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장윤선 기자]
 |
|
| ▲
재독학자 송두율씨의 부인 정정희씨와 막내아들 송린(왼쪽). |
|
| ⓒ2003 오마이뉴스 남소연 |
|
"정말 상상하고 싶지 않지만. … 최악의 경우, 남편은 감옥 그리고 전 독일, 아이들은 미국으로 가게
되는 거지요."
송두율 교수가 서울 수유리 아카데미하우스에 머물며 국정원과 검찰을 오가던 지난 10월의 어느 날, 송두율 교수의 부인 정정희씨(61)는
눈물을 글썽이며 무심결 이런 말을 던진 적이 있다. 아니나 다를까. 한국에 온지 3개월이 다 되어 가는 지금, 그 우려는 현실이 되었다.
송 교수의 부인 정정희씨는 오는 17일 독일 베를린으로 떠난다. 무비자 입국 3개월이 끝나갈 무렵인 데다 직장문제, 독일 시민사회에 송두율
교수의 상황을 알리는 일 등 여러 활동을 하기위해 잠시 독일을 다녀와야 하는 형편이다.
<오마이뉴스>는 12일 오후 송 교수 구속 51일째를 맞아 정정희씨와 막내아들 송린씨를 초청, 80일간의 한국생활과 한국에서
느낀 여러 회한 등에 대해 들어보았다. 대담은 정운현 <오마이뉴스> 편집국장이 맡았다. 정 국장은 오마이TV 카메라 앞에서 표정이
굳어지는 그들의 마음을 녹이려 객쩍은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뜬눈으로 지낸 한국생활 80여일
정운현 요즘은 수유리 아카데미하우스에서 나와 강남 모 오피스텔에서 기거중이라고
들었습니다. 독일에도 오피스텔이라는 게 있습니까?
정정희 "독일에는 그런 건 없습니다. 제 남편은 37년만의 귀향이지만, 전
38년만에 왔어요. 그래서인지 굉장히 낯선 환경입니다. 꼭 미국 같아요."
정정희씨는 숙소를 옮긴 뒤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우선 임시숙소니까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독일에서 살던 것보다 너무 좁고, 방음이
안돼 고생을 많이 해요. 근 40년만에 와서 그런지 아직도 시차적응이 잘 안되고, 남편 걱정 때문에 린이와 뜬눈으로 지새울 때가 많아요. 우리가
잠을 잘 못 자요. 그래도 어떻게 하겠습니까? 우리 상황이 이런 걸."
 |
 |
|
| ▲
송두율 교수의 부인 정정희 씨는 오는 17일 베를린으로 떠난다. |
|
| ⓒ2003 오마이뉴스 남소연 | 체념하는 듯한 말투…. 처음
인천공항에 도착했을 때 그리고 아카데미하우스에서 기자회견을 가질 때만해도 그녀는 굉장히 당차고 힘찬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송 교수가
서초경찰서 유치장에 갇히던 날 밤, 그녀는 눈가에 가득 눈물을 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기자의 손을 꼬옥 잡은 적이 있다. 그때 본
정정희씨는 평범한 아내이자 어머니의 모습 그대로였다.
정운현 독일은 이맘때쯤 기온이 어느 정도나 됩니까?
정정희 "뭐 이 정도 됩니다만, 요즘 저희가 느끼는 체감온도는 더 낮습니다."
정운현 서울구치소에 계신 송 교수님의 체감온도는 아마 더욱 내려가 있겠죠.
한국에 오신지 100일이 다 돼 가는데, 지난 9월 22일 인천공항에 도착했을 때 느꼈던 감격과 지금은 심정이 많이 다를 것 같습니다만...
정정희 "40년 가까이 외국생활을 하다 왔고, 제 남편은 한반도 문제를 온몸으로
끌어안고 연구해온 철학자입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했는데, 그게 4번이나 변한 모습을 보고싶고, 또 그리워했던 설레임을 다 표현할 수는
없겠지요."
정운현 송 교수님의 건강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요즘 건강상태는
어떤가요?
정정희 "원래 알레르기가 있고, 또 천식도 있습니다. 구치소에서 천식이 심해져서
천식발작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원래 천식이 있었지만 그게 생활에 지장을 줄 만큼 심각한 것은 아니었어요. 그런데 구치소에서 먼지나 알레르기
같은 것 때문에, 또 기온에 차가워지면서 더욱 심해진 모양입니다. 구치소의 의료분야가 낙후해 있다고는 하지만 좀 심한 것 같아요."
새벽 1시 호흡곤란... 구치소는 오후에나 처방
정운현 요즘 면회는 매일 하십니까?
정정희 "네. 매일 합니다. 그런데 남편을 볼 때마다 나날이 건강이 악화되는 걸
느껴요. 구치소 규정은 밖에서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까다롭습니다. 천식증세가 심한 것을 보고 변호사님께 조처를 부탁드렸지만, 구치소 측은
아무런 대책을 세워주지 않았습니다. 그 이튿날 오후에야 스프레이를 받아 위기를 넘긴 걸로 알고 있습니다. 새벽 1시에 호흡곤란이 왔지만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대요. 제 남편은 원래 누구한테 뭘 부탁해서 도움 받는 성격이 아니에요. 가족과 만나면 이런저런 불편한 점들을 얘기하지만
남들에게는 '뭐 다 좋다, 좋아지고 있다' 이렇게 말하는 성격이라서 더 걱정이 됩니다."
정정희씨는 남편의 '지나친 겸손에 불만'이 있는 것 같았다. 힘들면 힘들다고, 지치면 지쳤다고 다른 사람들에게 얘기해야 알아줄텐데,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는 편하게 말하는 사람이 왜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런 말을 하지 않는가 답답한 모양이다. 17일 이후 정씨가 떠난 뒤 편하게 그런
말을 건넬 사람이 없어질 때 과연 누구에게 하소연할 지 심히 걱정되는 것 같았다.
정운현 송교수 사건에 대한 1심 공판이 끝나고 2심이 준비중인데, 재판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십니까?
정정희 "제 남편은 이미 언론으로부터 여론재판을 받았습니다. 사실이 아닌 걸
사실인 양 보도함으로써 문제가 심각해졌는데요. 법정에서 진실이 밝혀지기를 바랍니다. 또 공정한 재판이 되기를 바랍니다."
정운현 언론의 보도태도에 대해 언급하셨는데요. 뭔가 좀더 하실 말씀이….
정정희 네. <중앙일보>는 남북해외학자회의를 할 때 3차례나
단독보도를 했습니다. 그러나 <중앙일보>가 지금 남편에 대해 보도하는 태도를 보면 너무나 무책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걸 보면 분노하지
않을 수 없어요. 비단 남편의 문제뿐만 아니라 그런 보도는 이 사회에 대해서도 무책임한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동아일보>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남북해외학술회의를 보도한 적이 있지요. <조선일보>야 아예 가능성이 없는 언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중에
<조선일보>가 변하면 그때 남북해외학술회의를 다뤄줄 것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제 남편은 한국의 야당과 보수언론
속에서 '정치적 희생양'이 된 게 아닌가 싶어요. 말바꾸기를 했다는 보도가 들릴 때마다 정말 실망하고 분노했습니다.
정운현 그런 반면 한국에서 두 분에게 용기와 희망을 준 분들도 계시죠?
정정희 "네. 따뜻하게 용기를 넣어주신 분들이 많지요. 특히 모르는 분들한테서도
많은 격려를 받았습니다. 더러 지하철에서도 우리를 격려해 주시면서 전화번호 적어주고 연락하라는 분도 계셨습니다."
 |
|
| ▲
재독학자 송두율 교수의 부인 정정희씨와 아들 린씨가 12일 정운현 오마이뉴스 편집국장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
|
| ⓒ2003 오마이뉴스 남소연 |
| 정운현 한국에
오신지 80일이 지나고 있는데요. 그간 한국에서 느낀 여러 감정들이 있을 것 같아요.
역사에 없는 최대 간첩이라는 낙인
정정희 "38년만에 고국에 와서 우린 국정원, 검찰, 구치소밖에 구경하지
못했어요. 여기말고는 다른 데는 가볼 여력이 그간 없었지요. 한국사회가 경제적으로는 많이 발전했지만 문화적인 축적은 별로 없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윤이상 선생님은 세계적인 작곡가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한국에서는 그분에 대해 배타적인 생각을 갖고 있고, 통영에 윤이상음악제가 있다고
듣긴 했지만 그렇게 활발하게 진행되는 행사는 아닌 것 같습니다. 제 남편 역시 철학자로서 남북을 잇는 가교역할을 해보겠다고 노력했지만 결국
고향에 돌아와서는 '역사에 없는 최대 간첩'이라는 낙인이 찍혔습니다. 또 미래를 내다보지 않고, 돈과 권력으로 모든걸 해결하려는 문제점이
있더군요. 한국사회가 아직 미성숙한 사회라는 생각이 듭니다."
정운현 더러 사람 때문에 겪는 절망감 같은 것도 있을 것 같은데요...
정정희 "……. 소위 지식인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이 신문에 쓰는 글을 보면, 이
사람들은 과연 양심을 조금이라도 가진 사람인가 의심하게 됩니다. 제 아들 역시 지금 이 상황이 너무나 괴롭지만 이 사회가 5년이나 10년이 지난
뒤에는 이 자체가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지 느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정운현 그러고보니 우리 두 사람만 얘기를 해서 아들 린씨가 심심할 것 같네요.
(웃음) 몇 마디 물어보죠. 린은 아버지의 삶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어머니께서 통역을 좀 해주십시오.
 |
|
| ▲
지난 93년 9월 23일부터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민가협) 주최로 매주 목요일 오후 서울 탑골공원앞에서 열리는 "양심수 석방과 국가보안법
철폐를 위한 목요집회"가 11일로 500회를 맞이했다. 목요집회에 참석한 재독학자 송두율 교수의 부인 정정희씨와 아들 린씨.
|
|
| ⓒ2003 오마이뉴스 권우성 |
| 송린(통역
정정희) "남도 북도 할 수 없는 일을 아버지가 맡았다고 생각합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을 마다하지 않은 아버지가 자랑스럽고
그래서 존경합니다. 전세계에서 분단국가는 한반도 뿐입니다. 여기서 우리 부모가 하는 일과 삶을 절실히 느끼고 있습니다. 오늘의 고통이 오늘로
끝나지 않을 것이며, 아버지의 삶이 옳은 것이었다는 대가가 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사회는 나중에 아버지를 이해할 것이고, 또 끌어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운현 말씀하신대로 오늘날 한국의 상황은 한국전쟁에서 비롯된 낡은
전쟁후유증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21세기인 새 세기에는 좀 변화할 수 있을까요?
정정희 "한국전쟁 때문에 우린 분단국가가 됐습니다. 그러나 전 국가보안법이 있는
한 대한민국의 민주화는 크게 발전하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오늘의 이 고통을 다음 세대가 똑같이 겪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남편은
30여년간 독일에서 한반도의 평화와 민족문제를 끌어안고 살았습니다. 여러 해 전부터 귀국할 기회가 있었지만 번번이 '준법서약서'를 요구해
무산됐습니다. 그러나 2000년 6월 15일 남북 정상이 만나 공동선언을 했습니다. 그 뒤로 남북교류가 활발해졌지요. 그랬는데도 국가보안법이
아직도 이렇게 맹위를 떨치고 있을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국가보안법은 민주화의 걸림돌이며, 앞으로도 많은 희생자를 낼 것입니다. 우리가
겪는 이 악몽이 악몽으로 끝나지 말고, 국가보안법 철폐의 과정에서 의미있는 한 페이지가 되기를 바랍니다."
"해산의 진통처럼 민주화의 진통으로 희망 볼 수 있기를"
정운현 혹자는 송 교수가 한국행을 결심할 때 한국의 상황을 너무 쉽게 판단한 것
아니냐는 지적을 하기도 합니다만...
정정희 "지금에 와서 누구에게 책임추궁을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저희는
한국에 없었기 때문에 판단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지만 이미 철학자대회 초청도 받은 상태였습니다. 국정원에서 약간의 조사를 받고 그 정도 체면을
살려주는 것은 필요하다는 게 초청해준 측의 입장이었습니다. 그러나 전 독일에서 출발하기 전에 가진 기자회견에서도 '조건없는 귀국'이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우린 모조리 그분들을 믿고 서둘러 비행기를 타게 된 거죠. 그러나 지금 생각은 이렇습니다. 이 사회가 민주화 돼 더
살기좋은 사회로 가기 위한 길에서 겪는 진통이라구요. 어머니가 해산할 때 무수한 고통을 겪지만 한 생명의 희망을 얻듯이 오늘 이 고통이 희망의
열매를 맺기를 바랍니다."
정운현 구치소에 계신 송 교수의 요즘 하루일과는 어떻습니까?
정정희 : "학자이니까 독서하고, 집필계획을 세우고, 고마운 분들께 편지 쓰고
그렇게 지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공판 준비 때문에 더욱 바쁜 것 같기도 합니다. 저희는 지난 수요일 처음으로 특별면회를 할 수
있었습니다. 창살이 없는 상태에서 남편의 체온을 느낄 수 있는 기회였는데요. 남편의 손이 차갑고 거칠어졌더군요. 마음이 아팠습니다"
정운현 얼마전 박홍 서강대 이사장이 송 교수를 면회했습니다. 박 이사장의 평소
성향으로 봐선 조금은 특이한 일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요.
정정희 "네. 박홍 서강대 이사장이 남편 면회를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뒤에
<동아일보> 기자가 쓴 기사를 보면 "송 교수가 사상적 탈북자라고 말했다"라고 돼 있어요. 깜짝 놀라 남편 면회할 때 남편에게 그
기사를 보여줬어요. 남편도 놀라더군요. '사상적 탈북자'라니요. 남편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생각의 변화가 없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박 이사장도
<동아일보> 기자에게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확인했습니다. 그 기자는 명예훼손 소송 고발대상에 포함될 것입니다. 그동안은 참았지만
앞으로는 언론의 무책임한 보도에 대해 책임을 물을 작정입니다."
정운현 올해는 노무현정부 출범 첫 해입니다. 노무현 정부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십니까?
정정희 "독일에서도 또 한국에 와서도 노무현 정부의 출범에 대한 기대가
컸습니다. 그러나 당(옛 민주당)이 나뉘면서 노정권의 힘이 분산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애당초 기획했던 일들도 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거대야당이 노정권의 일을 가로막거나 방해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제 생각으로는 여야가 서로 비판하되 건강하게 했으면 합니다.
서로 밥그릇 챙기기만을 하는 것은 아쉽다는 생각입니다."
송두율 교수 가족의 크리스마스
정운현 오는 17일 독일로 일시 출국하신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무슨 일로
가시며, 또 언제 다시 돌아오실 예정이신지요?
 |
 |
|
| ▲
송두율 뮌스터대 교수의 부인 정정희씨. |
|
| ⓒ2003 오마이뉴스 남소연 | 정정희 "무비자 입국 3개월이 끝나가는데다 직장문제 등 개인적으로 처리해야할 사안이 있습니다. 게다가
독일에 있는 제 직장동료들에게 제 남편의 현재상황과 한국에 대해 설명할 필요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상황을 대체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 지
모르겠다는 겁니다. 이런 현실을 말해야 한다는 자체가 매우 부끄럽습니다. 한마디로 야만스럽고, 미개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국사회가 빨리
송두율을 포괄할 수 있을 때까지 민주화되기를 바랍니다. 급한 일들을 처리하고 빠르면 이달 말쯤 다시 돌아오고 싶습니다."
제주도가 고향이라 그럴까. 송 교수는 생선회를 무척 좋아하는 사람이다. 또 애주가이기도 하다. 그래서 한국에 왔을 때 가장 하고싶었던 일
중 하나가 회 한 접시에 소주 한 잔 마시며 한반도 평화와 통일에 대해 여러 사람들과 토론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수유리 아카데미하우스에 머물던
시절 잠깐 짬을 내 북한산 자락 아래서 회와 소주를 마실 때 '국정원 조사'와 언론에 시달려 늘 찡그리던 그가 활짝 웃었던 기억이 기자의 눈앞을
스쳐지나갔다. 그때 부인 정정희씨는 송 교수와의 러브스토리 한 자락을 들려주었다.
"남편은 참 착한 사람입니다. 그저 공부만 하는 사람이었죠. 제가 일하는 도서관에 매일 책을 빌리러 오고,
하루종일 책을 보면서도, 제게 말 한마디 못 붙였어요. 그때 남편의 선배가 절 좋아한다고 그랬거든요. 선배가 좋아한다니까 감히? (웃음) 그러나
우린 서로 좋은 감정을 갖고 있다가 결혼하게 됐어요. 그러나 우리가 다 늙어서 이렇게 힘든 상황에 놓이게 될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지요."
송 교수는 너털웃음을 웃고 있었다. 머쓱했던 그는 "자, 한잔!" 하면서 건배를 제의할 뿐 아무런 말도 대꾸도 하지 않았다. 매우
쑥스러웠던 게다. 정정희씨는 가끔 이런 말을 한다. "20대라면 몰라도 나이 60에 이게 참…."
이번 크리스마스에 송교수 가족은 모두 '이산가족'이 된다. 남편은 감옥에, 부인은 베를린에, 막내아들은 서울의 한 오피스텔에서 아버지를
면회하면서. 매년 크리스마스 때마다 외국에 살던 송 교수 가족은 만두 같은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을 해먹으며 유학생들을 초청해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휴가가 겹치지 않는 한 한국명절을 따로 챙기기 어렵기 때문에 그랬던 것이다.
모든 이들에게 기쁨과 희망을 건넨다는 성탄절이 다가오고 있다. 산타클로스는 이번 성탄절에 송교수 가족에게 과연 어떤 선물을
안겨줄까.
/장윤선 기자 (sunnijang@OHMY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