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일보 정재숙 기자] "수인이 옥방에 홀로 앉어 장탄으로 속울음을 울었을까. 때는
삼경이요 옥창 밖에는 눈이 펄펄 날리는디. 여그가 어디더냐. 차디찬 옥방이라."
소리꾼 이명국(40)씨가 아니리를 풀어놓는다. 옥에 갇힌 춘향 얘기일까. 진양조로 느릿느릿 이어지는 다음 대목은 죄수가 누구인지 짐작하게
만든다. "이 좁은 땅덩어리에 갈라진 겨레붙이, 남과 북을 가른 휴전선이 경계이고 마음 속에 그어놓은 삼팔선이 경계로다. 슬프고도 안타깝도다.
지역감정, 동과 서가 경계이고 있는 놈 없는 자, 거기가 또 경계로다."
이씨가 부른 창 한 바탕은 지난 해 10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 수감된 재독 철학자 송두율(60.독일 뮌스터대 교수.사진)씨를
주인공으로 한 창작 판소리 '경계인'이다. 경기도 군포우체국 사서함 20호 수번 65번 송두율. 그는 지난 해 37년 만에 어렵게 돌아온
조국에서 맞은 육순을 옥에서 나고 있다. 그를 생각하는 모임 '경계를 넘는 사람들'이 12일 오후 7시 서울 이화여대 후문 이화삼성언어교육원
강당에서 열 '경계에 피는 꽃'은 송교수와 그의 벗들을 주제로 한 문화제다.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숱한 경계를 넘고자 하는 문화적인 선언이자
다함께 그 경계 넘기에 참여하자고 초대하는 자리다. 김세균 서울대 교수, 박호성 서강대 교수, 이돈명 변호사, 진관 스님, 함세웅 신부, 소설가
황석영, 화가 신학철씨 등 71명이 발기인으로 모인 '경계를 넘는 사람들'은 이 행사를 ▶우리 시대 경계의 의미를 묻고 ▶경계의 영역을 확장하고
▶나아가 경계를 극복하여 창조적인 미래를 열어가고자 마련했다.
이날 모임은 이명국씨의 창작 판소리 '경계인'에 이어 박호빈씨가 선보이는 창작 무용 '경계를 넘는 몸짓', 신동호씨가 펼치는 시와 이야기,
이지상.꽃다지 등이 부르는 노래로 다채롭다. 공연을 기획한 서해성 총감독은 "삼팔선을 배고 죽겠다던 백범 김구나 그 길을 사십 년 뒤에 뒤따른
늦봄 문익환이, 또 윤이상의 음악이 그러하듯 경계를 넘어서는 일은 새로운 노래이며 새로운 발걸음"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그리워한 고향에 와 옥에서 백 일을 넘긴 송두율씨는 세밑에 지인에게 보낸 편지에 이렇게 썼다. "비록 늦었고 또 그간 사연도
많았지만 이 땅에서 실망과 분노를 희망과 확신으로 바꿀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마련해 주신 여러분께 정말 고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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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숙 기자 johanal@joongang.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