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두율교수 저서 독후감 공모전
  제목    송두율대책위 고문 김진균교수님 별세 관련보도들 (5): 한겨례
  글쓴이 펌 글쓴날 2004-02-18 18:21:49 조회 1923

김진균 교수 별세  
[속보, 사회] 2004년 02월 16일 (월) 00:51 
 
  
 
 
[한겨레] 진보사회과학계의 거목 김진균 서울대 명예교수가 14일
오전 지병(대장암)으로 별세했다. 향년 67.
1937년 경남 진주에서 태어났으며 서울대 사회학과 졸업 뒤 서울대
상대 교수(68∼74년)를 거쳐 지난해까지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80∼84년 해직)했다.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초대
의장과 학술단체협의회 공동대표, 민주노총 지도위원을 지내는 등
진보운동에 두루 관여했다. 저서로는 <비판과 변동의 사회학>,
<진보에서 희망을 꿈꾼다> 등이 있다.

유족으로는 부인 정혜영씨와 아들 태진·영진, 딸 지인씨가 있고,
김세균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가 동생이다.

장례는 ‘민중의 스승 고 김진균 선생 민주사회장’으로
치러지는데 17일 오전 8시30분 서울대 병원에서 발인하며, 오전
10시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에서 영결식 및 노제를 치른 뒤,
오후 2시 경기도 마석 모란민중공원에서 하관한다. (02)760-2018,
2022. 이제훈 기자 nomad@hani.co.kr ■ 타계한 김진균 교수 -
‘진보 학술’ 넘어 사회적 약자 껴안아 ‘행동하는 지성의 표본,
진보적 학술운동과 민주적 교수운동의 대부, 민중운동의 한복판에
선 민중의 벗.’ 지난해 1월 발간된 ‘김진균 교수 정년기념논총’
〈사회이론과 사회변혁〉(한국산업사회학회 편)에서 서관모 충북대
교수(사회학)는 헌정사를 통해 14일 타계한 김진균 서울대
명예교수의 삶과 학문을 이렇게 압축해 표현했다.
진보사회과학계의 ‘너른마당’(그의 인터넷 홈페이지 이름)이었던
그의 삶은 크게 세 모습을 지니고 있었다.

우선 학자로서의 삶을 꼽을 수 있다. 그는 ‘민족’과
‘계급’이라는 두 기둥을 버팀목 삼아 한국 현실에 맞는
노동·조직·산업사회학의 자리매김에 힘을 쏟았다. 〈비판과
변동의 사회학〉, 〈사회과학과 민족현실〉 등의 저서는 그 결실의
일부다. 또 그는 늘 사회와 함께 걸으며 먼저 고민했다.

남북교류가 전무했고 ‘재벌=매판자본’이란 인식이 지배적이었던
1982년, 그는 “남한자본의 북한 진출과 그곳에서의 역할과 기능에
대해 토론하자”고 제안해 제자들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정근식
서울대 교수는 “지금 생각하면 놀라운 혜안이었다”라고
회고했다.

늘 사회의 약자들의 현실을 온몸으로 감당하려 했던 그의 삶이
순탄했을 리 없었다. 80년엔 전두환 군사정권에 의해 학교에서
쫓겨났다. 그러나 그의 수난은 그를 조직가·실천가로서
변모시키는 자양분이 되었다.

82년 그가 문을 연 개인연구실인 ‘상도연구실’은
산업사회연구회(현 산업사회학회)로 성장하며 당시 진보학술운동의
모태가 됐다. 80년대 후반 이후 진보적 교수운동과 학술운동의 큰
틀로 자리잡은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와
‘학술단체협의회’도 그의 고민과 발품의 산물이다.

손호철 민교협 의장은 “선생은 진보적 사회과학을 만드는 데 가장
큰 기여를 한 학자”라며 “개별 지식인의 지적 작업을 넘어
사회·집단의 산물로서 사회운동과 결합하는 학문을 일구셨다”고
말했다. 그는 이밖에도
전노협·사회진보연대·진보네트워크센터·민중연대·민주노총의
고문 또는 대표로 일하며 민중운동의 든든한 버팀목 구실을
해왔다.

무엇보다 지인들은 그를 ‘느티나무의 시원한 그늘이 드리운
너른마당’으로 기억한다. 80년대 같은 해직교수였던 리영희
선생은 “늘 말이 없던 그는 당시 해직교수들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의견이 분분할 때마다 통일된 대응노선과 방법론을
제시했다”라며 “늘 급하지 않고, 뒤지지도 않은, 생각이 깊은
사람이었다”라고 회고했다.

그는 80년대 이후 재정적으로 궁핍한 사회운동단체들의 든든한
후원자였다. A4지 대여섯장에 빼곡한 후원계좌로 그가 다달이
송금한 돈은 적지 않은 액수였을 터이지만 말없는 후원 탓에 그
내역을 정확히 아는 이는 아무도 없다. 그는 생전에 즐겨 찾았던
지리산처럼 너른 품과 온화한 웃음을 남긴 채, 사회의 약자들에
대한 변치 않을 사랑을 남은 이들에게 부탁하며 먼 길을 떠났다.

 
이제훈 기자 nomad@hani.co.kr 


송두율대책위 고문 김진균교수님 별세 관련보도들 (4): 한국일보
송두율대책위 고문 김진균교수님 별세 관련보도들 (6):경향신문
  목록 수정하기 지우기 글쓰기

관련글 보기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첨부
조회
442
펌
2004.02.17
1908
443
펌
2004.02.17
2818
444
펌
2004.02.17
2011
445
펌
2004.02.17
2047
448
펌
2004.02.18
1924
449
펌
2004.02.18
1789
450
펌
2004.02.18
3410
453
펌
2004.02.18
1808
458
펌
2004.02.18
1866
459
펌
2004.02.18
1920
467
펌
2004.02.20
2275
 
| '송두율교수 석방과 사상-양심의 자유를 위한 대책위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