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두율교수 저서 독후감 공모전
  제목    <송두율 교수 재판> 관람기: 항소심 3차 공판
  글쓴이 장시기 글쓴날 2004-06-19 18:37:57 조회 1998

<송두율 교수 재판> 관람기: 항소심 3차 공판

   2004년 6월 16일. 인천은 ‘6.15 남북공동선언’ 네 돌을 맞아
한반도의 남쪽을 방문한 북쪽 손님들을 환송하느라고 북적거린다.
서해에서는 한국전쟁 이후에 미국이 일방적으로 선포한 NLL
지역에서 남과 북의 함정이 한국전쟁 이후 최초로 서로 평화로운
교신을 주고받았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또한 남과 북이 대치하고
있는 휴전선에선 50년 동안 서로 비방하던 확성기 선전탑을
철거하느라고 남과 북의 군인들이 땀을 흘리고 있다는 소식이다.
아직도 미국은 북을 세계의 한 구성원으로 받아들이고 있지
않지만, 한반도에 있는 남과 북의 구성원들은 서로서로가 한반도를
구성하고 있는 주인이라는 것을 화인하고 있다. 지난 50년 동안
반복하였듯이 한반도의 남과 북이 서로서로를 인정하는 것은 마치
살얼음판을 건너는 것처럼 아슬아슬한 일이다.

   베트남식 적화통일도 아니고 독일식 흡수통일도 아닌 한반도식
연합제나 연방제로 나아가는 상생의 통일을 위하여 한반도 전체가
들썩거린다. 그러나 이런 통일의 분위기 속으로 들어오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고립된 섬이 있다. 이 섬은 2004년 한반도의 곳곳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민주화와 통일의 열정들과 차단되어 있다. 이
섬은 현재와 차단되어 있는 것 뿐만 아니라 한반도의 남쪽 전체를
20, 30, 혹은 50년 전의 과거로 되돌려 놓으려고 한다. 독재와
군사정권의 파쇼가 귀신이 되어 검사들과 판사들의 탈을 쓰고
나타난다. 그 섬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7년형의 중형을 선고받은
송두율 교수에 대한 재판이 이루어지고 있는 서울 고등법원
309호실이다. 현재와 미래를 바라보지 않고, 끊임없이 독재와
파쇼의 과거로만 치달으려는 저 검사들과 판사들은 어느 나라
사람들인가?

   오늘의 변호인단 증인으로 출석한 사람들은 서양 정치사를
전공하는 강정인 교수(서강대)와 철학을 전공하는 김양현
교수(전남대)이다. 강정인 교수는 미국에서 공부한 보수주의(혹은
자유주의) 학자로서 지난 1993년 송두율 교수의 내재적 접근법에
대한 비판으로 북한학 연구방법론에 대한 논쟁을 불러일으킨
장본인이다. 지난 항소심 2차 공판에서 북한학을 전공한 김연철
교수(고려대)와 달리 송두율 교수의 학문적 성향과 전혀 다른
증인(강정인 교수는 연구년으로 미국에 체류하고 있기 때문에 그의
왕복항공료는 송두율 교수 석방대책위에서 지불할 계획이다)이
변호인단의 증인으로 출석하였다는 것은 21세기 마녀재판의 정당성
여부를 떠나서 학문적으로 흥미로운 사건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강정인 교수는 자신이 “친북도 아니고 반북도 아닌 학자”라고
소개하면서 과거 반공주의의 유산이 오늘날의 세계를 친북이냐
반북이냐의 논리처럼 친미냐 반미냐의 이분법으로 재단한다고
재판부를 야단친다.

   강정인 교수는 과거의 근대 자본주의 학문이 지녔던 정치적
당파성이나 지식인의 입장을 모두 부정하고 희화화하는 현재의
학문적 흐름을 따라가는 교수이다. 그는 북한에 대한 연구의
입장은 내재적 접근과 외재적 접근의 두 가지가 있다고 정의한다.
그는 내재적 접근을 내부자적 시각과 동일시하고, 외재적 접근을
외부자적 시각과 동일시한다. 이러한 정의는 송두율 교수가
재판정에서도 여러 번 이야기했던 것처럼 내재적 접근이 지니고
있는 탈근대성이나 생태주의적 시각을 등한시하고 여전히 근대의
이분법적 오류에 빠져드는 것이다. 냉전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던
시대에 사회주의 국가들을 바라보는 시각은 오직 외부자적 시각,
즉 서구 자본주의 국가들이 바라보는 반공 이데올로기의 시각만이
존재했다. 이러한 반공 이데올로기의 시각에 대항하여 사회주의를
지향하고 완성시키고자 하는 사회주의 국가들 내부의 시각, 즉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의 시각이 있었다. 반공 자유주의가 근대
자본주의 체제의 지배적 이데올로기였다면, 사회주의는 근대
자본주의의 저항적 이데올로기였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냉전
이데올로기가 해체되면서 위와 같은 내부자/외부자, 주체/객체,
자유주의/사회주의의 이분법적 당파성이나 입장은 모두 객관적
서술을 상실하고 각각의 선전ㆍ선동이라고 희화화시킨다.

   송두율 교수가 주장하는 내재적 접근은 근대 자본주의의
이분법을 긍정하여 어느 하나의 입장을 취하는 것도 아니고, 또한
이분법을 모두 부정하여 학문이나 언어적 서술을 모두 희화화하는
것도 아니다. 송두율 교수의 내재적 접근은 내부자/외부자,
주체/객체, 자유주의/사회주의의 이분법을 극복하고자 한다.
내재적 접근의 내재성(immanence)은 개인이나 집단, 혹은 생명체와
비생명체를 모두 포함하는 모든 존재가 지니고 있는 내재적 힘을
일컫는다. 따라서 내재적 접근은 내부자와 외부자, 주체와 객체,
그리고 자유주의와 사회주의를 모두 포용하면서 둘의 대립과
갈등이 아닌 저 너머를 바라보고자 한다. 근대가 아닌 근대 너머의
탈근대(The trans-modern)를 바라보고자 하는 송두율 교수의
내재적 접근은 인문학적 시각에서 인간이나 동물의 구분으로
생명체를 인식하거나 남성이나 여성으로 인간을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동물이거나 사회적 존재로서의 남성이나
여성으로 바라보는 것이고, 혹은 사회과학적 시각에서 이 세계를
서양과 동양의 이분법으로 보거나 한반도를 남과 북의 이분법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전지구적 관점과 한반도적 관점을 지녀야만
가능하다.

   “친북도 아니고 반북도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21세기를
사는 한 자유주의 학자의 뼈아픈 고백이다. 그러나 송두율 교수는
질문할 것이다. “그러면, 이 두 동강이 난 한반도는 그대로
내버려 둘 것인가?” 강정인 교수는 아마도 아무런 대안이 없을
것이다. 송두율 교수는 대안을 가지고 있다. 내재성의 측면에서
모든 존재는 변화하지 않고 그대로 존재할 수가 없다. 모든 존재는
관계적 존재이다. 모든 존재는 좋거나 나쁘거나 어떤 또 다른
존재로 변화한다. 따라서 송두율 교수가 주장하는 내재적 접근은
스스로 존재하는 힘을 지니고 있는 북이나 남이 오늘날의 존재가
되었느냐는 근대적 관계에 대한 탐구이고, 어떻게 해야만 남북이
분단으로 야기된 소통불가능성을 소통가능성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가에 대한 연구이다. 따라서 송두율 교수는 냉전으로 서로
대립하고 죽이는 한반도의 과거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며, 강정인
교수처럼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라는 허무주의적인 현재에
대한 인식도 벗어나서 새로운 통일의 미래를 창출하고자 하는
희망으로 가득 차 있다. 송두율 교수가 나아가고자 하는 일이 바로
과거에 살고 있는 검찰이나 판사, 그리고 현재에 살고 있는 강정인
교수와 같은 사람들을 살리고자 하는 미래의 삶이다.

   2004년 6월 16일, 서울 고등법원 309호실이라는 작은 섬에는
과거인과 현재인과 미래인이 함께 있다. 그러나 문제는 과거인은
검사와 판사이고, 현재인은 허무주의적 시각으로 가득 찬 자유주의
학자이고, 미래인은 징역 7년을 선고받고 피고인석에 앉아있는
송두율 교수이다. 법정은 강정인 교수가 이야기하는 “객관적
서술의 불가능성”, “저자와 텍스트의 관계”, 그리고 “학문의
당파성”과 같은 근대적이거나 후기 근대적인 전문적 학술용어가
등장한다. 그러나 검찰과 판사의 증인질문은 여전히 과거의
박정희나 전두환이 만든 냉전의 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강정인
교수는 송두율 교수이 저술들이 “이적행위”를 했다는 판단에
대하여 “도대체 이적행위가 무엇이냐”고 되묻는다. 북을 적이고
규정하니까, 북에 대한 묘사는 오직 “적화야욕이나
평화공세”라는 둘 중의 하나밖에 없다고 꼬집는다. “미국에 대한
종속성”이나 “미국에 대한 의존성”이 무슨 차이가 있는가?
저술활동이 한 국가의 안보를 위협한다면, 도대체 그런 국가의
정당성을 어떻게 이야기할 것인가? 주임판사는 송두율 교수에게 할
말이 있느냐고 묻는다. 송두율 교수는 “차라리 밤을 새워
세미나를 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한다. 여전히 분단의 그늘에서
발버둥치고 있는 과거인과 현재인의 대화를 들으면서 미래인으로
살고자 하는 송두율 교수는 얼마나 답답했을까?

   송두율 교수의 막막하고 답답한 갈증을 다소나마 해소시킨
사람은 송두율 교수의 제자이기도 한 김양현 교수였다. 김양현
교수는 송두율 교수가 북한(남한이나 북조선이라는 언어는
가능하지만, 북한이나 남조선이라는 말은 한반도의 남과 북에서
만든 허구적 언어이다. 비실체적인 이러한 언어가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 바로 우리를 근대적 기형아로 만든다고
생각한다.)사회의 상층 지도부가 “북한사회의 도덕성과 이상에
대한 지향”을 지니고 있지만 “중간관료의 부패성이 극심하다”고
자주 지적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황장엽이 아직도 주체사상을
신봉하고 있지만, 송두율 교수는 “합리성과 정보성이 부족한
주체사상의 비학문성”을 역설하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송두율
교수는 항상 “동북아 관점에서 한반도의 남/북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에 대하여 고민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송두율 교수가
이야기하는 주요한 화두는 항상 “민족과 탈민족, 동시성과
비동시성, 현대성과 주체성(세계화와 주체화)”는 것이다.
남북분단으로 만들어진 북의 민족성과 남의 탈민족성, 남이 지니고
있는 서구적 근대와의 동시성과 북이 지니고 있는 비동시성, 남이
지니고 있는 세계화의 현대성과 북이 지니고 있는 비서구적
주체성을 어떻게 상생시키느냐가 송두율 교수의 주요관심사라는
것이다.

   김양현 교수는 송두율 교수의 말을 인용하여 “북은 촌놈이며
사투리를 쓰고, 남은 도시인이며 세련됨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이런 측면에서 “통일은 사건이 아니라 과정이고, 그 과정은
시골이나 도시가 아닌 제 3의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송두율 교수는 역설했다는 것이다. 서구적 근대화라는 근대
자본주의화 과정에서 시골의 방식이었던 베트남식 통일도 아니고
도시적 방식이었던 독일식 통일도 아닌, 시골과 도시가 상생적으로
조화를 이루는 한반도식 통일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통일방식은 ‘6.15 남북공동선언’이 지향하는 영방제나 연합제
통일방식일 것이다. 따라서 송두율 교수는 항상 “한반도의 통일은
아무도 밟아보지 않은 미래의 고향을 찾아가는 길이다”라고
말하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송두율 교수가 지니고 있는 한반도
통일의 논리는 탈근대성의 논리이며 생태주의적 시각이다. 김양현
교수는 송두율 교수가 자주 예술철학이나 건축학을 전공했으면
하는 소망을 피력하기도 했다고 이야기한다. 근대의 지배적인
학문이었던 사회과학의 시각에서 벗어나 미래를 예측하고 과거나
현재와 다른 아름다운 미래를 건설하고자 하는 송두율 교수의
통일에 대한 논리가 어떻게 생겨났는지 이해가 간다. 

   검찰은 다시 “송두율 교수의 영향을 받은 주사파 때문에
국가가 어려운 상황이었다”고 이야기한다. 그들은 강정인 교수가
“주사파의 탄생계기는 전두환 철권통치와 5.18 광주항쟁에 대한
미국의 방조”였다는 이야기를 전혀 듣지 않았다. 주사파를 여전히
고집하고 있는 사람은 공안검찰이나 미국이 신주단지 위하듯
귀하게 여기고 있는 황장엽이다. 현재의 이야기도 듣지 않으려고
하는 자들이 미래의 이야기에 귀를 귀울이려고 하겠는가? 다시
답답함과 암울함이 밀려온다. 아니나 다를까, 판사들도 또한
독일에서 송두율 교수가 지니고 있었던 교수신분에 대하여
질문한다. 대한민국이나 미국과 전혀 다른 교수제도를 가지고 있는
독일의 교수제도를 국가보안법의 잣대로 재단하려고 한다. 갑자기
독일의 히틀러 치하에서 온 몸으로 저항했던 시인이며 극작가였던
브레히트가 히틀러 치하의 지식인들에게 보낸 시가 생각난다. 그
시를 검사들과 판사들에게 들려주고 싶다. 제발 송두율 교수에게
귀를 귀울이고 그가 이야기하는 통일의 논리를 배우려고 해라. 

<당신들이 아무것도 배우려 하지 않는다고 나는 들었다>

당신들이 아무것도 배우려 하지 않는다고 나는 들었다.
추측컨대, 당신들은 백만장자인 모양이다.
당신들의 미래는 보장되어 있다. - 미래가
당신들 앞에 환히 보인다. 당신들의 부모는
당신들의 발이 돌멩이에 부딪히지 않도록
미리 준비해 놓았다. 그러니 당신은
아무것도 배우지 않아도 된다. 당신은 지금 그대로
계속해서 살 수 있을 것이다.

비록 시대가 불안하여, 내가 들은 대로,
어려운 일이 생긴다 하더라도,
당신에게는 만사가 잘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 지를
정확하게 말해 줄 당신의 안내자들이 있다.
어떤 시대나 타당한 진리와
언제나 도움이 되는 처방을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서
그들은 모든 요령을 수집해 놓았을 것이다.

당신을 위하여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는 한
당신은 손가락 하나 움직일 필요가 없다.
그러나 만일에 사정이 달라진다면
물론 당신도 배워야만 할 것이다.


경계인을 위한 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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