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법으로 미래의 학문과 지식인을 재단하지 마라!
송두율 교수 재판부는 송교수에게 징역 7년형을 선고함으로
우리 근대사에 또 하나의 씻지 못할 과오를 저질렀다. 징역 7년의
중형을 선고한 이유는 송교수가 북한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활동한 사실이 인정되며, 김일성 부자의 사상을 남한에 전파해
평화통일에 악영향을 끼쳤다는 것, 그리고 이러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송교수가 ‘반성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재판부는 검찰이 기소한 송두율 교수의 남북 통일학술대회 개최의
노력과 과정을 평화통일에 기여했다고 판단하여 무죄로 평결하는
이중적인 잣대를 사용하였다. 기나 긴 학문연구와 그 결과로
만들어진 학술활동을 어찌 이중적인 잣대로 평가할 수 있는가?
국제적인 학자로 인정받고 있는 송두율 교수에 대한 위와 같은
이중적인 잣대를 사용한 평결의 오류는 수많은 국내외 지식인들의
조소와 안타까움의 대상이 되고 있다.
더더욱 재판부가 송교수를 북한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이라고
명명하는 것은 타인으로부터 전해 들었다는 신빙성 없는
황장엽씨의 증언만을 인정한 것이며, 김일성 부자의 사상을 남한에
전파해 평화통일에 악영향을 끼쳤다는 것 또한 박순성 교수와 같은
북한전문 연구자의 학자적인 증언은 도외시하고 김광동씨와
홍진표씨와 같은 수구적 성향의 연구소 소속 연구원이나 국정원에
발목이 잡혀 있는 사람의 증언만을 인정한 것이다. 이러한
재판부의 편협한 판결은 대학교와 연구소에서 불철주야 연구에
전념하고 있는 우리 지식인들을 분노하게 할 뿐만 아니라 통일의
시대를 맞이하는 우리 민족의 미래에 크나 큰 장애물이 아닐 수
없다. 송두율 교수 재판부는 하루라도 빨리 잘못된 판결을
인정하고 국내외 지식인들과 통일과 새로운 미래의 한반도를
꿈꾸는 국민 앞에 사죄하기를 바란다.
‘6. 15 남북 공동선언’과 금강산 관광, 그리고 개성의
남북합작 공업단지가 조성되고 있는 지금, 국가보안법은 우리
민족을 일제식민지 시대로 복원하거나 1950년의 한국전쟁, 혹은
1970년대와 80년대의 독재시대로 되돌리고자 하는 악법 중의
악법이다. 송두율 교수 재판부가 이러한 악법 중의 악법을 토대로
송교수에게 ‘반성하지 않았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마치 신학이
모든 학문의 왕으로 군림했던 중세의 암흑시대처럼 과거를
지배하던 법 앞에 모든 지식인들이 무릎을 꿇으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그 동안의 재판과정에서 송두율 교수가 그렇게 강조했던
것처럼 21세기의 세계와 한반도는 마녀재판이 횡행하던 서양의
중세시대도 아니고 분서갱유(焚書坑儒)를 통하여 지식인을
억압하고 핍박하던 독재시대도 아니다. 학문과 지식인의 억압으로
인하여 새로운 학문의 연구와 뛰어난 지식인의 지적인 모험이 없는
사회와 국가는 새로운 미래를 만들 자격이 없다.
모든 자연만물과 마찬가지로 법은 끊임없이 변하고 새로워지는
것이며, 현재와 미래의 법을 만드는 토대가 문학, 철학, 역사학,
그리고 사회학 등등의 인문학과 사회과학의 학문이다. 일제
식민지와 전쟁, 그리고 대립과 갈등으로 점철된 우리의 근대사는
불행하게도 화해와 상생, 그리고 통일과 미래를 위한 인문학과
사회과학의 부재와 억압으로 점철되었다. 오늘날의 한국사회를
이끌고 있는 수많은 지식인들과 마찬가지로 송두율 교수는 그러한
근대사의 불행을 극복하고 한반도의 평화로운 미래를 위한 상생과
통일의 철학을 제시하고 있다. 송두율 교수를 하루라도 빨리
학문과 토론의 장으로 보내는 것이 미래와 통일을 위하여 복무하는
법의 역할이라는 것이 우리의 입장이다.
남과 북의 갈등과 대립을 해소하고 민족구성원 모두의 이익에
합치하는 통일을 맞이하기 위해선 통일과정을 주도해야 할 남한
사회가 먼저 인권을 존중하고 학문-사상-양심의 자유를 유보 없이
보장하는 참다운 민주사회로 변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구시대적
악법인 국가보안법이 하루라도 빨리 폐지되어야 하며, 법을
적용하고 행사하는 모든 종사자들이 통일과 미래를 위해 법률의
적용과 행사에서 유연함을 가져야 할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송두율교수 사건에 대한 1심 재판부의 판결은 통일과 미래의
학문을 고민하는 우리 교수와 연구자들에게 크나큰 아픔을 안겨준,
역사에 길이 남을 오점을 남긴 판결이었다. 이에 통일과 새로운
미래의 한반도를 고민하는 우리 교수와 연구자들은 이번 판결에
대해 엄중히 항의할 뿐만 아니라 통일과 새로운 미래의 한반도를
건설하는데 장애가 되는 구시대적 법의 적용에 대응하여 모든 힘을
다하여 싸울 것임을 천명하는 바이다.
2004년 3월 31일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전국 교수노동조합,
학술단체협의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