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두율교수 저서 독후감 공모전
  제목    [필름 2.0] 그 남자 그 여자의 사정 홍형숙 감독
  글쓴이 펌 글쓴날 2004-06-07 18:47:55 조회 1563

그 남자 그 여자의 사정 홍형숙 감독
[필름 2.0 2004-06-04 21:20]
"어떤 사람들은 <경계도시>를 보면서 좀 더 송두율 교수의 억울한 입장을 대변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좀 더 직접적으로 말이죠. 하지만 그건 홍형숙의 다큐멘터리가 아니잖아요."

갑자기 두려워졌다. 송두율 교수와 부인 전정희 씨는 홍형숙 감독의 카메라를 전혀 의식하지 않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자신들을 둘러싼 낯선 카메라 앞에선 굳게 입을 다물던 두 사람이었다. 하지만 홍감독의 카메라 앞에선 거침없이 속내를 드러냈다. "이 사람들 카메라 앞에서 이렇게 솔직해도 되나 싶더군요. 그러면서 다큐멘터리스트로서 취재 대상과의 거리 두기를 고민하게 됐죠. 그대로 발을 헛디디면 낭떠러지로 굴러떨어지겠다 싶었어요."

쉴 수 있을 줄 알았다. 오랜 시간을 들여 송두율 교수에 관한 다큐멘터리 <경계도시>를 완성했으니, 이젠 끝이라고도 생각했다. 지난해 9월 22일 송두율 교수가 2주 일정으로 한국을 찾았을 때만 해도 그랬다. 37년 만의 귀향이었다. 기대감에 부푼 귀향이었지만, 실은 북한 간첩 김철수로 의심받고 있는 송두율 교수로선 국정원의 강도 높은 수사를 각오해야만 하는 모진 길이었다. "<경계도시>에는 송두율 교수가 귀향을 기대했다가 다시 실망하는 과정이 반복해서 나오죠. 그때만 해도 그 <경계도시>의 후속편을 찍게 될 줄은 정말 몰랐어요. 하지만 여론과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이 악화돼 갔고 결국 송두율 교수는 며칠 밤의 국정원 수사 끝에 결국 구치소로 이송되고 말았죠." <경계도시 2>는 그렇게 예상도 못한 방식으로 시작됐다.

홍형숙 감독과 <경계도시 2> 제작팀은 송두율 교수를 그림자 취재해온 다른 수많은 취재진들과는 접근도에서부터 전혀 달랐다. 2000년부터 1년 6개월 동안이나 홍감독은 송두율 교수의 귀향길을 취재했었다. 홍형숙 감독이 베를린에 머문 지 두 달이 지난 어느 날 송교수와 전정희 씨는 홍감독에게 아파트 열쇠를 맡겼다. "두 사람이 여름 휴가를 간 사이에 아파트에서 화분들을 좀 관리해 달라는 거였어요." 당시 송교수는 한국 정보 기관의 감시 대상이었다. "좀 놀랐죠. 믿음의 표시였는데 정말 이렇게까지 우리를 믿어도 되는 건가." 그런 신뢰는 송교수가 귀국 직후 고초를 겪기 시작했을 때까지도 이어졌다. 홍감독은 송교수가 묵었던 숙소에 함께 머물렀다. 그만큼 홍감독의 카메라는 늘 송두율 교수와 가족들에 밀착돼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홍형숙 감독은 자신이 거대한 산을 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제 카메라는 늘 안에서 밖을 바라보고 있었죠. 그 카메라의 위치라는 건 분명 송두율 교수의 자리였어요. 전 믿음과 부담, 신뢰과 객관의 경계에 서 있는 거였어요. 어떤 사람들은 <경계도시>를 보면서 좀 더 송두율 교수의 억울한 입장을 대변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좀 더 직접적으로 말이죠. 하지만 그건 홍형숙의 다큐멘터리가 아니잖아요." 송두율 교수는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이데올로기와 남북 문제의 한가운데 서 있는 인물이었다. 갈등의 복판에 있는 인물에게 카메라를 들이댄다는 건 어느 한쪽의 입장을 강요받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홍감독은 송두율 교수뿐 아니라 모두의 신뢰를 받는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싶었다. “나이가 먹어서였을까. 결국 사람만 남는 것이더군요. 문제는 사람이 남았을 때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도대체 알 수가 없다는 점이었죠. 두려워졌어요. 결국 다큐멘터리스트와 취재원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을 수밖에 없으니까 말이죠.” 송교수가 구치소에 수감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홍형숙 감독 역시 심적 갈등이 컸다. “카메라에 비치는 피사체의 감정을 너무나 속속들이 알아버린 거죠. 그래서 카메라를 들기가 더 어려웠던 거고요."

돌이켜보면 홍형숙 감독의 전작들은 늘 그렇게 갈등 위에 있는 '사람'에 초점을 맞추곤 했다. 홍감독의 존재를 처음 세상에 알렸던 <본명선언>과 <두밀리, 새로운 학교가 열린다> 등은 창씨개명과 농촌 학교 문제에 얽힌 사람들의 세상살이가 묻어나는 작품이다. <경계도시>도 마찬가지다. 북한 공작원으로 의심받으며 입국을 금지당한 재독 철학자 송두율 교수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갈등이자 삶이었다. 하지만 <경계도시2>는 또 다르다. 결론이 모호한 갈등의 한가운데에 카메라가 놓여지는 것이다. "공판장에서 재판을 참관하는데 놀라운 현실이 펼쳐지더군요. 현재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보수 진영과 진보 진영의 모든 스펙트럼을 대변하는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인 거였죠. 송두율 교수는 그 한가운데 있고요." 경계에 서 있는 삶을 카메라에 담는다는 것은 곧 다큐멘터리스트 스스로 경계에 선다는 것을 의미한다. 송교수와 가족들은 홍형숙 감독의 카메라를 믿었고, 홍감독은 이제 그 믿음과 다큐멘터리스트로서의 자의식 사이에서 위태한 경계를 지켜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송두율 교수의 숙소 너머를 바라보면서 홍감독이 느꼈던 공포는 바로 그것이었다. 홍감독 역시 이제 경계인이다.

1962년 생 ㅣ 1987년 서울영상집단 참여 ㅣ 1989년 노동자뉴스제작단 입단 ㅣ <삶의 자리 투쟁의 자리>(1990), <두밀리, 새로운 학교가 열린다>(1995), <변방에서 중심으로>(1997), <본명선언>(1998), <경계도시>(2002)



[오마이뉴스] "마지막 국보법 재판정에 선 심정으로..."(2004.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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