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심 제3차공판 심리 내용 및
참관기
대학생모임 박강성주 정리
1. 들어가며
15일 학교에서 큰 행사를 치르고 난 뒤, 그 뒷풀이에
참석했습니다. 오고가는 폭탄주에
너도나도 망가지는(?) 그런 자리였습니다(참고로 저는 술을 잘 못합니다). 그리고 새벽
에 집에
들어가 4시간을 자고 나서 인천에서 열리는 6.15 남북마라톤대회에 참여했습니다.
6.15km를 뛰었는데요 전날 뒷풀이의 후유증으로 좀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원래 계획은
마라톤을 끝내고 1시에 있을 기자회견에 참석한 뒤에 바로 공판을 지켜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마라톤대회가 1시간 가량 지연되서 시작되는 바람에 기자회견에는 참석할 수
없었습니다(1시 40분쯤에 도착했는데 이미
끝났더라구요). 그리하여 저는 1시 50분쯤에
공판이 열리게 될 법정에 조심스레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2.
들어와서
1) 태어나서 처음으로 들어가 본 법정이었습니다. 이래저래 긴장하면서 세이빙송 회원
님들을 찾기 위해 이리저리
둘러보았습니다.
2) 2시 5분정도에 공판이 시작되었던 것 같습니다.
"피고인 입장"... 저는 떨리는 마음
으로 송두율 교수님이 들어오시게 될 문에 시선을 고정시켰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처음으로 송두율 교수님을 두 눈으로 직접 뵐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때 송 교수님
에게 아주 반갑게 손을 흔드시는 분이
계셨습니다. 바로 정정희 여사님이셨습니다.
교수님은 정 여사님과 방청객들에게 가볍게 손을 흔드신 다음 피고인석으로 향했습니다.
3) 변호인측 증인의 증언 및 심문 정리(강정인 서강대 정외과 교수)
(1) 변호사측 심문
- 강정인
교수님은 정치사상사를 전공하신 분으로 내재적 접근법(송두율 교수님이 주장
했던 북한연구방법론)에 관한 논쟁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던
분입니다.
- 모 일간지에서 강 교수님이 내재적 접근법에 비판적이라는 것에 주목해서 원고를
청탁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교수님은
자신의 글이 정치적 논쟁의 빌미를 제공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에 그 청탁을 거절했다고 합니다.
- 내재적 접근법에 관한 강 교수님의
입장 설명: 송두율 교수님의 접근법 자체를 부정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가지고 있는 장점들을 인정한다는 전제 위에서 그것의 약점
을 비판함. 내재적 접근법의 대표적인 장점은 북한연구에 있어 반공의식을 청산·극복
하는데 도움이 되었다는 것임.
- 1심
판결문에 나왔던 "선전선동" 부분에 관한 입장: 송두율 교수의 저서에는 일정
부분 "선전"에 해당되는 요소가 있다고 생각함. 하지만
중요한 것은 바로 전체를 바라
봐야 한다는 것임... 그리고 선전이냐 아니냐 하는 것의 구분은 그 자체가 매우 모호한
것임.
예컨대, 박정희 독재정권 시절에는 북한의 모든 행위가 적화통일의 전략으로
이야기되었음. 그렇다면, 그러한 것은 선전으로 봐야 하나,
아니면 객관적인 서술로
봐야 하나?... 또한 결혼의 개념을 규정하는 것에서도 이러한 점을 찾아볼 수 있음.
여성학자들의 경우,
"사랑하는 두 사람의 결합"이라는 결혼의 일반적인 통념을 거부
하고 "여성들을 억압하는 기제"의 하나로 결혼을 규정함. 이러한 경우
여성학자들의
개념규정을 선전으로 봐야 하나, 객관적인 서술로 봐야 하나?... 이러한 예시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선전과
서술의 구분 자체가 매우 어렵다는 것임. 다시 말해서,
그 구분이 모호할 뿐만 아니라 자의적으로 해석될 위험이 있다는 것임.
-
학문의 자유와 관련된 견해: 학문의 자유가 침해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함. 그에
대한 시시비비는 "권력의 장"(권력의 장이었는지 다른
것이었는지 좀 헷갈리네요)이
아닌 "학문의 장"에서 가려져야 함... 내가 미국에서 귀국해 일부러 증언을 하는 이유
도 송 교수에
대한 유죄판결이 학문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임.
(2) 반대심문
- 검사의 질문: 송두율 교수의 내재적
접근법에 따르더라도 북한에 대한 비판이 가능
한가? 예를 들어, 김일성 1인 장기집권·권력의 부자세습·비민주적인 선거제도 같은
것들의 경우... 증인의 답변: 내재적 접근법에 따른다면 그러한 문제들을 쉽게 비판할
수 없는 부분이 있음.
- 검사의
질문: 송두율 교수는 조선로동당에 입당을 했고 그로부터 자금지원을 받았음.
그렇다면 그러한 상태에서의 저술활동을 객관성과 공정성이 담보된
순수학문활동으로
볼 수 있는가?... 증인의 답변: 로동당 입당과 자금지원 부분은 잘 모르는 부분이기
때문에 말하기가 곤란한
입장임.
- 강정인 교수님이 한국일보에 기고했던 글("송두율씨와 학문의 자유", 2004년 4월 7일자)
에 관한 이야기가 오고
감. 그 글은 송두율 교수님에 대한 유죄판결이 "학문의 자유"를
본질적으로 침해한 것이라는 내용임.
(3) 변호인측
추가심문
- 김형태 변호사님의 질문: 이 부분에서 강정인 교수님은 검사측의 심문을 재치있게
비판함. 즉, 검사측이 송두율 교수님의
로동당 입당과 지원문제를 자꾸 거론하는 것을
지적하며 그것이 자신에게는 하나의 "선전"으로 들렸다는 점을 이야기함. 그리고 이
대목에서 방청객들이 웃음을 터뜨림. (^^)
- 또 다른 변호사님의 질문: 이 부분에서 "적을 이롭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관한
이야기가 오고 감(사실 이에 관한 내용은 첫 번째 변호인측 심문에서 잠깐 언급되었음).
이적행위란 과연 무엇인가? 북한의 잘못을
알면서도 덮어주는 것이 이적행위인가, 아니면
북한을 개혁·개방으로 유도하면서 그 대안을 제시해주는 것이 이적행위인가?
(4) 재판부측 심문
* 재판관 1
- 재판부는 북한연구에 대한 경험이 전무함. 따라서 재판부의 질문 수준이 다소
낮더
라도 그냥 소박한 질문이거니 하고 들어주기 바람.
- 재판부가 보기에 송두율 교수의 내재적 접근법은 북한을 너무 평면적으로
바라보고
있지 않나, 혹은 북한에 대해 편향적으로 바라보고 있지 않나 하는 것이 솔직한 생각임...
그리고 재판부의 관심은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고 바로 내재적 접근법이 우리나라
안보상황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 하는 것임. 즉, 당시 학생들로 하여금 북한을 무비판적
으로 수용하게 함으로써 우리나라 안보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됨.
- 또한 피고는 북한의 긍정적인 측면만을 보고 있는 것
같은데, 이것이 내재적 접근법에
따른 당연한 귀결인지, 아니면 피고가 가지고 있는 이념적 성향이나 로동당 입당에
따른 정치적
고려가 작용된 것인지가 궁금함.
* 재판관 2
- 증인은 텍스트와 저자를 분리해서 봐야 한다는 취지의 답변을 했던 것
같은데 그것이
정말 올바른 것인지 의문스러움. 예를 들어, "곡학아세"같은 경우에는 이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나? 텍스트와 저자를
분리해서 생각해야 한다는 입장에서 보면, 곡학아세는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인가?... 이에 대해 강정인 교수님은 곡학아세의 경우, 학문의
자유가 아닌 학자의 "윤리적" 문제라는 측면에서 판단해야 한다고 답변함.
(5) 송두율 교수님의 발언
- "학문의
코드"와 "권력의 코드"는 엄연히 다른 것인데 이 사건이 법정에서 논의되고
있는 것 자체를 이해할 수 없음... 그리고 강정인 교수가
말한 내용 중에 반박하고
싶은 부분이 있지만 현재 피고인의 처지에서 법정에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는 없음.
만약 이 자리가
세미나 자리였다면 하루종일 토론을 할 수도 있음.
4) 변호인측 증인의 증언 및 심문 정리(김양현 전남대 철학과 교수)
(1) 변호사측 심문
- 김양현 교수님은 1990년부터 1997년까지 독일의 뮌스터 대학에서 공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송두율 교수님의 세미나식 수업에 참여했습니다.
- 송두율 교수님의 방북 관련: 송 교수님은 김일성대에 강의하러 가기 전에
서울대의
초청이 무산된 것에 대해 많이 아쉬워하셨음. 92년 5월에 북한을 다녀오신 뒤에 북한
에는 박승덕
박사(주체사상연구소?)를 제외하고는 철학자가 없는 것 같다고 말씀하셨음.
그리고 북한에 가서 주체사상이 비학문적이다고 비판하셨다는 말을
들었음. 이러한
비판에 대해 학자들은 일부 인정하는 듯 했으나 관료들의 경우에는 그러한 비판을 수용
하지 않았다고 들었음. 또한
송두율 교수님은 북한의 농촌현실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
하셨음.
- 송두율 교수님은 남한과 북한을 항상 짝을 지어 설명하셨음.
그러한 설명에서의 핵심
은 현대성·비현대성, 동시성·비동시성, 탈민족성·민족성 등의 세 가지 "짝개념"들
이었음. 다시 말해
남한의 경우에는 현대성/동시성/탈민족성의 성격을 보이는 반면에
북한은 비현대성/비동시성/민족성의 성격을 보임. 이러한 것을 더욱 쉽게
설명하기
위해 비유를 들자면, 남한은 한마디로 잘 살고 세련된 곳인 반면에 북한은 사투리를
쓰고 있는 "촌놈"이라고 볼 수
있음(김양현 교수님의 비유).
- 통일문제에 관해 송두율 교수님은 "제3의 방식"을 강조하셨음. 다시 말해서, 베트남식
의
적화통일도 독일식의 흡수통일도 아닌 제3의 또 다른 방식을 찾으려고 하셨다는
것임. 또한 통일은 "사건"이 아니라 "과정"이라는 점도
강조하셨음. 한마디로 통일
자체 보다는 "통일과정"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임... 그리고 여기에서의 통일은 단순히
"과거의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미래의 고향"을 창조
해가는 것이라고 하셨음.
- 송두율 교수님의 제자로서
하고 싶은 말: 송두율 교수님은 "남북해외학자 통일학술
회의"를 중재하시느라 상당히 애를 쓰셨음.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말못할 여러 가지
고충
을 느끼셨던 걸로 알고 있음. 들은 말로는 남한 학자들은 그 학술회의에 어떻게 해서
든지 참석해보려고 기를 썼고, 반대로
북한 학자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빠져보려고 애를
썼다고 함. 그러한 과정에서 조율의 역할을 맡은 송두율 교수님이 상당히 어려움을
겪으셨다고 생각됨.
- 그리고 이 사건과 관련해서 아쉬운 것은 송두율 교수님의 학문세계가 너무 협소하게
평가되고 있다는
사실임. 송 교수님의 학문적 관심은 북한·통일문제가 주요한 것이지만
그것이 학문적 관심의 전체라고 할 수는 없음. 송 교수님의 학문세계는
북한·통일문제
뿐만 아니라 사회주의, 제3세계, 여성문제, 환경문제 등 매우 폭넓은 범위를 가지고
있음. 특히 송 교수님은
예술분야에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계신데 이러한 사실은 전혀
알려지지 않았음.
- 또한 송두율 교수님은 북한에 대해서 분명히 비판을
하셨음. 송 교수님은 북한에
가셨을 때 주체사상이 비학문적이라고 비판하셨고, 북한이 언제까지 자폐증에 걸린
것처럼 자기만의
세계에만 갇혀있을 것인가 하고 지적하셨음. 이처럼 송 교수님이
북한에 가서 직접 북한을 비판하셨다는 것은 분명히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됨.
(2) 반대심문
* 검사 1
- 송두율 교수님이 북한 로동당의 김철수(정치국 후보위원)인가에 대한 이야기가 오고
감.
* 검사 2
- 송두율 교수님이 독일에서 "유학생 포섭활동"을 했는가에 대한 이야기가 오고 감...
이에 대해
김양현 교수님은 당시에 유학생 뿐만 아니라 송 교수님 자신도 이데올로기
적인 문제에 상당히 조심스러워했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를 경계하는
상황이었다고
답변함. 결국 유학생 포섭활동은 현실적으로도 그렇고 실제로도 없었다고 증언함.
(3) 재판부 심문
*
재판관 1
- 송두율 교수님이 독일에서 진짜 교수로 있는지에 관한 이야기가 오고 감. 이 문제는
독일의 교수제도가 한국의 그것과
다르다는 것에서 비롯됨... 교수신분에 관한 질문이
나오자 방청석에서는 약간 어이없다는 뜻의 웃음소리가 흘러나왔고 답답해서인지 송두율
교수님이 직접 독일의 교수제도에 관해 짧은 강의(?)를 해주심.
* 재판관 2
- 증인은 송두율 교수가 북한을
비판했다고 했는데 그것이 송두율 교수의 저서에 나와
있는 것인가 아니면 단순히 들었던 이야기를 말한 것인가?... 이에 대해 김양현
교수님은
『전환기의 세계와 민족지성』(서울: 한길사, 1991)에 그 내용이 나와있다고 답변하고
해당부분에 대한 자료를 재판관에게
보여줌.
- 송두율 교수님의 로동당 입당이 당시에 누구나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였는가에 대한
이야기가 오고 감.
(4) 김양현 교수님의 발언
- 김 교수님은 송두율 교수님이 "김구 이래 최대의 민족주의자"라고 말씀하심. 그리고
오늘 재판과 관련해서 특별히 진술서를 작성해왔다고 말씀하셨고 재판관은 이를 검토함.
재판관이 왜 진술서를 작성했는지에 관해서
묻자, 김 교수님은 송두율 교수님의 제자
로서 뭔가를 해야겠다는 인간적 도리의 측면에서 진술서를 작성했다고 답변하심...
재판부는
이 진술서를 즉석에서 증거자료로 채택함.
3. 나오면서
- 태어나서 처음으로 재판이라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내용은
제가 보기에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중심으로 정리한 것입니다. 또한 내용 중에는
제가 잘못 들었던 것도 있을 수 있겠습니다.
- 공판을 지켜보면서 개인적으로 "검사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만큼 검사측의 질문들은 그 수준이 매우 낮은 것들이었습니다.
더군다나 질문을 하는 것 자체도 자신들의 논리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니라, 어떤 정치
학자는 송두율 교수의 내재적 접근법을 이렇게 비판했다, 라는 식으로 단순하게 인용을
하는
수준이었습니다. 아무튼 검사들 덕분에 그날 공판이 그나마 지루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참고로 공판은 총 3시간 정도 걸렸습니다).
- 공판이 끝나고 송두율 교수님이 퇴장을 하실 때였습니다. 정정희 여사님, 송준님을
비롯한 몇몇 분들이 송두율 교수님에게로
달려갔고 짧게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저희 방청객들은 송두율 교수님께 힘내시라고 힘차게 박수를 쳐드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