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화>변혁운동 헌신한 진보학계 ‘거목’
[속보, 인물] 2004년 02월 16일 (월) 11:33
(::김진균 서울대 명예교수::) “한낮인데도 이렇게 캄캄한
밤을/딱딱 부싯돌처럼 지피시던/님 이시여.”(백기완 추모시
중에서) 진보 사회과학계의 거목 김진균 서울대 명예교수가 14일
오전 지 병으로 별세했다. 67세.
1937년 경남 진주에서 태어난 김 교수는 서울대 사회학과 졸업(6
1년) 뒤 서울대 상대 교수(68~74년)를 거쳐 지난해까지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80~84년 신군부에 의해 해직)했다.
그에게 4·19세대란 꼬리표가 붙지만, 대부분 그 세대가 제도권 에
편입해 부침을 보인 반면, 그는 70년대 이후 진보·민중운동 의
한복판에서 행동하는 지성의 맏형으로 변치않는 모습을 보여
왔다.
김 교수는 1984년 복직 이후 진보적 소장학자들의 연구단체인 산
업사회연구회 초대회장(84~87), 민주화를 위한 교수협의회 공동
의장(88~91), 학술단체협의회 공동대표(93~96), 한국산업노동학 회
회장(94~96)을 지냈다.
그는 1972년 10월 유신 선포 직후 서슬이 퍼렇던 시절에 박정희
정권을 비판하는 글을 서울대 상대 학술논문집에 실었다가 논문 이
통째로 사라지는 등 여러차례의 필화 사건을 겪기도 했다.
80년대 중반 민중-계급론을 처음 도입해 민족사회학 또는 민중
사회학 논의의 바탕을 마련했다. 지난해 초 열린 정년퇴임 강의
에서 그는 “연구자는 학문의 길에서나 실천적 차원에서 채택하 는
이론과 개념에 대한 윤리적 책임을 가져야 한다”며 그가 걸 어온
길의 철학적 배경을 얘기했었다.
그는 ‘비판과 변동의 사회학’, ‘진보에서 희망을 꿈꾼다’등
여러 권의 저서를 남겼다. 유족으로는 부인 정혜영씨와 아들 태
진·영진, 딸 지인씨가 있고, 김세균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가 동
생이다.
‘민주사회장’으로 치러질 장례절차는 17일 오전 8시30분 서울 대
병원에서 발인, 오전 10시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에서 영 결식
및 노제, 오후 2시 경기도 마석 모란민중공원에서 하관한다 .
엄주엽기자 ejyeo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