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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날짜:
2004/02/13 시민의신문
이주희기자
저녁
6시 30분이 넘어 75석이 꽉찬 극장안.
송준
박사와 베르닝 박사의 인사가 있은 뒤, 실내가 어두워지면서 “경계도시”가 상영되었다. 필자가 인터넷을 통해 본 화면과는 달리, 커다란 화면으로
소리도 아주 크게 들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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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까지 영화제가 주로 열렸던 죠
팔라스트. | 2000년 7월 “늦봄 통일상”을 수상하기 위한 귀국을 전후한 이야기들이 주로 서술되고
있었다. 2000년7월1일 귀국 하루 전까지 청와대와 국정원의 타협이 이루어져 33년만에 고국을 돌아올 수 있게 되었다는 소리가 들려왔다.
해외민족민주인사의 귀국의 칼자루를 쥐고 있는 기관. 하지만 마지막에는 입장을 바꾸어 “준법서약서”를 써야 귀국할 수 있다는 국정원의
입장.
송
교수의 말이 의미심장하다. “참, 넘어야 할 산과 강이 정말 많구만…” 33년만에 귀국을 위해 새옷까지 장만한 송교수의 부인 정정희여사는 울음을
머금은 채, “참말로 유치하다! 네, 창피스러워서…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화면은
바뀌어, 친구이자 선배인 김지하 시인이 카메라 앞에 나타났다. “정말 보고 싶구만… 가능하면, 들어오는 방향으로 노력해 보게!”라는 충고를
아끼지 않는 민족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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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죠 팔라스트 앞 관광명소이며, 반전의 상징인 "파괴된
교회" | 경계도시"에 이은 송교수의 귀국을 담은 짤막한 다른 기록영화를 같이 보았다. 김지하 시인이
말했던 바와 같이 그후 3년이 지난 작년 9월22일 꿈에도 그리던 귀국은 37년 만에 실현되었다. 그런데 그 다음날 부터 10명의 대공수사관들이
번갈아 가면서 13시간동안 심문을 하였다. 10월3일부터는 검찰에 의해서도 조사가 이어졌다. 그리고 22일 구속영장이 발부되어 송교수는
서울구치소로 입감되었다.
 영화관람 후, 독일대책위 관계자들과 함께.
가운데 넥타이를 맨 이가 송두율 교수의 큰 아들 송준 박사다. <이주희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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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계도시' 영화가 상영된 뒤, 송준씨와 베르닝 박사가 한국상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송교수의 둘째아들 린씨는 이 장면을 이렇게 쓰고 있다. “지난해 10월22일 전세계로 퍼져나갔던
장면들을 나는 눈앞에 그릴 수가 있다. 내 아빠가 기소된 직후 수갑이 채워진 채 기다리던 기자들 앞에서 잠시 동안 잡힌 범죄자처럼 얼굴을
보여주고는 이어 몇 개의 계단을 내려 기다리던 승용차로 끌려들어가 파란 불빛을 흘리며 쏜살같이 나아가던 그 장면. 수갑이 채워진 아빠의 모습은
지난해 그에게 가해진 셀 수도 없는 인권침해 사례의 하나로, 이는 내 생애에 개인적으로 가장 수치스럽고, 가장 놀라운 영상의 10초였다. 나는
이를 이제까지 수도 없이 보아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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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대책위에서 활동 중인 베르닝 박사. | 영화감상
뒤, 질의응답시간에 송준씨와 베르닝박사는 예초에 “거짓말쟁이 교수”라는 제목을 달던 주류신문들의 목소리는 현재 점차 작아져 가고 있다고
평가하였다. 또 한 질의에 응답하며, 베르닝 박사는 “송교수의 재판은 정치재판으로 판사가 국정원, 한나라당, 언론, 검찰, 국회에 대항해 공정한
판단을 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는 전망을 피력하였다. 하지만, “결론은 예측하기가 아주 어렵다.”는 것이었다. 가능한 시나리오는 집행유예로
풀려나오든지, 독일로 추방되는 안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송준 박사도 한 질의에 응답하며, “상황을 극우들이 여전히 지배하고 있다”고
본다며, “식민시대의 악법이 지금까지 존속한다는 것은 역사의 모순”이라고 평가하였다.
이
날, 두개의 다큐멘타리 필림을 보고, 질의와 응답을 하는 관객들은 모두가 아주 진지했다. 이들의 관심은 75석의 극장좌석에 한정되지 않고,
그들이 바로 송 교수의 귀국을 둘러싼 파행을 지켜보는 증인들이다. 증인들은 바로 우리들 가까이에 있는 것이다.
이주희(독일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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