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두율교수 저서 독후감 공모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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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 날짜: 2005.01.27
글쓴이: 황두완

아닌 밤줭에 홍두깨 내밀듯이, 아니 천지개벽과 같이 망국적인 지역당이 뿌리채 흔들리고 있다. 그러지 않아도 숱한 친일행각, 인간학살등 많은 역적행위가 불거지고 있는터에, 65년 굴욕적 한일수교에 관한 외교문서가 겨우 5%밖에 공개되지 않았는데도, 파시스트 본거지인 영남에서 조차 일파만파로 그 파징이 확대일로에 있다.
특히 그곳 젊으니들과 학생들이 진상을 낱낱이 밝히라고 아우성이다. 20,30대 유권자가 60%상회하니, 파쇼당 존폐에 관한 문제다.
영남에서는 특히 경북,대구에서는 절대신으로 까지 미화되고 있는 매국노 박정희의 역적질이 하나식 벗겨지고 있기때문이다.
지역당의원들은 박정희 몰락이 문제가 아니라 경제대통령등 온갖 미례사로 수식된 박정희 우상이 문어지면 즉 색광왕, 인간백정 박정희가 문제가 이니다. 우리가 어렵게 딴 아니 앞으로 영원히 죽을 때 까지 쓰게될 감투(국회읜원)를 뺏길가 바 전전긍긍이다. 마치 염불에는마음이 없고 제밥(국호의원)에 만 눈독을 드리고 있는 족속들 처럼.
어디 이뿐인가. 친일진상 규명법이 2월 임시 국회에서 통과되면 일제시 박정희의 친일행각 특히 만주벌판에서 우리독립군 토벌하면서 반인륜범죄, 즉 부여자 강간하고 학살한 사건들, 45년 8.15해방후 이런 만행을 저질은 한인 일경은 현지에서 직결사형집행 당할번한것을 장준하선생의 도움으로 살아서 무사히 귀국하였다고 한다.
해방후 죄익세력이 강함을 알고 재빨리 공산당 이재복 중앙위원과 접선하여 국방경비대(국군)내 남노당 총책임자로 후배 군인들도 설득하여 남노당에 가입시키고 여수순천 반란사건으로 군법회의에서 무기징역을 받았으나. 일본군 출신 원용덕 장군의 구명운동으로 군 남노당 전 조직을 알리는 조건으로 석방되기도 하였다.
61년 미제의 사주를 받아 5.16쿠테타로 합헌정부를 무력으로 전복하고 독재정권 장장 18년간이나 저질른 역적행위 진상이 65년 대일 굴욕 수교의 진상일부가 빍혀지면 이치들은 가을 바람에 떨어지는 낙옆 즉 낙동간 오리알 신세가되니 최후발악을 하고있다.
떡 줄사람은 생각도 안는데 김치국 먼저 마시고 있는 역적딸은 꼴값한다고 대통령을 꿈꾸고있는데, 측근 모사들(대학교수, 평론가, 아나운서, 잡동산이)은 역적 딸보고 역적의 그늘에서 벗어나라, 다시말하면 역적 박정희 비호하지말고 초연한 태도를 취하라는 감언을 듣고 그렇다면 누가 우리아버지(역적)를 방어할것인가? 모의끝에 나온것이 대구출신 강X접(사시8회)을 전면에 내세워서 음모론, 해방후 역사가 올바른 길을 가고있다고 역공세를 펴교있다.
지금까지 침묵을 지키고 있던 박정희의 우상으로 감투를 쓴 자들에게 우리는 같은 배를 탔는데, 박정희 역적행위를 캐는데 챔묵일변도에 있단말인가. 박정희 우상이 문어지면 너이들 감투 다 뺏긴다은 위기감을 부추기면서 닥달 치고있다.
박정희의 똘만이는 그들의 기관지인 족벌신문들을 총동원하여 최선의 공격은 최선의 방어라고 일제히 음모론을 제기하고잇다.
1940년 여름 불란서가 독일에 항복후 히틀러는 비시괴뢰정부를 수립하고 제1차 세계대전 영웅인 페턴원수를 괴뢰정부 수반으로 만들고 독일에 협력하게 만들었다.
44년 여름 연합군에 의해서 비시괴뢰정부가 타도되고 패턴원수는 독일 협력죄로 군법회의에서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패턴원수를 제1차세계대전에서 영웅공로와 고령으로 무기로 감형되어 징역살이 시킨것이다.
그당시 부역자들도 4년 독일점령인데도 가차없이 부역자들 처벌하였는데, 우리는 36년간이나 일제 강점하에서 얼마나 많은 민중이 고통에 시달여 왔는가.
그리고 역적 박정희 글씨 광화문 현판 철거는 늦은감 있으나, 당연히 철거하여야 한다. 우리민족은 쓸개도 간도 없단 말인가. 여기뿐이 아나다. 광화문 종합청사 정문입구에 새겨진 박정희 글씨도 당연히 철거되어야한다. 만고의 역적 친필을 방치하고도 부끄럽지 않은가.
그리고 10.26 그때 그사람들 영화를 역적아들이 상영 금지 가처분 소를 법원에 제기하였다니, 박정희의 역적질로 우리민중이 얼마나 많이 피살되고 뻘갱이 날조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고, 장기간 옥살이, 불구가 된 사람 부지기수라는것 역적자식들은 모른단 말인가.
자중하여할 자들이 오히려 큰 소리치고 있으니 기막힌 세상이 아닌가. 그리고 외교문서 공개도 음모론 제기하고 있다. 30연이 지나면 외교문서 공개한다는 외교통상부 규칙에 의거 공개한것을 갖이고 시비를 걸고있다. 이차들은 이렇게 하므로서 역적 박정희의 역적행위를 희석시려고 하고 있지만 우리민중은 그리 어리석지 않다.
게다가 과거사 진상규명법을 갖이고 대한민국 역사는 성공한 역사라고 짖어대고있다. 이는 소가 웃을일이며, 손바닥으로 해를 가리는것과 다르지않다.
지난 100년 역사가 어떻게 자랑스런 성공적 역사라고 미화할 수 있겠는가. 역적 송병준, 이완영, 박정희 인간쓰레기 매곡노도당에게 해당돼는 말이지, 우리 다다수 민중에게는 큰 모욕이며 굴욕의 역사라는 것 널리 알여진 사실이다. 65년 중앙정보부장 JP는 제2의 이완용이가 되더라도 한일수교는 반드시 성공시킨다고 큰 소리친 말 아직도 내귀에 생생하다. JP는 그당시 이렇게 될지는 상상이나 하였겠는가. 이것이야 말로 JP의 자업자득이 이닌가. 2000년 4.13총선에서 DJ와 공조가 깨지기 때문에 오는 현상이다.
곧 있을 한일수교 전모가 공개되면 천지개벽과 같은 파괴력으로 망국적 지역당의 근거지을 풍지박살로 만들것은 틀림없을것이다.
박정희 기념관 반대 투쟁위원회 공동대표인 광태영선셍은 역적이 스웨스은행에 60억불 외화도피 하였다는 말에는 동의할 수 없다. 근거가 없기때문이다.
그러나 75년 경 미하원 프레이저 한국문제 청문회에서 유신 제2인자인 이x락의 둘째아들 이동복은 박정희 대통령이 대금을 스웨스은행에 예금하였넌데 그 번호는 우리 아버지 밖에 모른다고 폭탄선언을 하여 세상을 깜짝놀라게 한 기사가 미국, 일본 신문에 대대적으로 보도된 일이 있다. 유신, 전두환 시절에는 외지가 드러오지 못했다.
그리니 그 기록이 남아있을것이다.
이런 굴욕적 한일수교 나머지 95%가 공개되면, 박정희의 친일 굴욕외교들 역적행위가 만천하에 폭로되면 영남에서 조차 역적 박정희 규탄대회가 필연적으로 일어날것이며, 본노한 반파쇼민중들 박정희의 친인척들의 계좌추적하여 도둑맞은 국가재산 국고환수에 총궐기할것이다.
이렇게 되면 지역당은 붕괴되고 그 졸개들의 감투는 자연 소멸될것이 뻔하다. 그렇기때문에 역적 박정희 졸개들이 죽기 아니면 살기라고 또는 너죽고 나죽자는 막가파식으로 최후발악을 하고있는것이다.
누가 이들 역적들의 해외도피재산을 국고환수할것인가. 바로 우리 반파쇼민중이다. 검찰의 宋光洙검사는 믿을 수 없으며, 그동안 역적들을 비호하여 온일 주지의 사실이며, 역적 파쇼차떼기당이 문어지면 宋光洙검사는 갈곳이 없어서, 이치는 그동안 수사한다고 파쇼도당 비호한는데 급급하고 구세주가 되지 않았던가.
끝으로 2월 20일 경 광화문에서 촟불시위가 있다고 하니 우리 민중은 꼭 참석하여 국가보안법 폐지와 역적 방정희 의 해외도피 재산을 국고환수에 총력을 기울리자!
평화통일시민연대, 국폐모, 언론인권센터, 1219국민참여연대 회원 황두완

수정 / 삭제 No. 742    
글쓴 날짜: 2005.01.27
글쓴이: 황 두완

역사의 증인은 많은데, 증언은 가뭄의 콩 나듯이 드물다.
과거 독재, 군사, 파쇼정권들이 네일이 아니면, 나서지
말라고 가혹한 탄압과 불이익을 주엇기 때문에 정의감과
의협심이 사라진것이다.
민주주의 순교자이신 고 김재규장군은 군사재판 법정에서
학생들과 젊으니들을 그렇게 탄압하면, 그 젊으니들로
부터 용기를 뺏아가고 조국이 위기에 처하면 누가
국가보위를 위해 싸울것인가. 역설하였다고 한다.
어제(1월25일)새벽 한게레 신문광고에 "국가폭력 피해자
증언대회" 이날 호후2시 국회도서관 지하1층에서
개최돤다는 선전문을 보고 일상 과제인 산행 다 집어치고
집이 파주라 줄잡아 2시간 반 소요되는 국회 도서관으로
달여갔다.
그런데 여의도 국민은행 앞 광장은 우리 반파쇼민중의
점유지나 다르지 안는 그 광장을 이미 파쇼차떼기당
용병이 국가보안법 사수 범 국민대회 개최라는 현수막과
확성기를 산륜차에 매달고 있으나 별로 홍보도 없는
광경를 보고 아직도 반성하지 안는 파시스트당 불쌍하고나
가련한 생각이 들었다.
열린우리당 국회의원 면회인데도 삼언한 심문에 서민과
중산층을 대변하는 열린우리당이 다수당인데, 이렇게 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의문이 제기되며 과잉방어가 아닌가.
국회도서관 대강당은 상당이 넓은데 젊으니, 학생들, 우리
같은 늙으니들 모여들어 좌석이 꽈 찼다.
그만큼 근 39년간이나 국가폭력이 심각하였다는것을
반증한것이다.
뱍선운(올바른 과거청산을 위한 범국민위원회 상임
집행위원장)사회의 회의진행이 스므드하게 진행었다. 어떤
토론자는 시간을 너무 독차지하였으니, 사회의 의도는
청중의 광범한 질의를 바랐을것이다.
이촌로가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것을 夢陽여운형선생과
竹山조봉앙선생은 일제 감점하 저명인사들 다 친일행각을
하였는데, 이 두선생과 몇분만은 끝까지 지조를 지키었기
때문이다.
일미전쟁에서 일제의 패색이 짙어지자 일제는 모든
일본대학생들 인문 이공계를 막론하고 군인으로 전선에
나갔다. 그런데, 일본정부에서 한국인 대학생은
그냥나두고 일본학생만 색출하면 전후 문제가 크다고
한국대학생들도 학병으로 징발하자는 결정으로 대학생들도
군인으로 뽑아가게된것이디.
1943년 봄 한국인대학생들을 누가 설득할것인가 결국
한국인 유명인사들에게 맡기게된것이다. 다른자들은
청황폐하를 위해서 생명을 바치는것이 본인과 한가정의
영광이며, 따라서 우리계레의 소망이라고 떠버리고
다니었다. 여운형선생은 일본의 패망을 예측하고
있었으며, 비밀리에 건국동맹도 조직하고 있었다.
일제는 여운형선생의 학생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것을 알고 여선생을 일본 도꾜 히비야 공원을
가뜩매운 대학생들에게 연설을 하게한것이다. 그런데
여운형선생은 학도지원병은 지원병이기 때문에 학생들이
가고 싶으면 가고 가기 싫으면 가지말라는것을 이야기하자
일본정부는 당장 여운형선생을 유치장에
집어너었던것이다.
그당시 여운형선생은 일제의 패망이 얼마
남지않았다는것을 알고있었다고한다.
그런 이유로 일경으로 부터 큰 곤욕을 치렀다고 한다.
47년 5월경 덕수궁에서 열리고 있던 미소공동위원회가
결렬된 후 박헌영, 이승협등 남노당 수뇌부와
김원봉장군(연안파)들은 이북으로 도피하였으나,
여운형선생 보고 북으로 가자는 권고을 거부하고 죽으면
자기 자녀들(1남2녀)만 북으로 보낸다고 말하였다고 한다.

미군정부에서도 이승만은 미국에서 임시정부 대통령도
아닌데 이승만 대통령 명의로 채권 팔아먹은일로 좋게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여운형선생을 단독정부 대통령으로
만들려는 기미가 보이자 이승만은 장택상
수도경찰청장에게 비밀리에 지사하여 암살하였다고 한다.
아마 47년 7월경인데, 장례는 사화징으로 치러젔디.
여운형선생은 좌우합작만이 분단을 막을 수 있고,
혈육상쟁을막을 수 있다는 신념으로 북한으로 도피도
않하였다고 한다. 언론보도에 의하면 여선생 장례식때
20년 후 다시 장례를 치르기로 결정하고 쇄관을
사용하였다고한다.
그당시 이승만은 자기에게 가장 두려운 존재는
여운형선생이므로 우선 제거하고 다음은 김구선생도
암살하고 마지막에는 죽산 조봉압선생 마저
사형시킨것이다.
이제 죽산 조봉압선생 일화를 이야기 할까한다.
1948년 5월 10일 남한 단독정부 국회의원선거 인천에서
출마하였는데, 선거비용이 없다. 운동원들이 도시락
싸가지고 선거운동을 하였으며, 운동원중 어떤사람이
영어에 능통하여 인천 미 헌병대차를 빌여 선거유세를
하여 앞도적 표 차이로 당선된것이다.
그해 7월경 국회에서 이승만의 독재적 발상에 이는
파시즘의 잔재라고 일침을 놓자, 이승만은 반대를
무마하기위해 조봉암선생을 초대 농림부장관에
임영한것이다.
일제시에는 소작과 지주의 비율이 50%대 50% 인것을
해방후 70%대 30%, 조장관은 耕作有田이라는 혁명적
농지게혁을 단행하여 놈민과 서민층으로 부터 대환영을
받게된것이다.
휴전후 이승만은 북진통일을 외첬지만 조선생은
평화통일을 주장하였다. 그때부터 이승만은 조봉암선생
제거하려고 작심하였던것이다.
56년봄 대통령선거 유세중 해공신익희 국회의장의
열차내에서 급서로 이승만과 조봉암선생의 양파전으로
압축되엇다.
조선생의 득표률이 이승만의 득표율의 60%가 훨신
상회하자, 여야 보수층이 모의하여 제거하기로
결심하였다고 한다. 이는 71년 대통령선거에서 약관의
dj가 실질적으로 승리하였으나, 대구, 경북에서 표
갈아처서 dj가 패배한것이다(74년 경 미하원 프레이저
한국문제 청문회에서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 부장의 증언).
이대선 운동중 dj의 청양유수 같은 대중을 감통시키는
사자호의 열변이 박정희도당의 간담을 서늘케한것과
유사하다.
조봉암선생의 평화통일정책에 많은 민중이 동조하고
있었으며, 정당결성에는 많은 자금이 절대로 핑요하였다.
여러면에서 정치자금이 드러왔으나, 이승만도당의 감시로
그것도 여의차 않았다. 군 특무부대에서 특무대 프락치
양명산을 조봉암선생과 접촉케하고 사업가로 둔갑시키고
수차에 걸처서 몇만딸라를 대주었다.
58년 양명산이가 북한 간첩으로 조봉앙선생에게 대한민국
전복하기위해 북한의 공작금을 수수한 간첩죄라는것이다.
그런데 48년의 국가보안법으로서는 조봉암선생을 사형시킬
수 없다는것을 알고, 58년 12월 24일(크리스마스 이브)밤
국가보안법 개정반대 농선중이던 야당국회의원들
무술경찰을 동원하여 늙은 국회의원들의 옆구리를 죄박고
개끌듯이 내쫓고 4사5입의 가상천외의 방법으로
통과시킨것이다. 1심때 김모검사는 구형으로 7년 선고를
한 그 검사를가라치우고 다시 사형구형하였다 이런 재판이
과거 어느 민주국가에서 있었는가. 아마 조봉암선생
재판기록 찾으면 나올것이다. 이거는 재판이 아니고
개판이 아닌가.
사형수는 오판이 있을까 바 대법원 확정판결이 나와도
통상 6개월 내지 1년은 재심청구 여유를 주는데, 대법원
판결이 난지 24시간 내에 집행한것은 75년 5월 9일
인혁당사건 대법원 확정판결이 나자 17시간내에
사형시킨거와 달르지 않다. 사형집행후 100% 시신을
가족에게 인도하는데, 박정희도당은 인혁당 8명사형수를
집행후 가족들의 결렬한 반대에도 지게차로
벽제화장터에서 화장시키었다.
시신 2구에 고문흔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것을 보면 독재자는 잔인성에 관한한 하나 같이 똑
같다. 이승만은 47년 여운형선생을 죽이지 않으면
대통령자리가 위태롭다. 가장 두려운 정적이기 때문에,
그다음은 김구선생, 마지막에 조봉암선생을 법의 이름으로
살해한것이다.
조봉암선생의 59년 내년에는 큰 변이 날것이라고
예연비슷한 말을하고, 7원30일 아침 이발하라는 말을 듣고
어제 이발하였는데 또 다시하라는 말은 오늘이 내마지막
날이라고 말하였다고 한다. 좌우간 몽양 여운형선생과
죽산 조봉압선생 두분은 위대한 정치가인데 애석한일이다.
그리고 연단에 있넌 두분의 증언 중 고문 둘재두목
정x근의원과 최x국의원 두자는 집접 고문도 심지어 성기
갖이고 희롱하였다니, 이런 부도덕한자들이 파쇼
차떼기당에 있다니 그 당이 망할 수 밖에없다.
검사는 원래 집접 고문은 않한다. 백이면 하나둘이랄까.
검사는 자존심과 궁지가 다른 사람보다 강하기때문이리라.
그런데 이차들은 일종의 싸이코다. 이런자들도 만고의
역적 박정희의 매국행위가 차츰 폭뢰되면 지역당이
문어지고 그런 감투도 떠러질것은 자명한 일이다. 아마
생각컨데 정치검사 두목 宋光洙검사도 하는수작이
싸이코에 가깝기 때문에 그럴 위험성이 있을것이다.
검사보고 이새끼, 툭하면 일반직원들에게 욕지거리 하는것
보면 그러고도 남을자라고 단언하여도 틀린말은
아닐것이다. 宋光洙검사 체면이 어떠면 만용을 부려보지
법원 영장 기달린지 오래다. 정치검사 두목에게 무슨
명예고 나발이고 있겠는가 민은,,,,,.
발언권 얻어 이런 위대한 민족지도자 몽양 여운현선생과
혁신계의 거성 조보암선생은 일제 감정하 많은
저명인사들의 친일핵각에도 불구하고 전혀 친일핵강이
없기때문에 우리가 존경한다고 말하고, 이두분의
명예회복이 하루속이 이루어저야 한다고 말하고 딘싱에
있던연사들 보고 명에회복 범국민운동 궐기대회를 갖도록
부탁하였다.
증언대회는 5시 좀 지나서 끝났으며, 울산 부산, 진주등
여러곳에서 학생들의 여의도 촟불시위가 있다고
하여, 우리들의 사랑하는 아들딸들의 촟불시위
수수방관할 수 없어 우리 늙으니들 약 20여멍이
촟불시위에 참석하여, 힘껏 구호를 외치고 노래를
불렀다. 학생들은 부언하기를 2월 20일 광화문
촟불시위가 있으니 꼭 참가요망에 혼쾨히 이에
응락하였다.
평화통일을 갈망하는 민중들이어, 그날은 데이트, 산행 다
다음으로 미루고 가자! 광화문 평화공장 촟불시위에
모여 우리민중의 위대한 힘을 보여주자!
평화통일시민연대,국폐모,얼론인권센터
회원 황두완

수정 / 삭제 No. 741    
글쓴 날짜: 2005.01.23
글쓴이: 황 두완

여당지도부 입당 붐 차단하지말라!
작성자 황두완 작성일 2005.01.23 조회 1
여당지도부는 입당붐을 차단하지말라!
날짜: Sun, 23 Jan 2005 19:12:22 +0900 (KST)
2002년 12월 19일 대통령선거에서 에상을 뒤엎고
학벌없는, 빈농의 아들인 약관의 노무현후보가 지지층이
겹치는 권영길후보의 97만 잠식과 민주당내의
파시스트분자의 집요한 해당행위라는 악재에도 불구하고
당선된 당시의 노무연 현 대통령의 인기 하늘을 찌르는것
같았다.
그 2003년 5월 7일 노대통령의 방미를 앞두고
우리평화애호 민중의 친근한 벗인 셀리그 해리슨선생의
조언 다시말하면 한국에서 미국의 대북선제공격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볼 전쟁이 발발하면 가장 큰 피해를 볼
당사자는 한국이기 때문에 노무현대통령은 대등한
자주적외교의 이니시이아티부를 잡아야한다.
한미조약에 의거 미국이 갖이고 있는 작전권을
한국정부가회수하고, 대북무력사용에는 사전 반드시
한국정부와 상의할것등 우리의 자주외교를 강조한 바
있다.
그런데 노무현대통령은 국내악재 발발과 부시의 쿠테타
사주를 의식하여 하나도 자기주장이 없는 대미굴욕외교를
펄친것 널이 알여진 사실이다.
이에 많은 우리민중은 격분하고 정의감에 불타는 한총련이
노무현대통령의 5.18민중항쟁 광주 묘지방문을 차단하는
수모를 겪었다.
정치검사이며 파쇼앞잡이 宋光洙검사의 엄벌안을 일축하고
불문에 붙인것은 불행중 다생스러운일다.
그러지 않아도 우리민주화 운동세력 대학살에 앞장선
인간쓰레기 宋光洙검사의 아부 아첨으로 이치를
검찰총장이라는 감투를 씨우자마자 97년 2002년 양
대선에서 수훈의 공을 세운 호남출신 고위검사들을
노대통령과 강금실장관의 법무 검찰 실정을 모르것을
악용하여 이런 위대한 호남출신 고위검사들을 다
내쫓었으니 말이다.
이런 이유등으로 노대통령의 인기하락, 작년 4.15총선으로
군소정당에서 일약 152석이라는 절대 거대여당으로
탈바꿈허였는데도 당내 이질분자의 중구난방식
해당행위등으로 노대통령과 열린우리당 인가하락을
면치못하였다.
그런데 노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의 인기 요즘 완만하지만
상승곡선을 타고 입당붐의 요인은 세가지로 불류할 수
있다.
첫째 작년 11월 13일 노무현태통령의 로스앤젤러스에서
어떠한 경우에도 대북 무력사용 반대와 연이어 봉쇄정책
반대라고 전쟁광 부시에게 쐐기를 밖은것이다. 게다가
북한의 핵개발은 지가방위를 위한것이라고 말씀 까지
한바잇다(그런데 일간이는 이를 뒤집고 남한과
일본공격용라고 떠버리고 있었지 않았는가)
미국정부도 상당이 당황하였다고 한다. 게다가 미국과
세계여론의 지지는 물론 국내에서 우리민중 특히
젊으니들과 학생들의 절대적 지지를 빋았다.
원래 젊으니들과 학생들은 사대주의, 미국의 속국이 이닌
자주외교를 항상 외처왔기 때문이다. 다음은 작년 12월
국회에서 파시스트 차떼기당은 대안도 없이 4대개혁입법
반대로 일관하고 민주주의 원칙대로 국회에 상정하여
찬반토론을 거처 표결처리하지 않고 무조건 반대일변도로,
완력으로 국회 여러분과위원회와 국회본회의장을
얼간이의원들을 시키어 의사진행을 방해하고 국회를
무력화시킨것이다. 그러니 이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민주주의 파괴행위가 아닌가.
설상가상으로 몇일전 65년 한일수교 이면에서 64년
박정희의 6천6백만불을 일본재벌로 부터 뇌물로 받은
매국행위와 36년간 일본강점으로 회생당한 우리민중에게
지불할 3억몇천만불의 배상금을 한줌도 안되는
박정희도당의 착복한것이 폭로되엇기 때문에 파쇼역적당은
이들의 본거지인 영남에서 조차 동요되고 있다. 이런
이유로 열린우리당이 반사이익을 얻은것이다.
세번째는 명계남선생의 노사모 전회원에게 열린우리당에
입당을 권고하고 1월 16일(일)오후1시 백벙기념회관에서
1219국민참여연대 발대식이 성대히 거행되었다.
일요일이며, 신문광고도 없는데, 선전광고라야 인터넷에
올린것뿐이다. 게다가 열린우리당당의 집요한 반대 즉
수두권 열린우리당에서 1월 16일 1박2일의 당단합대회가
있는등 집요한 방해공작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늙이를
포함하여 2천여명의 열성회원이 모였다.
열린우리당 인기하락은 개혁실종에 있으며, 살아남을 길은
개혁밖에 없다는것이라고 말해도 틀린말은 아니다.
그런데 당내 이색분자 즉 일부이지만 수구반동과 그
추종자들이다. 노사모의 위력은 2002년 대선에서 승리의
원동력이며, 작년 3월12일 새벽 4시 "노무현대통령위기
11시 여의도 평화광장에 모이자"의 이메일 보고 여의도에
가보니 제주도, 영호남, 전국 방방곡곡에서 파쇼차떼기당
용병과 달리 지가돈 써가면서 국민의 의무라고 왜치면서
출발된것이 촟불시위가 아니던가. 4.1`5총선에서
악조건(민주당, 민노당, 자민련, 한나라당, 열린우리당)
즉 5 각춘전에도 불구하고 대첩을 얻은것이다.
좌우간 첨체되어있던 열린우리당에 입당이 쇄도한다는것은
좋은 징조이며, 바람직스러운 현상이 아닌가. 이는
우리전당원이 쌍수를 들어 환영할 일이지, 아무리
시한부라하더라도 방해하여서는 아니된다. 입당붐의
리듬을 깨트리는것과 다르지 않기때문이다.
이런 불량당같은 수작을 보고 2003년 봄 법무부
홈폐이지에 올린글을 유명한 정치검사 두목 宋光洙가
법무부 홈폐지 우편번호에서 차단하고 심지어 청와대
홈폐이지에 올린글 삭제에 "청와데에도 정치검사 두목
宋光洙졸개가 있단말인가,의 항의글을 아마 윗분이 읽은것
같아 즉시 시정되고, 법무부도 김승규장관님 오시고나서
宋光洙검사의 영향력이 맥을 더욱 못추게된것이다.
그런데 지난 17일 "역적들에게 구상권 행사하라"는 글
마저 금지어가 있다고 거부반응을 일으키고 그전에 "역적
김영기의원 국회에서 추방하라"는 글등 몇개의 글이
다른곳 즉 청와대등 여러곳 홈폐이지에서는 받아주었는데,
열린우리당은 거부하고 있으니, 이런 배타성, 반민주적
처사가 어디 있단말인가. 당은 당원에게 개방하여야지
그렇게 폐쇄적이면 누가 입당하겠는가.
이런 소아병적인 자들이 당을 죄지우지하고 있으니,
개혁이고 나발이고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겠는가.
청와대를 위시하여 약 60여곳에 폼폐이지에 실리고
있는데, 이는 손바닥으로 해를 가리던 파쇼차떼기당의
권좌에 있을때 상습적인 작태가 아니던가.
"국가의 모든권리는 국민에게, 당권은 당원에게 이런것이
1219국민참여연대의 표어이며 노선이다. 이런 평범한
진리도 모르는 족속들이 서민 중산층의 열린우리당에
있으니 당 앞날이 어떻게 되겠는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래서 명계남선생의 지지세력에 공포심을 갖는단 말인가.
당세확장 붐이 일어날때 이를 차단할것이 아니라,
적극권장 황열할 일이 아닌가.
열린우리당 전당원과 정부가 혼연일치가되어 4월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임할때 승리을 장식할 수 잇으며, 내년
지자체선거도 에외가 아닐것이다.
제발 당지도부는 졸장부이며, 죠다인 宋光洙검사의 수작
닮지 말어야한다. 이래저래 별것도 아닌 宋光洙검사
유먕해지고 있구나. 그리고 당권은 전체당원이 결정할
문제이지 어떤 특정인이 왈가 불 할사항이 아니라는것
명심하기바란다.
평통모, 국폐모, 1219국민참여연대

회원 황두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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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 삭제 No. 740    
글쓴 날짜: 2005.01.21
글쓴이: 황 두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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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역적들에게 구상권행사하라!
작성자 황두완 작성일 2005.01.21 조회 12
요즘 정치권 돌아가는 꼴악선이을 보고 있으랴면 마치
각양각색의 狂態 즉 천태 만태의 희극영화을 보는것 같아
웃어야할지 울어야할지 모를지경이다.
영국인이며 세계적인 영화배우, 영화감독, 각본 3인
역할을 한 철학가 차리차플린의 Modern
Times영화는(해방직후 미국 맥카시 개눈깔 선풍으로
미국에서 추방됨) 미국의 자본주의 모순을 신란하게
비판하여, 우리에게 무한의 자산을 안겨주었다.
1965년 한일수교 외교문서가 극히 일부 약 3%만이 일반에
공개되었는데도 그 파장이 일파 만파로 퍼지고 잇으니, 곧
있을 전모가 발표되면 그 영향이 어떠하겠는가 상상하기
어럽지 않다.
파쇼 차떼기당 본거지에서 조차 심지어 구미에서 비판의
소리가 커지고, 박정희 기념관 건립이 서울에서 무산되자,
구미로 옮기려는 계획에 반대운동이 거세지고 있다.
이에 당황하여 감투(국회의원)를 뺏기지 않으려고
최후발악을 하고 있는 만고의 역적 박정희 딸은 이렇게
괴변을 떨고있다.
일본으로 부터 피해보상을 받을 분들의 돈을 한국
경제발전에 유용하였으니, 국가에서 전액 배상하여한다고
떠버리고 있다. 무슨 경제발전에 유용하였단 말인가.
쿠테타 수괴들 몇몇이 착복하였으면서도 말이다.
63년 부터 미국의 강요로 열린 한일회담이 난항를 격자,
약삭 빠른 일본정부는 한국측 탐욕을 알고 일본재벌로
하여금 박정희에게 비밀리에 한일수교 대가로 자그만치
6천6백만불을 주고 일본의 강점중 강제동원된 군인, 징용,
학병, 위안부등 약1백만여명에게 개별적인 보상제의에
이런 천인공노할 매국노들은 우리정부가 알아서 할테니
운운하면서 3억몇천불을 받고 쥐꼬리만한 즉 9/1정도
안되는 액수를 주고 나머지는 박정희도당 몇명이
착복한것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일본정부와 재벌들은 박정희와 그
졸개들을 어떻게 생각하였을까. 돈에 환장한 나라도
팔아먹을 수 있는 족속으로 간주하였을것이다.
박이 일본 재벌로 부터 뇌물로 받은 6천6백만불은 오늘날
1백억불을 초과한다고한다. 그외에도 비밀리에 얼마나
많은 돈을 착복하였겠는가. 누가 감히 이를 분인할 수
있단말인가.
60년 장면정권은 일본감점대가로 18억불 요구에 최소한
15억불로 낙찰되었을것이라고 한다. 그후부터 대일 무역
적자가 것잡을 수 없이 눈덩이 처럼 부러난것이다.
이외에도 우리가 알게 모르게 큰 뭉치돈이 이치들
매국노들에게 들어갔다는 것이 중론이다.
유신 쿠테타(72년 10월)후 조모국회의원은 육사8기, jp와
동기이며, 5.16쿠테타 후 시경정보과장, 국회의원으로
비행기 낙뇌를 맞나 사망, 남산에 있는 호화2층집에
박정희가 문상가보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2층집에
에스카레이터가 있는 사치가 절정에 이르고 있는것을 보고
깜짝놀라, 여당국회의원들과 고위공직자들의 호하주택
거주자 문책한다는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이 졸부들
앞다투어 호화주택 버리고 이사가는 웃지몰할 넌센스가
버러젔었다. 호화주택에 살고있지 않으면
만사ok이기 때문이다.
그당시 박정희와 그도당들의 축재 업청났으며, 그돈이
일본으로 부터 드러온것인데, 엄밀이 따지면 우리민중의
돈이 아닌가. 그당시 야당이 무슨 힘이 있었는가. 말로만
한일수교 결사반대 떠버리면서, 뒷구머엉으로 이 매국노로
부터 뇌물받아 쓴는데 광분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래도 학생들은 4.19학생혁명 정신을 계승하여, 64년,
65연 격렬한 시위를 하고, 65년에는 청와대앞까지 진출에
당황한 박정희는 (그당시에는 박정희는 오늘날과 같은
완전무장한 전경이 없었기 때문에) 학생들의 요구사항인
한일수교 문서 공개한다는 말로 데모학생들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대외관계는 외무부에서 전담인데, 악명높은 중앙정보부
김종필 부장이 맡은것 자체가 뒷구멍으로 받은 뇌물을
숨기기위한 철저한 비밀작전이었다. jp는 제2의
이완용이가 되더라도 반드시 한일수교는 성공시킨다고
장담까지 한바있다.
5.16쿠테타 전에는 역적들은 대부분 세방사리 jp도 20만원
전세방에 살고있었다고 한다(국회야당 질문 일부분).
어떻게 사업가나 장사군도 않인데, 단시일내에 수십
수백억을 벌수있었겠는가.
이제 구상권을 논할까한다. 89년에는 큰 사건이 둘이나
터젔는데,전자는 서경원 민주당의원 밀입북사실이
비밀에 붙어질 수 있었는데, 한겨레신문기자와 아마도
술좌석에서 여권에도 나타나지 안는 사실이 비밀에 붙어질
줄 알고 그기자에게 토로한것이 이 기자의 배신으로
체포되어 고문왕 이근안의 둘째두목인 정x근에게 밀고되어
살인적 고문을 받고 징역 15년 옥살이가 국민정부 탄생후
가석방으로 나온것이다.
후자는 89년 세상을 떠들석하게 만든 소위 수지김
간첩조작사건이다. 이사건은 홍콩에서 같이 살던 남편되는
자가 부부싸움끝에 지가부인을 살해하고 북한으로
도망가려고 북한대사관에 망명요청을 북한측이 거절하자
안기부와 짜고 수지 김을 북한 공작원으로 가장한 세상을
떠들석하게 만든 간첩조작사건이다.
이런 천인공노할 간첩조작사건이 참여정부에서 백일하에
드러나 그 유가족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사건에서
재판부는 약 39억여원의 배상판결을 내린것이다.
우리가 주목하고 감사하게 생각하는것은 강금실장관은
관례를 무시하고 정치검사 宋光洙검사의 완강한 반대를
배척하고 항소하지 않고 피해자의 그동안의 정신적 물질적
고충를 고려하여 항소포기하고 국가가 우선 유가족에개
배상하고 그 당시 안기부 장세동 부장에게 구상권
행사히기로 장세동 재산을 가압류한건으로 알고있다.
박정희 역적들이 착복한 더러눈 돈을 어째서 우리
참여정부가 책임을 진단말인가. 예산도 없다. 우리국민이
세금을 더 내야하기 때문에 구상권이 절대로 필요하다.
이 역적들은 이나라 강산을 팔아먹은 손병준, 이완용보다
더 고약한 매국노가 아닌가. 손과 이의 후손들이
일본정부로 부터 받은 매국행위에 대한 대가로 받은
광대한 땅 소유권 주장의 법정소송을 제기하고 있는터에,
박정희도당의 자손들이 일본정부로 부터 받은 천문학적
현찰이 있는 은행계좌를 샅샅이 뒤저 몰수하고 구상권
행사하여야 한다.
매곡노 박정희의 딸은 한일수교문서를 정치적으로
악용하지말고 사가에 판단에 맡기자고 궤변을 떨고있다.
부언하기를 금년은 정쟁 그만두고 경제살리기 운운하면서
노무현대통령 면담까지 요구하고있다. 한마디로
웃기고있다. 노대통령은 그렇게 한가하단 말인가. 결국
자기아버지의 역적질을 숨기고 결국 자기위상을 높이는
얕은 수작에 지나지 안는다.
17대 국회들어와서 연일 허구 헌날 여야는 싸움질만 하고
파쇼차때기당은 국회분과위원회와 국회본회의장을 폭력
점거로 국회업무가 마비되자, 국민의 비난이 자자하다.
하루속히 정쟁은 없애야한다. 그러나 악법중에 악법인
국가보안법과 친일진상 규명법은 2월 임시국회에 상정하여
찬반토론을 거처 민주주의 원칙대로 표결처리되어야 한다.
친일진상규명법은 박정희의 추악한 과거가 폭로되어
파쇼당의 지역기반이 문어지면 박근혜대표의 국회의원
감투마저 뺏길까 바 전전긍긍 하고 한사코 사가에
맡기라고 떠들고 있지만 야당의 이재오 의원의 주장과
같이 반드시 진상은 규명되어야 한다.
이나라는 박근혜대표와 한줌도 안되는 졸개들의 국가가
아니다. 4.19혁명의 주체이며 이나라 통일세대인
젊으니들과 학생들은 박정희도당의 매국, 역적행위을
규탄하고 구상권을 이 매국노 가족들에개 행사토록 전력을
다하자!
평통모, 국폐모, 1219국민참여연대
회원 황두완






수정 / 삭제 No. 739    
글쓴 날짜: 2005.01.20
글쓴이: 황 두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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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금년안에 미군몰아내자!가능힐끼?
작성자 황두완 작성일 2005.01.19 조회 33

날짜: Wed, 19 Jan 2005 21:19:19 +0900 (JST)
발신: "두완 황" 주소록에 추가
제목: "금년안에 미군몰아내 자!"가능할까?



어제 1월18일 모 시민단체 모임에 갔었는데 모인
시민대표중 두분의 강력한 주장이다. 물론 우리는 미군의
주둔으로 우리민중이 격고있는 막대한 피해 왜
모르겠는가. 첫째 환경파괴와 오렴, 천문학적 주둔비,
용산기지 평택 이전비 우리측의 전액부담, 미군의
반세기가 넘는 계속된 주둔으로 자주독립국가의 체면
손상등 그 피해 이루다 해아릴 수 없다. 국가보위를
언제까지 외세에 의존하고 있는 서글품 금할 수 없다.
그러나 정치는 현실이다. 아무리 좋은 정강이나 정책을
국민정서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일종의 공상이며, 물거픔이
된다는것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두번에 걸친 대통령선거에서 예상을 뒤엎은 반 파쇼진영의
후보승리는 무엇을 말하는가. 전자의 대선에서
한겨레신문을 제외하고 모든 방송매체와 언론들이
파쇼두목 이회창후보 지지에 광분하였으며, 후자전에서도
풍부한 선거자금 모든얼론사들이 총동원되었고, 지지층이
겹치는 권영길후보의 97만표 잠식에도 불구하고 약관의
반파쇼 노무현후가보가 당선된것은 파시스트당의 현실에
동떨어진 정책과 노선이라고 하여도 틀린말은 아니다.
이나라에는 오랜 미군의 주둔으로 많은 사대주의자,
게다가 2002년 대선기간중 미국정부 고위관리들은
노골적인 이회창후보 지지하였음에도 말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개눈깔이 많아서 세상이 온갖 물제가
똥(뻘갱이)으로 보이고, 색갈공세를 하였기때문이다.
그런 개눈깔은 정치검사 욍지 宋光洙하나면 족하지,
수구파쇼 차떼기도당이 뻘갱이 마녀사양을 하엿으니,
패배할 수 박에 없지 않은가. 젊으니들과 학생들이 등을
돌였기 때문이다.
12월 19일 대선 선거운동이 절정에 달했을 때 여러대학
학생들은 권영길 후보의 정책과 노선에 좋은점 많으나.
아무리 좋은 정강이나 정책도 우라나라 국민정서가
수용하지 않으니, 그릇된 선택을 하면 파시스트당후보
당선이 보장되니 차선책을 택한다고 많은 학생들 말에
이촌로 많은 감명을 받았다.
만밀 그당시 권후보가 조금만 더갖어 갔어도 파쇼정권이
탄생되어 미국의 꼭두각시로 전쟁싸이코 부시의
북한선제공격에 속수무책이었을것이니 소름이 끼칠일이
아닌가. 어디 그뿐안거. 오늘날 우리민중의 언론, 집회,
결사, 시위 결사의 자유가 박탈되고 무서운 탄압, 박해를
받았을것이 아닌가.
앞으로 이나라의 역군이 되어 평화적 남북통일을 쟁취할
소위 통일세데에게 개눈깔(뻘갱이)타령이 통할 수
있겠는가.
정책이나 노선은 보편타당성이 있어야 우리민중이 이를
수용하고 더나아가 이의 관철을 위해서 전력을
투구하는것이다.
혹자는 그렇다면 미군의 주둔은 영구불변인가고 의문을
제기할 지 모르나, 그렇지 않다. 미군철수 여건이
조성되어야 한다.
6.15남북 정상회담 후, 한국의 반동분자들이
김정일위원장의 답방이 이루지지 안는다고 약속위반이니
신의없다고 파쇼언론에서 매도한 기사도 있었다.
이나라 민족주이자이신 고 몽양 여운형선생의 따님
두번께서 여러번 부친묘지 성묘차 서울 모 호텔에서
투숙하고 있얼 때 반공단체, 재향군인회등에서 그분들을
뻘갱이로 매도하고 묘지까지 따라가서 갖인 욕설과
신병위협 까지 여러차레 반복한 일이 있었으며,
남북정상화담 후 남쪽인사들의 북한 방문 귀국단 환영식에
꽃다발을 들고 나온 한 20대 여성을 뭍남자들의 머리채를
잡고 집단 폭행을 가하여도 애꿎인 한총련 때려잡기에는
만용을 떨치든 검찰은 수수방관만 하고 법의 제제도 받지
않고 시시부시 끝난 일.
여러 포럼에서 북한동포에게 동정적 발언을 하면 뺄갱이로
몰고 봉변을 주는 이런 험악한 분위기에, 김정일위원장의
답방이 이루어질 수 있겠는가. 그래서 일전에
노무현대통령께서 장소, 시간, 논제 구애받지 않고
남북정상회담 말씀이 나왔으리나 믿어진다.
유명한 시민단체들 예를들면 1만명이나 수천명에 달하는
회원을 갖인 시민단체들은 반파쇼민중의 정서와 동떨어진
말 즉 미군 연내 몰아내자라는 주장은 하지안는다.
이들 시민단체들은 우리민중의 기피사항을 잘 알고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미군철수의 여건은 무엇인가. 이제는
북한의 남침우려는 사라진지 오래다. 송두율교수
홈폐이지에 국가보안법이 엄존하여 북의 남침이 없다고
파쇼차떼기당의 개눈깔과 같은 무식한 소리, 정치검사
宋光洙와 같은 망상에 사로잡혀있다.
소위 대학께나 나왔다는 족속들이 무식한 소리를
하고있으니 말이다. 1953년 10월 1일 와싱톤에서 체결된
한미방위조약에는 북한의 남침이 있을 경우 미합중국은
한미방위조약에 의거 자동적으로 한국전에 개입한다.
그러나 남한정부가 북침을 하였다면 그러하지 안는다고
조약에 명시되어있다. 북쏘방위조약도 이와 유사하다.
이런 조약을 개눈깔을 갖인 파시스트분자들은
宋光洙검사의 제버릇 개못준다고 적화통일을 항상
짖어대고 있다.
문제는 미군의 철수시기인데 당장 미군 전면철수 시
우리나라 경제가 자립할 수 있겠느냐가 관건이다.
작년 노무현대통령의 주장과 같이 우리한국이 동북아의
물류센터가 될때 다시말하면 러시아의 기름, 가스가
파이프라인을 통해서 우리나라에 유입되고 일본 기타
아세아국가에 유통될 때 그리고 우리나라 고속철이 북한을
통해서 중국, 시베리아,구라파를 관통할 때 이렇게 되면
미군의 완전철수시 이나라 외국 투자자들의 동요없이
우리가 나가달라고 요청해도 외국투자들이 더욱 몰여드는
환경조성이 될것이다.
만일 현단계에서 미군철수면 외국투자자들이 다
빠저나가게되어 우리나라 경제을 지탕할 수 잇겠는가.
우리나라는 천연자원이 없다. 수입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데, 어떻게 살아갈 수 있단알인가. 경제적으로
붕괴되고 미국이 좌시하겠는가. 제2의 박정희 전두환을
만들것은 뻔한 일이다.
우리는 미군주둔으로 입는 수모, 멸시는 50여연간이나
참아왔는데, 앞으로 요 몇년간 더 참지못하겠는가.
미군철수 촉진시키기위해 남북경제 협력의 활성화,
극대화시키는데 우리반파소민중이 당리 당략과 시만다체
헤게머니 장탈전 다 버리고 일치단결하여 정부의
대북사업을 밀어주어야 한다.
우리반파쇼 진영의 타도의 대상은 파쇼차때기 도당이
아닌가. 우리진영의 분열은 자살행위에 진배없다. 현실을
무시하지 안는 시민단체들은 회원수가 적게는 수천명,
1만여명을 초과하여, 정부와 정당도 무시못하는 막강한
존재가 되지 않았던가. 반면 현실과 동떨어진 정책의
단체는 1백명도 도지 안는 초라한 단체로 있으니, 부끕지
않은가. 불행이도 노무현정권이 붕괴되면 정권이
혁신계로 가지 않고 파쇼도당으로 갈것은 뻔한일이다.
그리고 dj도 정권을 잡지못하였다면 얼간이의 무능으로
경제가 거들나고 국가부도인 IMF위기에 딸라가 없으니,
기름등 일체 생필품을 어떻게 수입할 수 있었겠는가.
그러니 좌충우돌은 삼가하여야한다.
끝으로 부탁하고 십은 것은 금년 우리의 지상과제는 미군
완전 철수가 아니라 국가보안법 전면 폐지이며, 이에
전력투구하자!
국폐모, 평통모, 1219국민참여연대
회원 황두완






수정 / 삭제 No. 738    
글쓴 날짜: 2005.01.18
글쓴이: 황 두완

여당의원들의 허튼수작 반박한다.
2005-01-17 21:53:27, Hit : 0
hdw1922215

이 글을 열린우리당 당원계시판에서 금지어 운운하면서
거부하고 있습니다. 참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그랗게도
패쇠적이고 배타성이 강한지요. 이것이 열린 우리당이란
말입니까. 기가찬님니다.

제 목 여당의원들의 허튼수작 반박한다.
작성자 황두완 작성일 2005.01.17 조회 8
여기서 논하고저 하는것은 작년12월 열린우리당의 당론인
국가보안법 폐지. 친일진상규명법, 사립학교법 개정
연내처리 무산이 아니다. 그러나 여당에세
우리반파쇼민중의 소망인 3대 개혁법 통과를 불가능하게
만든 자들을 차제에 논하는것이 필요한것 같다.
원내대표 천정배의원의 당론 관철을 위해 파쇼차떼기당과
협상하고 있을때 중진이란 자들 즉 문회상, 유인태의원은
당론과 배치되는 한나라당 중진들과 막후협상을 벌이어,
수첩공주라는 박근혜대표의 완강한 반대에 부디처
형삼자체를 와해시키지 않았는가.
설상가상으로 이부영, 안영근, 김부겸들의 당론과
배치되는 주장으로 천정배대표의 협상력으 약화시킨 일
널리 알여진 사실이다. 그리고 작년 4대개혁법 연내통과를
불가능하게 만든 총책임자는 김원기의원의 역적행위이다.
이자는 95년 dj의 정계복귀를 국민과의 약속위반이라고
반대하고, dj의 지자체장 후보 추천마저 거부하고 96년
4월 총선에서 민주당이 앙파 즉 반파쇼(dj)진영과
파쇼(이기택)진영으로 양분되었을 때 이자는 파쇼진영
후보로 출마, 낙선의 고배를 마시었다. 총선중 내내
dj정계 복귀를 얼마나 국민약속 배신이라고 매도하였단
말인가.
그때 불행이도 dj의 정계복귀가 불발로 끝났다면
국민정부가 어떻게 탄생하였겠는가. 국민정부 바탕위에서
오늘날의 참여정부 출현도 가능하고, 언론, 집회, 결사,
시위의 자유가 보장되고 남북관계의 대결, 전쟁일보
직전에서 화해, 협력무드가 조성되고 평화적 통일도
바라볼 수 있게되었다. 이런이유로 김영기의원은 역적이나
다를 바 없다.
그레도 이자는 청치적 감각은 예민하여 96년 총선에서
낙선되자 마자, 다른 파쇼정객과 달리 재빨리 dj진영으로
기어드러오지 않았던가.
얼간이 같으면 선거기간 내내 그렇게 매도하였는데
받어주갰는가.
이자는 개과천선하여 2000년, 2004년 총선에서 연거퍼
무난히 당선되어 오늘날 3권분리의 입법부 장이 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역적질은 중대한 민중반역죄 이므로
한번이면 족하지, 작년 12월31일 국회에서 파쇼차때기당의
폭력으로 국회 여러 분과위원회와 국회본회의장 점거로
국가논의가 불가능하자, 천정배원내대표의 경호권 발동
요청을 묵살하고 꼴깞한다고 직권으로 국가보안법등
연내처리를 다음해 2월 임시국회로 미룬것은 역적행위가
아니란 말인가.
작년 4.15총선전 노무현대통령 유폐로 식물대통령이 되고
빈사상태로 있던 열린우리당을 원내 고반수가 넘은
152석에 안겨준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하나에서 열이 개혁이 아니던가. 그렇다면 반파쇼민중의
지상명령인 국가보안법 페지등 제반 개혁에 매진하여야
하지안는가.
당론고수면 강경파로 몰고 4대 개혁입법 연내 처리 무산의
책임을 강경파 탓으로 돌리는 무책임한 논리, 문회상과
유인태의원들은 2000년총선에서 낙선되었으면 정신 차리고
자각이 있어야한다.
이자들은 하나같이 염불에는 마음이 없고 오로지
제밥(감투)에만 눈독을 들이는 시대에 뒤떨어진
언행등으로 역적이나, 해당행위한 자들은 4월2일
전당대회에서 퇴출시키고 2008년 총선 후보에서
배제시키어야 한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갈 까 한다. 몇일전 노사모 창시자의
한분인 명계남선생의 열린우리당 당의장 경선에 출마
발표하고 노사모 회원들에게 열린우리당 입당을 권고한 바
있다.
이 촌로 군사파쇼정권에서 한국영화는 보지않고 주로
외국영화 감상하다가, 한국영화의 외국에서 감독상
주연상등을 휩쓸게 되자 과거에는 중앙정보부와
안기부에서 커트가 너무 심해서 영화내용이 엉망이 되어
입상을 못하다가 dj국민정부 들어와서 검열이 일체 사라저
우리나라 영화도 세계에 두각을 나타내어 비로소
한국영화에 관심을 갖게된것이다.
그러다가 2002년 민주당 경선을 위요하여 노사모,
문성근선생과 명계남 선생의 출현을 보고 이 두분들의
철학과 정치사상을 보고 이분들에게 관심을 갖게되었으며,
경선에서 민주당후보로 당선된 후 반동, 해당행위자들의
집요한 낙마책동에 반대투쟁을 전개하여 마침내
대통령으로 당선시킨 주역이 노사모란것 알게되었다.
대선 유세중 부산 자갈치 아줌마, 추미애의원,
문성근선생의 찬조연설로 부등층이 노무현후보에게 표를
던젔을것이다.
문성근 선생의 천양유수 같은 연설에 배우라기 보다
전문적인 국회의원 연설로 착각할 정도였다.
1월 15일 한겨레 인터넷에 1월 16일 국민참여연대
창당식이 백범기녕회관에서 있다고 되어있는데, 시간이
없어서 즉각 한겨레신문 사회부기자에게 문의하여도
기자도 시간은 모른다고, 뱁범기념회관에 물어모라고,,,,.

한겨레신문은 반퍄소민중의 친근한 벗이며,
우리민주진영의 민족정지라면 기자는 상식적으로 알고
있어야 하지안는가.
약 3년 전 한겨레신문에 시민단체 주최의 포럼이 있길래
장소을 문의하였더니 모른는 답에 파쇼신문도 아닌데 그런
정도는 사회부기자 알고 있어야지 하고 책망한 일도
있었다.
이촌로가 분개한것은 일산당원 근 80이 다된 열성당원과
인천 같은 또래의 당원에게 참가권고 하였더니, 당에서
1박2일의 당원답합대회가 있어서 불가능하다는 답이다.
명계남선생의 당 의장 출마발표가 있자 당의 기득권층이
상당이 동요하고 반대의 조짐이 보인다. 오늘 신문에 임시
열린우리당 당의장이 어제 창당된 1219국민참여연대 보고
너무 설치지말라고 경고도 아니고 충고도 아닌 어쩡쩡한
기사가 나온것을 보고 너무 과잉대응아 아닌가. 자라보고
놀랜자 솟뚜겅보고 노랜다는 식이 아닌가. 아무리
임시당의장이라도 좀 체통을 지키고 소아병 환자갸
되어서야 어떻게 당에서 중립을 지킬 수 있겠는가. 오늘
아침 반 통일신문에는 한겨레신문보다 더 크게 기사가
실였는데, 내용은 오히려 기득권 수구국회읜원들에게
반1219국민참여연대 감성을 조장하고 있지 안나 의심이
간다. 결국 문제는 당 의장은 당원들에게 선택권이 있으니
무엇이 그렇게 캥긴단 말인가. 어른다웁게 처신할 필요가
있지안나.
명계남선생의 출마선언이 있자 당의 수구 기득권층이
상당이 동요하고 반대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는 기사를
읽은 기억이 난다. 문제는 당원들이 결정할 문제다.
12시경 뱁범기념회관에 도착하여 보니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이기 시작하여, 1시부터 1219국민참여연대 창당의 막이
열였다.
제주, 영남, 호남, 전국 방방곡곡에서 모여든 민중들의
열기 하늘을 찌르는듯하였다. 마치 3월 12일 정치깡패두목
박관용들의 의회쿠테타로 촉발된 성난 민중의
촟불시위가 연상되었다. 나와 같은 80중반 늙으니는
찾을레야 찾을 수 없다. 그리고 70이 넘는 노인도 별로
눈에 띠지 않았다. 열린우리당 반개혁적인 기회주의
의원들의 대규모 당원 답합대회로 참가를 봉쇄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70이 까까운 노인 없는것도 아니다. 다만 여기
모인 군중들은 파쇼도당과 같은 용병이 아니라 자기 돈
써가면서 민주주의를 살리자는 신념으로
참가하였으리라,,,.
점심 걸러도 배고픈 줄 모르면서, 그만큼 대회분위가는
하늘을 찌르듯 열기에 가득찾었다.
작년 가울 고 문익환목사님 서거 10주년 추도식이 성대히
거행되었는데, 북한에서 조문단 7명이 참가하고 그 회의장
의자를 가득 매우고 입석도 빈틈이 없이 대만원이었다.
16일 대회에서는 전회원이 바닥에 앉아서 초만원이며,
둘래에 의자도 가뜩 매워서 출입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여당국회의원들도 상당히 참가하고 1219국민참여연대
지지하는 현역국회의원도 31명에 달했다. 이러니
열린우리당 기득권 수구반동세력들이 공포증을 일으키어
여러구실로 당원참가를 방해하였으리라 짐작이 간다.
마직막에 영계남 선생의 약 30분가량의 즉흥적 연설이
대미를 멋지게 장식하였다. 그의 즉흥적 연설이 2천여명의
군중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고갔다. 1219국민참여연대의
행동방침을 애지프로(agitation & propaganda)의 연설을
시중 박수갈채가 연달았으며, 원고 없는 연설이 군중의
마음을 사로잡고 박수를 유도하는 연설의 기교는 71년,
78년, 92년, 97년 4대 대통령선거에서 dj의 대중연설에
비견할 수 있으리라 본다. 앞으로 교만하자 말고 더욱
분발하기 바란다.
작년 12월 천정배원내 대표의 협상력을 약화시킨
해당행위자, 역적질을 한 김영기의원, 16일 뱁범기념회관
딩원참가를 방해하기위해 같은날 당원단합대회 개최를
급조한 의원들을 이촌로가 규탄한것이다.
유시민의원은 개혁적으로 알고있는데 대통령과 국무총리가
개혁적인데 원내대표와 당의장은 개혁성이 떨어저도
무방하다는 취지의 말에 놀램을 금할 수 없다.
끝으로 작년 4대입법 연내 처리에 반기를 든자들은
당직에서 배제하고 2008년 총선에서 낙천, 낙선시키어야
한다.
이것이 반파쇼민중의 지상명령이며 시대의 흐름이다.
1219국민참여연대 회원 황두완

수정 / 삭제 No. 737    
글쓴 날짜: 2005.01.16
글쓴이: 황두완


제 목 아직도 제버릇 개못주는 宋光洙검사.
작성자 황두완 작성일 2005.01.15 조회 1
宋光洙검사의 과거大罪더러워서 더이상 거론치 않기로
하였는데, 어제 권영길의원에 대한 개수작 좌시할 수
없어, 宋光洙검사의 더러운 용서받을 수 없는 죄상을
낱낱이 밝힐 까 한다.
77년 만고의 역적, 인간쓰레기, 인간백정인 박정희에서
얼간이에 이르기까지 우리반파쇼민중을 탄압, 학살에
하수인으로사 둘째가라면 서러운 만행을 부린것 널히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참여정부 발족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우리반파쇼민중을 대학살, 고사에 광분하지 않았던가.
단적인 예를 들면 지난 97년과 2002년 양 대선에서
우리반파쇼민중 후보인 dj와 노무현후보 당선에
특등공신이었던 호남출신 검찰고위간부들을
노무현대통령과 강금실장관의 법무 검찰내부 실정에 무지
함을 악용하여 그들을 다 내쫓거나 좌천시키고 심지어
재경지청장은 자동으로 검사장 진급인데, 이들을 모두
좌천시키어 그들 유능한 고위검사들은 울음을 먹고
검찰직에서 물러나게하고 검사장들의 대망의 검찰국장은
최소한 부산지검장인데, 宋光洙검사는 이에 역행하여
서울고검 차장검사로 좌천시키어 그 유능한 호남인사가
사표를 내게하고 심지어 김원치 검사장은 대검총장에
자격미달, 부적합자가 왔다고 그 유능한 검사장 마저
사표를 낸것이다.
宋光洙검사는 선천적으로 아니 박정희주의에 중독되어
호남에 알레르기반응을 일으킨 일 널리 알여진 사실이다.
그런데 그대 宋光洙검사는 자격, 능력도 없는데도
국민정부 신승남검찰총장이 검찰국장 까지 시킨일 잊었단
말인가. 후에 대구고검검사장 감투까지 씨어주지
않았던가.
宋光洙검사의 전매특허인 아부 아첨으로 총장지명을
받자마자 발영이 이니고 지명이면 내 과거죄상이 언제
폭로될지 모르니, 宋光洙검사의 18기인 전매특허 아부
아첨 즉 검찰의 개혁과 노무현대통령의 개혁과 같다느니
낯가지러운 마술로 감금실장관과 노무현대통령의 마음을
홀리게하여, 정식발령을 받자마자, 검찰개혁을 개판으로
만들고 숱한 항명파동, 국가기강을 난장판으로 만들고
있으니 말이다. 쪽재비도 낯짝이 있다고 자식들 보고
부끄럽지 않은가.
그리고 우리반파쇼민중에게 어떻게 하였는가. 제버릇
개못준다고 宋光洙검사는 파시즘 문화중독에서 해여나지
못하고 노무현대통령의 한총련을 반국가단체로 몰지말고
합법화에 전향적 검토지시를 무시하고 한총련탄압에
혈안이 되고있지 않은가.
상계도 우리의 아들딸로 구성된 한총련학생들이
이적단체로 몰여 영어의 몸이 되거나, 지명수배되어
그들의 부모형제들이 얼마나 비통속에 살고있는데,
염라대왕같은 宋光洙검사는 마음이 편하단 말인가.
어디 이뿐인가 우리가 존경하는 재독 학자 송두율교수를
관제공산당으로 만들고 80이 넘는 탈북자 황미치광의
광언을 증거로 북노당 정치국후보위원이라는 죄명으로
15년구형에 7년 선고에 무엇이 모자라 불복하는 광태에
고법김용균재판장의 소신있는, 솔로몬판결에 비견할 수
잇는 명판결 즉 정치국후보워원 증거부족으로 징역 3녀에
집행유예 4년이란 파격적인 정단한 판결에 宋光洙검사는
졸개시키어 상고까지 하였으니, 이따위짓이 검찰개혁이
노무현대통령개혁과 같다고 짖어댔단 말인가.
그리고 이나라 통일지사이며, 2000년
6.15남북정상회담개최에 특등공신인 박지원 전 문광부
장관에게 허무맹랑한 실체가 없는 파렴치죄를 뒤집이
씨우고 고등법원에서 징역 15년 형에 대법원에서
증거불충분으로 다시말하면 150억원 받았다는 박지원
장관의 친인척 사둔의 팔춘까지 계좌추적을 하였으나,
돈이 나오지 않아 무죄추지의 고등법원으로
파기환송하면서, 박지원장관에게 돈을 주었다는 미국으로
도피한 부로커 김용환과 돈 신부름 하였다는 전 현대증권
사장 이익치 두치의 배달사고 다시말하면 이치들 두명이
사전 공모허여 서로 배분하고 김용환을 미국으로 도피시킨
개연성이 많다고 원심파기 환송한것이다.
그런데 참 가관인것은 항상 자기가 엘리트라는
과대망상증에 걸린 허장과세를 부리고 있는 宋光洙검사는
통일지사 박지원선생이 구속된지 1년하고도 8개월이 훨신
지난는데도 주범의 의심을 사고있는 김용환부로커에 대한
범죄인 인도요청도 않한것 같은데, 宋光洙검사의 특기인
범인 비호가 아닌가 의심이 가고도 남는다.
이익치군도 아무리 심부림꾼으로 돈을 갖다주었다
하더라도 입건하여 김용환과 같이 이자들의 사둔의
팔춘까지 계죄추적도 않하고 무의도식하엿단 말인가.
국록도적이 이닌가.
그리고 2002년 대선자금 수사에서 그동안 혁혁한 공을
세운 안대희 전 중수부장께서 2003년 초가을 대선자금을
선거자금에 쓰지않고 해외에서 호화주택이나 빌딩산 질이
좋지않은 국회의원들 발본색원하겠다고 대국민 약속에
후속타가 없는데, 이는 宋光洙검사의 수작이 이닌가.
김영일 전 의원께서 작년 고법법정에서 증언하기를
대선자금은 당이 아니라 후보자에게 직접 선거자금을
전달한다고 새로운 사실을 폭로하였는데 이말은
宋光洙감사기 신주모시듯이 비호하고 있는 이회창후보가
대선자금 강탈에 주역, 지도 감독 1인 3인역할
하였다는것이 밝혀젔는데, 게다가 이회창후보가
3억원 받은것 입건조차 않하고 박근혜대표의 복당비
3억7천만원 받은것도 입건조차 않하고 대선비용으로
충당하였 다고 면죄부를 주었으니 宋光洙검사는
현직검사인지 아니면 파쇼차때기당 두목 이회창씨의
변호인이란 말인가. 입건조차 않하고 잇으니 말이다.
입당비로 2억원이상 받은자들도 宋光洙검사 비호로
유야무야로 끝나고 면죄부를 주고, 파쇼도당의 출구조사를
최병륜군의 총장 불신임 제출 을음장에 놀랜 토끼첨럼
혼비백산아였으니, 이런것들이 宋光洙검가 자나깨나
짖어대는 법과 원칙이란 말인가. 한마디로 개수작이
아닌가.
이런 인간쓰레기 정치검사 왕치 宋光洙감시와
권영길의원은 한마디로 말해 차원이 다르다. 전자는
철학이라고는 아부 아첨 박에 없는, 후자는 폴란드의
바웬사로 통하고 대통령 후보까지 한분이며 후에
노별평화싱 수상후보라고 우리민중의 존경까지 받고있는
분이다.
권영길의원은 95년과 96년 2년에 걸처 파업, 시위로
이나라 파업 집회를 성공적으로 이끌어 마침내 얼간이의
5년 단임은 소신것 일할 수 없으니 4년 중임제(김수한
국회의장, 이홍구 당대표)개헌음모를 분쇄하고 96년 12월
26일 파쇼당의 노동악법과 민중탄압 안기부법을
통과시키었으나 권영길워원장의 명동성당농성과
시위집회로 1997년 3월 이들압법을 시문화시킨것이다.
아마 생각컨데 96년 명동성당 농성과 민주노총의 총파업
집회로 권영길위원장은 일약 한국의 바웬사로 노벨평화상
후보로 부상된것이다.
그당시 민주노총의 파업 시위 집회는 전대미문으로 역사에
남을것이다. 연두에 있던 군중들이 대거 참가하고
폭력경찰 배후에서 지랄탄 맞으면서 보도부로크 깨서
배후에서던지기도 하였기 때문이다.
宋光洙검사는 앞으로 얼마 않있으면 그 감투 벗으면
원한을 산 사람들이 너무 많다. 자기 처 (마산여고
이대)와 그 놈팽이들 말만듣고 마음속으로 dj지지를
뻘갱이 몰고 김태정, 김진세 宋光洙 세 족속이 야합하여
그 곰무원의 생존권 발탈하고, 호남출신 고위검사들
목아지를 잘르고 한총련 학생들과 모든 반파쇼민중에게
가혹한 탄압으로 그들과 불구대천의 원수로 간주되고
있는데, 게다가 한국의바웬서로 인식되고있는
권영길의원직 까지 박탈하려는 만행등으로 宋光洙검사의
다리가 얼개라도 모자른다.
잘못하다간 빈초산 세레 까지 받을런지도 모른다.
宋光洙검사는 적이 너무 많다. 사면초가이니 이거 무슨
꼴악선이란 말인가. 빈초산 세례는 원래 정적이나,
연적으로 사용된다고 한다. 이는 살인보다 더 잔인한
보복이라고 한다. 얼굴이 뭇사발이 되어 타인에게
혐오감을 주는 얼굴인데 어떻게 사회생활을 할수있단
말인가.
전두환 전 대통령은 재작중 퇴임후 희망사항을 묻는
Time지 기자 질문에 퇴임후 시민의 박수갈채를 받으면서
거리를 활보하고 싶다고, 얼간이는 역사에 길이 남을
대통령이 되고 싶다고 말한바 있으나, 한사람도 이에
해당된 자 없다.
하옇던 빈초산 세례가 가장 가혹한 보북이란것 명심하여야
한다. 宋光洙검사는 이런 민중의 보복을 면할 길은
없단말인가.
그렇다 하더라도 宋光洙검사가 빈초산 세례 면할 방법
없는것도 아니다.
1.권영길의원에 대한 3자개입사건을 철화하여야 한다.
97년 3월 이미 사문화된 법이기 때문이다.
1.박지원 전 문광부장관에 대한 대법원 파기환송에
순응하고 김용환 이익치 이치들의 친인척 사둔의 팔춘까지
계좌추적하고 하루속이 김용환에 대한 범죄인 인도요청를
하여 김용환 송환을 실현시키어야 한다.
1.애국단체인 한총련에 대한 반국가단체 오명를 벗기고
노대통령의 한총련 합법화에 전향적 검토에 순응하고
수감자 전원 석방하고 지명수베자 해제하여야한다.
1. 송두율교수에 대한 상고포기할것.
1.안대희 전 중수부장이 대국민 공약인 대선자금 해외로
빼돌여 호화주택이나 빌딩산 질 좋지않은 정치인
사법처리하여야한다.
박근혜대표의 북당비 3억7천만원 입건조사하여 철저한
법의 심판 받도록 조처를 취할것.
그외 입당비로 2억원 이상 받은 자들에 대한 철저한
조사하여 사법처리할것.
검찰에는 일사부재리원칙이 적용되지 안는다는것 명심하기
바란다. 宋光洙검사는 재임기간 중 법과 원칙대로
처리한것 하나도 없고, 검찰개혁을 개판으로 만들어
놓았으니, 법과 원칙대로 자나 깨나 짖어대고 있었으니
부끄럽지 않은가. 내말이 괘씸죄나 불경죄에 해당되지
않은가. 법원 영장 갖어오면 언제든지 법정에 설 용의가
있다. 국민정부 발족후 부터 형무소에 가혹행위 없고 신문
매일 두부, 책도 자유스럽게 허용되어 싼 하숙집이라고
한다. 노숙자 팔자보다 낳다고 한다.
평화통일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국페모
회원 황두완
















수정 / 삭제 No. 736    
글쓴 날짜: 2005.01.12
글쓴이: 황 두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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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자민련,민주당 자멸의 원인?전직대통령들의 화기애애분위기 부럽다고
작성자 황두완 작성일 2005.01.11 조회 17
우리인류은 유사이래 역사(과거)에서 교훈을 얻어 오늘날의 민주주의, 문명사회를 이루고 있지 안나싶다. 이촌로 기셩교육 없고, 지식이 풍부한것도 이니어서 미사여구나 수식어구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없으나, 다만 옳고 그른것을 판다할 줄 알어, 이에 글을 오릴 까 한다.
작년 우리민중이 존경하는 대철학가인 도율교수께서 법이 법이 아니면 불복종 운동전개하라고 우리민중에 강조한 바 있다.
그런데 만고의 역적 박정희에서 얼간이에 이르기 까지 반파쇼민중을 학대, 도살한 대통령의 하수인 정치판검사와 같은 족속인 소위 판사라는 자가 도율교수의 말을 반박하며 악법도 법이라는 쏘크라테스의 경구를 인용하여 도율고수를 비난한 글을 읽은 기억이 난다.
이말은 쏘크라테스가 한말인데, 그는 약 2천4백년전 사람인데, 그렇다면 기원전 사람을 들먹이고 있는데 아마 생각컨데 지배계급 통치자들의 우리 피지배계급 민중을 탄압, 착취하기위한 상투수단으로 악용한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만일 이말이 만고의 진리라면 인류가 이렇게 발전하여 오늘날의 평등사호, 문명사회를 우리가 향유할 수 없엇을것이다.
그래서 우리민중은 악법이 우리민중을 탄압, 착취에 반항,궐기하였기 때문에 오늘의 문명사회에 이른것이라고 확신한다. 이 촌로가 강조하고 싶은것은 우리민중은 역사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는것이다.
지민련과 민주당의 자멸은 이에 해당돤다. 그러면 우선 전자를 삺여볼 까 한다. jp는 누구인가. 장면정권 시절 중령으로 하극상 명령불복종으로 방첩부대에서 조사받고 군법회의에서 파면된 일 모르는 사람 많은것같다.
jp는 박정희와 공모하여 5.16쿠테타의 제2인자라는 악역으로 많은 민주인사들 무자비 하게 탐압 살육한 일 부인못할것이다.
박이 피살된 후 jp의 권세 가을바람에 낙옆 떨어지듯이 정치무대에서 사라젔다. 그러나 87년 6월항쟁 덕분에 정계에 복귀하여, 88년 총선에서 왈 나는 충청도에서 태어난것을 행복으로 안다고 은근히 지역감정에 불을 댕기었다. 이에 대해 충청도 시민단체와 각 종교단체, 학계에서 지역감정선동이라고 비난이 자자하였다. 그래서 88년 총선에서도 별로 재미를 보지못하였다.
그러다가 90년 초 3당야합 즉 노태우, jp,ys는 3당야합으로 jp는 충청도에서 그 세력이 반딧불에 불과한 미미한 존재였다.
92년 4월 총선에서 ys의 여당은 원내다수당의석을 찾이하지 못하여 ys의 지도력이 문제가 되어 92년 대선에서 ys의 여당후부 전망이 불투명해지자 약삭 빠른 ys는 노태우대통령과 독대하여 나에게 대통령후보 주지않으면 dj의 손을 들어준다고 협박하여 그당시 노태우대통령은 ys후보 준다는 약속을 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노대통령의 부인 김영부인은 ys가 믿업지 않아 결국 배신할것이라고 반대하였다고 한다. 이말은 1995년 10월경 ys가 인기하락 만회책으로 노태우 전두환 전 대통령을 구속시킨후 일본 신문에서 노태우 부인 김여사가 선견지명이 있는 여사라는 기사가 실였댜.
ys는 그래도 안심이 안되어 92년 4월 9일경 청구동 jp집에 찾아가 다음대선(97년 12월)에서 jp에게 빠통을 준다는 약속이 있어서 jp와 충청도사람들은 혼신의 힘을 다하여 ys대통령 만들기에 총력을 다하였다고한다.
그런데 ys는 자기의 특기가 배신이기 때문에 정치검사 두목 宋光洙 제버릇 개몬준다는 식으로 95년 jp를 졸개식히여 노골적으로 홀대하였다. jp는 자존심이 넘달리 강하기 때문에 내일 산수갑산문어저도 할일은 하는 기질이 있어서 95년 이른 봄 ys와 갈라젔다.
이에 격분한 사람들은 추종자 뿐만아니라 충청도 민중들이 일치단결하여 ys성토에 여념이 없었다. 충청도사람들은 자기 고장 출신이 대통령이 되기를 학수고대하고 있었다. jp는 불행이도 줄곧 제2인자에 머물렀지 한본도 제1인자가 되어본일이 없었다.
jp는 얼간이와 달리 용이주도하고 치밀한 think tank이기 때문에 95년 6월 지자체선거에서 수도권에서는 후보자를 내보내지 않고 dj에게 양보하여 dj당이 수도권 지역선거에서 대첩을얻게된것이다.
96년 총선에서 충청도에서 jp의 지역감정 선동에 시민단체, 여러종교계 학계0ㅔ서 이전과 달리 지역감정 선동에 이의를 달지않고 혼심의 다하여 선전으로 충청도에서 지자체선거에서 충청권을 다 석권하도 수도권 여러곳에서 dj 양보로 의석을 늘였다.96년, 97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dj의 양보로 의석을 늘린것이다. 아마 이때문에 jp와 dj가 1997년 대선에서 양당공조의 쌕이 있었던같다.
비록 5.16쿠테타 주범의 오명을 씻지모하였으나, 얼간이와 달리 국가경영철학이나 비전이 있는 분인데, 쿠테타라느 큰 과오를 범한것이다.
dj당과 공조로 50여석의 막강한 자민련이 2000년 총선에서 공조를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야당이라고 공언하여, 선거운동중 좌충우돌하면서 양당을 싸잡아 공격한 결과는 비참하였다. 게다가 1인 1표제야 아니면 1인 2표제야의 중대한 시기에 선거전날 일본에서 도라와 전자를 택한것이다. 그당시 우리민중의 생활정도는 중산층에 있는것을 이들을 전부 보수로 간주하고 신보수 모이라는 선거전략으로 임햇으니 실패할것은 불을 보듯 뻔한일이 아니던가. 물론 우리민중의 생황정도는 중산층이 많다는것 부인 못하지만 이들 전부가 신 보수라고 보면 큰 오산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결과 자민련 52석이 17석으로 줄어 자체의석수로는 원내 교섭단체를 할수없어, 민주당에서 세사람을 임시 빌여주어 교섭단체를 가까수로 구성할 수 있엇다.
그런데 2002년 임동원 통일부장관에 대한 한나라당의 부랑당 같은 불신임제출에 대해 jp는 임장관 쫓아내려고 한나라당과 야합하여 소속의원들에게 가표던지라고 지시하면서 dj와 공조는 여전히 유호하다고 해괴망측한 궤변을 서슴치 않았다.
우리 같은 정치문외한도 기가 찬데, 하믈며 ,dj는 어떠햇을 까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자면련을 dj당과 공조로 52석이라는 개스팅 보트를 쥔 막강한 영향력있는 당이 신보수 다 모이라고 독자노선을 겄기때문에 4.15총선에서 자민련을 교섭단체는 고사하고 신생 민주노동당보다 뒤 떨어진 한자리수의 정당으로 몰락하고 jp마저 파렴치죄로 집행유예라는 수모를 당하고 정계 은퇴하였으니, 얼마나 비참한 일인가. 전직대통령 어떤자는 피살되었거나, 파렴치범으로 몰린 전두환, 노태우, 얼간이도 안기부자금 유용관계와 통치자금으로 언제 법의 심판을 받을지 모를지경에 있다. 이런것을 보면 dj는 호남출신으로 임기중 상당한 고초를 격었지만 이런 범주에 속하지 않고 그의 업적은 영구불멸이며, 우리 역사에 길이 길이 남을것이다.
다음 후자 민주당을 말할 까 한다. 민주당은 선장이 너무 많아 함선을 산꼭대에 올여놓았으니, 항해가 제대로 이루질 수 잇겠는가.
가장 큰 오류중 하나는 92년 3월 시작된 민주당 대통령후보 경선에서 노모현후보가 선두를 달리고 마침내 2002년 3월 16일 광주에서 한화갑후보의 당선이 예상되었는데 이를 뒤집고 호남인들이 그렇게도 싫어하고 잇는 영남출신인 노무현후보를 1등으로 뽑지않았던가.
그후 그 쪽 식자들에게 물어보니 한화갑후보는 실력, 신망이 있고 민주화투쟁에 공헌한 바 절대적이나, 영남의 호남인 기피현상으로 경쟁력이 약해, 도저히 승산이 없어서 노무련후보를 밀어주었다고 한다.
그러면 dj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dj는 71년 대선 개표조작으로 낙선의 고배를 마시고 26년간이나 죽을 고비를 몇번이나 격으면서 변절이나 굴복하지 안는 아마 호남에서는 1세기 내지 2세기에 한번 나올까 말까한분, 에외적인 인물인데, 호남에서 금세기에 나올 수 없을것이라고 단언하였다.
그런데 2002년 여름 노무현후보를 대선후보로 결정하였으면, 일사불랄하게 밀어주어야지, 후단협이니,가리차우려는 움직임이 있는데도 당대표인 한화갑대표는 수수방관한 일 이해가 안되며 정균환총무는 후단협범주에 속하니 할수없지만,,,,,.
노무현대통령이 대통령취임후에도 여러보궐선거에서 연거퍼 민주당이 참패를 면치못하자, 민주당간판으로는 승산이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산당창당의 여론이 대세를 이루게된것이다.
각계각층을 총망라한 신당결성이라는 대명제을 두고 2003년 9월경 민주당당무회의에서 깽패동원의 폭력사태로 당무회의가 무산되자 10월 13일 마침내 오늘의 열린우리당이 결성된것이다.
이에 앙심을 품고 아무 잘못도 없는 노무현대통령 탄핵을 폭력으로 통과시킨일 즉 민주당은 파쇼차떼기 한나라당과 야합하여 의회쿠테타를 일으킨것 천추에 한을 남긴것이다.
한나라당은 어떤당인가,. 박정희, 전두환 얼간이 집단이 모인 타도의 대상인데, 이들과 당리당략을 위해서 야합하였으니, 4.15총선에서 16대국회에서 60여석의 민주당이 민노당보다 뒤떨어젓으니 말이다. 심지어 dj의 아들 깅홍일의원마저 인잘로 잡고 호남의 지역감정을 선동하였어도 그 결과는 어떠하였는가, 비참하게 몰락하였으니 말이다.
그후 호남사람들은 말한다 지역걈정에 가장피해를 본사람이 호남인데, 그 지긋 지긋한 지역갈등에 부채질 한다고, 그리고 남북평화통일의 기름길인 햋볕정책은 누가 성취할 수 있단말인가.두말할 나위없이 열린우리당이라고 한다. 민주당의 패망원인은 하나라당과 야합이 절대적 요인인데 민주당 수뇌부는 이를 모르는것 같아 안타갑다고 한다.
그러면 이제 전직대통령들의 화기애애한 분위가 부럽다는 말은 누가 하였을까. 얼간이가 작년 11월 초 미국 클린턴 전 대통령 도서기념회관 개관식에 전세계 많은 인사들이
참석하였다, dj도 초청받았으나, 구라파에서 몸이 불편하여 미국행을 애석하게도 포기하였다고 한다.
그곳에서 전직 미국대통령들이 우애좋게 나란이 이야기 꽃을 피었다고 한다. 그러면 우리나라는 왜 이렇게 서먹서먹하고 찬바람이 불며, 서로 외면하게 되었는가.
이는 어디까지나 얼간이 책임이라고 단언하여도 틀린말은 아니다. 얼간이는 90년 3당 야합하면서 호랑이 잡으려면 호랑이 굴속에 들어가야한다는 말은 되집어 보면 군사파쇼 소굴로 들어가서 정권을 잡으면 민주개혁을 한다는 말인데, 얼간이는 민주개혁이 아니라 이나라 민주주의를 수십넌간이나 후퇴시키고 얼마나 많은 민주인사들을 탄합 박해를 가한 일 주지의 사실이다.애국단체인 한총련을 반국가단체로 만들고 현재도 정치판검사왕치 즉 宋光洙가 한총련 탄압에 불물을 가리지 않고 날뛰고 있지 많은가. 노태우대통령보다도 더 가혹하게 민주진영과 학생탄압에 혈안이 된일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니 얼간이의 호랑이 잡으려면 호랑이 굴속으로 드러간다는 말은 전혀 거짓말이며, 자기의 대통령감투 탐이 나서 우리민중 기만용에 지나지 안는다.
그리고 95년 10월경 얼간이는 자기인기 하락의 만회책으로 자기의 대부인 노태우와 전두환 전직 대통령을 구속시키었을 때 최규와 전 대통령은 얼간이는 의리와 신의를 저버리고 칼을 잡았다고 빈난하지 않았던가. 이렇게 되니 이분들 새분 전직대통령들과 어떻게 우애좋게 지낼 수 있겠는가.
그다음에 dj와의 관계인데 dj는 과거 민주화 투쟁을 생각하여 재직시 여러번 청와대에 초청한일도 있었으나, 여러번 얼간이가 불참한 줄알고있다.
2001년경 무슨 기념식장에서 dj의 악수를 고의로 회파하는것을 dj의 여러번 억지 악수로 악수가 이러진 일 tv에 비처젔다. 그리고 2002년 월드컵 부산경기장에서 현직대통령인 dj의 참석에 거기있던 모든 vip들이 일제히 이러서서 박수갈채를 보냈는데도 일어나지도 않고 dj를 무시하는 태도에 얼간이 부인께서 보다못해 강제로 일으킨 장면보고 격분햐지 않은 분 없으르라 생각된다. 오히려 부인보다 못한 뱅댕이 속앓지는 宋光洙검사를 닮었는지 못된것은 다 닮고있으니 말이다.
이와같이 전직대통령들의 사막서막한 분위기 창작자는 다른사람이 아니라 바로 얼간이가 아닌가. 그런데 미국 전직 대통령들의 화기애애한 분위가 부럽다는 말이 나올 수 있겠는가.
얼간이는 재직시 지역감정 골이 깊어지고 게층간 갈등이 더욱 깊어진것 모른단말인가. 참 기가 찬다.
그리고 파쇼차떼기당은 지역갈등으로 짭짭한 재미를 보고 있지만 머지않은장래에 반드시 그 망국적인 지역갈등이 문어지리라 믿어 의심치 안는다. 영남사람들이 그렇게 무식하고 몽매하지 않기때문이다.
평화통일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국페모
회원 황두완





수정 / 삭제 No. 735    
글쓴 날짜: 2005.01.09
글쓴이: 황 두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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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참여정부 초기에 청와대 인사시스템에 문제가 있었다.
작성자 황두완 작성일 2005.01.09 조회 13
작금 이기준 교육부총리 임명을 둘러쌓고 청와대 비서실에
각계각층에서 비난의 화살이 쏟아지고 있다.
그런데 청와대 인사시스템에 문제가 있는것은 이것이
처음이 아니다. 위대한 철학가이며 정치적 식견이
풍부하고 비전있는 dj도 전지전능한 신이 아니기때문에
공짜배를 탄 개혁주체가 아니라 개혁대상인 朴相千군
능력에 맞지안는 법무장관에 발탁한 결과 무서운 결과를
야기시키지 않았는가. 현철인맥인 정치검사 김진세,
짐태정, 宋光洙 족속들을 비호한 결과 옷로비사건, 이용호
무협의처리가 들통나 99년 6월3일 국회의원 지자체
보궐선거에서 자기 터밭에서 참패를 면치못한하고 그
여파로 2001년 9월 국회의원 두곳 보궐선거에서 그리고
2002년 6.13지자체선거와 8.8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비참할 정도로 완전 대참패를 당한일 우리반파쇼민중 잊을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참여정부에서 인간대학살에 하수인 노릇을 한
둘째가라면 서러운 정치검사 왕치 宋光洙의 능력에
맞지안는 검찰의 제일 높은 감투를 씨운결과 어떤 무서운
결과를 야기시키였는가, 이미 널이 알여진 사실이다.
아치의 아부 아첨은 천하일품이며 이치의 감언이설에
홀딱반한 강금실 법무장관의 강력한 추천으로 인간쓰레기
宋光검사가 그 감투를 쓴결과 무서운 결과 즉 宋의
불공정하고 편익된 불법 대선자금 수사와 선거법 위반에
대한 편파수사로 우리반파쇼민중의 이익을 대변하는
열린우리당의 과반수의석이 붕괴될 위기를 맞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이치는 생리적으로 호남인에 대한 알레르기
반응으로 2003년 2월경 총장 정식발령이 아니라 단지
지명단계에서 강금실 장관과 노무현대통령의 검찰사정에
무지함을 기화로 1997년, 2002년 대선에서 dj와
노무현후보 당선에 자가들비용 써가면서, 온가족이
총동원하여 혼신의 힘을 경주한 고위검사들을 내쫓거나
좌천시키고, 심지어 법무부 검찰국장은 최소한 부산검찰청
검사장인데, 서울고검 차장검사로 좌천시키어 사표를
내게하고, 이것도 모자라 재경지청장은 대부분이
검사장으로 승진시키는데, 호남출신 지청장들을
좌천시키어 그 우수한 민주검사들을 대학살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이로니컬하게 宋光洙검사도당은 누구를
찍었게는가 파쇼차데기당 후보를 찍은것 부인못 할것이다.
파쇼차떼기당은 지난 양 대선에서 호남몰표를
방지하기위해 이들의 선거전략은 호남민심과 열린우리당의
철저한 이간질이 선거전략이었다. 그런데 증거는 없으나
宋光洙검사의 한 수작을 면밀히 겸토하면 파시스트
차떼기당 선거전략과 꼭 맞아떠러지지 않았던가(그래도
작년 4.15총선에서 호남민중은 감홍일의원을 불모로 잡은
민주당의 지역갈등 부채질을 외면하고 열린우리당에
몰표를 던지지 않았는가). 어디 이뿐인가. 이치는 2003년
6월경 청와대 오찬에서 졸개시키어 검사인사권 돌여달라고
당돌하게 요구까지 하고, 그후 좀 더 높은 졸개인
광주고검검사장 이범관을 시키어 노대통령에 대한
대내외적으로 위신과 명예를 실추시키고 국가기강을
개판으로 만들지 않았던가.
그여파로 외무부에서 노무현대통령을 우습게 아는 풍습이
만연되어 급기야 외무장관 마저 사표를 내게하고 덩달아
작년 해군의 허위보고서, 군장성 진급부정으로
남육군참모총장의 대통령 무시하는 행위와 육군수뇌부의
국방장관도 우습게아는 만행등 국가기강 개판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정도다.
이치는 임기제 2년을 떠버리고 있는데, 1993년 얼간이는
취임하자 마자 자기의 정적인 박모의원을 물적 증거없이
구속시키고, 그분과 가깝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박종철검찰총장을 내쫓고 지기가 임명한 김모 총장도
가리치우고 얼간이는 자기와 같은 모교경남 출신
김x수검사를 총장으로 임명하고 3권분리인 대법원장
김덕조도 시감으로 내쫓지 않았는가.
항차 宋光슈洙검사는 졸개들과 작당하여 숱한
항몀파동, 명령불복종에, 재버릇 개못준다고
자기처(마산여고 이대)와 그떨거지 말만들고 마음속으로
dj지지라는 이유하나만으로 뻘갱이로 몰고 그 공무원의
생존권을 박탈한바와 같이 사시23회 우수한 서울지검
부장검사들을 사감으로 저어래 영남의 시골지청장으로
쫓아보내면서, 힌편 자기와 가깝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차장검사로 승격시키지 않았는가. 그것도 그사람들이 다
같은 사시23회인데 말이다.
김승규 법무장관님께서는 이를 바로잡으리라 믿어 의심치
안는다. 김장관님은 宋과 같은 죠다, 속이 밴댕이 속앓지
얕은 분이 아니기때문이다.
宋光洙검사는 검찰개혁을 개판으로 만들어 놓고
노무현대통령의 한총련 합법화에 전향직 검토지시에
역행하고, 상계도 오히려 한총련탄압에 광분하고 있지
않은가.
요즘은 宋의 상관인 법무장관과 대통령도 무시하는 큰
소리가 사그러젔으니 다행한 일이다.
김승규장관님은 宋光洙검사와 같은 아부 아첨하는분이
아니라, 오히려 철학이 있는 분이기에 과거와 같이 잘못
짖어대다가는 아부 아첨으로 얻은 감투마저 날라가기
때문이다.
검찰의 개혁을 망가트리고 국가기강을 개판으로 만들고
있는 宋光洙검사를 천거한 얼간이가 아직도 청와대에
있다고 하는데 이런자는 宋光洙검사의 반개혁적,
반역행위에 책임을 지고 하루속히 사표를 내야한다.
宋光洙검시 처럼 후안무치하게 감투에 연연하여서는
아니된다.
물론 교육부장관 추천한 자도 책임을 저야하지만,
반골사상이 농후하고 검찰개혁을 개판으로 만들고
국가기강을 아수리장으로 만든 후안무치한 宋光洙검사
추천한 자 말해 무엇하겠는가.
반파쇼민중들은 宋光水검사의 임기가 2월인줄 알고 있는데
4월이라니 이것도 간사하고 교활한 宋光洙검사의
전매특허인 아부 아첨으로 4월로 연기된것이 아닌가
분개의 소리가 높다. 좌우간 宋光洙감시의 참여정부에서
용서치 못할 죄상이 너무 많아서 감투 내노으면
몸조심하여야 할것같다. 감투쓰고 너무 많은 반파쇼
민주인사들에게 가혹한 일을 많이 저질렀기 때문이다
한좀도 안되는 자가 호남민주검사들에 대한 학살 어떻게
책임을 질것인가. 항상 보디가드 대동할 수는 없지않은가.
평통모,. 국폐모 회원 황두완





수정 / 삭제 No. 734    
글쓴 날짜: 2005.01.08
글쓴이: 황 두완

수구파쇼반동분자들이 당을 망처놓고 있구나!
작성자 황두완 작성일 2005.01.08 조회 12
2002.12월 19일 대선으로 거슬러 올라가자. 그당시
노무현후보는 약관의 몸이며, 더구나 당의 전폭적
지지기반이 없았고, 설상가상으로 지지층이 겹치는
권영길후보의 97만표의 잠식에도 불구하고 강적
이회창후보를 57만여표의 차이로 우리민중 대망의
월계관을 찾이한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하나에서 열가지가 민주개혁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여당의원들의 교만과 태만으로 2003년 4월 실시된
국회의원 보궐선에서 참패를 면치못하였으며, 그후 2003년
9월경 새천년민주당 간판으로는 17대국회 총선에서
소수당으로 전락할 우려때문애 마침내 여론의 눈총을
무릇쓰고 과감히 분당을 결심하여 2003년 10월 13일
노늘날의 열린우리당으로 발전된것 널리알여진 사실이다.
열린우리당 초창기에 개혁실종이라고 시민단체와 학계로
부터 비난일색인것을 우리반파쇼민중은 여건이 형성되지
않았는데, 다시말하면 원내 소수당의 비애라고 말하면서,
개혁을 위해서는 다음 총선에서 다수당을 만들어 달라고
호소한 바 있다.
그당시 노무현대통령과 여딩 인기는 바닥을 해메고 있던것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데 작연 3월12일 정치깡패두목
박관용과 파시스트 차떼기당의 의회 반란으로 야기된
탄핵반대 촟불시위에는 그야말로 각깨각층을
총망라한 성난군중이 구름같이 모여들었다.
3월12일 여의도 평화광장에서 시작된 촟불시위는
그다음날 광화문 네거리에서 계속되어 3월27일 까지 장장
12일간이나 하루도 쉬지않고 탄핵반대, 민주수호의
촟불시위에 젊은 남여 주로 30,40대 부부들,
학생단체는 양대산맥 즉 운동권 즉 한총련과 비운동권 왈
탈정치 모토를 내세운 약300개 대학으로 구성된
한생단체도 헌정파괴는 박정희, 전두환이면 족하지 더이상
허용할 수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그
촟불시위에 참가한것이다.
파쇼차떼기당의 수문장 홍사덕은 촟불시위
참가자들을 무위도식하는 룸폥이라고 비하하여
우리참가자들을 격분시키고 오히려 우리민중들은
똘똘뭉치게 하는 역효과를 내었다.
그당시 참가자들은 노숙자들은 한사람도 없으며 서민층은
있으나 주로 중산층이 참가한것이다. 정치검사 두목
宋光洙검사의 집요한 촟물시위 군중 탄압에도
위측되가는 커녕 그 기세 하늘을 찌르는것 같았다.
그 촟불시위에서 절대적인 힘을 얻어 4.15총성에서
국회의석 38석의 소수당이 일약 152석 이라는 절대
다수당이 된것은 무엇을 의마하는가. 여건이
조성되었으니, 민주개혁 특히 그중에도 국가보안법 폐지,
친일진상규명법, 사립학교법 연내 처리에 당의명운을 걸고
암하라는 우리반파쇼민중의 지상명령이 아니던가.
그러면 우리반파쇼민중이 그렇게 믿었고, 의자하뎐
열린우리당 지도부를 한번 훑어보자! 당지도부는
국가보안법을 위요하여 파시스트당 눈치를 삺이다가
노무현대통령의 평상시의 지론인 국가보안법 폐지을
완곡한 표현으로 말슴하자, 용기백배하여 국가보안법
페지로 당론을 모아갔다. 이것 역시 서투른 일이다.
여당내에 정책입안자나 두뇌집단이 없는것도 아니다. 다만
용기 없을뿐이다. 원내 천정배대표는 무능하지 않은데,
당내 각계파간에 이견, 갈등에 이부영 전 당대표의
연낸처리 반대 왈 산이 높으면 도라가야 한다느니, 같은
계파인 안영근, 김부겸의원들의 해당행위 발언에 업친데
덥친데 김원기의원의 배신행위로 천정배원내 대표의
입지를 흔들고 무력화시킨것이다.
이런 홋떡집 불난와중에 어떻게 천원내 대표의 강력한
리더십이 발휘될 수 있겟는가. 물고기가 물을 떠나면
살수없는 이치와 같다. 이는 천정배원내 대표를 나무위에
올여놓고 흔드는것과 다를 바 없다.
이번 천졍배원내대표의 국가보안법 연내 처리를 무산시킨
일등공신인 안영근, 김부겸의언에게 묻고십다.
반개혁적이고 회색분자인 이들은 반개혁적인 파쇼당에
남아있지 어째서 철새와 같이 열린우딩에 왔는가. 그
의도에 의문을 제가하자 않을 수 없다. 그곳 선거많?말을 빌면 파쇼당에 남있다가는 의원직 상싱할까 바
철새빈난을 무릅쓰고 당을 옮겼다고 한다. 김부겸의원은
2000년 4.13총선에서 유선호 전 의원의 방심의 틈을
잘이용하여 2백여표 차이로 의원에 당선되었다고 한다.
파쇼차떼기당으로서는 당선 불가하여 당적을 옮기었다고
한다.
작년 국회의원 후보경선도 치르지않고 경쟁자인
유선호의원을 저 아래 전남으로 쫓아버리지 않았는가. 그
만큼 당의 배례를 입고 이거 무슨 괴상망측한 수작을
부리고 있는가.
인천 안영근의원도 김부겸의원과 상황은 같다고한다.
이번에 안영근의원의 뚱땅지같은 해당발언에 분개한
당원들이 인천 안영근의원 사무실까지 졈령, 성토하였다고
하지 안는가.
이치들은 염불에는 마음이 없고 오로지 제밥에만 눈독을
드리고 있지 안나 의심아 간다. 하나라당과 협상대표는
천정배의원이 아닌가. 그런데 이른바 중진이란 자들의
꼴값한다고 개별적으로 파쇼도당과 막후 협상을 하였다니,
이거 해당행위이며 비열한 처사가 아닌가.
그 중진이라는 자는 문회상, 유인태등인데, 이들은
16대국회에서 낙선의 고배를 마신었다. 지역구에서
인기없는데도 17대국회에서 당선된것을 선거구민이 개혁에
박차를 가하라는 명령이 아니던가.

여기에 이강래 류재건 의원등 감투 좋와하는 자들의
해당행위에 파쇼차떼기당의 이익을 대변하는 김원기의원의
반동으로 국가보안법법 연내처리가 무산된것이다. 주범은
얼간이를 닮아서 그런지 권모술책에 능란한 김원기의원의
반역행위라고 단언하여도 틀린말은 아니다.
이부영씨에게도 묻겠다. 한나라당은 개혁정당이 아니고
수구반동 꼴통들이기 때문에 철새의 누명을 쓰고
열린우딩으로 옮긴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4개혁 입법연내
처리에 솔선수범하였다면 당내 특히 안영근
김부겸의원들의 해당행위가 없었을것이며, 따라서 역적
김원기의원의 내년 2월 연기론아 나올 수 있었겠는가.
이부영씨의 2중 플레이 가 없었다면 당이 풍지박살이 나지
않았을것이다.
그리고 강경파에 모든책임을 전가시키고 잇으니 가소롭고
위선을 떨고있다고 우리는 판단한다.
그런데 앞으로 문제는 신임 열린우리당 임채정의장은
우리반파쇼 민중이 여당에 부여한 지상명령인
국가보안법등을 이번 2월 임시 국회에서 반드시
처리하여한다.
국가보안법 폐지 여건 조성이 오늘날 처럼 이루어진 일이
있었던가. 작년 국회의원 161명의 폐지안 제출은 여전히
유효하며, 이번 2월국회에서 반드시 통과시키어야 한다.
파쇼당의 무원칙하게 토론도 없이 반대일변도에 민주주의
원칙과 국회법에 따라 표결처리 하여야하며, 파쇼당의
국회 강제점거에 대해 경호권을 발동하여야 함은
말해무엇하랴!.
파시스트당은 협상할 수 없는 수구 반동의 꼴통들의
집단이기 때문이다. 일부 얼간이 중진의원들의 대처입법
떠버리고 있는데, 이는 우리반파쇼민중을 우롱하는것과
무엇이 다르단말인가.
만일 금년 2월에도 국가보안법 폐지가 유야무야로 끝나면
반파쇼민중의 이탈 이반은 불을 보듯 뻔한데 4월 국회의원
보궐선거와 내년 지자체 선거 어떻게 치룰 수 있단말인가.

악명높은 정치검사 宋光洙검사의 한나라당 비호로
열린우리당의 원내 과반수가 서서히 문어지고 있는터에
어떻게 제일당 과반수를 유지할 수 있겠는가.열린우리딩
지지층 주체가 젊으니와 학생들인데 말이다.
열린우리당 여러분은 다가오는 4월 당대회에서 국가보안
법폐지 연내처리 반대한자들과 대체입법 짖어댄
반동분자들은 당중요 당직에서 배제하고 참신한 개혁직인
인사를 당요직에 선출하자! 이렇게 하므러소 명실상부한
서민, 중산층의 이익을 대변하는 개혁정다이 될것이라고
확신한다.
수구반동분자들의 책동을 분쇄하여 곧 있을 국회의원
보궬선거와 내년 지자차선거에서 승리을 쟁취하자!
평통모, 국폐포 회원 황두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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