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두율교수 저서 독후감 공모전
  제목    [시민의신문] 송두율 교수, “죽이겠다” 협박받아
  글쓴이 펌 글쓴날 2004-07-26 15:30:58 조회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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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냉전전사들이 꿈틀거리고 있다

지난 21일 집행유예로 풀려난 송두율 교수가 극우세력의 협박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주고 있다. 송 교수와 가까운
사이인 라이너 베르닝 박사는 독일 신문에 기고한 글에서 “한국의
극우 반공주의자들이 송 교수와 송 교수 지인들에게 전화로
죽이겠다는 협박을 가하고 있다”며 “송 교수는 자유의 몸이
되었지만 여전히 자유롭진 못하다”고 말했다. 베르닝 박사는
“독일 정부가 송 교수를 위해 나서야 한다”고 강력히 촉구했다.

베르닝 박사는 북독일 에센시에 있는 코레아협의회의 회장이다.
그는 이번 주에 쾰른의 파피로싸 출판사에서 출간되는 <북한은
어디로 향하는가-사회관계, 발전경향, 전망>을 송두율 교수와 송
교수 석방 유럽대책위 위원인 최현덕씨와 공동으로 발행했다.
이 글은 2004년 7월26일 월요일에 이곳 베를린에서 발행되는
진보적인 신문인 <융에 벨트>(젊은 세계)에 동시에 나온다.
베르닝박사의 허가로 우리 <시민의 신문>의 독일통신원 이주희씨의
번역으로 실는다. <편집자주>


지난 수요일 서울의 고등법원은 ‘북한의 간첩’이라고 낙인찍혔던
뮌스터대학 송두율 교수에 대한 2심 재판에서 방향을 제시하는
판결을 내렸다. 송 교수는 3년의 집행유예로 3평방미터의 좁은
구치소감방에서 즉시 석방되었다. 송 교수는 2003년 9월말 37년의
망명 후 가족과 함께 인천공항에 내린 뒤 한국의 국정원(NIS)과
검찰의 협공에 빠졌다. 그를 초대한 측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인데 그 사업회 간부들은, 한국 재야의
중심인물이었고 군사독재에 오랫동안 저항했던 송 교수의 귀향의
시기가 무르익었다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달라졌다. 국가정보원과 검찰 등에 소속된
격분한 이 나라의 냉전 전사들은 송 교수 체포에서 중심역할을
했다. 2003년 12월2일 시작된 재판의 주된 기소항목은 ‘북한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 ‘반국가단체를 위한
간첩행위’(여기서 반국가단체란 북한을 뜻함), 끝으로 ‘외국에서
대한민국의 명예를 실추시켰음’ 등이었다. 이 모든 사항은 소위
국가보안법(NSL) 위반사항이다. 지난 3월 말 이 재판은 명예롭지
못한 재판으로 극에 이르렀다. 


카프카의 소설을 연상시키고 미국의 최고 극우파인 매카시
수법으로 자행된 1심 재판에서 아무것도 입증된 것이 없이
난폭하게 날뛰더니 결국 서울의 한 지방법원은 송 교수에게 7년
징역형을 선고했다. 검찰은 이미 15년형을 구형했고, 송 교수의
변호사들은 구속인의 즉시 석방을 요구했다.


3월의 판결로 2심의 판결은 이미 예정되어 있었다. 서울고등법원의
판사는 7월21일 3년의 집행유예 형을 판결했다. 판사는 피고인에
둔 혐의 중 북한 정치국 후보위원이란 것과 서열 23위란 것을
입증할 수 없다고 그 근거를 대었다. 또 당서열 23위가 되기 위해
당중앙위원의 위원이란 것이 입증되어야 하는데 이것 또한 입증할
수 없었다. 전 국가주석이며 당서기인 김일성 주석이 송 교수를
직접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임명했다면 이 사실 또한 법률과
당규약에 의해 나중에라도 공개했어야만 했다. 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동 법원은 7월21일 재판에서 “송교수의 저작 등이 한국의
안보를 해쳤다”는 검찰의 다른 주장도 인정하지 않았다. 법원은
오히려 송 교수가 북한연구에서 사용한 “내재적 비판이론”이
북한과의 갈등대신 협조에 도움이 되었다고 평가했다.


7월21일 법원이 인정한 기소혐의는 1992년 5월부터 1993년 여름(이
이후 송 교수는 독일시민이 됨)까지 송 교수의 5번에 걸친 방북과
“황장엽에 대한 민사재판의 사기혐의”였다. 북한을 탈출한
고위급인사인 황씨에 대해 송 교수는 3년 전 성공리에 고소를 해
송 교수가 북한 정치국 후보위원이란 주장을 황씨가 공개적으로
주장할 수 없도록 법적으로 금지시켰다.


7월21일 재판은 어떤 의미에서는 냉전시대에 만들어진
국가보안법을 의미상 문제제기한 용기 있는 판결이었다. 다른 한편
다수의 우파, 보수파, 반동세력들은 달리 기대한 바는 아니지만,
거칠게 매를 맞는 격이 됐다. 독거미에 물린 듯 이들의 반응은
없었다. 2심판결이 난 24시간 후인 7월22일 검찰은 대법원에 다른
판결을 기대하며 상고하였다. 


믿을 만한 서울의 소식통에 의하면, 국정원은 송 교수와 유럽의
한국연대단체를 감시하기 위해 수천만달러 상당의 돈을 뿌렸지만
체면이 손상되는 위기에 몰렸다.


국회 안팎의 색깔론자들은 갑자기 ‘적색’을 보기 시작했다. 과거
군부독재자 박정희의 딸이며 지난 4월 국회의원선거에서 문자
그대로 징벌을 받았던 극우 야당 한나라당(GNP)의 당수인
박근혜씨는 자기 나라가 이미 “여러 정파사이의 전면전” 문턱에
서 있다고 발언했다. ‘송교수 사건’은 정신병 증세를 보이는
반공주의자와 그의 무리들에게는 남이 북의 그물망으로 들어가는
것의 한 표현이란 것이다.


뜨겁게 달아오른 반공과 냉전의 분위기에서 재판 이후 송 교수의
가족들의 기분을 잡치게 하는 것도 놀라운 일은 아니다. 송 교수
가족에 가까운 친구들의 말에 따르면 주말에 송 교수와 부인에
대해 셀 수 없는 살인위협이 있었다는 말이 들려오고 있다. 그
사이에 그들을 위해 경찰호위가 요청되었다고 한다. 생명에 지장이
초래된 상황에서 부부는 어디론가 거처를 옮겨야 했다.


이틀 전 판결이 내려진 법원건물 앞에는 7월23일 6.25참전군인들이
구치소에서 나온 송 교수의 석방에 반대하는 대규모 데모가
열렸다. 그는 자유의 몸이 됐지만 자유로운 인간이기에는 아직 먼
듯하다. 그는 제한된 범위에서만 움직일 뿐이다.


한국에서의 출국이 금지되었다.(검찰은 송 교수에게
출국금지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착오가 있는 듯-역자 주) 아마
검찰측에서 새로운 영장이 나올 우려도 있다. 이제 독일 외무부가
열정을 가지고 개입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 특히 연방정부의
인권담당관과 연방의회의 인권위원회 위원장이 ‘송교수 사건’에
정치적으로 별로 개입하지 않은 터이니까. ‘캡 아나무어
사건’에서 보였던 독일정부의 정치개입이 언론플레이에서 볼 때
송 교수 사건보다 훨씬 앞섰던 것이다. (구원단체인 캡 아나무어의
선박(독일)이 지중해 상에서 아프리카 난민 37명을 구원, 이태리의
남부 섬 시칠리아에 도착한 것을 이태리경찰은 불법이민에 대한
지원이라고 선박을 나포하고 선장 슈태판 슈미트씨를 경찰이
체포한 사건-역자주)


이곳에서도 주말에 송 교수의 친구며 동료들에게도 한국정보부와
베를린 주독 한국대사관측에 가까운 자들이 전화테러를 자행했다.
이 같은 짓은 이들 세력들이 군사독재 기간동안 잔인하게
규칙적으로 행했던 짓이다. 그 사이에 송의 변호사들, 앰네스티
인터네셔날과 같은 인권단체, 재판관찰자이며 열성인 인권변호사
한스-에버하르트 슐츠(브레멘과 베를린 소재)씨 등은 송의
즉각적인 석방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번역=이주희 독일 통신원 leejoohi@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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