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두율교수 저서 독후감 공모전
  제목    [오마이뉴스] "양심수 석방!" 한많은 외침 어언 10년(2003.12.11.)
  글쓴이 펌 글쓴날 2003-12-12 11:37:26 조회 1364

"양심수 석방!" 한많은 외침 어언 10년
[속보, 사회] 2003년 12월 11일 (목) 22:12
[오마이뉴스 권박효원/이승훈 기자]
▲ 지난 93년 9월 23일부터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민가협) 주최로 매주 목요일 오후 서울 탑골공원앞에서 열리는 "양심수 석방과 국가보안법 철폐를 위한 목요집회"가 11일로 500회를 맞이했다. 비전향장기수 출신들이 민가협 회원들에게 감사의 뜻으로 꽃을 전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 학생운동 양심수 출신들이 민가협 회원들에게 감사의 꽃을 전한 뒤 큰절을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민가협 어머니들은 자식을 낳아 훌륭히 키웠을 뿐 아니라, 이 나라 민주주의도 낳는 어머니입니다"

12월 11일 오후 2시 탑골공원 앞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이하 민가협)의 500회 목요집회. 43년간 비전향장기수로 복역하다 지난 95년 나온 안학섭(73)씨는 이날 집회에 참여해 "우리 역사에 훌륭한 어머니들이 많았지만 이렇게 사회제도를 개혁하는 어머니들은 없었다"고 강조했다.

안씨는 "많은 동기들이 형장에서 죽고, 영양부족으로 병으로 혹은 자결로 죽었다. 난 구사일생으로 살아남기만 했고 (감옥에서)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민가협 어머니들의 힘"이라며 석방의 공을 돌렸다.

민가협 어머니들이 고맙기는 지난 98년 특사로 풀려난 함주명(72)씨도 마찬가지. 함씨는 83년 체포되어 간첩죄로 무기징역형을 언도받았고 체포 당시 이근안 경감이 직접 함씨를 고문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지난 2000년 서울고법에 재심을 청구할 수 있었다.

함씨는 "전기고문과 물고문, 잠 안재우기 고문 등을 받았다, 아이들이 간첩 자식으로 살까봐, 살아나가서 진실을 밝혀야겠다는 생각으로 고통을 감수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당시 함씨를 면회하고 영치금을 넣는 한편, 이근안 고문사실을 밝히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닌 것이 바로 민가협 어머니들이다.

문민정부 시절 3개월 계획하고 시작한 목요집회

임종석, 오영식, 허인회 의원 등 1500여 양심수 석방 촉구

이 날 목요집회에서 민가협 어머니들은 여느 때처럼 보라색 수건을 머리에 묶고, 양심수 사진을 든 채 거리로 나섰다. 그러나 평소와는 달리 시민사회단체 활동가, 대학생 등이 동참해 이날 목요집회 참가자는 100여명에 이르렀다. 길을 가다 발을 멈추고 오랫동안 집회를 지켜보는 시민들도 있었다.

▲ 학생운동 양심수 출신들로부터 꽃다발을 받은 민가협 회원이 울음을 삼키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장기수 10여명은 보라색 꽃을 민가협 어머니들에게 안겼고, 비교적 젊은 양심수였던 전대협 동우회 회원 10여명도 각자 꽃다발을 준비해왔다. 전대협 동우회원 모두 어머니들에게 큰절로 감사의 뜻을 전했다. 참가자 모두의 박수가 터져나왔다.

조순덕 상임의장은 "처음 시작할 때는 500회까지 갈 줄 몰랐다, 문민정부라고 해서 모든 양심수가 석방될 줄 알았다"고 10년 전을 회상했다. 93년 9월 28일 첫 목요집회 당시, 민가협은 "12월 28일까지 모든 양심수 석방"을 구호로 부르짖었다. 그 때의 전단지에는 "40∼50대 어머니들이 다시 거리로 나와야 하는 서글픈 현실"이라는 구절이 나온다. 이제 그 어머니들은 모두 60대가 되어버렸다.

민가협의 송소연 총무와 채은아 총무는 "한 번에 서너가지 주제를 이야기하니까, 그동안 우리가 얘기한 양심수만도 1500여명"이라고 말했다. 이 중에는 일반 생활인도 있고, 사회단체에서 일하는 운동가도 있다. 임종석 의원이나 오영식, 허인회 의원도 모두 민가협에 빚을 졌다. 허인회 의원은 선거를 끝내고 민가협을 찾아 울며 어머니들에게 큰절을 올렸고, 오영식 의원도 감사인사를 하러왔다. 지금도 이들은 국보법 철폐 서명운동에 한몫을 한다고 한다.

몽타주로 사진 대신한 비전향장기수 석방촉구 피켓

횟수로 500회, 연수로 10년이 되다보니 목요집회에 얽힌 일화와 사연도 많다.

비전향 장기수 석방운동을 시작하며 '세계 최장기수 김선명을 석방하라'는 피켓을 들었는데, 막상 김선명씨의 사진을 구할 수 없었다. 결국 다른 장기수들을 만나 얼굴 형태에 대해 설명을 듣고 몽타주를 그렸다. 장기수들의 그림은 대부분 이런 식으로 그려졌는데, 이후 석방된 장기수들이 "나 아닌 것 같다"고 항의(?)를 하기도 했다 한다.

집회를 열기 어려운 상황은 수도 없이 많았다. 언젠가는 폭설이 내려 정강이까지 쌓였는데, 차도 다니지 않는 거리에 서서 눈을 쓸어내면서 집회를 했고, 비가 오는 날에는 사진이 붙은 피켓이 젖을까봐 사진을 꼭 끌어안고 집회를 했다.

보수적인 할아버지들이 시비를 걸곤 했다. 그럴 때 목요집회를 몸으로 막아준 탑골공원의 다른 할아버지들이다. 할아버지 사이에서도 좌우파가 나뉘어져있다는 것이 민가협의 설명이다.

송 총무와 채 총무는 "언제가 가장 힘들었냐"는 질문에 "실무자로서는 매주 집회를 기획한다는 것이 힘들다"며 고충을 토로했다. "말이 500회지, 문화집단도 아닌데 주제를 계속 바꾸고 퍼포먼스를 만들려니 미치는 노릇"이라는 게 이들의 솔직한 심정이다.

지금까지 목요집회는 주인을 기다리는 양심수의 옷 전시, 비전향장기수 대형걸개, 감옥에서 온 편지 전시 등 다양한 퍼포먼스를 시도해왔다. 처음 목요집회가 시작되던 93년만 해도 김광석, 송시현, 권진원씨 등 가수등이 거리에서, 그것도 집회에서 노래부른다는 것이 낯선 일이었다.

"인권피해자 있는 한, 목요집회는 계속된다"

▲ 목요집회에 참석한 재독학자 송두율 교수의 부인 정정희씨와 아들 린씨.
ⓒ 오마이뉴스 권우성
그러나 목요집회는 앞으로도 쉽게 끝날 것 같지 않다. 인권 변호사가 대통령이 되도 국가보안법은 사라지지 않고 양심수도 줄어들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참여정부 출범 이후 구속자는 모두 297명, 국가보안법 구속자는 67명이다.

이날도 어머니들은 올해 구속된 양심수의 사진을 들고 거리에 나섰다. 사진 중에는 구속된지 한달도 안 된 민경우씨도 있고, 북한 정치국 후보위원 진위를 두고 사회적 논란을 낳았던 송두율 교수도 있다.

송 교수의 부인 정정희씨는 아들 린씨와 함께 보라색 수건을 두르고 거리에 서서 "모든 양심수를 즉각 석방하라"는 구호를 외쳤다.

정씨는 "남편의 천식과 고혈압이 심해져 걱정이 태산같다"고 송 교수의 상황을 전하며 "국보법에 피해를 입으면서도 희생자로 주저앉지 않고 500회 동안 목요집회를 이어온 것이 존경스럽다, (어머니들과) 처음 만났지만 고통을 함께 나눌 수 있어 반갑다"고 참여소감을 밝혔다.

지난 84년 한국을 방문해 국보법 피해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했다는 아시아민중연대의 유진 탈만 신부는 "아직까지 상황이 그대로라는 것이 놀랍지만 한국 민중의 힘을 믿고 있다"고 강조했다.

양심수 문제가 해결된다고 해도 목요집회는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 민가협 측의 설명이다. 어머니들이 "누구라도 인권침해를 호소할 수 있는 공간으로 목요집회를 지켜야 한다, 목요집회는 인권신문고"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송소연 총무는 "어머니들이 '인권 피해자는 다 내 자식'이라고 생각한다, 장애, 여성, 동성애, 양심적 병역거부 같은 소수자 문제를 어머니들이 먼저 챙긴다"고 전했다.

이날 집회는 오후 3시경 떡과 귤을 나누어 먹는 잔치 분위기로 마쳤다. 민가협 어머니들은 집회를 끝내며 테러방지법 철회와 국가보안법 철폐, 양심수 전원석방을 요구하는 '목요집회 500회 인권개선 촉구문'을 발표했다.

"아빠가 집에 올 수 없어 너무 마음이 아프다"
500회 목요집회에서 만난 사람들

▲11일 500회를 맞은 목요집회에서 지난 1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 민경우씨의 아들 준홍(11)군이 편지들을 낭독하고 있다.
임기란씨는 지난 500회 목요집회를 꼬박꼬박 참석한, 목요집회의 산증인. 목요집회 뿐 아니라 파병반대집회, 촛불시위 등에도 자주 참여해 사회부 기자들에게는 낯익은 얼굴이다. 당뇨와 고혈압 등 지병이 있다는 임씨는 얼마 전 척추 연골수술까지 받아 제대로 서있기도 힘들어했고, 의자에 앉은 채 집회에 참여했다.

임씨는 "부모들이 다 구속되어 아이들만 남았을 때, 자식을 옥에 두고 어머니들이 먼저 죽었을 때 마음이 너무 아팠다, 울기도 많이 울었다"고 지난날을 회상했다. 그래도 2000년도에 비전향 장기수가 송환됐을 때와, 한달 반 뒤 평양을 방문해 이들을 다시 만났을 때는 너무 기뻤다고 한다.

임씨는 "노무현 대통령을 찍었는데 안타까울 때가 많다, 역대 대통령에 비하면 나은 편이지만 테러방지법이나 이라크 파병을 보면 '대통령이 너무 모른다' 싶다"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영화 <선택>에서도 안학섭씨의 옥중생활이 그려져 있다. 안씨는 "좋은 영화지만 아무래도 드라마이다보니 실제와는 다르다, 실제는 훨씬 더 안 좋았다"고 말했다. 합방 기간도 짧고 독방 규모도 영화에 나온 것보다 작은 0.75평이라는 것이다. 그는 "43년을 어떻게 몇 분동안 그릴 수 있겠냐, 인간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이었다"고 강조했다.

<선택>에서 안학섭씨는 신념이 확고한 원칙주의자로 묘사된다. 실제로는 어떨까. 안씨는 "사람이 그런 환경에서 살면서 도망이나 자결 한 번 생각 않는다면 거짓말"이라고 말한다. 안씨 자신도 건강이 나빠지고, 동지들이 전향서를 쓰는 것을 보면서 자결을 계획했었다.

그런 안씨의 마음을 돌린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간수들이었다. 먼저 한 감옥동기가 자결을 했는데 담당 간수가 겁을 내면서 보고하니까 상부에서 "걱정하지 마라, 손 안대고 코푼 것이다"라고 말했던 것이다. 그 대화를 직접 들은 안학섭씨는 "하루라도 더 살아야겠다, 누구 좋으라고 죽냐"는 오기가 생겼다고 한다.

이날 목요집회에는 또 지난 12월 1일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연행된 민경우 통일연대 사무처장의 아들 준홍(11)군이 함께 했다. 준홍군은 5살이었던 97년에도 민씨가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구속되자 목요집회에 참여하기 시작해 민씨가 석방되던 99년까지 집회에 함께 하기도 했다.

준홍군은 이날 집회에서 아빠의 사진이 담긴 피켓을 들고 집회의 마지막까지 함께 했다. 준홍군은 '오랫동안 서있어서 다리 아프지 않느냐'는 질문에 "다리는 아프지 않지만 아빠가 집에 올 수 없어서 마음이 너무 아프다"며 "그런 법(국가보안법)이 없어졌으면 좋겠다"며 의젓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준홍군은 이내 "아빠랑 매일 배드민턴 치고 TV도 같이 보고 베개싸움도 하고 그랬었는데 아빠가 집에 못들어 오시니까 무척 외롭고 힘들다"며 "경찰 아저씨들이 너무 원망스럽다"며 또래의 아이들처럼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기도 했다.

국가보안법에 의한 아빠의 처벌은 11살 초등학생인 준홍군에게는 납득하기 힘든 사실이었다. 준홍군은 집회 내내 민가협 어머니들과 함께 아빠와 다른 양심수들의 이름을 부르며 이들의 석방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쳤다.

준홍군은 "아빠가 북한에 전화를 했다는 이유로 잡혀간 것으로 알고 있다"며 "그런 법으로 뭐하겠다는 것인지 이해가 잘 안된다. 아빠처럼 억울한 사람 모두 내보내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준홍군은 커서 '어떤 사람이 되고 싶느냐'는 질문에 "아빠랑 같은 길을 걷고 싶다"고 대답했다. 옆에 서있던 엄마가 "그러면 너 아빠처럼 고생할 텐데..."라고 하자 준홍군은 "알고 있다"며 쑥스러운 웃음을 지어 보였다. / 이승훈,권박효원 기자



/권박효원/이승훈 기자 (10zzung@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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