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58년 개정땐 “폐지 필요”

  
 
갈림길에 선 보안법 

국가보안법 폐지 여부를 둘러싼 여야의 논란에서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등은 ‘보안법 폐지 반대’ 쪽에 서있다. 이들 신문은
보안법의 일부 개정이 불가피하더라도 기본 틀은 그대로 유지해야
한다는 뜻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신문은 현행
국가보안법의 실제적인 모태가 된 지난 1958년의 국가보안법 제3차
개정에서는 사설과 기사를 통해 보안법 개정을 강도높게 반대했다.
46년 전에는 반대했던 법을 남북관계가 크게 진전된 지금은 그대로
두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전 보안법에 없던 찬양고무죄 등 여러 독소조항이 첨가된 58년의
신국가보안법 개정에 대해 당시 신문들은 이구동성으로 반대의
목소리를 냈다. 당시 야당지로 명성을 날렸던 <경향신문>은 말할
것도 없고,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등도 마찬가지였다. 

사설서 "내란·외환죄 형법서 상세규정"
동아, 날치기 통과뒤 "민주주의 종언" 
당시 언론들 '반공 아닌 탄압목적' 비판 


당시 신문들은 이승만 정부의 보안법 개정안이 장기 독재체제를
강화하고 언론을 위축시키려는 목적을 지니고 있다고 한목소리로
비판했다. 1954년 사사오입 개헌 등으로 이미 독재의 길을 걷고
있던 이승만 정부가 대통령선거 뒤인 1958년 후반에 보안법
개정안의 강행 처리를 시도하려 한 것은 당시의 ‘국시’인 반공을
위한 게 아니라, 야당 등 정적을 겨냥하고 언론에 재갈을 물리려는
의도라는 지적이었다. 이들 신문은 또 이 법이 통과되면
인권유린이 자행될 것이 명약관화하다는 점도 함께 지적했다. 

<경향신문>은 11월15일치 사설에서 “그 목적하는 바가 국가변란의
활동을 금지하고 국가의 안정과 이익을 확보하자는 데 있어
국민으로서 이 목적에 반대할 자는 하나도 없겠지만 선량한
국민들까지 이러한 반국가적인 혐의에 걸릴 수 있을 위험성이
내포되어 있다”며 인권침해 우려를 지적했다. 이 신문은 “국가의
기밀과 간첩의 개념을 확대한 것” 등을 그 예로 들었다. 

<조선일보>의 논조도 당시 <경향신문> 못지않았다. <조선일보>는
12월14일 ‘보안법에 대한 대통령의 회견담’이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이 법안은 단순히 증가일로에 있는 공산침투에
대항투쟁하려고 제기된 것이며 다른 목적은 없다’라는 이승만
대통령의 이틀전 기자회견을 반박하면서, “국가의 안전과 이익을
위태롭게 하는 범죄를 단속하는 데 필요한 법 조항은 마땅히 일반
형법에 규정되어야 할 성질의 것”이라고 못박았다. <조선일보>는
나아가 “우리의 신형법은 현행 국가보안법을 제정할 당시에 있던
구 일본형법에 비하면 내란외환죄에 관한 규정이 배 정도로
상세하게 규정되었으니 순리적으로 생각한다면 현행 국가보안법은
이를 정리 내지 폐지하는 방향으로의 개정만이 필요한 것”이라며,
당시 ‘약한 수준’의 보안법마저 대폭 개정 또는 폐지할 것을
주장했다. 2004년 9월 열린우리당의 보안법 폐지 당론이 정해지기
46년전의 일이다. 

<조선일보>는 국민과 야당, 언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자유당
정권이 12월24일 무술경관들을 동원해 본회의장에서 농성중이던
민주당 의원 80여명을 끌어낸 뒤 보안법 개정안을 날치기
처리하자, 나흘간 잇따라 보안법 개정의 무효를 주장하고 민주주
유린을 성토하는 사설을 실었다. 12월25일치에서는 “한국정치사에
유명한 정치파동과 사사오입 개헌이 강권의 발동과 억지이론으로
이루어졌다 하였지만 그래도 야당의원이 축출 감금당한채
여당의원만으로 의사가 진행되지는 않았다”라고 울분을
토로했으며, 26일치 사설에서는 “민주주의라는 독은 깨어졌다.
민주주의 싹은 짓밟혔다. 깨어진 독 조각을 모아 붙인다고 해서 쓸
수 있는 그릇은 될 수 없다. 부러진 싹을 붙여놓는다고 해서
그것이 그대로 자랄 수는 없다. 해방 이후 14년간 어느 사람의
입에서나 들어 불 수 있던 민주주의는 이제 우리 눈앞에 그 비참한
잔해만을 남겨놓았다”고 절규했다. 27일치에서는 “불행히도
우리는 그것이 불법적 절차에 의한 것이어서 그 통과된 의안은
법적으로 무효”라고 규정했으며, 다음날에는 “신국가보안법을
통과시키기 위하여 자유당이 국회에서 취한 일련의 행동은
민주주의의 근저를 동요시켰다고 할 수 있는 것이며 또한 이것이
우리사회에서 민주주의의 종언을 의미하는 것이 될지도 모른다”고
밝혔다. 

<동아일보>도 그해 12월24일치 사설에서 “문제의 국가보안법
개정안은 필요없는 규정이 허다히 남설되어 정치적으로 악용될
염려가 지극하다고 지적되고 있는 만큼 이러한 불필요한 규정도
마땅히 제거되어야 하겠다”라며 “영미법계 특히 미국법의
이론으로서 이것을 비판한다면 문제의 보안법 개정안은 ‘구체성
및 명확성의 원칙’과 ‘명백하고 현존한 위험의 원칙’을 또한
위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보안법이 강행 통과한 직후인 12월24일치 석간 사설 ‘민주주의의
종언’에서는 “자유당 의원들이 합법적인 절차로서는 도저히
성립될 수 없는 국가보안법 개정안을 우격다짐으로써 기어이
통과시킨 것은 우리 국회가 씻을 수 없는 오점을 또하나 기록한
것으로서 대한민국에 생을 존유한 자로서는 불행한 일이지만 단기
4291년 12월24일을 영원히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우리의
민주주의는 오늘을 최후로 종언을 고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에
통과된 보안법은 국민의 입을 막고 귀를 막는 것이기 때문이다”고
선언했다.김종철 황준범 기자 phillkim@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