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2004년 2월17일 오후 1시 30분 마석 모란민주공원에서
거행된 김진균 선생 하관식(사회: 이종회)에서 낭독한
홍근수목사님의 추도사입니다.
고 김진균 교수 민주사회장 추도사
홍근수
오늘 우리들은 비통한 마음으로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우리
살아남은 자들은 사랑하는 벗 김진균 교수를 이곳 민주묘지에
안장하려 합니다.
물론 이곳에 먼저 오신 선열, 열사들이 있어 외롭지 않을지
모릅니다. 우리가 존경하고 사랑하는 계훈제, 문익환, 전태일,
박종철, 김귀정 님 등 우리가 그 이름을 기억하고 있는 위대한
민주 영령들이고 민족의 스승이십니다. 그들과 함께 있게 되었다는
것은 조금은 위로가 될지 모릅니다.
이 땅에 생명을 부여받은 자 예외 없이 가는 길, 조금 더 빨리
가고 조금 더 늦게 가는 차이가 있을 뿐 모두가 가는 길임을
모르는 바는 아닙니다. 그는 달려갈 길을 다 달리고
서울대학교에서 정년은퇴를 하고서 떠나셨습니다. 사실 정년 전에
그의 몸에 이상이 생겼고 수술하였습니다. 정년 전에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하나 하고 걱정을 하였지만, 일단은 정년은
넘기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평소에 건장하였고 틀림없는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자신도, 우리도 걱정하지 않았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에게 무서운 병이 도사리고 있는 줄
몰랐습니다. 그 자신도 우리도 너무 소흘했는지 모릅니다.
그를 여기 땅 속에 묻고 가는 우리는 정말 발걸음이 떨어질 것
같지 않습니다. 우리가 그의 시신을 모시고 와서 그를 이 대지의
품에 안기고서 그냥 내려가게 되려니 생각하니까 우리 마음이 매우
허전함을 느낍니다. 우리는 잔잔한 미소하는 그의 얼굴 모습을 더
이상 볼 수 없음이 더없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그는 한국민중운동의 이론적 근거를 제공하였습니다. 그는 참된
민중해방의 세상, 노동자 해방의 날, 민족해방의 날을
고대하였습니다. 우리는 70년대 80년대 90년대를 줄기차게
싸워왔고 그 싸움을 되돌이켜 볼 때 김진균 교수를 기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의 민주주의가 그나마도 이 정도라도 실현이 된
것은 이 땅의 민중이 투쟁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김진균 교수는 이 운동 한 가운데 늘 서 있었습니다. 그는 운동의
이론적 근거를 우리에게 제공했고 우리들 가운데 우뚝 높이 솟은
출중한 지도자였습니다. 이 보급 물자 없이는 누구도 싸울 수
없기에 그의 공헌은 더욱 위대합니다.
이제 그 역할을 누가 감당할 것인지 생각하면 실로 막연하지만,
이빨이 없으면 잇몸으로 대신한다든지, ‘궁측통’(窮則通)이라고
하였듯이 그 문제는 어떻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는
정말 어느 누구와도 대치될 수 없는 우리의 사랑, 한국 민중으로
부터 사랑을 받고 벗이자 지도자였습니다. 그는 그의 고향인
지리산 만큼이나 넓고 광활했으며 포용력이 컸습니다. 그의 은은한
미소는 많은 실망한 영혼에게 힘을 주는 것이었고 그의 이론은
싸움에 패배를 느끼고 있던 사람들에게 정신적 힘이었습니다.
한 가지 확실한 우리의 신념은 오늘 이 매장으로서 김진균 교수의
삶이 끝이 아니란 사실입니다. 사람들이 대체로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은 그것이 생의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죽음이 생의 마지막이 아니라는 것이 우리 많은 사람들, 특히
종교인들의 확신입니다.
우스운 이야기가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흔히 가장 신앙이 좋고 이
지상의 그리스도인의 대표로 생각하는 교황에 관한 것입니다. 어느
날 주치의로부터 ‘교황 성하, 수술을 받으셔야 하겠습니다.’라는
말을 들은 교황은 수술이라는 장면을 상상하기만 해도 끔찍하여
‘아니, 그럴 수 없네. 내 몸에 절대로 칼을 댈 수 없네!’ 라고
대답하였다고 합니다. 그때 주치의는 좀 직설적으로 강력하게
말하기를 ‘만일 수술을 받지 않으면 1주일 후에 천당을 가게
됩니다. 그러나 수술을 받으시면 이 땅에서 더 살 수
있습니다.’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교황은 ‘그렇다면 당장
수술을 하게나!’ 라고 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위의 이야기는 죽으면 천당을 간다고 믿고 있다는 그리스도인들,
죽음 후에 부활과 영생이 시작된다고 믿고, 죽는 것이 오히려 더
낫다고 믿고 있는 그리스도교인도 죽음을 두려워한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의 증언이지만, 생은 죽음 후에도
계속됩니다. 우리가 고인을 사랑하는 한, 그는 결코 죽은 자로
간주하지 않습니다. 사랑만이 죽음을 극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고인을 여전히 사랑하는 한 그는 우리들 가운데서 죽은
것이 아닙니다.
윌슨(Roger C. Wilson)이 “천성의 종”이라는 노래에서
표현했듯이 ‘인생은 흉흉한 바다, 죄와 슬픔의 바람과 믿을 수
없는 구름이 늘 애워싸고 있구나....’라는 것이 현실입니다.
참으로 현실적이고 너무나 우리의 경험과 같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의 말에 공감을 하는 바입니다. 정말 인생은 흉흉한 바다라고
생각합니다. 만일 인생이 흉흉한 바다라면 폭풍과 파도를 만나는
것을 피할 수 없는 현실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바다를
성공적으로 잘 항해한다는 것은 결코 용이하지 않습니다.
비록 그의 나이 70도 되지 않아서 타계하게 되었고 요즘 표준으로
하면 그리 오래 산 것은 아니어서 실로 애석합니다. 그리고 그는
민중해방, 노동자 해방, 그리고 민족해방이 완성되지 않은 마당에
가셨습니다. 그의 타계로 그것을 완성할 몫은 우리 살아남은
사람들과 동지들과 후학들의 생의 과제요 사명입니다. 이제 그는
이 세상에서의 모든 수고와 무거운 짐을 내려 놓았습니다. 이제
이곳 마석 민주공원에서 편히 쉬시기를 바랍니다.
그는 비록 66세란 일생을 마쳤지만, 그 보다 긴 족적을 남기신 것
같습니다. 어느 생이 그렇지 않겠습니까만 김진균 교수는 적어도
그가 속한 이 민족사회가 역경과 난관을 겪었고 우리는 그 폭풍
지대를 헤치고 오늘까지 살아왔습니다. 정말 “아름다운 항해”를
하신 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양적으로 그는 결코 짧게 산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는 질적으로는 더 오래 더 굵게 살았습니다.
그의 생은 수난 당하는 이 땅의 민중을 위하여, 고통 당하는 이
나라의 민중을 위하여, 그리고 이 땅에 살고 있는 민족의 진정한
해방과 자유를 위해 관심하고 투쟁을 함께 전개하여 왔습니다.
실로 그는 굵게 살았습니다.
미망인 되는 사모님이 혼자가 되어 안 되었고 살아 있는 우리
모두는 늘 우리에게 힘을 주고 격려하며 사랑하는 벗을 잃어
슬픔을 가눌 길 없습니다. 우리 사회는 김진균 교수를 잃어 정말
하늘의 큰 별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와 맺은 인연은 정말
끊기가 어려운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영원히 꺼지지 않는 희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브록크(Virgil P. Brock, Blanche Kerr Brock의 곡)의 노래, {해
지는 저 편}을 제가 개사하여 사랑하는 김진균 교수, 우리가 그를
이 자리에 묻고 돌아가려고 합니다만, 고 김진균 교수에게
바치고자 합니다. 이 노래는 우리에게 영원한 희망을 주는
노래입니다:
해지는 저편 찬란한 아침 우리들 함께 맞이하리
지상 저 너머 영광의 아침 해지는 저편 낙원일세
해지는 저편 구름 없으리 비바람 폭풍 두렴 없네
기쁨의 날이 끝없으리니 무한한 기쁨 있으리라
해지는 저편 오 기쁜 만남 앞에 간 친구 만나보리
우리의 본향 이별 없으리 영원한 기쁨 있으리라.
(원래 가사에는 “우리들” 대신 “주님과”이고 “낙원” 대신
“천국”으로 되어 있으나 종교적인 냄새가 있어 비종교적인
언어로 개작하였음)
사랑하는 우리의 벗, 우리가 존경하는 이 땅의 “민중의 스승”
김진균 교수, 여기서 평안히 쉬소서. 그의 가족들, 그리고 여기
모여 선 모든 사람들이 이런 꺼지지 않는 희망으로 위로를 받고
이곳을 내려 갈 수 있기를 빕니다. 위로부터 내리는 하늘의 평화가
고 김진균 교수와 우리 모두 위에 함께 내리시기를 빕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