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들과 점심을 먹고 1시 십여분에 정문에 도착하니 한참
기자회견이 진행되고 있었다. 김세균 교수님이 독일의 베르닝
박사가 이번 사건을 독일에 소개한 좋은 글이 있다며 국내에
번역할 예정이라고 하셨고 조촐한 기자회견은 곧 끝이 났다.
사안의 중요성에 비해서 언론의 관심이 너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번째 온 법원은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육중한 법원건물은
커다란 입을 벌려 이 초라한 방문객을 포획할 듯 달려들었고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문득 하늘문이 열리고 역사(力士)가 구름을 타고
내려오며 크게 호통치는 듯.
우루루 쾅쾅/천둥 번개 친다/알았다 알았어/그만두리라/내가 내
죄를 알았다(김용택, <죄>)
Do I dare?
우리 새대는 비루함을 천형(天刑)처럼 물려받았다.
언젠가부터 왕년의 투사들이 과거를 참회한다면서 성당대신
『조선일보』를 찾는 묘한 전통이 생겼다. 그들이 비루한 삶에
지긋지긋해진 나머지 세련된 <조선>을 찾아간 것일까. 증인은
북한의 실상을 알고는 생각을 바꿨다고 했다. 그 바꾼 자리에 하필
『월간조선』이 있었을까. <조선>이 돌아온 탕아를 반기자 그는
만족했을까. 자신을 성찰한다는 건 정말 훌륭한 일이다. 하지만
나는 그 성찰의 방식에 동의할 수 없다. …무지가 죄악이라면
스스로 책임지라. 그는 미래에 지금 자신의 모습도 성찰의
대상으로 삼지 않으면 안된다.
유감스럽게도 오늘도 법정에서는 거의 배울 것이 없어 보였다.
누가 누굴 평가하고 심판한단 말인가. 나로서는 그들에게 그럴
능력이 없어 보였다. 예컨대, 3차와 5차 공판에서 검찰이
주장했다는
내재적 접근법을 주장하는 루츠는 동독의 간첩이었다.
송두율도 내재적 접근법을 주장한다.
그러므로 송두율도 간첩이다.
라는 주장을 보자.
이건 명백히 그릇된 3단논법이다. 학교에서 배운대로 하자면
어떤 내재적 접근법을 주장한 사람들은 루츠와 같은
간첩들이다.(I)
모든 송두율과 동일한 사람들은 루츠처럼 내재적 접근법을 주장한
사람들이다.(A)
그러므로 모든 송두율과 동일한 사람들은 간첩들이다.(A)
가 되어 중명사가 주연되지 않는 IAA 형식이므로 참이 될 수가
없는 것이다. 이런 억지논리가 두 번이나 주장되었다니 슬프게
느껴졌다.
갑자기 증인의 입에서 문부식이라는 이름이 흘러나왔고 그 이름은
여러 사람을 떠오르게 했다. 내 의식은 복잡해졌다. 의식의
끝자락이 하이데거를 타고 마침내 박종홍에 이르자 나는 다시
울컥해졌다. 검찰은 송두율이 북한정권을 옹호했다고 주장하지만
박종홍은 어떤가? 박종홍이야 말로 파시즘적 독재와 폭력을 옹호한
어용철학자가 아닌가? 하지만 송두율에겐 그런 죄과가 없다.
북한보다 남한 사회가 낫지 않냐고? 그건 박정희나 거기에
가담했던 박종홍의 덕이 아니라 그들을 공격했던 자유 사상가들과
민중들의 덕이다. 증인은 송두율이 북한정권이나 체제를
대변한다고 했지만 송교수님은 누구처럼 국민교육헌장을 만들지도
않았고 "위무(威武)로써 굽힐 수도 없고, 영달(榮達)로써 달랠
수도 없는" 학문을 판 적도 없다. …도대체 당신들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의식이 다시 현실로 돌아왔을때 앞에선 한창 무의미한 대화를
주고받고 있었다. 난 더이상 듣기가 싫어졌다.
Do I dare
Disturb the universe?
'시대와의 불화'는 이문열 따위가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그
비루함마저 끌어안지 않으면 안된다. 증인은 탈북자 인권을
말했다. 나도 정말 한가지 묻고 싶은데, 하나의 지옥을 비판하기
위해 다른 지옥에 가야 하는가.
그는 의식에 경계는 없다. 그는 북한에 환멸을 느끼자 곧장
수구세력에 투항했다. 그리고 국정원에서 지원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뻔뻔스럽게 말했다. 그가 선택한 것은 북한 정권과 남한
정권, 그 양극단 뿐이다. 그는 박제되고 살균처리된 민중을 사랑한
것일까. 그런 사람이라면 송두율 교수님을 친북세력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무리가 아닐지도 모른다. 하기야 나는 그것이
냉전세력들이 항상 써먹는 수법이라는걸 알고 있다.
공판이 끝나고 송두율 교수님이 손을 흔드셨다. 교수님의 건승과
무죄방면을 기원하면서, 진실과 정의가 항상 교수님과 함께 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