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37년만에 귀국한 송두율 교수가 지난해 국정원 출두를 앞두고 생각에 잠겨 있다. 왼쪽은 부인 정정희 여사. |
|
| ⓒ2004 오마이뉴스 남소연 |
| "국가보안법이 죽기 전에 용트림하고
있다. 남북이 군사회담을 갖고 파장 코드까지 맞추는 판에 무슨 국가보안법이냐?"
구속 7개월. 서울구치소 철창에 갇힌
송두율 교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두 가지 현실 사이에서 고뇌하고 있었다. 남북장성들이 만나 한반도의 군사긴장 완화를 위한 합의문을 만들고,
남북간 사실상의 모든 항구를 개방함으로써 교역확대에 나서는 판에, 구시대 유물인 국가보안법에 따라 영어의 몸이 되는 '이중적 현실'은 한 편의
블랙코미디다.
<오마이뉴스>는 지난 4일 서울구치소에 갇혀있는 송 교수를 면회했다. 지난해 9월 37년만의 귀향에
어린아이처럼 기뻐하는 철학자의 명랑한 눈빛은 간 데 없고, 을씨년스런 구치소의 풍광 아래서도 기죽지 않고 쭉쭉 뻗는 나무들처럼 분노의 눈빛으로
국가보안법 철폐를 주장하고 있었다. 송 교수는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에게 반가움의 인사로 구치소 면회실 이중창에 손을 대며 웃었다.
"정치는 선거로 개혁할 수 있지만, 법과 언론은…"
송 교수는 "법도 아닌 법인 국가보안법이 반세기 이상
이 나라를 지배하고 있다"며 "이것은 매우 비정상적"이라고 밝혔다. 그는 "공판에서도 밝혔듯이 국가보안법이 유지되는 한 자유민주주의 체제는 있을
수 없다"며 "열린 보수를 지향한다는 이 나라의 보수주의자들은 도대체 어떤 보수주의자들이냐"고 개탄했다.
송 교수는 "얼마 전
박근혜 대표가 노무현 대통령의 특강에 대해 논평하면서 '한국의 보수주의자들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말고 모두 바꿀 수 있다'고 말하면서도
국가보안법 폐지에 대해서는 가로막고 있다고 밝혔다"며 "도무지 이런 수준에서 뭘 하려는 것인지 참으로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는
"법이란 게 도대체 뭔가"라고 질문을 던지고, "법이 그 사회의 정신과 도덕성에 열려 있지 않다면 그 자체가 모순덩어리인 셈"이라고 밝혔다. 송
교수는 "이 사회에서 개혁의 마지막 보루는 법과 언론인 것 같다"며 "정치는 국민의 민주적 의사에 따라 선거를 통해 개혁할 수 있지만, 법과
언론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고 개탄했다.
송 교수는 "나는 마지막으로 국보법 재판정에 섰다는 심정으로 재판을 받고 있다"며
"서울구치소에 수감된 사람 중 학자는 나 혼저"라고 말했다. 그는 "구치소 안에서 시적 상상력을 발동하나 차분히 앉아 글을 쓸 수 있는 처지가
못 된다"며 "37년간 의자생활을 했던 터라 엎드려서 뭘 쓴다는 게 참 쉽지 않다"고 말했다.
송 교수는 "수 차례 구치소 측에
의자를 요청했으나 매번 거절당했다"며 "무릎이 아파 엎드려서는 도저히 글이 안 써지지만, 교도관들은 한국사람이라면 당연히 엎드려 글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송 교수는 "그저 단어나 몇 가지 메모를 해두는 정도"라며 "조선시대에 귀향살이 하러 간
사람들은 자연 속에서 살면서 농사도 지어 글쓰기가 제법 잘됐을 테지만, 여기 이 감옥에 갇힌 사람들은 두뇌까지 단절된 느낌을 받는다"고 말했다.
그는 "감옥 안에서는 도저히 논리적 사고를 할 수 없다"며 "하버마스에게 보내는 한 통의 축하편지도 쓰기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보석신청, 변호인단과 상의해 결정할 듯
그는 "뮌스터대에서 '공간의 사회학' 강의를 할 생각이었는데
두뇌는 공간이 주는 압박감을 심하게 느끼는 것 같다"며 "극도로 배제된 공간에서 사람이 느끼는 압박감은 훨씬 더 심각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제 7개월째 감옥살이를 하고 있다"며 "많은 사람들은 겨울징역이 여름징역보다 낫다고들 하지만 나는 여름이 더 힘들다"며
"겨울은 추워도 옷을 껴입든 운동을 하든 어떻게 해서든 이겨낼 수 있지만 여름은 열 때문에 잠을 잘 못 자 더욱 힘들다"고 말했다.
송 교수는 "건강상태가 심각하다"며 "보석신청을 하고싶다"고 말했다. 그는 "왜 재판을 갇혀서 받아야 하는가, 꼭 가둬놓고 재판을
해야 한다는 게 이해가 안 된다"며 "독일에서는 마지막 공산당 당수도 출퇴근하면서 조사를 받았다, 무조건 잡아놓고 재판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송 교수는 "선고를 앞둔 마당에 지금에 와서 보석신청을 하는 것이 시기적으로 꼭 좋은 선택은 아닌 것 같다"며
"변호인단과 상의해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송 교수는 또 "어제(3일) 평생 감옥에서 산 좀도둑을 만났다"며 "그 사람은 20년째
감옥살이를 하고 있는데 그런 사람이 징역살이를 마치고 나가면 이 사회에 대한 보복심리만 생길 뿐 무엇이 있겠냐"며 구치소에 비친 한국사회의
우울한 단면을 전달했다. |
2004/06/06 오후 12:00 |
| ⓒ 2004 OhmyNews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