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청장이 처음 왔을 때 '준법서약서가 폐지됐으니까, 현지에서 약간의 조사를 받거나 공항에서 약간의 조사를
받거나 그것도 아니면 호텔에서 잠깐 조사를 받으면 됩니다'라고 말했다. 한국 공항에 도착하니까 기내 방송에서 '내리지 말라'는 방송이 나왔다.
입국절차를 밟는 데 국정원 직원이 나왔다.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아무도 예상 못했다."
재독학자 송두율 교수(60. 뮌스터 대)의 부인인 정정희 여사(61·오른쪽
사진)가 교수단체의 국가보안법 폐지 기자회견에 참석해서 한 말이다. 정 여사의 말 속에서는 '이렇게 고국이 약속을 지키지 않을 줄
알았으면 고국에 오지 않을 걸 그랬다'는 회한이 서려있다.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전국 교수노동조합 등은 3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안국동 느티나무 카페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송두율 교수와 통일연대 민경우 사무처장을 석방하고,
학문의 자유를 저해하고 남북통일을 가로막는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라"고 주장했다.
김세균 송두율교수 석방과 학문사상의 자유를 위한 대책위 공동대표는
"'저술활동'을 통해 북한을 위한 지도적 임무를 수행했다고 판결을 내린 송두율 사건은 국가보안법 판결 사상 학문-사상의 자유를 가장 심하게
침해한 최초의 사례로 꼽을 만하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DJ정부가 '반체제인사' 표용정책을 펴온 것을 노무현 정부가 계승한 것"이라며 "'준법서약서'가 위헌판결을 받아 송 두율 교수는 간단한
조사를 받는 것을 약속하고 한국에 들어온 것인데, 국정원이 송두율 교수를 구속시킨 것은 정부가 반체제 인사 포용정책을 지키지 못하고, 결국
조중동에게 굴복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7년 징역형
선고를 내린 송 교수의 1심 재판 결과에 대해 "증거능력이 부족한 황장엽씨의 '전언'과 송 교수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에게 충성 맹세문을
보냈다는 등 내용이 담긴 대북보고문인 '김경필 파일'은 변조가능성이 높은 것으로서 이것들을 증거로 채택한 것은 부당한 판결이었다"며 "또한
송교수의 이른바 '내재적 접근론'이란 '하나의 사회체제에 대해 내재적 이해에 기초한 내재적 비판을 추구하는 것으로, 탈근대적 학문연구들의
기본적인 연구방법론'으로 정착되어 있어 오직 학문의 법정에서 시시비비를 다뤄야지 사법적 판결의 대상이 돼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또한 "그의 연구방법은 남북한의 화해-협력을 추구하는
평화 지향적 통일운동의 이론적 뒷받침이 될 수 있는 연구방법이었으며, 남한에 처음으로 '북한학다운 북한학'이 탄생할 수 있는 결정적 계기를
마련했다"고 평가했다.
조영건 615 남북공동선언실현과
한반도평화를 위한 통일연대 학술연구위원장은 민경우 통일연대 사무처장에 대한 검찰의 '국가기밀' 누설에 대한 문제점을 조목조목
설명했다.
조 위원장은 범민련 공동사무국 박용 부총장이
'북한 공작원'이라는 주장에 대해 "검찰은 박 부총장의 조총련에서 활동 경력과 직책 정도를 확인하고 있을 뿐 북한 공작원임을 판별할 수 있는
구체적인 활동내용, 소속 부서 등은 언급하지 않음으로써 그가 북한 공작원이라는 근거가 명확히 제시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또한 범민련 사무처장 활동으로 인해 구속 기소했음에도
불구하고 범민련 조직체계를 부정하고 일방적으로 남측본부가 해외의 공동사무국의 지령을 받고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범민련은 규약에 남과북,
그리고 해외가 대등한 3자 합의제임을 명시하고 있고, 민경우 사무처장은 남측본부 사무처장으로서 행사의 공동진행을 위해 공동사무국에 회의 자료,
의견 등을 전달할 것 뿐"이라고 말했다.
이날 기자회견 참석자들은 검찰이 민처장이 국가기밀을
누설했다고 기소한 부분에 대해서도 의구심을 표명했다. 모든 자료를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한 것이 과연 국가기밀 누설에 해당되느냐는 것.
김 대표는 "북한과 접촉하는데 정부허가를 받고 하면 국보법 적용을 안받지만, 민처장의
경우 정부를 허가 받지 않았다고 국가보안법이라는 미명아래 '괘씸죄'에 걸린 것"이라고 주장했다.
손호철 민교협 상임공동의장은 "노무현 정부 2기 출범은 헌정사상 자유주의자가 다수파를
형성한 국회인데, 그동안 국가보안법이 존치했던 이유는 수구세력이 다수파였던 국회였기 때문이다. 이제는 국가보안법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 여부에
따라 2기 노무현 정부의 정체성을 규정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한나라당이 합리적 보수를 추구한다면, 근대적 사상과 자유를 보장할 수 있는 시금석이 될 수 있는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는 데
동의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손 교수는 "일제 식민지 시대의 '조선통감부 보안법',
미군정 치하의 '치안유지법', '이승만 자유당 정권 말기 4차 개정, 박정희 쿠데타 정권의 5차 개정, 전두환 군사독재 정권의 6차 개정,
노태우 정권의 7차 개정에서 보는 바와 같이 오늘날의 국가보안법은 독재와 폭력을 부추기는 친부패, 친타락, 친독재의 악법이며, 반국가, 반민족,
반통일의 악법 중의 악법이기 때문에 국가보안법이 폐지되지 않는 한 부패와 타락, 군사독대의 두려움과 사슬을 끊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편, 오는 13일 송두율 교수 3심 재판에는 독일
인권변호사인 한스 에버하드 슐츠(Hans-Eberhard Schults)씨가 방한해 그의 변론을 한 뒤, 16일 기자회견을 열
예정이다.
이와 함께 시민사회단체들의 국가보안법 폐지
운동은 급물살을 탈 전망이다. 법조계·시민사회단체들은 민변을 중심으로 '국보법 폐지위원회'를 결성해 국보법
3조를 비롯한 각 조문에 대해 위헌소송을 진행할 예정이다. 오는 9일 프레스센터에서 국보법철폐연대를 결성하는 대표자회의 기자회견을 연다. 또한
국가인권위원회는 국보법 백서를 만들었으며, 9월 중 국회에 국보법 폐지나 개정을 요구하는 법안 심의를 제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