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두율교수 저서 독후감 공모전
  제목    [한겨례신문] 정정희여사 인터뷰: “남편은 국가보안법과 보수언론의 최대 피해자” (2003.12.16.)
  글쓴이 펌 글쓴날 2003-12-17 10:37:59 조회 1435

“남편은 국가보안법과 보수언론의 최대 피해자”


17일 독일 출국하는 송두율 교수 부인 정정희씨 인터뷰

“송 교수는 결코 ‘희대의 간첩’이 아닙니다. 야당과 보수언론이 조장한 여론재판에서 간첩이라는 오명을 썼습니다. 남편은 그의 학문적 소신대로 단지 남과 북 모두를 동등한 입장에서 포용하려 했던 것뿐인데….”

16일 2차 공판을 앞둔 15일 강남의 한 커피숍에서 송두율 교수 부인 정정희씨를 만났다. 지난 9월22일 입국 당시 정씨에게 받았던 ‘왜소하다’는 인상은 80여일간 겪은 한국에서의 마음고생 때문이었는지 상당히 여위였다. 그러나 목소리에는 힘이 넘쳐났다.

“남편은 한나라당과 조.중.동이 만든 여론에 밀려 감옥에 갔어요. 남편이 피해자이고, 무죄임을 입증하려면 힘을 내야죠. 처음에는 이불을 뒤집어쓴 채 ‘펑펑’ 울기도 했지만, 힘을 내야죠. 매일 서울구치소에 수감 중인 남편을 면회하고, 변호사나 대책위 관계자들을 만나는 것만으로도 하루 24시간이 어떻게 지나는지 모를 정도예요.”

정씨는 38년만에 돌아온 고국에서 편안하게 잠자리에 들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귀국 초기에는 남편에 대해 강도 높게 진행된 국정원과 검찰 조사 때문에, 남편이 구속된 직후부터는 화요일과 목요일을 제외하고 매일매일 안양에 있는 서울구치소까지 면회를 간다.

시간이 나는 대로 담당 변호사와 ‘송두율 교수 석방 대책위’ 관계자를 만나 공판에 대비하고, 얼마 전부터는 독일에 꾸려진 ‘송두율 교수 석방 유럽대책위원회’ 활동도 챙겨야 한다. 최근에는 국가보안법 집회에도 꼬박꼬박 모습을 드러냈다.

“이런 대접을 받을 것이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어요. 국정원에서 간단히 조사만 받으면 된다고 해서 3주 휴가를 얻어 온 가족이 들뜬 마음으로 한국에 들어왔는데……. 노동당에 가입했다는 것만으로 한순간에 간첩이 될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죠. 아마 알았더라면 이미 노동당 가입사실을 알렸을 거예요.”

그렇다고 정씨는 한국에 돌아온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남편이 간첩으로 몰리고, 구속될 것을 미리 알았더라면 한국에 돌아오지 않았겠지만, ‘후회’와는 다른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 생활 자체가 너무 힘들고, ‘악몽’ 그 자체지만 송 교수의 구속이 국가보안법이 철폐되고, 한국사회가 민주화되는 과정에서 반드시 겪어야 할 통과의례라면 감수할 수 있다고 했다.

다음은 정정희씨와의 일문일답이다.

# 정정희, 그녀의 요즘 생활.

-하루일과를 말해 달라.

=하루하루가 너무 바쁘다. 화요일과 목요일을 제외하고는 남편 면회를 간다. 또 가족과 변호사, 대책위 사람들을 만난다. 최근에는 독일에 ‘대책위’가 꾸려져 그 일정도 챙겨야 한다. 독일과 7시간의 시차가 나는데, 매일 큰 아들(준)과 통화하면서 활동을 체크하는데, 잠 잘 시간이 없다.

-17일 독일로 돌아간다고 들었다. 이유와 향후 활동계획은.

=지난 9월22일 귀국했다. 독일국적을 갖고 있어 3개월 동안 한국에서 무비자 체류가 가능한데 12월21일로 기간이 만료된다. 체류기간도 그렇고, 일하던 베를린종합예술대학에서 4주, 2주의 휴가를 낸 뒤 다시 한 달간의 병가를 냈는데, 이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다행히 대학 쪽과 상의하면 휴가연장은 가능할 것 같다.

독일에 가면 유럽 대책위가 20일 개최할 토론회를 챙길 것이다. 최대한 빨리 돌아올 계획인데 12월 말에야 돌아올 수 있을 것 같다. 그동안에는 둘째 아들인 린이가 한국에 남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린도 1월 초에는 독일로 돌아가 전문의 과정을 준비해야 한다. 얼마 전 화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큰아들 준이는 박사 후 과정 때문에 1월말 미국에 간다.

-힘들지 않은가.

=솔직히 힘들다. 38년을 외국에서 살았기 때문에 한국이 고국이라지만 외국 같은 느낌이다. 더구나 의지할 사람도 없다. 오피스텔에 혼자 있는 것도 고통이다.(현재는 수유리 아카데미하우스에서 나와 강남에 있는 오피스텔에 기거하고 있다) 악몽은 잠에서 깨면 벗어날 수 있지만 지금 상황은 생활 그 자체가 악몽이다. 가정생활도 말이 아니다. 린이는 전문의 과정 전 실시되는 ‘리서치 프로그램’을 포기하고 한국에 와 있는 상태다.

그래도 김세균 교수 가족을 비롯해 대책위 관계자 등이 많이 도와주고 있다. 순번제로 1명씩 돌아가며 운전기사 노릇을 해준다. 지금은 지하철로 이동할 정도로 길도 익혔다. 그러나 항상 조심스럽다. 사람들이 알아볼 때는 겁이 난다. 낮 동안 구치소에 가거나 인터뷰를 하러 갈 때는 지하철 등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밤에는 지하철 타지 않고 차편으로 이동한다. 아직까지 큰 봉변은 당한 적 없다.

오히려 우리를 알아보고 힘내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 고맙고, 우리 삶이 헛되지 않았다는 생각에 용기를 얻는다. 우리를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남편을 이해하고 평가해 주는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하니 뿌듯하다. 용기를 잃지 않고 당당하게 우리 길을 걸어가는 것이 우리를 후원하는 사람들에 대한 보답이라고 생각한다. 남편이 앞으로도 양심적인 학자로서 학문에 정진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다짐도 한다.

#감옥에 갇힌 내 남편, 송두율

-남편의 구속을 예상했었나.

=3주 계획으로 가벼운 마음으로 왔다. 이런 상황은 생각지도 못했다. 조.중.동 보수언론이 분위기를 몰아갔다. 언론의 사회에 대한 책임은 엄중한데 이들 언론과 기자들이 한번이라도 그 사람들이 언론의 책임과 역할, 양심을 생각했다면 그런 식의 기사는 쓰지 않았을 것이다. 제 역할을 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아무래도 사회에 대한 책임감을 상실한 것 같다. 남편의 수사과정을 언론에 흘린 것도 국정원이 아니라 야당의 아무개 국회의원이라고 들었다. 흘린 정도가 아니라 수사 자료를 갖다 줬다고 한다.

노동당 가입사실이 그렇게 중요한 것인지, 꼭 밝혀야 하는지 몰랐다. 처음 귀국할 때는 준법서약서를 쓰지 않는 대신 약식의 국정원 조사를 받는다고 들었다. 그동안 준법서약서 작성을 거부해 매번 귀국이 무산됐다. 한국사회가 민주화된 사회라면 준법서약서는 폐지돼야 한다.

-남편의 구치소 생활은 어떤가.

=원래 책 읽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인데, 책만 읽을 수 없는 상황인 것 같다. 검찰 진술서가 4만장이나 된다고 하니 안정된 상태에서 독서할 상황이 되겠는가. 앞으로 있을 공판에서 진술할 내용도 정리하고 있는 것 같다.

-남편을 면회할 때 주로 무슨 얘기를 하나.

=면회시간이 10분이기 때문에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없어 질문할 내용을 종이에 적어간다. 주로 건강상태를 묻는다.

지난 10일 처음으로 30분 특별면회를 얻었는데, 남편은 평상심을 잃지 않고 있었다. 가족들에게 고통스러운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남편의 유연한 모습이 존경스러웠다. 특별한 대접을 바라는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생활하고 있었다. 나라면 억울하다는 생각에 그렇게 행동하지 못했을 것이다.

-송 교수의 건강상태는.

=원래 천식증상이 있었다. 그러나 구치소에는 비타민도 들여보내지 못하게 하더라. 의사의 진료 한 번 받는 것도 힘들다. 구치소 내 의료시스템이 너무 열악한 것 같다. 하루라도 샤워를 하지 못하면 견디지 못하는 사람인데, 병을 더 키우지 않을까 걱정이다. 남편은 더군다나 겸손하고 자신의 힘든 상황을 주변에 알리지 않는 사람이어서 더 걱정이다.

지난달 29일에는 새벽 1시에 천식발작이 있었는데, 다행히 위기는 모면했다. 그 때 변호사를 통해 응급조치를 취해달라고 했으나 해주지 않았다. 인권유린이다. 그 다음날에야 의사가 와서 응급처지하는 스프레이를 받았다고 하더라. 지금은 지난 4일 백병원에서 의사가 와 진료를 받고 처방한 약을 먹고 있다. 속도 좋지 않아 죽을 먹고 있다는데, 신경성 고혈압, 편두통, 천식 등 너무 많은 약을 복용하다보니 위와 장 경련 때문에 고생하고 있다. 건강유지가 최선인데, 안타깝다.(눈물)

# 38년 만의 귀국, 힘들지만 후회 없어

-남편이 구속됐다. 고국에 대한 원망은 없나.

=원망까지는 하지 않았다. 한국이 분단 상황에 있어 여러 가지 사회적 문제가 많다지만 국가보안법 같은 구시대적 유물로 남편을 처벌하는 것은 옳지 않다. 한국이 경제적으로 눈부신 성장을 했지만 그에 상응하는 문화적 축적은 없었던 것 같다. 시대에 맞지 않는 국가보안법으로 내 남편을 평가해 구속시켰다. 조선, 중앙, 동아 등 보수언론과 한나라당은 언론재판을 진행했다. 남편은 ‘정치적 희생양’이다.

내 남편 뿐 아니라 윤이상 선생도 피해자다. 세계적 작곡가, 음악가로 인정을 받지만 남한사회에서는 그렇지 않다. 통영에 윤이상 음악제가 있기는 하지만 언론과 사회적으로 큰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 내 남편도 똑같은 상황이라고 본다. 남편의 구속은 남한사회가 민주화되는 과정에서 겪는 하나의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국가보안법은 과거의 정권들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해 왔다. 이 법이 현재까지 존재한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며, 다시는 국보법 잣대로 희생자를 만들면 안 된다. 다음세대까지 물려주지 않아야 하며, 남편이 마지막 희생양이면 좋겠다. 남편과 우리 가족이 겪는 고통이 개인의 고통으로 끝나지 않고 이 사회가 민주화되고, 발전하는 과정에서 디딤돌로 승화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한국에 온 것을 후회한 적은 없나.

=솔직히 남편이 ‘희대의 간첩’이라는 오명을 쓰고 구속될 줄 알았다면 한국에 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후회와는 다르다.

우리는 독일 생활에서 얼마든지 편하게 살 수 있었다. 남편이 한반도 문제를 온 몸에 끌어안고 살아왔기 때문에 겪는 고초라고 생각한다. 고통이 고통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한나라당이나 보수언론, 보수단체들은 우리 가족을 매도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따뜻하게 대해줘 희망을 얻는다. 좌절하지 말고 더 꿋꿋하게 버텨야 한다고 다짐한다. 지하철에서 만나는 사람들도 '힘내라'고 격려하며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대는 사람이 더 많다. 종종 좋지 않은 표정으로 바라보는 사람들도 있지만 아직까지 험한 꼴을 당한 적은 없다.

-두 아들은 현 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나.

=아들들은 상대적으로 합리적이라는 독일에서 태어나 자랐기 때문에 얼굴은 한국 사람이지만 정서나 사고는 독일인에 가깝다고 봐야 한다. 지금과 같은 상황을 전혀 이해할 수 없고 오히려 경악스럽기까지 하다고 한다.

아이들이 귀국 13일 만에 독일로 돌아갔는데, 그 당시 남편이 국정원과 검찰에서 조사를 받고 있었다. 아버지가 구속된 것에 대해 원망도 하고, 남과 북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하는 아버지를 도와주지 못하더라도 포용하지 못할까 원망도 한다.

충격을 받아 다시는 한국에 오지 않겠다고 할까 걱정했는데, ‘미움’과 ‘사랑’의 차이는 백지장 하나라는 말처럼 아이들이 가졌던 증오와 원망은 ‘미움’이 아니라 ‘사랑’이었던 것 같다.

아이들은 아버지가 구속돼 재판이 진행되고 있는 이 상황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해 다행이다.

# 송 교수는 양심적 학자일 뿐...간첩 아니다

-16일 있을 2차 공판에서 변호인단 반대신문이 있다. 준비상황은.

=무죄입증에 중점을 둘 것이다. 검찰은 남편을 반국가단체 가입, 회합통신, 잠입탈출과 사기미수 혐의 등을 적용해 기소했지만 남편은 정치국 후보위원이 아니다. 남북 공동학술대회 등도 남쪽에서 부탁을 해와 남편은 중계자 역할을 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검찰은 북의 지령을 받아 추진했다고 하지만 사실과 다르다.

비록 노동당에 가입했다고 하지만 남편은 노동당원으로서 활동한 적도 없고, 노동당 가입사실을 크게 의식하지 않고 살았기 때문에 그 문제가 한국에서 큰 파장을 일으킬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만약 노동당 가입문제가 민감한 것이고, 크게 문제될 것이라고 판단했다면 미리 말했을 것이다. 숨기려고 했던 것은 아니다.

-독일에서도 송 교수 문제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독일 내 움직임은.

=독일에서도 활발히 움직이고 있다. 국제사면위원회(엠네스티), 종교계, 학계, 유럽연합 등이 연대해 ‘송두율 교수 석방을 위한 유럽대책위원회’가 발족했다. 독일에 있는 준이가 주로 이들의 활동을 챙기고 있는데, 라이너 베르니 박사 등이 주로 활동하고 있다.

이 때문에 밤에 거의 잠을 자지 못한다. 독일과 시차가 7시간이 나는데, 큰 아들과 매일 통화하면서 독일에서 일어나는 일을 듣는다. 린이는 한국에서 일어난 일을 독일 대책위쪽에 정리해서 보내는 일을 하고 있다.

-‘인간 송두율’, 어떤 사람인가.

=철학을 전공한 남편은 너무나 분명한 가치관과 세계관을 갖고 있다. 개인문제보다는 인류사회 문제에 대해 늘 고민한다. 그 고민의 한 부분이 한반도 문제다.

남편은 힘들거나 기쁜 일을 남에게 표현하지 않는 사람이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무뚝뚝하고 무심한 사람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내면적으로 무한한 사랑을 주는 사람이다. 친구나 인관관계에 있어서도 말로 표현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마음 속 얘기를 잘 하지 않는다.

남편은 이외로 예술이나 문화에 관심이 많다. 집에서 가족과 대화할 때는 정치나 사회문제보다는 문화나 예술 등 다양한 주제를 갖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생활은 단조롭지 않다.

남편은 배우자로서도 훌륭한 사람이다. 나와는 관심과 코드가 잘 맞는다. 남편은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고, 음식솜씨가 좋다. 평상시에도 음식을 잘 만들어준다. 요리를 같이 만들어 먹기도 한다. 아이들에게도 친구 같은 자상한 아버지다.

# 인터뷰 뒤안길.

정정희씨는 한 시간 남짓 진행된 인터뷰 내내 차분하고 부드러운 어조를 유지했다. 다만, 송 교수의 건강과 관련된 이야기를 할 때는 붉게 눈시울을 적셨다. 국가보안법 폐지나 송 교수의 구속의 부당성을 말할 때는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지난 10월14일 ‘노동당 탈퇴와 한국국적 취득’ 기자회견 이후 생각에 변화가 없느냐는 질문에는 즉답을 피해갔다. 다만, 개인적인 생각임을 전제한 뒤 “남편은 한쪽에 편향된 사람이 아니라 남과 북을 동시에 끌어안아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며 “그렇기 때문에 처음부터 난 한국국적 취득에 반대했다”는 말로 대신했다.

김미영 <인터넷한겨레> 기자 kimmy@new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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