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두율교수 저서 독후감 공모전
  제목    [오마이뉴스] 국가보안법 55주년 기념 긴급체포? (2003.12.4.) - 이덕우
  글쓴이 펌 글쓴날 2003-12-05 15:34:18 조회 1523

국가보안법 55주년 기념 긴급체포? 
[속보, 사회] 2003년 12월 04일 (목) 22:12 
 
 [오마이뉴스 이덕우 기자]새벽이나 밤늦게 핸드폰이 울릴 때
기분이 묘하다. 얼른 받을 때도 있지만 대부분 그렇지 못하다.
그런데 지난 12월 1일 저녁 전화벨이 울릴 땐 유난히
짜증스러웠다. 공연히 그럴 때가 있다. 

그런데 대부분 예감이 들어 맞는다. 전화를 받으니 또 누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체포되어 경찰청 대공분실로 끌려갔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당연히 변호사로서 달려가
면회해야지.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대신 싸워주기도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를 몰고 대공분실로 가는 동안 입에서는 절로
욕이 나왔다. 지금이 어느 땐데 국가보안법을 가지고 이렇게
사람을 괴롭히는가 하고. 그러고 보니 국가보안법이란 괴물이
55번째 생일상을 받는 날이었다. 국가보안법 제정일에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체포된 젊은이의 기분이 어떨까.


면회를 하고 혐의 내용을 알기 위해 담당 경찰관에게 체포영장
등본을 달라고 했다. 그런데 가져온 것이 달랑 한장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혐의인지는 뒤에 붙여진 범죄사실의 요지에
적혀있는데 피의자의 인적 사항과 청구 검사, 발부 판사 등만 적힌
앞장 한 장만 복사해주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게 체포영장 등본이란다. 그리고 변호인 입회는
안된다고 한다. 송두율 교수 사건으로 검찰이 한방 먹은 것을
이야기해도 마이동풍이다. 입씨름 해봐야 입만 아플 것이고 혈압
올라가면 내 손해이니 날 밝은 다음 법원에서 등본을 받으면
되겠지 하고 돌아왔다.


12월 2일 아침에 회의 중간에 나와 직원에게 "법원에서 등본신청을
해서 받아오라"고 했다. 그런데 직원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서울지방법원 영장계 담당 직원이 구속영장 등본은 당연히
해주는데 "체포영장을 한번도 해보지 않아 잘 모르겠다"며
곤란하다는 것이다. 


전화를 바꾸라고 해서 형사소송법과 규칙에 체포영장도 구속영장과
같이 등본을 청구할 수 있다고 해도 "그게 어디에 있는데요?"
하면서 반문한다. 조문을 외우고 있는 것도 아니고 법전도 없는
곳이어서 한번 찾아보라고 하자 대답이 걸작이다. 부장판사님께
여쭈어 본단다. 


조금 있으니 이번엔 대공분실 수사관이 전화를 했다. 변호인
입회를 해 달라는 것이다. 어제는 안된다고 하더니 말이다. 그래
대공분실에 가서 피의자 옆에 붙어앉아 입회를 했다. 체포영장
등본을 다시 요구했더니 검사님께 지휘를 받아야 한다나. 


담당 검사에게 전화를 했더니 "해 드려야지요" 한다. 그래
수사관을 바꾸어 주었다. 그런데 둘이 한참 통화를 한다. 통화한
후에도 경찰관은 등본을 해 준다는 건지 거부한다는 건지
애매모호한 태도이다. 그래 다시 물어 보았다. 해 줄거요, 말거요.
경찰관 왈 한번도 해 본적이 없어 근거가 있어야 해 줄 수 있단다.



법전을 가져오라고 해서 해당조문을 찾아 직접 읽어주고
입법취지까지 설명해 주자. 그때서야 “아 여기 보니 97년도에
개정된 것으로 되어 있군요. 잘 몰랐습니다”한다. 화도 나지
않는다. 97년도에 개정된 것이라면 6년이나 지났는데 수사를
담당하는 경찰공무원이 당연히 알고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긴
법원 직원도 잘 모른다는데…. 


어렵게 등본을 받아 돌아오는 차안에서 직원이 전화를 받는다.
법원에서 영장등본을 등사해 놓았으니 찾아가란다. 졸지에 똑같은
영장등본을 2통이나 받게 된 것이다. 책상에 앉아 체포영장을
본다. 똑같은 것 둘. 하나는 대공분실에서 받은 것, 하나는
법원에서 받은 것. 왜 자꾸 쓴웃음이 나오는 걸까. 


84년인가. 한국투자신탁에서 근무할 때의 일이 떠오른다. 지점에서
사고를 치고 행방불명된 직원의 퇴직금을 처리하기 위해 법원에
공탁을 해야될 일이 있었다. 당연히 법대 졸업한 신입사원인 내게
맡겨졌다. 


남부지원에 가서 공무원에게 공탁서 양식을 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공무원 왈 "여기가 공탁서 양식 주는 덴 줄 아느냐, 법무사나
변호사에게 찾아가 보라"는 것이다. 화가 머리 끝까지 나
담당공무원과 대판 싸웠다. 아니 이렇게 불친철하면서 어떻게 봉급
타 먹느냐고. 그게 다 내 유리지갑, 월급봉투에서 나간 것인데. 


소란스러워지자 뒤에서 과장이란 사람이 나왔다. 그리고 옆의
직원에게 공탁서 양식을 주라는 것이다. 공탁서 양식은 받았지만
작성하는 게 어려워서 결국 변호사 친구 사무직원의 도움을 받아
무사히 변제공탁임무를 해치우기는 했다.


84년으로부터 20년이 지났으니 강산이 두 번은 변했다. 그런데
공무원들의 태도는 여전하다. 아니 조금 나아지기는 했다.
위압적인 태도는 많이 없어졌으니 말이다. 그런데 군림하는
자리에서 내려왔다 해도 자신의 업무에 관한 지식도 없이 "해보지
않아 모른다, 근거가 무어냐"라고 말하는 공무원들을 보면
정나미가 떨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한심스럽고.


오늘 오전 그 젊은이에 대한 영장실질심사가 있었다. 범민련
활동을 정리하고 통일연대 사무처장으로 활동하는 젊은이에게 또
구속영장이 발부될 지 지켜볼 일이다. 


국가보안법 치하 55년. 그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는가. 그
희생으로도 모자라 55주년을 기념이라도 하듯 한 젊은이가 또
대공분실 음침한 조사실에서 경찰관과 대치하고 앉아 있다.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이른바 부림사건)을 변론하면서 인권에 대해
눈을 떴다는 분이 대통령이 되었어도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은
없어지지 않는다. 


  
 
▲ 이덕우 변호사  
 
 
누가 대통령이 되어도 국가보안법은 끈질지게 살아 남아 우리의
생각을, 우리의 행동을 옥죌 것인가. 얼마 전 송두율 교수 사건에
대한 집단 히스테리 증상을 보면서 과연 우리에게 희망이 있는지
의심스러웠다.


아버지가 구속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초등학생 아들이 했다는
말이 생각난다. “엄마, 오늘 아빠랑 배드민턴 치기로
약속했는데…. 그럼 아빠랑 배드민턴 못치는 거야?”


국가보안법 제정 55주년 기념 긴급체포는 민경우에겐, 그 가족에겐
그리고 나에겐 한숨과 절망, 그리고 눈물과 한없는 분노이다.

/이덕우 기자 (surisann@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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