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두율 교수 재판> 관람기(마지막 공판)
2004년 3월 9일. 강의를 마치고 시계를 보니, 오후 2시
15분이다. 부랴부랴 연구실로 달려가서 책과 노트를 놓고
서울지방법원으로 달려갔다. 이미 시간이 늦었지만, 지난
3개월(국정원의 조사를 합치면 5개월) 동안 지속된 21세기
대한민국 판 지식인 마녀재판이라고 말하는 <송두율 교수 재판>의
마지막 공판을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서울지방법원의 417호 대법정에 도착하니 3시 10분이다. 송두율
교수가 “북한에 대한 내재적 접근법”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눈치를 보니, 변호사들이 여러 중점 사안들을 질문하여 송두율
교수에게 중요한 문제를 다시 정리하여 발표하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 같다. 옆에 있는 안면이 있는 선생에게 물어보니, 검찰 측 증인
1명과 변호사 측 증인 1명의 심문은 이미 끝났다고 한다.
변호인단의 보충 질의가 끝나자, 주임 판사의 보충 질의가
이어진다. 법적인 용어는 “질의”가 아니라 “심문”이다. 그러나
누가 누구를 심문한단 말인가? 변호인단의 송호창 변호사가 처음
공판에서 “송두율 교수님”이라고 호칭한 것처럼 지난 9번의 공판
동안 송두율 교수는 끊임없이 “내재적 접근법”의 내용,
주체사상과 민족 볼세비즘의 유사성, 초월주의와 절대주의로
환원되는 근대적 과학철학의 한계, 우리의 근대화 과정에 대한
남한이나 북한 중심의 시각에서 벗어난 한반도의 관점, 경계인의
창조적 삶과 미래지향적 세계관. ... 여러 신문들이 보도한 것처럼
알아듣지도 못하는 판사들과 검찰들을 대상으로 송두율 교수는
반복하고 또 반복하여 설명했다. 송두율 교수의 인내는 아마도
한반도의 통일에 대한 염원이 없었으면 불가능한 것이었으리라.
송두율 교수가 수없이 “내재적 접근법은 어떤 대상에 대한
초월적이거나 전체주의적인 접근의 대응 방식이지 외재적 접근의
반대가 아니다”라고 이야기했음에도 불구하고, 주임판사는
“주체사상에 대한 비판”과 “이렇게 일반화 할 수는
없지만”이라는 토를 달면서 “외재적 접근법에 대한 내재적
접근법의 장점을 이야기해 주시오”라고 송두율 교수에게
부탁한다. 송두율 교수는 맑스의 말을 인용하여 “개체의 발전이
전체의 발전이다”라는 말로 요약한다. 북의 주체사상과 20세기 초
독일의 민족 볼세비즘은 “개체의 발전이 전체의 발전이라는”
명제를 “전체의 발전이 개체의 발전”이라는 명제로 전환시켰다는
것이다. 우리도 그렇다. 초등학교 시절 달달달 암기해야만 했던
<국민교육헌장>에 “나의 발전이 나라의 발전의 근본임을
깨달아”라는 말이 분명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근대사는
개인의 발전을 국가의 이름으로 재판하고 처단하는 역사였다.
지금도 그렇지 않은가? 개체적으로 발전하여 세계적 석학이 된
송두율 교수를 국가의 이름으로 죽이려고 하지 않는가? 송두율
교수는 “우리의 북에 대한 이해는 자비심(동정심)과 진정성
사이에서 진정성을 토대로 한 이해가 되어야만 한다”고 강조한다.
자비심을 토대로 한 이해는 부시의 “악의 축” 발언과 마찬가지로
각각의 주관적인 인식에 따라 북에 대한 “천사화”와
“악마화”를 동시에 수반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송두율 교수는 아마도 진정성을 지닌 북의 이해에 대하여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북이나 남뿐만 아니라 모든 사회는
내재적으로 공동체를 구성할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다. 그 사회의
내재적 힘은 외재적 관계의 구성에 따라 변화하고 발전한다. 북이
오늘날 지니고 있는 폐쇄적 공동체는 우리의 근대화 과정에서
형성된 외재적 관계의 파괴성, 즉 일본 제국주의 침략과 해방 이후
미국의 신식민지적 지배전략에 책임이 있는 것이지 북이 아무런
외재적 관계의 작용 없이 자체적으로 형성한 것이 아니다. 따라서
북의 폐쇄적이면서 주체적인 국가는 파괴적이고 지배적인 일본과
미국의 제국주의에 대항한 한반도 공동체가 지니는 내재성의
발현이다. 1970년대 후반까지 남의 국가는 북의 전체성을 배우기에
급급했다. 박정희는 북의 국가주도 경제개발계획을 모방하여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세우고, 북의 “천리마 운동”을 모방하여
“새마을 운동”을 만들었다. 심지어 북의 축구 국가대표가 1966년
월드컵 8강에 안착하자, 박정희는 당시의 “안기부”에서 축구
국가대표팀을 훈련시키는 강력한 국가를 달성하고자 했다.
그러나 역사는 변한다. 1980년대의 남북 대체기를 지나
1990년대 이후에 북은 남의 개체성을 배우기 시작했다. 송두율
교수가 이야기하는 “개체의 발전이 전체의 발전에 우선한다”는
남이 지니고 있는 개체성의 발현은 1970년대와 80년대의 민주화
운동으로 발현되어 1987년을 계기로 오늘날의 미래지향적인 역동적
사회를 만들었다. 평양에는 5000명 이상의 현대계열사 직원들이
있고, 개성에는 거의 남측 공장들이 입주하게 될 100만 평 규모의
남북합작 공단이 마무리 작업에 도달했다고 한다. 오늘날의 남한
사회가 지니고 있는 역동성은 우리의 근대화 과정에서 침략과
지배를 일삼았던 일본이나 미국과 맺어진 외재적 관계에 의하여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민주적이고 창조적인 각각의 개체적인
개인들이 만든 내재적 역동성이다. 이러한 역동성이 남북으로
연결되지 않으면 한반도의 탈식민주의적이고 여성주의적이고
생태주의적인 미래의 건설은 불가능하다. 따지고 보면, 1990년대
이전에도 남과 북은 항상 상생의 구도였다. 그러나 1990년대
이전의 남과 북은 오직 남과 북에 있는 권력집단만의 상생이고,
1990년대 이후에 필요한 남과 북의 상생은 한반도에 있는 모든
민중의 상생에 필요한 요건이다.
검찰은 송두율 교수에게 15년을 구형했다. 그것은 송두율
교수의 남과 북의 상생과 통일을 위한 학문과 사상에 대한
구형이다. 검찰은 송두율 교수를 “경계인으로 위장한
기회주의자”라고 말하고, “북한을 찬양하는 이론적 토대를
만들고 유학생을 공작원으로 포섭하는 선전활동을 했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펜은 칼보다 강하다’라는 경구처럼
송두율 교수는 요인 암살이나 간첩활동보다 더 큰 해악을 우리
사회에 끼쳤다”고 주장한다. 어쩔 수 없는 쓴 웃음이 입에서
솟아나온다. 오늘날 서구뿐만 아니라 우리의 대학에서 철학, 역사,
문학, 사회학, 정치학에서 행해지는 대부분의 근대성에 대한
논의는 “근대는 서구, 백인, 남성 중심주의이기 때문에 우리는
스스로 서구/비서구, 백인/유색인, 그리고 남성/여성의 구분이
없는 경계인이 되어야만 한다”고 역설한다. 그들은 모두
“경계인”으로 위장한 기회주의자들인가? 학자들끼리의 대화와
토론은 “공작원으로 포섭하는 것”이고, 통일과 상생의 논리는
모두 “대남선전활동”인가? 더더욱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경구를 저런 방식으로 사용하다니, 훌륭한 책을 읽고 감동하거나
뛰어난 학자를 존경하는 지식인들이 모두 저들의 눈에는 간첩으로
보일 뿐이다.
김형태, 진선미, 이정희, 송호창, 윤영환, 박연철, 심재환
변호사들이 차례로 읽은 변호인단의 최후 변론은 남과 북의 통일을
위한 미래지향의 시대에 구시대적이고 사문화된 국가보안법의
허구성을 폭로하면서, 실정법상으로도 아무런 범죄의 물증이 없는
송두율 교수는 무죄라고 역설하였다. 장장 150 페이지에 달하는
그들의 <변론 요지서>는 더 이상 우리 사회에서 구시대적
마녀재판이 존재하지 말아야만 한다는 하나의 명백한 물증으로
남을 것이다. 변호인단이 마지막으로 인용한 <송두율 교수의
석방을 촉구하는 사회 원로 인사들의 성명서>는 식민지와 분단의
근대사로 얼룩진 한반도의 삶을 다시 생각나게 한다. “이제
고국에서 살기를 간절히 원해온 사람을 고국에서 편안히 살게
하라. 이제 고국에서 동포들과 사랑을 나누고자 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사랑을 나누게 하라. 송두율 교수에게 고향의 흙냄새를
맡으며 자유롭게 숨쉴 자유를 주라. 여우도 죽을 때는 자기가 살던
굴 쪽으로 머리를 눕힌다고 한다. 송교수로 하여금 사랑하는
조국에서 시름 많았던 생애를 뜻있게 마무리하게 하라. 송교수에게
‘인간의 얼굴을 한 고국’의 모습을 보여주라. ... 송두율 교수를
자유의 몸으로 풀어줌으로써 우리도 남북분단의 역사가 던져준
무거운 굴레로부터 조금이나마 벗어나게 되는 것이다.”
평화와 상생의 통일을 추구하는 학자를 구제해 달라는
변호인단의 간절한 요청에도 불구하고 정말로 냉정하고 담담한
사람은 피고인석에 앉아있는 송두율 교수다. 그는 “존경하는
재판장님”으로 시작하는 최후진술을 읽는다. 그의 최후진술에는
그 어떤 증오와 회한도 없다. 그는 재판장과 자신을 구속한
검찰들을 향하여 이제라도 빨리 검은 소나 흰 소 중심의
파괴적이고 폭력적인 구시대의 작태에서 벗어나 통일을 위한
상생의 세계로 돌아오라고 호소할 뿐이다. 그는 <조직 사회학>에서
종종 거론되는 “다섯 마리 원숭이에 대한 우화”를 이야기한다.
그리고 “<국가정보원>과 <공안검찰> 및 이른바 <거대언론>,
그리고 선입견의 지식인들”이 “조직을 멍청하게 만드는 네 마리
원숭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송두율 교수가 말하는 선입견이나
편견의 지식에서 벗어나 미래를 창조하고 조직을 새롭게 만드는
다섯 번째 원숭이들은 우리 사회가 존재하는 한 끊임없이 등장할
것이다. 하루라도 빨리 송두율 교수가 출감하여 남과 북에 있는
수많은 다섯 번째 원숭이들이 등장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도록
하여야만 한다. 그는 그러한 기대에 가득 차 있다. 그래서 그는
“네 마리 원숭이가 벌였던 그 시끄러운 굿판이 결국 도깨비장난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이 몰고 올 또 한번의 충격을 기대해봅니다.
그러한 충격은 우리의 정신적 위기상황을 적극적으로 깨닫게 하는
일종의 <정신 생태학(Mind Ecology)>을 가능케 할 수 있다고도
생각합니다. 이러한 <정신생태학>은 자연환경을 문제시하는
<생태학>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3월 30일. 송두율 교수는 우리의 곁으로 올 것이다. 그래서
그가 정정희 여사에게 이야기했다는 “서해안과 남해안, 그리고
동해안을 두루 거치는 편안한 여행”을 마치고 한반도의 통일과
상생, 그리고 조화를 달성하는 사회생태학과 인류의 미래가
걸려있는 자연생태학의 학문을 주도하는 정신생태학의 학문세계를
우리 사회에 전달해야만 한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분단과 질곡의
시대에서 평화와 통일의 시대를 그와 더불어 하루 빨리 맞이해야만
한다. 3월 30일이 기다려진다. 소주를 좋아하신다는 그 분에게 술
한 잔을 따르고 싶다. 그 날 수업은 휴강을 하고 학생들과 함께
송두율 교수를 맞이하러 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