항복문서를 받아내고, 큰 아들에게 인감증명서 서류일체를 갖어오게한것이다.
이번 열린우리당의 정수장학회에 대한 진상규명을 왜 한나라당 주류 특히 영호남 갈등으로 반사이익으로 국회의원으로 당선된자들과 박정희향수로 당선된 의원들은 박정희의 과거 천인공노할 범죄행위가 밝혀지면 독재자 박정희의 딸 박근혜는 대표직과 2007년 한나라당 대통령후보는 말할것도 없고, 영남국회의원 당선도 불투명하게되어, 결국 국회의원이라는 감투 마저 떨어질가 바 전전긍긍하여 반대하고 있는것이다.
그런 까닭에 박정희 향수로 당선된 김덕용의원들은 정치보복이니, 야당탄압이니 황당무계한 소리를 짖어대고 있는것이다.
현재 머리에서 발 끝까지 반dk정서로 무장한 영남유권자들 특히 젊으니들은 반 박정희전선에 똘똘 뭉칠 개년성이 없는것도 아니다.
그런데 정수장학회와 친일진상규명에 암초는 외부가 아니라 내부 즉 열린우리당의 딱지가 덜 떠러진 일부의원들에게 있다는 사실에 유의하여야한다.
오히려 한나라당 이재오의원을 필두로 정의파 의원들도 있으며, 민주노동당 전체의원들과 일부 민주당의원들도 동참할 기세가 아닌가.
우리당 일부 국회의원들은 자나 깨자 신중론이다. 국가보안법 개정이 아니라 전면 폐지에 소극적이다.
하여간 정수장학회 진상을 밝혀내어 시팔귀정이 엄존한다는 사실을 만천하에 증명하여야 한다.
박근혜대표는 정치는 과거지향이 아니라 미래지향으로 나가야 한다고 운운하고 있으나, 이는 자기 부친 박정희 인권학살을 숨기려는 얕은 수작에 지나지 않는다.
과거가 없으면 어떻게 현재가 있으며, 미래가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우리가 친일진상규명은 특정인을 처벌하기위해서가 아니라, 역사를 바로세우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선택이며, 정수장학회 진상규명은 총칼로 강탈된 재산을 원 소유주에게 되돌여주어, 정의가 살았다는것을 우리후세에게 물여주려는것이다.
과거 김대중 전 대통령도 역사바로세우기에 착안하였으나, 집권시 개혁 만 할여면, 한나라당은 터 밭인 영낭에 내려가서 김대중이가 우리 영남사람을 다 죽이려고 한다고 황당한 나팔만 불면 군중집회가 성공한 일도 있어서, 그럴 념두도 못 냈을것이다.
그러나 이제 상황은 천양지판이다, 노무현대통령은 호남이 아니라 진짜배기 영남출신이기 때문이다(2002년 12월 대선에서 파쇼도당은 노무현후보의 인기 상승하자 노후보는 호남 출신다, 그말이 통하지 않자 아버자기 호남출신이
라고 광언도 서슴치 않았다)
좌우간 이제 친일진상규명법은 반드시 빍혀저야 히며, 정수작학회는 원 소유주에게 돌여주도록 우리 모두 특히 젊으니들 분발하기 바란다.
국폐모, 한사모 황두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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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6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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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 날짜: 2004.08.04
글쓴이: 황 두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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엿말에 똥싼 놈이 킅 소리친다는 속담은 고금을 통해서 진리인것 같다. 정부기관에서 개혁이 가장 시급히 요구되는 곳은 이나라 민주주의를 작살낸 정치검찰이며, 그중에서도
악명높은 정치검사 참피이언 宋光洙검사가 격에 어울리지 안는 높은 감투를 쓴 후 노무현대통령을 우습게 알고, 인권옹호의 기수인 강금실 전 장관의 개혁의 발목을 잡았을 뿐만아니라, 일부 졸개들과 작당하여 항명파동 까지 이르키어, 우리민중의 가장 존경하는 강금실장관 마저 사표까지 내게 만들지 않았던가. 나갈 놈은 따로 있는데 말이다.
이승만은 집권 12년 동안 친일파에 둘여싸여 탈법, 초법적 범죄행위를 시근 밥 먹덧이 하여왔으나, 총칼로 입헌정부를 뒤집는 일은 없었다.
60년 3월 15일 부정선거로 권좌에서 쫓겨난것이다. 그당시 이승만 졸개들은 많은 지역에서 개표도 하지않고 이승만 이겼다고 발표한곳이 부지기수이었다.
이에 격분한 민중봉기가 이러난곳이 바로 대구이며, 가히 민주주의 발상지로 기리 역사에 남을것이다.
그후 연달아 마산에서 민중봉기가 있었으며, 이것이 도화선이 되어 4.19학생혁명으로 이어진것이다.
불의와 부정을 보면 생명도 초개와 같이 헌신하던 대구 경북에서 아직도 영호남 갈등에 선봉장이 되고 있으니, 안타까운 마음 글할 수 없다.
헌정 파괴의 원조는 친일 깡패두목인 박정희이며, 이런 독재가 97년 까지 장장 36년 동안 파시스트정권까지 이루어지다가 국민정부와 참여정부에서는 역으로 헌정파괴가 야당 파쇼도당이 자행하고 있는것이다.
금년 3월 12일 오전 11시56분 야당등은 야합하여 쿠테타로 약 2개월동안 헌정을 중단시킨것이다.
금년 6월14일 대검중수부 문제로 宋光洙검사는 노대통령이가난한 농민의 아들이고 일류대학 출신이 아니라고 멸시하여, 호통을 처도 아무도 이치를 파면 건의안 내는 사람 한사람도 없으니, 그 파장으로 지난달 7월 14일 해군사령부에서 노대통령이 장군출신이 아니고, 일개 상병출신이라는 편견을 갖고 허위보고를 하는등 검찰기강이 개판이 되듯이 군의 기강이 문란하였으니, 이거 누구책임이란 말인가.
두말할 나위없이 宋光洙검사가 이니던가. 군보고 누락문제로 여론이 시끄러지자, 파쇼도당과 반통일 족속들이 공공연히 군의 쿠테타를 선동하여도, 아무런 제재도 받지않으니, 어떻게 하다가 이지경이 되었으니 말이다.
이런자들은 일벌백계식으로 엄중히 다스러야 한다. 요즘 박근혜대표의 난데없는 헌법 못지키면 사표내야한다느니 뚱땅지 같은 정치공세를 취하고 있는데, 그녀의 의도를 삺여보면 새로운 친일진상법규명법이 통과되면 조사과정에서 박정희의 잔힉한 친일진상이 폭로되고, 국군남로당 군책임자로 후배군인들을 설득하여 군 프락치에 가입시킨것이 48년 여수 순천반란사건으로 군법회의에서 사형이 구형되자, 일군출신인 원용덕 장군에게 군 프락지 명단 제공 조건으로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다는 기록이 군재판기록에 남아있을것다.
박정희의 인간성의 단면이 폭로된것이다.
그당시 군프락지와 알기만하면 모조리 사형시키었는데, 군 프락지 총책인 박정희가 사형을 면한것은 군법회의 재판기록을 열람하면 전모가 밝혀질것이다.
그리고 박근혜대표는 툭하면 국민이름 도용하고 있는데, 민심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고 한다.
열린우리당의 정수장학회 진상위원회는 박대표를 조사할 권한도 없고 그럴 의사도 없다고 이미 천명하지 않았던가.
한나라당 정의파 의원들도 박대표의 정수장악회 이사장 내노라는 말이 있지않은가.
육영수 영부인의 불의의 사망이 아마 73년 8.15이며, 그후 박대표는 유신 체제에서 제 2인자로서 국민에게 군림한 일 사실이 이닌가.
그당시 백두진 국회의장이나 총리, 장관도 박정희에 준하는 180도 허리를 꾸부리는 장면이 수없이 tv에 방영되었다.
박대표는 아버지 박정희 말만 나오면 알레르기방응을 일르키고 흥분한다고 하는데 정치가나 대통령후보 될 사람은 그런 히스테리는 금물이다.
그리고 박대표는 독재자 박정희 18년 정권에서 얼마나 많은 민주인사들이 고문에 못이겨 간첩아닌 간찹이란 누명을 쓰고 교수형 당하거나, 장기간 영어의 몸이된 것도 모런단 말인가.
아니면 알고도 박의 학정이 폭로될까 바 반대하고 있는가.
그리고 일부에서는 대법원에서 유죄로 확정판결 운운하고 있는데, 박정희에서 문민정부에 이르기까지 인간 쓰레기 정치판검사들의 대통령 충견의 판결을 어떻게 믿으란 말인가.
노무현대통령이 의문사 진상규명 위원회의 포괄적인 과거사 조사필요성을 튀집잡고 간첩이 군장성을 조사운운하고 잇는데 박대표는 유신체제에서 그런 간첩범죄가 조작된것이라고 이미 법에서 무죄 판결되고, 억울하게 옥살이 한것이 판명되어 사면복권된 인사들을 걸고 빨갱이 운운은 정치인으로사 더구나 당대표서 할짓이 아니다.
박대표의 밑도 끝도 없는 정체성 논란은 수십년간 파시스트들이 전가의 보도 빼듯이 써먹던 수작이 아닌가.정수장학회 문제는 원소유자 김재태씨의 유적들은 총칼로 구속시키고 순순히 내놓지 않으면 죽인다고 갖은 협박으로 깅탈하였 다니, 이것역시 진상규명위원회에서 밝혀내어 원소유자 유족에게 반환하여야 한다.
그런데 박대표는 총칼로 강탈한것이 명백히 드러났는데도 외 고집을 부리고 있느가.
대여투쟁으로 당내 비판세력의 비판을 봉쇄하고 그리고 박정희의 역적질 죄상이 벍혀지면 자기의 설자리도 잃게될 까 바 미리 선수쓰는것이 아닌가.
이런것을 한마디로 말하면 박근혜대표의 정치적 빈곤과 철학 부재에서 오는 필연적인 결과라고 단정할 수 있다.
국폐모, 한사모 황두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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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6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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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 날짜: 2004.08.01
글쓴이: 황 두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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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정수장학회 수탈과 수습책.
작성자 황두완 작성일 2004.08.01 조회 4
정권창탈자이며 인권학살자인 만고의 역적인 박정희가 민주순교자 김재규열사에 의해서 피살된지 꼭 25년 전 일이며, 파쇼도당의 61년 5월 16일 쿠테타는 만 43년 전 일이다.
그래서 나이 60세 후반이 아니면 이치들의 천인공노할 만행은 생생이 기억할 수 없을것이다.
이들 역적들은 서울을 점령하자 마자 전국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박정희가 가장 두려워하던 전국대학에 무기한 휴교령을 내리자, 멋모르고 등교하는 핫생들을 총칼로 쫓아버리고 많은 학생들과 마침 태동하고 있던 혁신계 인사들에게 검거선풍을 내리어, 전국을 공포분위기로 몰고갔다.
장면정권에서 이미 수감하고 있던 최모 전 내무장관, 경무대(현 청와대) 경호실장등을 구속하고, 여러 씨름선수들을에게 '나는 깡패다라는 딱지를 등에 붙이고, 종로 네거리를 소리지르게하며,겄게하여, 국제사회에서 인권침해라고 비난이 자자하였다.
박정희도당은 이들 몇사람을 합법적 재판절차를 밟지않고 캥가루 재판(kangaroo court=인민재판)식으로 사형집행하였는데. 여기에는 중앙극징 관리인 임화수라는 북한 출신 철저한 민주투사도 있었다.
그당시 이역적들은 고등학교는 무시하고 휴가조치를 취하지 않았으나, 용감하게도 삼청동에 있던 경기고교 2.3학션 학생들이 5.16쿠테타 반대시위로 안국동까지 진출하여 이들 파시스트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일도 있었다.
이런 이유로 박꺙패들은 제일 먼저 경기고를 강남으로 쫓아버리었다고 한다(그당시 강남은 집이 별로 없고 미 개척지이었다)
그리고 이자들은 각 언론사주들을 정부청사(전 일제 총독부 자리)로 불러, 5.16군사쿠테타에 협조을 협박조로 명령하였으나, 민주일보 조영수 사장 만은 이에 굴복하지 않고 신문기사를 사실 그대로 게재하였다.
그 당시 동아일보의 독자가 단연 선두를 달리고 있었으나, 유독 민족일보는 가판에서 동아일보를 앞섰다고 한다.
그런데 박도당은 민족일보 조용수사장을 살인적 고문으로 (원래 민족일보는 민단자본으로 운영되고 있었는데)조총련 자금이라고 허위자백하여, 38세의 한참 일할 나이에 형장의 이 슬로 사라지게 된것이다.
그당시 재판관은 두번대선에서 민주진영에게 패배한 파쇼도당 두목 이회창씨라고 한다.
그런데 이씨는 조용수씨 재판에 한점 부끄러운 점 없다고 새빨간 거짓말하였으니, 약관의 노무현후보에게 패배할 수 밖에,,,,.
이와 같이 민족반역자 박정희도당은 민주주의 기본인 3권 즉 입법, 사법, 행정부을 총칼로 장악하였으니, 가히 러시아 제정시대의 차르(czar) 황제와 같이 무소불위 못할일이 없었으며, 박정희가 법이고 대한민국이 었다.
국회도 해산되고 사법부 재판에 박의 이해관계가 얽힌 재판관은 허수아비 이며, 무슨 양심이 통할 수 있었단 말인가.
그야말로 공포분위인데 상식이 통할 수 있겠는가.
그당시 우리 대부분의 민중은 굶줄이고 호구지책 하기에도 힘이 들었다.
오죽하면, 미군부대 꿀꿀이 죽(사료용, 그 안에는 담배꽁치, 휴지, 이쑤시게등 포함)도 맛있다고 사먹고 있어서 식량난이 극심하였다.
우리 서민은 미국에서 수입한 밀가루에 의존하고 있었다. 이런 삼엄한 계엄령 상태가 63년 대선과 총선까지 계속되다가 선거후 중앙정보부와 경찰 감시체재로 바꾸었다.
선거전 5.16깡패군인들은 완전 무장한 졸개들을 데리고 부정, 부패 숙청이란 미명하에 여러 재벌들과 부유층을 투옥시키고 우리말 듣지않으면 샤형시킨다고 위협하고 이들의 재산을 사회에 헌납한다는 형식으로 강탈한것이다ㅣ
사정이 이러하니 불행이도 시효가 넘었다면 법을 고처서라도 원소유자에게 돌여주는것이 정의가 아닌가.
과거 국회는 파쇼도당이 다수당이기 때문에 불가능 하였으나, 이제는 민주정당인 열린우리당이 다수당인데, 무엇을 주저하고 두려워하는가.
투표방식은 무기명이 아니라 기명방식을 택하면, 파시스트당은 이념과 노선이 같아서 모인 정당이 아니고, 국회의원이라는 감투욕에 환장하여 모인 오합지졸이기 때문에 그들에게 무슨 당론, 당성이고 나발이고 있단 말인가.
마치 염불에는 마음이 없고 오로지 제밥에만 눈독을 드리는 족속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영남지역당 일 망정 국회의원 121석을 찾이하고 있는 당 대표가 언론사를 장악한다는것은 법 저촉은 차치하고 윤리, 도덕상 혀용될 수 없는 문제가 이닌가.
역으로 김대중선생이나 노무현대통령이 이런 추태를 저질렀다면 반통일 언론들과 극우단체들이 쌍집팽이를 들고 야단법석 떨었을텐데 말이가.
정수장악회 설립과정이 총칼로 강탈한것이 백일하에 폭로된 마당에 야당대표로서 소유를 고집하는것은 적절한 행동이 아니다. 더우기 박대표는 2007년 한나라당 대표로 대권에 도전한다는 인사가 아니던가.
그리고 박근혜대표의 변명은 구차스러웨 궤변에 지나지 안는다. 그러면 이제 박대푱의 궤변을 반박할 까 한다.
군사 독재자 박정희가 정의의 총탄에 쓰러진지 이미 25년 이란 기나긴 세월이 흘렀는데도, 아무 말이 없다가 이제와서 제기하니 이는 정략적이고 정치공세라고 규정하고 단호히 정수장학회 사수를 말하고 있는데, 박대표의 속내는 매월 1100만원이라는 거금에 눈이 어두어 이런 궤변을 떨고있지 안나 의심이 간다.
원래 정수장악회는 부일장학회 소유주 김진태씨는 울던 아이도 울음을 끄친다는 무서운 중앙정보부에서 외화반출죄명으로 구속시키고 강탈한것이 1962년 3월이고, 김진태씨는 협박에 타의로 붕앙장학회(부산일보)와 부산문화방송 운영권을 내놓게 된것이다.
그후 교활한 박정희는 5.16장학회로 이름을 슬쩍바꾸고 박의 피살후 5.16장학회로는 소유권유지가 어려워지자 슬쩍 박근혜대표의 부모이름을 따서 정수장학회로 이름만 바꾼것이다.
박대표는 25년이란 기나긴 세월이 흘르는 동안 아무 문제가 없었다고 운운하는것은 눈가리고 아웅하는 격이 아닌가.
박정희 피살후 누가 정권을 강탈하였는가.
민주진영인가. 벅정희 졸개인 파시스트 전두환 노태우가 아니던가.
그들은 철저한 박의 추종새력이 아니던가.
그리고 87년에도 ys 노무현 대통령등 의원 13명이 정수장학회를 원소유주인 김지태씨의 부일장학회로 반환요청 청원을 국회에 소개한 바도 있다.
1989년에는 3당(민정당, 공화당, 민주당)야합으로 이 문제가 흐지부지 되었으나, 국민정부 드러와서 이문제가 여당내에서 논의된 일도 있었으나, 김대중전 대통령은 영호남 화해의 일환으로 자기를 세번이나 죽일여고 한 박정희도 용서하고 오히려 박정희 기념회관 건립계획을 세웠으나, 졸장부만 모인 경북, 대구 일부 머저리들의 거부반응으로, 박정희 기념관 건립도 난관에 부디친터에, 정수장학회 문제는 영남죽이기 음모로 몰릴까 바 공개적으로 논의도 못하였다고 한다.
dj가 좁고 좁은 호남출신이며, 대 다수 영남사람들의 반dj정서가 깊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제 노무현대통령은 호남출신이 아니고 또한 더욱 반가운 일은 정부 여당의 선동이 아니라 부산일보, 부산문화방송 종사자들를 필두로 부산시민들의 자발적 운동으로 정수장악화 원 소유주에게 반환운동이 전개되고 있다는것이다.
다행이도 열린우리당에서도 진상조사 한다고 하니 우리민중들 수수방관 할것이 아니라 "정수장학회"원주인에게 반환캼페인에 모든 민주시민단체들, 학생들 젊으니들 적극참가하기를 간절히 부탁하는 바이다.
국페모, 한사모 황두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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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67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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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 날짜: 2004.07.30
글쓴이: 황 두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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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법무장관 경질은 만시지탄 감 있으나 잘한일다.
작성자 황두완 작성일 2004.07.30 조회 3
그렇다면 전임 강금실장관이 잘못하였단 말인가. 아니다. 검찰의 민주개혁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였는데, 피추천인의 파쇼이데오로기와 배신으로 숱한 고생만 하고, 검찰개혁이 지지부진하고 위기에 봉착하여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우리는 역사에서 교훈을 얻어야 할텐데,,,.
아무리 위대한 철학가, 청치가라 하더라도 인간이기 때문에 오류를 범하게되는것이다.
단적인 예를 들면 김대중선생은 1세기나 2세기에 한번 나올까 말까한 위대한 정치가인데, 98년 2월 국민정부 최초 법무장관에 개혁주체가 아니고 개혁대상이며, 공짜 배를 탄 박상천군을 법무장관 감투를 씨운 결과, 옷로비사건, 이용호게이트등으로 역대대통령중 가장 혁혁한 빛나는 업적을 쌓은 김대중 전 대통령을 위기로 몰고간 일이 이를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노무현대통령과 강금실 전 법무장관은 이념적으로나, 능력등 다방면에서 유능한 검찰인사들 다 제처놓고, 정치검사로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아첨, 아부꾼인 정치검사 왕치 宋光洙에게 높은 감투를 씨운결과, 무서운 사태가 야기되지 않았던가. 다시말하면 일개 임명직 검사 宋光洙가 작당하여 항명파동도 이르키고 감히 대통령에 전면도전까지 하는등 국가기강이 개판이 되었으니 말이다.
작년 2월 초 宋光洙검사는 노무현대통령의 총장지명이 있기가 무섭게 이치는 검찰개혁과 노무현대통령의 개혁이 같다는 기상천외의 아부, 아첨 발언으로, 노대통령과 강장관의 마음을 흡족하게 하여(노무현대통령과 강금실장관의 검찰 내부사정을 모르는것을 기화로) 그덕택으로 검사장급 인사에 개입하여 97년과 2002년 대선에서 김대중후보와 노무현후보 당선을 위해 헌신적으로 당선활동을 한 호남 출신 검사장급과 고위검사 인사에서 그분들 민주검사들을 다 내 쫒거나 한직으로 좌천시키어 그들 대부분의 인사들을 사표내게 만들고, 심지어 법무부 검찰국장을 서울고검 차장검사로 좌천시키었으이 이런 개판인사가 검찰역사상 어디 있었단 말인가.
검사장들이 가장 선망하는 곳이 다름아닌 검찰국장이고 그다음이 대검 중수부장, 그리고 각 지검검사장이 아니던가.
이치는 자격미달인데도 신승남(전남 영암) 전 총장은 송이 철저한 반dj인 줄 알면서도 검찰국장 감투도 씨우고 약 7개월 후에 대구고검장으로 승격시키지 않았던가.
어디 그뿐인가. 재경지청장이면 대개 검사장으로 승격시키는것이 관례인데, 고검검사로 보냈으니 호남 민중들 호남 푸대접이라고 아우성친 일 사실이 아닌가.
그럼에도 호남민중은 이번 4.15총선에서 열세의 열린우리당에 몰표를 몰아주지 않았던가.
노무현정권 만이 햇볕정책을 계승 발전시킨다고 믿기때문이라고 한다.
宋光洙검사의 의도적인 호남인사 배격을 다분히 전략적 흉계가 있지 않나 의심이 간다.
앞으로 선거에서 호남의 몰표를 차단한다는것이 한나라당의 선거전략과 우연이든 아니든간에 묘하게 일치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면 어떤 인사가 법무장관과 검찰총장에 적임자란 말인가. 우선 능력과 자질은 말할것도 없고, 과거 군사, 파쇼대통령의 충견노릇은 차치하고, 97년과 2002년 양대선거에서 반파쇼전선에서 다시말하면 김대중후보와 노무현후보 당선에 혼신의 힘을 다한분이 적임자라고 우리문중은 믿고있다.
반면 宋光洙검사는 dj라면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고, dj지지자를 뻘갱이로 몰고, 현철인맥인 태정, 진세와 야합하여 그 공무원의 생종권을 박탈하고, 이치는 민족정지인 한겨레신문을 구독정지 시킨일 부인하지 못할것이다.
그리고 양대선거에서 dj와 노무현후보 낙선에 광분한 宋光洙검사에게 검찰의 개혁을 맡기어 놓았으니, 이는 마치 고양이 새끼에게 생선가게 맡기는것과 무엇이 다른단 말인가.
김승규 신임법무장관에게 가장 시금한 과제는 참여정부의 영 다시 말하면 개판이 된 국가기강을 원상복구 하는것이다.
김승규장관께서도 아시는 바와 같이 특히 김대중정부에서도 검찰기강이 이렇게 시장 장돌뱅이나 야꾸자(깡패집단)에도 없는 일이 있었던 일 없지 않았는가. 그래서 검찰기강을 바로잡는 일이라고 우리민중들의 판단이다.
법무장관은 대통령의 대리인인데, 대통령과 법무장관의 지시 명령이 宋光洙검사에게는 우이독경이 되었으니, 어느나라에 이런 비극이 있단 말인가. 이는 마치 참여정부는 宋光洙검찰공화국 이란 말인가.
작년 6월 청와대 오찬에서 검사장들이 작당하여 대통령의 고유권한인 인사권 돌여달라고 짖어대고, 그후 더 높은 졸개 이범관 광주고검장을 사주하여, 노무현대통령의 말꼬리를 잡고 노대통령에게 전면도전하여, 국가원수의 대내외적인 위상과 체면을 땅에 떨어틀어도, 宋光洙검사는 속으로는 기뻐하면서, 오불관여, 모르는척 하지 않았던가.
송검사가 시키지 않았다면 송은 당연히 이들에 대한 해임건의안을 품신하였을것이다.
그리고 강금실장관의 개혁에 일일이 부레이크를 걸고, 억울하게 이적단체로 몰리고 있는 한총련 합법화를 전향적으로 검토에 역행하여, 지명수배자가가 양산되어 있지안는가.
작년 10월 13일 노무현대통령의 국회시정연설에서 재독 학자 송두율고수에게 관용, 그리고 강금실 전 장관의 처벌 불가 말슴이 있는데도, 이치는 졸개를 시키어 반성없고 도주, 증거인멸 우려가 있다고 구속 15년 구형에 7년 선고도 모자라, 항소까지하고, 고법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5년도 작다고 상고까지 하였으니, 이치는 어디 검찰의 민주개혁할 수 있다고 볼수 없지않은가.
금년 3월 12일 의회쿠테타로 발발된 촟불시위를 경찰로 하여금 촟불시위를 탄압하고, 범국민운동 집행부 4명에 대한 영장신청은 사전 법무장관에 보고하기로 되었있는데도 고의로 보고하지 않고, 법원에서 기각 망신을 당하지 않았던가.
한총련이나 미묘한 시국사건 영장 신청은 법무장관에 보고하기로 되어있는데도, 보고누락을 알고 강금실장관의 대검조사를 이치는 대검조사할여면 나부터 조사하라고 큰 소리치는 개판이 되었으니 말이다.
이때가 바로 노무현대통령의 유폐중이다. 이런것을 보면 이자는 파쇼도당 처럼 노무현대통령의 파면을 학수고대한것 같다.
4.15총선에서 예상외로 열린우리당이 대승하자, 이치의 항명파동 발언에 오리발을 내밀며, 내가 언제 그런 말하였는가. 모든 책임을 언론에 돌리고있다. 얼마나 언론플레이 명수이길래 거의 모든 언론이 침묵을 지키고 있으니,,,.
지난 1년여 동안 송은 노무현대통령과 측근자 비리 찾기에 혈안이 되어온 일 송은 부인못할것이다.
지난 6월 14일 정부는 대검중수부를 폐지하고 일본 검찰과 같이 각 지검에 특수부강화 개혁에 반대하여, 큰 소리로 중수부 없엘여면 내목부터 치라고 노후면대통령에 직격탄을 날여 대통령도 안중에 없는 폭언을 하였으니, 어떻게하다가 이나라 국가기관 기강 그것도 가장 엄하다는 법무 검찰기강이 상하가 없고 宋光洙검사의 큰소리만 있으니, 우리민중 어안이 벙벙하였다.
그다음 날 6월 15일 노대통령의 시의적절한 잘책은 검찰 통재불능에 빠진 강금실장관 사표내라는 노대통령의 의중을 알고 사표냈다면, 강장관은 더 돋보였을텐데, 유감스럽다. 그리고 중수부페지는 없던일로 치부한다고 참 어이가 업다.
아무리 임기 2년 고집하고 감투에 환장한 宋光洙검사도 감투 아니벗을 수 없었는데, 유감스럽다.
우리민중이 가장 우려하는것은 재산해외 도피다. 작년 초가을 안대희 중수부장은 차떼가당 불법대선자금 선거에 쓰지 않고 해외에서 호화주택이나 빌딩산 질이 좋지 않은 국회의원들 발본색원한다고 우리민중에게 약속하였는데, 그후 오리무중이다. 이것 역시 김승규장관이 밝혀내여 국고환수하여야 한다.
검찰에서 이렇게 놀고 있으니 으쟁이 뜨쟁이 너 나 할것없이 해외도피재산이 증가추세에 있지 않은가.
그리고 박근혜의원의 복당비 3억7천만원과 기타 복당비로 2억 받은 썩은 국회의원들에게 면죄부를 주었으니, 宋光洙야 말로 한나라당 구새주가 되었으니, 부정부패 청산이 백년하청격이 아닌가.
외무부와 군부도 기강이 문어지고 우리민중이 뽑은 노무현대통령도 우습게 보는 풍조의 원조는 다른사람이 아니라 바로 정치검사宋光洙 이니던가.
宋光洙검사는 임기 2년 운운하고 있지만, 93년 집권하자 마자 자기의 정적인 박철언의원과 가깝다는 이유하나 만으로 박종철검찰종창도 내쫓고, 자기가 임영한 기두희총장 마저 갈아치우고 3권분립인 대법원원장 김덕조도 사감으로 해임시지 않았던가.
하믈며 宋光洙검사는 작당하여 조직적인 항명파동, 명령불북종에 기강문란죄에 해당되지 안는가.
좌우간 宋光洙검사가 그 감투를 쓰고 있는한 김승규장관의 앞날은 험악하고 노무현대통령의 검찰개혁은 암초0ㅔ 부디치기 쉬웁다.
만일 宋光洙검사에게 일말의 양심이 있다면, 검찰의 민주개혁을 개판으로 만들어놓았으니, 자진 물러나는것이 검찰개혁과 검찰하모니에 큰 도움이 될것이다.
宋光洙검사는 그동안 검찰에서 덕 쌓은일 없으니, 변호사도 파리날린 신세이나, 그렇다고 갈대가 없는것도 아니지 안는가.
특등공신인데,,,,..
가능하면 송두율교수에 대한 상고를 철회하는것이 우리민주이 바라는 바 이다. 비생산적이기 때문이다.
국폐모, 한사모 황두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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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66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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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 날짜: 2004.07.27
글쓴이: 황 두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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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드디어 馬脚露出허는 벅근혜파쇼도당.
작성자 황두완 작성일 2004.07.27 조회 13
마각노출이란 말은 사기성이 내포된 말이니, 일종의 사기가 아닐가. 그러면 馬脚露出의 원조는 검찰의 다름아닌 정치검사 왕중왕 宋光洙가 이니던가.
작년 2월 초 宋光洙검사는 2002년 12월 대선에서 노무현후보의 당선이 확정되자 마자 이치는 비장의 전매특허인 아부, 아첨으로 강금실법무장관의 마음을 사로잡아, 강장관의 추천으로 이치에게는 어울리지 안는 이나라에서 가장 무섭고, 대통령도 안중에 없는 검찰 높은 감투 발령이 아니라, 지명을 받자, 이치는 정식 발령이 아니라 지명만 갖이고는 불안하다.(97년 12월과 2002년 12월 양 대선에서 우리 민주진영은 김대중 후보와 노무현대통령 만들기에 혼신의 힘을 기울였는데 반하여 송은 정반대의 선택을 하였는데도 불공평하게)검찰 높은감투에 지명하였으니,,,,.
제버릇 개못준다고 전매특허인 아부, 아첨발언 즉 검찰의 개혁이 노무현대통령의 개혁과 같다는 낯 뜨거운 거짓말을 하여 노대통령과 강장관의 마음을 흡족케 하여 발령을 받자 마자, 양의 탈을 벗어버리고 이리의 본성이 나타난것이다.
왜 宋光洙검사는 이렇게 용의주도하게 아부 아첨을 하였는가.
답은 간단하다. 이치는 박정희에서 파쇼정권에 이르기 까지 민주세력과 학생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하였을 뿐만 아니라, 자기 처(마산여고 이대)와 그 패거리들의 말만 듣고 마음속으로 dj지지하던 공무원을 같은 족속인 김태정과 김진세와 공모하여, 그 공무원을 빨갱이로 몰고, 왈 그런 불순분자는 우리조직에 필요없다는 광언을 하고, 그 공무원의 생존권을 박탈등 여러죄상이 사전에 알여질가 바 전전긍긍하여, 아부광테로 감투를 쓰게된것이다.
송검사는 아부 아첨에는 기네쓰북에 올를만한 천재적 자질이 있고, 노벨 아부상도 탈만하지 안는가. 절망 격찬을 금할 수 없다.
宋光洙검사에게 유엔의 아부 아첨상 후보로 추천할 까 한다.
이런것을 보면 박근혜파시스트도당의 마각노출은 새로운것이 아니라, 아마 창시자는 정치검사 왕중왕 宋光洙가 아니던가.
그러면 이제 본론 즉 박근혜파소도당을 논할 까 한다. 금년 3월경 지역갈등 참피이언 박근혜의원은 2002년 11얼경 대통령 선거 중반전에 돌입하자, 한나라당 수뇌부로 부터 복당비 명목으로 3억7천만원 훌컥하고 만고의 역적 박정희 매국노에 뿌리를 둔 한나라당으로 북당하여, 여야긴에 가장 큰 대선이슈인 행정수도 이전을 수도권 공론화등 갖은 권모술책을 다 동원하고, 천문학적 불법대선자금을 탕진하였는데도, 현명한 통일세대들의 배척으로 큰 망신을 당한것 널리 알여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마 추측컨데 한나라당에 오늘날과 같은 강력한 야당을 만들어 준 특등공신은 다른 자가 아니라 바로 이념적으로, 정서적으로 뿌리가 같은 宋光洙검사이니, 이치를 비례대표 1번 주는것 당연지사가 이닌가.
박근혜대표는 대표가 되자 마자, 전임대표들의 강성 이미지 불식에 애쓰고 미소작전으로 여야 상생정치의 캣치프레이스를 내걸고 망국적인 지역갈등에 불을 댕기어 그것이 주효되어, 영남당일 망정 원내 제 1야당이 된것이다.
그당시는 당대표임기 가 약 3개월도 남지 않으며, 소신 없이 그저 미소전략으로 대응하여왔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은 전혀다르다. 대표임기가 2년이기 때문이다. 아마 대통령 꿈도 이를 수 있다고 자만하게 된것이 아닌지.
그러나 이번 열린우리당에서 일부 한나라당 의원들의 협조를 얻어, 친일진상규명법 제정에 크게 반발하여 정체성운운 하며, 전면전도 불사한다고 떠버리고 있다.
그 이유는 이재오 당중진의원의 독재자 박정희 딸이 당 대표가 되면 한나라당이 망한다는 폭탄선언에 당내 젊은 의원들에서 우후죽순처럼 동조자가 나올까, 이대로 방기하다가는 박근혜대표의 2007년 대선후보 지명도 불투명해지자, 대여 전면전도 불사한다는 불구퇴진의 강경책을 취한것이다.
과거 야당의 독재에 항거한 투쟁사를 보면 대여 전면전이선포되면, 반대파들이 침묵을 지켜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 한나라당은 정책이나 노선이 같아 모인 이념동지가 아니고 국회의원이란 감투 때문에 으쟁이 뜨쟁이 모인 오합지졸이므로 혼연일체가 되기에는 무리다, 한마디로 말하면 당내 무마용이다.
친일진상규명법이 통과되면 첫째 민주벌판에서 일본 관동군 정예부대는 태평양 전선으로 이동하고 그 대신 조선인 병사들을 대거 투입하여, 치안과 독립군 토벌을 전담시키었다고 한다.
그 당시 우리독립군 부대는 제3路軍이고 제8路軍은 모택동군의 유격대라고 많은 한국학자들의 중국탐사에서 밝혀진 사실이다.
그당시 일군은 한국독립군 토벌에 일병보다 조선말을 알고 있는 한국인 군인과 한국인 통역을 앞세워 초톤작전을 벌이면서 어린아이와 부녀자들을 도살하였다는 기록이 현지와 중국정부에 보존되어 있다고 한다.
친일죄상을 밝히려면 반드시 현지답사와 일본정부의 협조가 필요하다.
가끔 징용된 한인 노무자의 명단이 언론에 보도돤 바도있고,장교이상과 고등문관 명단이 아직도 일본 문서보관소에 기록이 남아있다고 한다.
박근혜 파쇼도당이 가장 두려워 하는것은 박정희의 잔인한 죄상이 폭로되면 영남권에서 박정희 위상이 문어지고, 한나라당 자체 붕괴는 말할것 없고, 박근혜의원의 감투(국회의원)도 위협 받을 까 친일진상규명법을 반대한것이다.
김뎍용의원은 정치보복이니, 야당파괴니 떠버러고 있는데, 이런자가 어떻게 과거 야당 국회의원이 되었는지 의심이 간다.
친일진상규명법에 쌍집팽이를 들고 반대일변도로 나가다가 모사꾼 공짜배를 탄(비례대표)전직 박모교수는 박정희 의 공로는 70%이고 유신독재는 30%이니, 박근혜의원에게 털고가자는 용기에 고무되어 친일진상 조사할여면 하라고 돌변하게된것이다.
우리가 여기서 주목할것은 평소 양심적인 대학교수, 언론인들, 심지어 방송인들 남여를 가르지 않고 파시스트당 국화의원(공짜배를 탄)이나, 선출직이든 간에 이상하게도 머리애서 벌꿑꺼자 파쇼문화에 중독되어, 파시스트당 궤변자가 되고 있으니 말이다.
반면 열린우리당에도 비례대표 국회의원이던 선출직 이던간에 파쇼주의에는 등을 돌리고 있다.
45년 8월 15일 일제가 항복하자, 일본군인, 한국인 군인들 중 현지에서 가혹행위등 잔인한 행동을 한 자는 격분한 군중들이 사형집행한 일도 더러 있다고 한다.
중국에서 귀국한 학병들 말을 빌면 박정희는 하루 아침에 고아가 되고 신변에 위협을 느끼자 43년 겨울 학병으로 만주로 가서 중국정부에 망명한 장준하선생은 일본군 한국군인들과 피난민들 보호하고 있자, 약삭빠른 박정희는 장준하선생에개 애원하여 그힘으로 무사히 귀환하였는데, 장선생의 유신체제에 협력않한다고 중앙정보부에게 지시하여 장선생을 죽음에 이르게 한것이라는것이 중론이다.
박정희 죄상조사하다 보면 여수 순천 군 반란사건에 남노당 군 프락치 총책으로 발각되어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군 프락치 책임자로 조직을 알여주는 대가로 사형을 면하였다고 한다.
그당시 군 프락치 총책임자는 남노당 이재복 중앙위원이라고 한다.
49년 박정희 군법재판기록이 있으니, 반드시 이것도 참고로 열람하여야 한다. 진상을 조사하다 보면 자연히 박정희 도당이 촌칼로 헌정을 뒤업고 정권찬탈한 이래, 79년 10월 26일 민주 순교자(Martyr)고 김재규선생의 의거로 죽을때 까지 얼마나 많은 애국민주인사들을 고문으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거나, 장기간 옥살이 시킨 박정희의 잔학성이 밝혀지게 될것이다.
그리고 팟쇼도당과 일부 수구세력은 박정희를 경제대통령으로 호도하고 있으나, 그당시 미국정부는 이승만정권은 적을 앞뒤로 다시말하면 북에는 북한과, 남에는 일보을 적으로 두고 있다고, 장면정권보고 일본과 수교를 강력히 권고하여, 장면 민주당정권은 일본정부에 36년 강점 배상으로 18억불을 요구하여, 최소한 15억불로 타결될 승산이 보였는데, 난데없이 5.16쿠테타로 정권 강탈한 박은 일본과 수교하면서 3억불에 결제원조형식으로 2억불 도합 5억불로 한일관계 과거가 청산된것이다.
그당시 김종필 중앙정보부 부장은 일반시민들과 학생들의 강력한 반대에 재2의 이완용이가 되더라도 한일수교를 성공시킨다고 킅 소리치고 굴욕외교를 맺은것이다.
이 액수가 관례가 되어, 북일수교 논의가 있을때 마다 파쇼정권에 이르기 까지 한일수교 액수를 넘어서는 아니된다고 부레이크를 걸은것 부인못할것이다.
그러다가 국민정부와 참여정부에서 북일 수교 액수에 일체 간섭하지 않게된것이다.
그리고 박정희파쇼도당은 일본과 미국정부등 여러국가에서 경제원조를 5.16쿠테타 주체세력들과 결탁하여 얼마나 많은 원조를 헤처먹기 때문에 오늘날 부정축재가 대량 양산되고 빈부격차가 크게 버러지게 된것이다.
이번 친일진상규명에는 만고의역적 박정희 뿐만 아니라, 언론사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친일진상을 철저히 밝혀내여 흐려진 민족정기를 바로 잡아야 할것이다.
이일만이 우리 후손들에게 큰 자산을 물여줄 수 있을것이다.
국폐모, 한사모 황두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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