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두율 교수와 부인 정정희씨는 5일 오후 2시35분 독일항공 LH714편으로 다시 독일행에 올랐다. 오랜 기간의 피로가 누적된 탓인지 몹시 피로해보이는 두 사람은 지인들과 일일이 악수했다. 부인 정정희씨는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
ⓒ2004 오마이뉴스
송두율 교수와 부인 정정희씨는 오늘(5일) 오후 2시35분 독일항공 LH714편으로 10개월만에 다시 독일로 돌아갔다.
송 교수는 독일로 떠나기 직전, 송두율교수석방대책위(이하 대책위) 관계자에게 친필로 작성한 A4 두 장 분량 편지를 건네며 "그간 도와주신 분들께 드리는 글"이라고 말했다.
송 교수는 이 글을 통해 "변호인단과 대책위, 여러 인권·사회단체, 무수한 개별인사들의 노력으로 지난 7월 21일 진실이 밝혀질 수 있었다"며 "이번 사건은 이 시대의 정신인 관용과 상생을 바탕으로 한 민족의 화해와 평화, 통일을 실현하는 데에 역사로 기록될 것"이라고 밝혔다.
또 송 교수는 "이번 사건으로 잃은 것도 있지만 얻은 것도 있다"며 "새로운 출발을 위한 하나의 기회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이어 "광주와 제주에서 구두 밑창에 묻혀온 흙과 모래알의 흔적이 모두 사라지기 전에 다시 오겠다"며 "우리 모두의 꿈과 희망에 대해 긴 시간을 함께 나누기를 간절히 기원한다"고 전했다.
"이번 사건은 역사로 기록될 것"
이날 송 교수와 부인 정씨는 "감옥에 갇혀있는 동안 응원해준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며 천주교인권위원회, 민가협, 양심수를 위한 후원회, 통일연대에 각각 50만원씩 후원금을 기부했다.
송 교수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1년간 강의를 하지 못했기 때문에 학생들과 대학당국에 미안한 마음이 있다"며 "돌아가면 급선무가 강의준비를 하는 것이고, 그동안 미뤄진 집필계획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송 교수는 "두 학기나 강의를 못해 10월 1일부터 시작하는 겨울학기 강의 구상도 하려면 바쁘다"며 "그동안 쓴 책들이 이미 나왔을 텐데 교정도 못 봤고, 아무튼 모든 게 정지된 상태"라고 씁쓸하게 웃었다. 또 송 교수는 "이제 우리들의 생활 근거인 독일로 다시 돌아가 시간도 갖고 건강도 챙기려한다"며 "특히 아내가 고생을 너무 많이 해서 건강이 몹시 좋지않다"고 걱정했다.
천주교인권위원회 등 4개 인권단체에 200만원 기부
▲ 5일 오후 인천공항에는 송두율 교수의 환송객들이 출국장에 모였다. 이중 대학생들은 피켓을 들고 선물을 건네기도 했다.
ⓒ2004 오마이뉴스
송 교수를 환송하는 대학생, 대책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관계자들은 물론 독일 영사까지 출국장 앞에 나왔다. 대학생들은 "송두율 교수님, 정정희 선생님, 사랑합니다! 언제든지 다시 오세요", "국가보안법 철폐 한반도 평화실현"이라고 쓴 피켓을 들고, 송 교수 부부와 일일이 악수하기도 했다.
지난 10개월간 재판 때마다 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는 등 적극적 활동을 벌여온 김세균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제 송 교수가 자유로운 몸이 되어 기쁘다"며 "여러가지 문제들이 완전히 끝난 게 아니지만 모두 잘 풀리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송 교수 사건으로 한국사회가 스스로 자성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됐던 것 같다"며 "송 교수 사건은 우리 사회의 진보에 하나의 큰 의미를 지닌 사건으로 기록되었다"고 밝혔다.
송 교수의 입국부터 출국까지 곁에서 지켜본 박호성 서강대 교수는 "작년 9월 22일 송 교수가 인천공항에 내렸을 때 환영객들이 열렬했었다"며 "그러나 오늘 환송객들은 생각보다 너무 적었다"고 말문을 열었다.
박 교수는 "지난 10개월간 진보진영에서조차 송 교수에 대한 비판이 많았다"며 "그러나 궁극적으로 송 교수 사건은 국가보안법 폐지에 결정적 역할을 담당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송 교수는 그동안 독일을 주무대로 활동했다"며 "앞으로는 남북한과 세계를 무대로 합법적 활동의 공간이 넓어졌다"고 말했다.
환송 나온 고등학교 동창생 "두율아, 고생했다! 다시 보자!"
▲ 5일 오후 인천공항에는 출국을 앞둔 송두율 교수의 목소리를 듣고자 몰린 기자들이 북새통을 이뤘다. 송 교수가 김세균 서울대 교수, 박호성 서강대 교수 등 '대책위' 관계자들과 인사 나누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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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리에 참석한 전명혁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연구소 책임연구원은 "고생만 하다 가시니까 뭔가 아쉽다"며 "다시 귀국하실 때는 한국에서 후학들에게 '통일학'을 가르쳐 주시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송 교수는 대학생들로부터 책과 엽서, 두만강에서 가져왔다는 돌 등을 선물로 받았다. 송 교수의 고등학교와 대학동창이라고 소개한 장세문씨는 "두율아, 고생했다! 다시 보자!"며 송 교수를 끌어안고 등을 두들겼다. 장씨는 "두율이가 한국에 왔지만 친구들을 아무도 만나지 못했다"며 "다시 올 때는 친구들을 많이 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송 교수는 오후 1시40분경 부인 정정희씨와 함께 출국장 앞에서 손을 흔들며 마지막 포즈를 취했다. 송 교수는 이날 대책위에 전달한 편지를 통해 "독일 말에 'Einmal ist kein Mal(한번으로는 흡족하지 않다)'는 말이 있다"며 "두 번째, 세 번째로 계속 이어지는 뜨거운 만남을 기약하겠다"고 전하고 표표히 사라졌다.
"관용과 상생을 바탕으로 민족의 화해와 평화, 통일을"
송두율 교수가 대책위에 남긴 편지 전문
▲ 송두율 교수가 5일 출국 전 '대책위'에 남긴 편지 전문.
ⓒ오마이뉴스 장윤선
(송두율 교수는 출국에 대책위 앞으로 보낸 편지에서 "우리 민족의 화해, 평화 그리고 통일을 실현하는 데에 있어서 제 '사건'은 분명히 역사에 기록될 것"이라며 "광주와 제주에서 구두 밑창에 묻혀온 흙과 모래알의 흔적이 모두 사라지기 전에 다시 찾아오겠다"고 밝혔다. 다음은 송 교수의 편지 전문이다....편집자 주)
랑하고 존경하는 벗들, 저희들은 3주가 10개월로 연장될 수밖에 없었던 서울체류를 마치고 오늘 독일로 돌아갑니다.
그동안 저희들을 따뜻하게 보살펴주셨던 많은 분들을 일일이 찾아뵙고 작별인사를 드려야하는 것이 도리이지만, 저희들의 직장생활과 건강문제 때문에 빨리 돌아갈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지난 10개월 동안 저희들을 항상 위로해주시고 용기를 불어넣어주신 사랑하는 그리고 존경하는 벗들이 없었더라면 정신적으로는 물론 육체적으로도 저희 자신들을 지탱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정열적으로 변론을 맡아주신 변호인단, 대책위를 중심으로 끈질긴 투쟁을 벌였던 여러 인권과 사회단체들, 그리고 한번도 본 적이 없는 무수한 개별인사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아 드디어 지난 7월 21일 진실이 밝혀질 수 있었습니다.
이 시대의 정신이라고 할 수 있는 관용과 상생을 바탕으로 한 우리 민족의 화해, 평화 그리고 통일을 실현하는 데에 있어서 제 '사건'은 분명히 역사에 기록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개인적으로나 가족적으로 잃은 것도 있습니다만 얻은 것도 반드시 있다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출발을 위한 하나의 기회라고 저희들은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지난 이틀 동안 광주를 45년만에, 제주를 40년만에 찾았습니다. 저희들의 구두 밑창에 묻혀온 흙과 모래알의 흔적이 모두 사라지기 전에 여러분들을 다시 찾아 우리 모두의 꿈과 희망에 대하여 긴 시간을 함께 나누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독일 말에는 "Einmal ist kein Mal(한번으로는 흡족하지 않다)"이 있습니다. 두번째, 세번째로 계속 이어지는 여러분들과의 뜨거운 만남을 기약하며 오늘 여러분들의 곁을 떠납니다.
무더위에도 여러분들의 가정에 건강과 행운이 늘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다시 만날 때까지 안녕히 계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