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두율교수 저서 독후감 공모전
  제목    6차 공판 관람기
  글쓴이 대학생모임 글쓴날 2004-01-29 20:13:40 조회 1577

그동안 두어번의 공판을 못 갔던 데다가 다들 시끌벅적 즐거웠던
설 연휴를 보내면서 건강도 편찮으시면서 어이없이 새해를 차가운
감옥에서 맞이하고 계실 교수님 생각에 죄송했었다. 기사를 통해
교도소 측의 비인도적인 대우에 대해 들으면서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부분에서는 아직도 한참 멀었구나 하면서 한숨만 내쉬었는데
그래도 법정에 가서 방청을 하는 것으로 작지만 힘을 보태게
되었다는 생각에 교대역에서 내려 발걸음이 빨라졌다. 
그런데 법정에 들어서자 순간 노인정에 잘못 온 것이 아닌가하는
착각이 들었다. 아니, 이 추운 날 저 많은 할아버지들께서 어떻게
저렇게 재판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시며 모이셨는지... 방청석 반
이상을 가득 매우고 계신 그 분들을 보자니 참으로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무엇 때문에 한 사회가 이런 재판에서 서로 신경전을
벌이며 앉아 있어야하는지... 

오늘은 변호인측 증인 두 명을 듣는 것으로 시작했다. 
첫 증인으로는 권만학 경희대 국제대학원 교수님이 통일학술회의의
성격과 그 준비과정에서의 송교수님의 역할에 관해 증언을 하였다.
권교수님은 통일학술회의가 통일부에서 자금지원을 받고 모든
회의내용이 보고되었으며, 2, 3차 회의 때부터는 아예 통일부
관계자가 회의에 참가하였고, 회의 개최에 대해 북은 수세적인
태도를 취한 반면 남측이 늘 더 적극적이어서 ‘자신들에게
고분고분한 모임이 아니라’ 2003년 평양 개최까지 몇 년간
개최되지 못했던 점 등으로 볼 때 회의가 친북 정치공세의 장으로
북측과 송교수님에 의해 기회 또는 이용되었다는 검찰 측의 주장은
말이 안 된다고 강조하였다. 이 과정에서의 송교수님의 역할과
관련해서 권교수님은 송교수님이 남북 중간에서 의사 전달을 돕고
‘지뢰 제거 작업’ 등의 조정 작업 과정에서 양측 모두 수용할 수
있는 제3의 안을 내어놓는 등 중재자 역할을 하였으며, 송교수님을
대하는 태도와 순위 50위 이하인 사람을 호들갑을 떨며 깍듯이
예우하던 북한 사람들의 태도들 비교해봤을 때 후보위원 23위가
아니라 오히려 입장 면에서는 ‘조금 더 우리 쪽’이라는 인상을
받았다고 증언하셨다. 

‘조금 더 우리 쪽’이라니... 마치 어린애들이 금을 그어놓고
‘네 편’ ‘내 편’ 하면서 편을 가르다가 한 명 남는 아이를
가운데 금 위에 두고 양쪽에서 팔을 잡아 당기면서 얼마나 더 우리
쪽으로 몸이 기울었나, 색깔이 얼마나 더 우리 쪽으로 물들었나
줄다리기하는 것 같았다. 잡아당겨지는 아이가 중간에서 몸이
찢겨가든 상관않고 줄다리기 승부에만 관심을 쏟으며 말이다. 학자
하나를 두고 ‘조금 더 우리쪽’이라는 식의 유치한 표현까지
써가며 대답해야할 정도로 어처구니없이 구시대적인 이 재판을
반공 역사 속에서가 아니라 2004년 지금 내 눈앞에서 보고
있다니... 부끄럽고 부끄럽고 또 부끄러웠다. 

두 번째 증인으로는 박순성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님이 나와 주로
내재적 접근법의 성격과 그것을 북한 연구에 적용한 것의 의의에
대해 증언하였다. 박 교수님은 내재적 접근법은 북한에 대한
잘못된 정보를 바탕으로 금강산댐 설 등 허위 사실이 유포되고
이것이 독재 정권에 의해 악용되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북한의
현실을 객관적으로 이해하는데 유효한 연구 방법이고, 오히려
그동안의 맹목적 반공주의나 광신적 친북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객관적인 연구 방식이라 보수적인 학자들도 널리 인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송교수님이 주체사상을 찬양한 것이 아니냐는 변호인측
질문에 대해서는 연구결과는 비판의 대상이지 이념의 잣대로
재단할 일이 아니라는 전제를 강조하면서, 북한연구에 있어서
주체사상은 핵심적인 연구대상이기 때문에 이것을 연구하였다는
것이 북의 체제를 찬양했다고 한다면 통일부 자료집도 일부만
떼어놓고 보면 북을 찬양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송교수님이 ‘88년에 쓴 한국관련 글에서의 남한 비판이 친북
반남의 증거라는 검찰 측 주장(일명 ’고구마 발언‘)에 대해서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독재 국가와 다른 것은 자신에 대한 반대의
논리를 수용할 수 있는 유연성을 갖추었다는 점이라며 비판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학문을 실정법으로 처벌한다면 IMF같은 위기를
다시 맞이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비밀’ 후보위원이라는
발상은 공산주의를 악마시, 신비시 하면서 만들어진 생각이라며
북학학자로서 동료들과 연구한 바로는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답변했다. (이 부분은 양측모두 장님 코끼리 만지듯 할
수 밖에 없어 보인다) 

각종 자료 인용에 근거한 박교수님의 명료한 답변들에 반해 검사
측의 반대 심문은 참으로 보기 딱했다. 왜 북한에 대해 이
정도밖에 비판을 안했느냐, <역사는 끝났는가> 제목이 곧
‘사회주의 역사는 끝났는가’라는 말 아니냐식의 질문 뿐이라니..
반대 심문이라고 하기도 무색할 정도였다. (작년에 유행했던
‘검사스럽다’는 표현이 떠올랐다면 지나친 생각일까?) 

그 후에는 재판이 비공개로 진행되어 더 이상 볼 수 없었지만 증인
심문을 거치면서 사건의 본질이 더욱 명확해지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에 오늘 법정을 나서는 발걸음은 어느 때보다도
희망찼다. 
판사도 분명 느끼겠지? 


6 차공판(2004.1.27.) 기록
[오마이뉴스] 송 교수 변호인들 "변호인 입회하 조서들도 문제있었다" (2004.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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