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두율교수 저서 독후감 공모전
  제목    [2000.8 월간 민] "준법서약서를 거부하는 이유"
  글쓴이 freesong 글쓴날 2003-11-23 22:04:51 조회 1761

[2000.8 월간 민] 준법서약서를 거부하는 이유 - 송두율


준법서약서를 거부하는 이유


지난 2000년 7월 4일 거행된 ‘늦봄통일상’ 수상식에 참석하려고 간단히 짐을 챙기고 집을 떠나 공항으로 나가기 불과 몇 시간 전에 서울에서 날아온 급한 소식이 34년 만의 귀향의 꿈을 무산시켰다. 관계 당국이 내가 ‘준법서약서’를 제출해야만 입국을 허락하겠다는 내용의 소식이었다.

내 입국 소식이 알려지자,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 이후 고조된 화해 분위기 속에서 숨죽이고 있던 세력들이 반전의 좋은 기회를 만난 듯이 ‘사설’이나 ‘당 대변인 성명’ 등을 통해 정부를 일제히 공격했고, 냉전 관리의 초병인 공안부서도 이를 핑계로 원래의 약속을 파기하고 ‘준법서약서’를 요구했다는 배경 설명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암울했던 유신독재 시절에 조국의 민주화를 위해서, 그리고 민족분단의 고통을 극복하는 통일을 위해서 정도를 걸어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준법서약서’ 제출을 단호히 거부했다.

그러면 ‘준법서약서’가 과연 어떤 것이기에 34년 만의 귀향의 꿈을 접어야만 했는가? 냉전의 먹구름이 드디어 걷히기 시작하는 이 시점에서도 왜 여전히 구시대의 관행이 사라지지 않고 있는가?

사실 ‘준법서약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주위 사람들로부터 ‘준법서약서’의 내용이 무엇이기에 그러느냐, 더 큰 실리를 위해서 그까짓 종이 한 장에 불과한 서약서에 그냥 서명하고 귀국하는 것이 더 현명하지 않겠느냐는 질문과 충고를 자주 받아왔다.

‘준법서약서’가 일반화된 양식인지, 아니면 개개인에 따라 달리 작성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나는 아직 모른다. 일제시대의 ‘사상전향서’에 뿌리를 두고 있는 ‘준법서약서’의 족보를 미루어볼 때, 일제시대의 ‘천황’ 대신 ‘대한민국’에 충성을 서약하는 내용이 들어 있을 것이다. 과거의 행적을 반성한다는 내용도 들어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하 swjd도의 내용이라면 서명해도 큰 문제가 없지 않겠느냐는 생각에서 ‘준법서약서’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분들이 사실 내 주위에도 있다.

그러면 왜 내가 종이쪽지에 불과할 수도 있는 ‘준법서약서’에 서명하지 않고 있는가?

어제와 오늘보다는 더 나은 내일을 갈망하고 이를 위해 애쓰는 것은 인간의 본성에 속한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는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진보해 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어떠한 힘이 가장 중요한가? 생각이 변해야 모든 것이 변한다는 말처럼 사상이야말로 그러한 추동력이라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사상을 틀에 가두어놓고서는 우리는 사회의 진보를 이야기할 수 없다.

얼마 전 우리 모두 기뻐했던 남북 정상회담의 성과도 독재를, 그리고 냉전적 사고와 구조를 거부하고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역설하는 사상을 무기로 해서 싸워온 많은 분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사상을 ‘준법서약서’라는 과거의 틀에 가두어두고 민족의 화합이나 통일의 새 시대를 절대로 열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준법서약’이 비록 요식행위라고 할지라도 나는 이를 단호히 거부한다.

내가 ‘준법서약서’를 거부하는 또다른 논거는 이것이 과거의 반성만이 아니라 현재는 물론 미래까지도 ‘준법’이라는 틀에 가두어놓은 미래진행형의 관행이기 때문이다.

‘준법’이라는 말은 말 그대로 ‘법’을 지킨다는 뜻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악법도 법이니 지킨다”고 하면서 독배를 든 소크라테스에 관한 이야기가 종종 현실은 현실대로 받아들여야만 한다는 현실긍정론으로 이해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진정한 뜻은 인간이 추구하는 도덕적이 세계는 앎과 하나로 된 실천에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자기 부정과 자기 성찰을 끊임없이 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보여주었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해 소크라테스는 미래를 관습의 장벽으로부터 해방하기 위해서 독배를 들었다. 과거-현재-미래를 하나로 묶어 희망과 꿈이 도사려 있는 미래를 과거에 붙들어매려 들기 때문에 나는 ‘준법서약서’를 거부한다.

끝으로, 내가 ‘준법서약서’를 거부하는 마지막 이유는 분단의 시대를 온몸으로 거부하고 살아온 많은 분에게 내가 최소한으로 표시할 수 있는 연대감의 표현이라는 데 있다.

얼마 있으면 비전향 장기수 선생님들이 고향으로 돌아간다. 온갖 고통을 감수하면서도 수십 년 동안 양심을 지켜온 많은 분의 인간 승리의 기록을 욕되게 할 수 없다는 동시대인으로서의 책임이 나로 하여금 ‘준법서약서’를 거부하게 만든다.

통일의 시대를 여는 마당에 우리는 모두 함께 변해야 한다. 이러한 자기 혁신을 조이는 껍데기는 이제 사라져야만 한다. ‘국가보안법’도 ‘준법서약서’도 그러한 껍데기에 불과하다.

2000.8 <월간 민>



>>> Writer : frees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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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2002년 10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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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두율 교수
> `민주화' 의미 강조 성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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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연합뉴스) 최병국
> 특파원=재독 사회학자 송두율 뮌스터대 교수가 10일 35년여 만의 귀국이 다시 좌절된데 대해 공식 입장을 밝히는 성명서를 냈다. 이 성명서는 특히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공안당국의 입국 거부 가능성'이라는 벽에 부닥쳐 초청 자체를
취소하게 된 배경을 비판하면서 `민주화'의
> 근본적인 의미에 대해철학교수로서 나름의 입장을 밝히고 있어 주목된다.

>

송 교수는 이번에 다시 입국이 좌절된 데 대해 일단 `공안당국의 경직된 태도'를 비판의 대상으로 삼았다. 또 당초부터 예상할 수 있었던
> 난관에 부닥치자 초청을취소한 사업회의 `경솔한' 태도를 지적했다.

>

그러나 성명의 초점은 사업회 측의 실수 등 '기술적 문제'에 맞춰져 있지 않다.
>

송 교수는 무엇보다 사업회가 취소의 이유로 밝힌 점들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나 수긍할 수 없다면서 사업회의 태도에 "당혹스러웠다"고
> 토로했다. 나아가 이번사태를 계기로 과연 `민주화'가 무엇을 뜻하는 지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제시하는데주력했다. 과거와 현재의 민주화 운동
> 세력에게 일종의 `화두'를 제시하려 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

송 교수는 "한국 사회의 민주화는 연속적, 불연속적 사건들을 겪으면서 완전히만족할 수는 없어도 오늘과 같은 상황까지 진전했다"고 평가했다.
> 그러나 그는 `민주화'는 종점이 없는, 자신에 대한 끝없는 `계몽'의 과정이라고 규정했다. 이와 관련해 칸트가 "오성(悟性)의 부족 때문이
> 아니라 용기와 결단의 부족 때문에 생긴 `미성숙'에서 벗어나는 것이 계몽"이라고 정의했다고 소개했다.

>

송 교수는 이런 계몽의 작업을 방해하고 억누르는 온갖 사고유형, 관습, 제도,장치에 저항하고 투쟁하기 위해서는 옳은 전략도 필요하고 적절한
> 전술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때 원칙적 전략과 그 방편인 전술을 혼동해서 사용하면 결국원칙도 사라지고 전술도 빛을 보지 못한다고 그는
> 설명했다.

>

송 교수는 이어 우리 사회 민주화의 초석을 놓기 위해 큰 희생을 감내했던 많은사람들의 삶에서도 이처럼 용기와 결단으로 원칙과 방편을 분명히
> 한 사실과 이런진리를 확인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현재 민주화의 뜻을 기리는 국가적인 사업도 펼쳐지고 있으나 "민주화는 `골동품'이나
> `기념비'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오늘과 내일을 위한 `삶 자체'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송 교수는 현실적으로 복잡하게 뒤얽힌 힘의 관계 속에서 그런 `계몽의 과제'를떠안고 노력하는 일은 매우 힘들 다는 점을 잘 아나 이는
> "계기마다 우리에게 다가서는, 피할 수 없는 명령이며 특히 지식인에게는 더욱 그러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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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oibg@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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