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지식인의 큰 자리
[한겨례신문] 2004년 02월 16일 (월)
[한겨레] 김진균. 1970년대 초만 해도 그는 새뮤얼 헌팅턴의
근대화론이나 가르치던 그저 평범한 사회학자였다. 일정한 경제
성장을 이루고 나면, 민주화도 인권도 자동적으로 신장된다는
순진한 사회적 다윈주의류 이론이다. 그러나 구한말 유행했던
자강론의 기초가 된 낡은 이 이론은 ‘약육강식’을 합리화하는
치명적인 약점을 지녔다. 일제하 지식인들이 여기서 벗어나 올바른
독립운동 노선으로 되돌아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던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때까지 그는 ‘한국 사회학의 아버지뻘’인
최문환 선생의 애제자로 연구실 책 속에 파묻혀 있었다. 그런 그가
현실 문제 발언에 나서기 시작한 것은 72년 ‘시월유신’ 이후로
알려졌다. 당시 서울대 상과대 교수로 재직한 탓에 문리대
학생이던 필자와의 인연은 훗날 이야기가 된다. 그가 실천가로
완전히 거듭난 것은 우리 사회가 80년 광주항쟁을 겪는 등 격동할
때였던 것으로 판단된다. 주위 예상을 넘어 그는 계엄 철폐를
요구하고 신군부의 정치 개입을 비판하는 내용의 ‘지식인 134인
선언’에 당당하게 참여했다. 이 모습을 지켜본 사람들은 맑고
올곧은 됨됨이를 지닌 그가 드디어 세상을 향해 나섰다고 입을
모았다.
그러나 그는 진보를 향해 가되 결코 지나침이 없었고, 이론논쟁을
하되 넉넉함을 잃지 않았다. 흥분된 좌중을 가라앉히려 목청을
높이는 법도 없고 주위와 화합하되 무리를 짓는 일은 더더욱
없었다. 주위를 따뜻하게 품어주는 푸근함을 갖춘 그와의 만남은
당시 힘든 시대를 살던 이들에게는 되새길수록 큰 기쁨이요
행운이었다. 15년 대선배인 그를 필자가 다시 가까이서 만나볼
행운을 갖게 된 것은 그와 내가 서울대와 신문사에서 쫓겨났던
그해 여름이었다. 한복 차림에 책보를 싸들고 고무신을 즐겨
신었던 그 모습은 해직된 뒤에도 변함이 없었다. 각별한 인연은
기독교 계통의 한 연구기관에서 해직 교수들과 사회변동 공동
연구를 진행하면서 맺게 됐다. 지리산도 따라 다니고 함께 술도
마셨지만 한번도 취한 모습을 본 적이 없다. 말술을 마다지 않는
호주가였던 그는 말수는 거의 없었어도 언제나 온화한 웃음을
보이면서 좌중을 즐겁게 했다. 큰형처럼 평화롭고 여유롭게 술자리
중심을 잡아줘 그 주위에는 늘 사람들이 모였다.
한없이 넓은 지리산 자락 한복판의 넉넉한 선비 가정에서 태어났던
그는 강인한 정신력에 호흡도 특히 길었다. 그러면서도 강하지만
거칠지 않은 부드러움으로 투쟁에 지친 사람들을 격려하는
사려깊음도 갖췄다. 찾아온 사람들이 투쟁의 고단함을 말할 때
말없이 듣는 선한 눈빛은 보는 이들에게 큰 힘이 됐다. 민중의
고난에 동참하고 그들의 고통에 아파했으나 따스한 시선을 보내는
것을 잊지 않았던 그는 구도자 모습을 닮았다.
지난 설 연휴 마지막날 신문사 동료 몇 사람과 함께 그가 투병하던
경기도 과천의 집을 찾았으나 갑자기 병세가 악화되는 바람에
뵙지도 못했으니 가슴 아픈 이별이 못내 안타깝다. 그날도
병상에서 그는 가난한 노동자들을 만났다고 한다. 투병하는
최근까지도 소박하고 정갈한 글을 써 보내고 중요한 모임에 빠짐
없이 참석해 주위 사람들을 숙연케 했던 그가 아닌가. 그런 그가
이 아침이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난다. 한 몸 돌보지
않고 오로지 이 땅의 억눌리고 가난한 이들 편에 서서 따스한
벗으로 살아온 그가 돌이킬 수 없는 병을 얻어 떠났으니 그 죽음
또한 남의 죽음이 될 수 없다. 그의 죽음에 가슴 아파 빈소를
맴도는 이들이 대부분 이 땅에 힘없는 노동자와 뜻있는 지식인들인
것을 보아도, 사회적 약자와 함께했던 그의 삶이 얼마나 값진
것이었는지를 말없이 전한다.
두고두고 그를 기억할 것은 무엇보다 후배에 대한 가없는 사랑일
것이다. 그가 키워낸 후학들이 학계 곳곳에서 당당하게 활약하는
지금의 모습은 그가 뿌린 거름의 깊이를 그대로 말한다. 그릇이 큰
인물은, 떠나고 난 뒤에 비로소 자신이 지켰던 자리 크기를
말해주는 것일까. 한번도 눈길을 민중에게서 떼지 않았던, 마음이
넉넉했던 민중의 스승 김진균 선생님! 부디 안녕히 가소서. 뜨거운
동지애로 선생님을 보냅니다. 김형배 논설위원hbk3@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