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일 오후 2시 서울지방법원 311호실에서 송두율 교수에 대한
첫 공판이 열렸다. 1시에 몇몇 아는 분들과 약속을 했기 때문에
지하철에서 내려 빠른 걸음으로 법원에 갔다. 법원 앞에 다가가자
큰 마이크 소리와 사람들이 모여서 집회를 하는 광경이 보였다.
"<송두율 교수 석방 대책위원회> 사람들이겠지"하고 생각했는데,
"아아쿠, 아니다." "해방 이후 최대 간첩 송두율을 추방하라!"라는
<자유 총연맹>의 플랭카드와 더불어 "빨갱이 송두율을
처단하라"라는 구호가 외쳐지고 있었다. 간첩이니 빨갱이니 하는
소리를 들으니, 소름이 오싹 끼친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는가? 빨갱이나
간첩이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진 근대의 마녀재판은 단지 법정에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나와 더불어 살고 있는 이 공간 속에 있는
우리의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친구들의 입에서 "살인하라,
살인하라"라는 소리는 끊임없이 반복된다. 내가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지난 40여년 동안 살아온 이상 "나도 그 살인자들 중의
한 사람이다." 1시 30분인데, 법정에 있는 대부분의 좌석은 <자유
총연맹>에서 동원한 아저씨와 아줌마들로 가득 찼다. 이들이
동원되었다는 사실은 3시간 동안 지속된 재판과정에서 하나 둘씩
빠져나갔다는 사실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마녀재판은 송두율 교수의 모두 발언으로 시작했다. 송두율
교수의 모두발언이 있었다고, "재판이 공정하다"고 생각하면
잘못이다. 이미 마녀재판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상황 자체가 근대가
만든 광기의 일부이다. 온갖 권위로 치장된 판사석과 검사석,
그리고 변호사석에 있는 사람들은 약간의 견해를 달리한다
하더라도 마녀재판을 수단으로, 국가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사람들의 피를 빠는 근대의 흡혈귀들이다. 송두율 교수는 "재판에
송부되기 이전에 형성된 언론의 마녀재판에서 한 개인의 무력감을
넘어 분노가 치민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울지 않는다. "당신과
함께 수많은 사람들이 울고 있고, 당신과 함께 수많은 사람들이
분노하고 있다"는 말을 어떻게 저 분에게 알려줄 수 있을까? 그냥
재판을 목도하는 수밖에 없다.
검사(3인)의 피고인 심문은 2시간 30분이 걸렸다. 그런데 막상
국민들이 신문을 통하여 알고 있는 북한 "노동당 입당"의 문제나
"북한 정치국 후보 서열 23위", 그리고 "북한의 공작금
수령"이라는 피의사실의 심문은 단 몇 분도 걸리지 않았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노동당 입당"은 북한을 처음 입국하기
위한 요식절차였고, "북한 정치국 후보 서열 23위"라는 사실은
"김일성 장례식 위원 명단"의 순서란다. "북한 정치국 후보는
노동당 전당대회에서 뽑는데, 언제 어디서 송두율 교수가 정치국
후보로 선출되었느냐"는 변호사의 질의에 대해, 검사는 김일성이
직접 임명했고 언제 어디서인지는 모른다는 것이다. 그리고 북한의
사회과학원 초청에 의한 학술대회와 강연을 하고 받은 돈이 북한의
공작금이란다. 나도 학술진흥재단에서 연구비를 받은 적이 있으니,
나는 남한의 공작금을 받은 셈이다. 미국의 학회나 대학에서
연구비를 받은 사람들은 미 제국주의의 공작금을 받은 사람들이다.
2 시간 동안은 모두 송두율 교수가 학술대회나 책에서 한
이야기가 "주체사상"을 선전하기 위한 수단이었다는데 집중되었다.
학문에 대한 법의 재판과정이다. 근대의 모든 지식과 학문의
최고는 법이다. 그 동안 우리는 조정래와 황석영 등등과 같은
문학인들에 대한 법의 재판을 수없이 목도한 적이 있다. 송두율
교수는 철학자이거나 사회사상가라고 일컬어진다. 따라서 송두율
교수에 대한 재판은 철학과 사회사상에 대한 근대 법의 재판이다.
검사의 심문과정에서 송두율 교수가 어느 곳에 쓴 "근대는 신화가
계몽이 되고, 계몽이 신화가 되는 시대"라는 말이 튀어나온다.
갑자기 저 검사가 "저 말의 의미를 알고 있을까?"라는 의심이
생긴다. 북한은 김일성이라는 근대의 신화가 계몽이 된 나라이고,
남한은 서구화라는 계몽이 신화가 된 나라이다. 미국이라는 거대한
신화 때문에 이승만이 신화를 만들지 못하였고, 미국이라는 거대한
계몽 때문에 박정희의 계몽이 실패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우리는 그처럼 "신화가 계몽이 되고, 계몽이 신화가 된" 나라에
살고 있다.
다음 재판은 12월 16일 오후 2시 30분에 열린단다. 도대체
피고인에 대한 공소사실 조차도 확실하지 않은 이 마녀재판이 계속
이어져야만 하는가? 그리고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근대의
국가법에 모든 학문을 종속시키려는 마녀재판의 음모가 이번에도
성공할까? 이 마녀재판이 성공한다면, 그 동안 남한의 공작금이나
미국의 공작금을 받은 대한민국에 있는 모든 학자들은 신앙고백을
하듯 자아비판을 해야만 한다. 나는 남한의 간첩이거나 미국의
간첩, 혹은 프랑스, 일본 등등의 간첩이라고... 갑자기 법정에서
재판을 목도하면서도 흘리지 않았던 눈물이 나려고 한다. 이
더러운 근대, 이 더러운 나라는 언제까지 근대의 폭력을 휘두를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