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기자회견자료에 포함되지 않은 자료입니다.
송두율 교수 사건 일지 및 송두율 교수 대책위원회 활동경과
2003 9.22 송두율 교수 37년만에 귀국
2003 9.23 국정원에 자진 출두 조사 시작
2003 노동당 가입 사실이 언론에 알려지고 송교수가 정치국
후보위원 김철수와 동일인이라는 국정원의 수사의견이 알려짐
2003 보수언론의 여론재판 시작
2003 10.3 검찰 소환 시작
2003 10.5 학단협, 민교협, 교수노조가 중심이 되어 '송두율 교수
사건 교수-학술 연구자 비상대책위원회' 구성
2003 10.7 위 비대위 "송두율 교수 문제에 대한 우리의 입장"발표
2003 10.14 각계 사회원로 기자회견, "분단의 상처를 치유하는
화해의 기회로" 발표
2003 이 자리에서 송교수는 노동당 탈당, 독일 국적 포기 등의
내용을 담은 성명서 발표
2003 11.13 "송두율 교수 석방과 사상-양심의 자유를 위한
대책위원회" 발족(상임대표: 김세균)
2003 이 즈음에 유럽 대책위도 발족
2003 11.17 독일 사회 각계 인사 600여명 "노무현 대통령과 한국
국민께 드리는 호소문"발표
2003 12.1 1차공판 (2004.3.9 결심공판까지 총 9회 공판 진행)
2003 독일 사회 인사 920여명이 서명한 "송두율 교수 사건 담당
재판부에 드리는 탄원서" 재판부에 제출
2004 3.3 오전 10시 선고공판 예정
성명서, 탄원서
국내 서명자 1000인 이상
독일 각계 사회 인사 920명
권터 그라스, 위르겐 하버마스, 독일 녹색당 국회의원
한스-크리스티안 스트리벨레 등 저명 인사 탄원서 제출
일본 지식인 360명
행사
2003 12.9 참여연대 느티나무 까페에서 "송두율 교수 후원의 밤"
개최
2004 2.12 이화여대 이화삼성언어교육관에서 종합문화제 "경계에
피는 꽃" 개최
재판의 쟁점
1) 후보위원 선임 여부: 많은 검찰측 증인 신문에서도 송 교수가
정치국 후보위원이라는 객관적 증거는 전혀 나온 바 없음
2) 남, 북, 해외학자 통일학술대회: 남측 학자들의 주도아래
성사되었고 남한의 재별기업들과 언론사들이 후원, 송 교수는
성실한 중계자 역할만 수행했다는 사실이 길승흠 교수, 권만학
교수 등 대회 주관자들에 의해 확인됨.
3) 저술의 친북이적성: 내재적 접근법이라는 것이 송 교수가
발명해낸 것이 아니라 문화인류학 등에서 이미 오래전부터 널리
사용되어 온 방법이며 송교수의 북한 사회분석을 친북이적적이라
볼 수 없다는 점이 많은 북한 전문가들에 의해 확인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