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두율교수 저서 독후감 공모전
  제목    ‘윤이상평화재단’ 한국에 만드는 부인이수자씨 (한겨례 2004.9.22.)
  글쓴이 펌 글쓴날 2004-11-25 01:46:09 조회 2330

[한겨레] ‘윤이상평화재단’ 한국에 만드는 부인이수자씨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작곡가 윤이상(1917~1995)씨의 부인
이수자(79)씨는 “새벽에 눈뜰 때마다 낭떠러지에 떨어진 듯
막막하고 참담한 슬픔에 휩싸여 잠에서 깨어난다”고 말한다.

 

 그의 남편 윤이상이 끝내 명예회복과 조국 방문의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이국땅에서 눈을 감았기 때문이다. 미국과 일본 방문을
마치고 평양으로 가기 위해 베이징에 들른 이씨를 17일 만났다.
이날은 마침 윤이상의 86번째 생일이었다. 

 

윤이상이 살아 있을 때 김일성 북한 주석이 평양에 마련해준 집에
살고 있는 이씨는 ‘반한 인사’라는 딱지를 떼어내고 조국의
북쪽과 남쪽에서 모두 그에 대한 온당한 평가가 내려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한국에서 ‘윤이상평화재단’(준비위 사무총장 박성득)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독일 등 유럽에선 현대음악계 최고의
거장으로 꼽히는 윤이상이 정작 그의 고향인 한국에선 여전히
기피되거나 기껏 그의 명성에 편승하려는 시도밖에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지난 2000년 ‘윤이상음악제’로 출발한 통영국제음악제의 경우도
그런 예의 하나다. 처음엔 윤이상을 기념하기 위한 행사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윤이상이란 이름을 떼어내어 버렸다.
경남도에서 콩쿠르를 주최하면서 ‘윤이상 콩쿠르’란 이름을
사용하길 원했지만 이씨는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학생콩쿠르를 열면서 세계적인 명성을 지닌 윤이상의 이름을 쓰길
원하는 건 도리에 맞지 않는다는 생각 때문이다. 이런저런 ‘험한
일’을 당하면서 이씨는 앞으로 남은 생애를 바쳐서라도 한국에서
남편의 명예회복과 더불어 그를 기리는 온당한 기념사업을 전개할
생각이다. 

  

그가 가장 아쉬워하는 건 윤이상이 생전에 한국의 남도창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으면서 이를 한국 고유의 오페라 형식으로
발전시키는 일을 이루지 못한 일이다. “반한 인사로 낙인찍혀
있으니 자연 한국과 교류 접촉이 없었고 이 때문에 그가 생전에
가장 하고 싶어하는 일이면서도 결국은 이루지 못했다”는 것이다.


  

“평소 보면 영 할아버지이다가도 작품을 쓸 땐 젊은이처럼
반짝반짝 빛난다. 내가 그의 그런 모습을 좋아했기 때문에, 선생은
돌아가시기 직전 책상에 오선지 꺼내놓고 나를 불렀다. 나
좋아하라고 소품을 하나 쓰겠다고 했다. 그런 다음날 입원한 뒤
영영 일어나지 못했다.” 그런 그이기에 그를 기리는 사업 또한
윤이상국제콩쿠르, 윤이상음악학교 설립 등 그의 음악을 이어가는
사업이 돼야 할 것이라고 이씨는 힘주어 말한다. 

  

그가 추진하는 윤이상평화재단의 설립 인가 문제를 두고 어떤
태도를 취하는가가 노무현 참여정부의 성격을 가늠하는 시험지가
될 것이라고 이씨는 덧붙였다. 

 

 

글·사진 베이징/이상수 특파원 leess@hani.co.kr 


윤이상 '통일 꿈' 잇는다 (한국일보 2004.12.02)
음악가 윤이상 기리는 '평화재단' 설립 박차 (오마이뉴스 2004.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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