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사설] 정치국 후보위원 송두율 유죄 판결을 보며
2004.3.30.
법원은 30일 송두율씨가 북한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활동해
온 사실 등을 인정하고 그에게 징역 7년을 선고했다. 이로써
송씨가 북한의 최고위급 대남 공작원이라는 사실이 법원 판결로
확인됐으며 그의 정체를 둘러싼 긴 논란도 일단락됐다.
재판부는 송씨가 그동안 “자신을 ‘경계인’으로 포장하면서 북한
체제를 거의 무비판적으로 옹호하는 주장을 간접적으로 드러내
(그의 주장이) 객관성을 유지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어 많은
사람들이 북한 정권과 사회에 대해 잘못된 환상을 갖게 했다”고
밝혔다.
송씨가 정치국 후보위원이라는 사실과 그의 친북 활동은 그동안의
수사과정에서 적나라하게 밝혀졌고, 건전한 상식 차원에서는
더이상 논란거리가 될 것도 없었다. 그런데도 ‘송두율 사건’이
우리 사회의 이념적 갈등으로까지 비화한 데에는 송씨가 정치국
후보위원이란 신분을 끝까지 감추며 교묘한 언변으로 자신을
남북분단의 희생자인 양 묘사한 데다, 좌파 인사들이 자신들의
이념을 정당화하는 도구로서 송씨 미화에 앞장서 왔기 때문이다.
남북이 분단 대치 중인 상황에서 북의 최고위급 인사가 민주인사로
위장 침투한 이번 사건을 두고 대한민국 대통령과 법무장관이 나서
송씨를 두둔하고, 안중근 의사의 이름이 들어간 상(賞)이 그에게
주어지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외국인들은 도저히 이해
불가능하다고까지 말할 지경이다.
송씨가 조금이라도 학자적 양심을 가졌다면 노동당 고위간부라는
자신의 신분을 시인하고, 서울 올림픽 반대 운동이나 주체사상
전파 활동을 벌였던 당시의 판단과 지금의 판단을 고백하면서
무엇이 달라지지 않았고 무엇이 달라졌는가를 털어놓아야 마땅한
일이다.
이번 법원의 판결에 대해 이 나라의 ‘시대를 앞서가는’ 인사들은
또다시 ‘시대 역행적’인 처사라고 비난하고 나서는 모양이다.
아직도 송씨를 두둔하려는 사람들은 구차스럽게 ‘냉전 논리’
운운하는 속보이는 말로 진심을 감추기보다 차라리 솔직하게
“북한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이면 어떠냐”라고 대놓고 말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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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사설] 7년 징역 선고된 송두율씨
2004년 03월 30일 (화)
서울중앙지법이 어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된 재독
사회학자 송두율씨에게 징역 7년의 중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통일학술대회 개최를 주도했다는 부분 등에 일부 무죄를
선고했으나 공소사실 가운데 핵심인 그가 북한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활동했다는 부분에 대해선 유죄를 인정했다.
이번 판결 결과를 놓고 검찰과 변호인 측 모두가 불만을 표시하며
항소하겠다는 입장이어서 법리 공방은 항소심에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宋씨를 둘러싸고 제기된 갖가지 논란에 대해
사법부가 1차적 판단을 내렸다는 점에서 이번 판결 결과는 의미가
크다. 그런 만큼 그를 국내로 초청한 사회단체나 그를 남북 분단의
희생양이라며 무조건 감싸 왔던 사람들도 판결의 의미를 되새겨야
한다.
법원이 宋씨에게 유죄를 선고한 것은 분단 국가 지식인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분명히 제시했다고 볼 수 있다. 재판부는
판결문을 통해 "올바르고 냉철한 남북한의 현실 파악이 선행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신분을 숨기고 북한에 편향된 저술활동을 한 것은
남북 평화통일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장애물로 작용했다"고 밝혔다.
그가 주장해 왔던 대한민국과 북한의 '경계인'의 삶이 얼마나
가식적이고 허구적인 것인지를 지적하고 있다.
재판부가 피고인이 반성의 뜻을 보이지 않았다고 한 것도 주목되는
부분이다. 宋씨는 귀국 후 북한 노동당 탈당 등 몇 차례 자신의
입장을 밝힌 적이 있다. 그러나 '균형감 있는 경계인의 삶'을
강조하는 등 자신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 반성이 없었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가 법정에서도 자신의 행적을 부인하는 등 반성의 빛을
보이지 않아 중형 선고가 불가피했다는 게 재판부의 설명이다.
宋씨는 항소심 법정에서라도 자신의 과거 행적을 솔직히 털어놓고
반성해야 한다. 그를 정치에 이용하려던 세력이 있었다면 그들도
겸허히 반성해야 한다. 그것이 분단 시대를 사는 지식인의 올바른
자세이자 잘못을 용서받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