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남편 '송두율'을 말한다.' 강좌서 만난 정정희씨
"'법적인 재판'은 이기고 있지만 '정치적인 재판'은 아직
진행중입니다. 그러나 남편을 계기로 국가보안법의 고통이
다음세대에는 물려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29일 저녁 신설동에 위치한 '국가보안법 철패를 위한 시민모임'
월례 회의에 강사로 초대된 정정희씨. 이날 정씨는 '내 남편
'송두율'을 말한다'라는 주제로 작은 인권강연을 하기 위해
나섰다. 강의실 입구를 들어서는 정씨는 수척해진 모습이였지만
사람들의 격려인사에 밝은 미소를 잊지 않고 화답했다.
"3주를 계획하고 왔는데 4개월이 흘렀습니다"
"아버님 임종도 못 지켜봤어요. 아버님이 위독하다는 말을 듣고
들어오려 했지만 아버님은 준법서약서까지 쓰면서 들어오지 말라고
유고를 남기셨지요"
정씨는 그동안 국제학술회의등 초청이 있었지만 번번히 한국정부는
준법서약서를 강요했다고 말한다. 또 송교수 가족은 귀국을 생각할
때마다 늘 이것에 부담을 느꼈고 조건 없는 귀국을 주장했왔다.
"그런데 작년부터 주변인들이 들어와야 된다고 말했어요
'노무현정부'도 들어서고 하니 '국정원'도 체면 지키느라 그러니
들어와라. 이번에 못 들어오면 영영 고국방문을 기약할 수 없을지
모른다고 설득했지요 저도 희망을 가졌고요"
정씨는 조선노동당 입당사실이 알려지면서 진보적인 지식인들도
송교수를 멀리하며 거짓말쟁로 몰아 안타까웠다고 말한다.
"입당사실은 40여 년 간 잊고 살았어요 남편은 운동가를 할만한
성격도 아니였고 늘 따뜻한 남편에 자상한 친구 같은
아버지였어요. 남편은 학자로써 분단된 조국에서, 어느 쪽에서도
버림받은 지식인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그동안 남북학술교류에
노력해 왔을 뿐입니다 "
정씨는 남편이 꿈에 그리던 고국을 방문하자마자 포승줄에 묶여
공안당국에 조사 받던 이야기를 하면서 잠시 눈물을 보였고
참석자들도 눈시울이 붉어졌다.
"얼마 전부터 독재정권이 지나고는 그 누구도 포승줄에 묶여 조사
받은 적이 없다고 들었어요. 그런데 우리가 귀국한 다음날
국정원은 청와대와 독일대사관에 남편이 변호사 입회 하에 조사를
받고 있다고 거짓전화를 했어요 그래서 지금 소송을
준비중입니다"
"독일에서 40여년 거주하다보니 한국말도 서툴고 입국과정에서도
한국언론이 너무 괴롭혀 정신이 없었는데 공안당국은 하지도 않은
일을 자백했다고 말했어요. 더구나 한나라당 정형근 의원이
터무니없는 자백진술을 언론에 흘렸고 남편은 그대로 언론재판에
들어갔어요 그리고 신문지상에서 송교수가 송씨로 그리고 간첩
송두율로 변했지요"
"진실이 법적인 재판에서는 이기고 있다"
송교수 사건과 관련 지난 27일에는 6차공판이 있었다. 정정희씨는
그간의 재판과정을 설명해 나갔다.
정씨는 송교수의 지나간 재판과정을 떠올리며 "지난번 재판에
검찰측 증인으로 나선 오길남씨는 한국말이 너무 서툴러 증인으로
나올 수 없는 사람인데도 법정에 나와 지난 70년대 고 윤희상씨와
송교수가 자신을 북에 보냈다는 거짓진술을 했어요 "
그러나 오씨가 처음 자신의 입장을 밝힌 진술서에는 송교수의
이야기가 나오지 않으며 오씨가 예전에 쓴 책 "내 가족을
돌려주오"에도 자신의 입북과정에 송교수는 등장하지 않는다고
정씨는 말한다.
"또 '한 사람' 예전에 독일에서 반독재 운동하던 사람인데 이제는
보수적인 연구소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이 증언을 했어요 자신이
활동을 하게 된 계기가 송교수의 권유 때문이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재판에서 현재까지 이기고 있어요 재판부도 우리말에
신빙성을 두고 있고 진실이 밝혀지고 있는 것입니다"
"언론에 대해 한마디만 하고 싶습니다. 정말 진실을 왜곡하는 일에
나서지 말고 사회의 소외된 사람들과 공익을 위해 일을 하시길
그리고 정말 반성하시기를 바랍니다"
정씨는 이날 가족사와 독일생활 그리고 입국전후와 재판이
진행중인 현재까지를 설명하고 강좌를 끝냈다.
테러 위협에 시달리는 정정희여사
정정희씨는 최근 테러위협에 시달리고 있다고 고백한다. 언론에
얼굴이 알려지면서 보수단체회원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거리에서
알아보고 욕설을 퍼붙기도 했다고 한다. 귀국초기 신변보호를
해주던 경찰들은 이미 철수했다. 이날 강연이 끝나고 취재진은
정정희씨가 임시로 거주하고 있는 곳까지 보디가드로 동행했다.
- 송 교수문제를 알려내기 위해 기고 등을 하실 생각은
"그러면 좋겠지만 혼자 모든 일을 하려니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해요. 시민사회단체를 방문하고 내일도 약속된 제주의 모
언론과 인터뷰하는 등 종종 들어오는 작은 언론에 응하고, 매일
면회하는 구치소, 변호사접견, 독일대사관과 연락은 일상에
일기하나 쓸 여유도 생기지 않는군요."
-한국에 친지분들이 있으신 지
" 시댁 쪽으로는 친척이 있어요 하지만 너무 오랜 세월 떨어져
지내다 보니 소원한 것이 있습니다. 그리고 친정 쪽으로는 한국에
아무도 없어요 우리 가족이 한국에 못 들어오다 보니 고국의
형제들이 많이 힘들었어요 그래서 오래 전부터 외국에 다들
나가있어요 이번 설에도 갈곳이 없었고 서울에 한분 아시는
목사님과 점심식사라도 하려고 사당동에서 교대까지 돌아다녔는데
날씨는 너무 추운데 연 곳이 없어 분식 집에서 식사를 했지요."
- 송교수님의 근황을 좀 알려주세요
"남편은 현재 지병인 고혈압으로 시달리고 있어요 요즘은 다행히
약을 먹고 조금 좋아지고 있습니다. 구치소에서 감시용으로 켜놓은
24시간 비상등 때문에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는데 최근 국가
인권위원회에서 인권침해로 권고 조치했지요. 남편 이야기가 한
목을 했다고 들었어요 그래서 남편이 농담으로 좀더 오래 있어야
하겠다고 하더군요.
- 끝으로 송교수님을 옭아매고 있는 국가보안법에 대해서 한말씀해
주세요.
남편에 비해 저는 그동안 아내로 어머니로만 살았습니다. 38년 간
고국이 남편을 버렸어도 늘 고향을 생각했어요. 그러나 최근
민주화된 한국을 정말 꼭 한번이라도 방문해 보고 싶었어요
남편은 국가보안법이 남편으로 인해 전환점을 맞이하기를 바래요.
무슨 이야기냐 하면 영웅이 되려는 것이 아니라 단지 김대중
정부이후 유명무실했던 법이 다시 남편문제로 되살아나고 있으니
말입니다. 남편이 열심히 싸우지 않는다면 더 기승을 부리리라
생각해요.
지난번 국회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기 위해 가는 길에 이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남편은 참 열심히 살아왔는데 이런 상황을 내 아들들
세대에게는 물려주지 말아야 하겠는데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그
다음번 1인시위에 아들이 나섰지요. 반드시 민족화해가 이뤄져
이같은 고통이 남편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사람들도에게도 더 이상
고통을 주지 않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