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장씨의 발언이 언론을 통해 공개되기 전에 이미 대략적인 내용을 전해들은
것으로 아는데
지난 7월 초에 [월간조선] 기자로부터 내가 ‘김철수’란 가명을 가진 북한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이라는 내용이 담긴 황장엽씨의 책자를 단독으로
입수했다는 연락이 왔다. 30여 년 간 독일 땅에서 살아온 사람에게, 특히 1993년
이후 독일 국적을 가진 사람에게는 어이없는 소리였지만 문제의 책자를 전혀 보지
않은 상태라 별다른 느낌은 없었다. 다만 추후 법적으로 정정당당하게
대응하겠다는 얘기만 했다. 그때 나의 귀국계획에 대해 자세히 물어오는 걸로
미루어 뭔가 나도 모르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았다.
- 황씨의 발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솔직히 말해 발언이라기보다는 터무니없는 주장에 불과하다. ‘황장엽이 이렇게
얘기했다. 황장엽은 북한사회에서 이러저러한 위치에 있던 사람이다. 따라서
장장엽의 말은 사실이다.’
라는 일종의 언술체계가 강고한 힘을 발휘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황씨가 망명할
당시 “남쪽 동포들과 통일문제를 허심탄회하게 얘기해 보고자 일생의 결단을
내렸다”고 말했는데, 내 주관적 느낌으로는 황씨는 이미 오래전부터 북한사회의
권력 핵심에서는 멀어져 있었던 것 같다. 어쨌든 내게는 어처구니없는 주장일
뿐이다.
- 지난 1991년 북한을 방문한 것으로 알고 있다. 방북기간 중 황씨를 만났는가.
또 그 이후에도 황씨를 만난 적이 있는가.
지금까지 황장엽 씨와는 두 차례 만난 적이 있다. 지난 1991년 초 남한 철학계는
8월 중 판문점에서 남북해외 철학자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한민족 철학대회’를
열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고, 당시 대회준비위원회 쪽은 북한 쪽 학자들과
연결하는데 어려움이 겪고 있었다. 이와는 별도로 그 해 서울대 초청으로 3월부터
한 학기 동안 강의를 맡기로 돼 있었는데, 귀국 준비가 모두 끝난 상태에서
서울대 총장으로부터 취소공문이 왔다. 그 무렵 서울대와 북한의 ‘사회과학원’,
일본의 교토대학 등 세곳에서 초청을 받아두고 있었고, 원래 서울대 강의를 위해
독일에서 한 학기 강의를 비워둔 상태였다. 이 때문에 북한 쪽의 거듭되는 초청에
응해 그 해 5월 3주간 사회과학원에서 서양철학을 강의했다. 북한 방문 기간 중
한편으로 ‘한민족 철학대회’에 대해 알리고 북한 쪽 참가자들을 섭외하기 위해
노력했는데. 내 강의에 참여한 많은 사람들로부터 황장엽 비서가 가장 적임자일
거라는 추천을 받았다.
하지만 당시에는 황씨를 직접 만나지 못했다. 독일로 돌아온 뒤 황장엽 씨와 한
차례 서신왕래가 있었다. 남북관계가 급속히 악화되어 ‘한민족 철학대회’는
끝내 무산됐지만, 1993년 3월 북한을 방문해서 황씨를 만날 수 있었다. 당시 북한
학자가 몇 명 배석했는데, 황씨는 북한 학계의 권위자답게 시종일관 혼자서
얘기를 풀어나갔다. 인간적으로는 조금 딱딱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두
번째는 김 주석 조문 때 그의 집무실에서 단 둘이 만났는데, 이때 나눈 얘기는
별다른 기억이 없다. 두 차례 만남 모두 학문적 대화에 그쳤고, 정치문제에
대해서는 그와 얘기를 나눠볼 기회가 없었다.
- 북한 방문 기간 중 행적에 대해 자세히 말해 달라. 특히 1991년 방북 때 생전의
김일성 주석과 독대한 것으로 아는데.
북한 방문 기간은 대개 일주일 정도지만, 오고 가는 시간을 빼고 나면 기껏해야
닷새 정도 머무르게 된다. 이 기간 동안 내가 늘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남북
학술교류를 위해 여러 사람을 만났다. 또, 친척도 방문하려면 시간 여유가 그리
많지 않다.
3주 간 ‘사회과학원’에서 강의할 당시는 사회주의권이 막 붕괴된 직후였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면서 오랜 기간 사회주의 사회 연구에 매달려온 사람으로
비록 철학적 언어로 표현하기는 했지만 북한체제 안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한계를 깨우쳐주려 노력했다. 당시 내 강의가 그들에게 꽤 인상적으로
다가간 듯하다. 김일성 주석과 만난 일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뤄진 것이라
생각한다. 해외에서 오랜 기간 사회주의 사회 연구에 매달려온 한민족 학자로서
특히 역사의 현장인 베를린을 지켜본 탓에 아마도 붕괴되고 있던 사회주의 사회에
대해 솔직히 얘기해 줄 수 있는 적격자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나 싶다. 이미 국내
언론에 모두 공개된 얘기지만 “우리동무들이 솔직히 자본주의 사회를 잘 모른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일 년에 얼마간이라도 우리 동무들에게 자본주의에 대해
가르쳐 달라”던 당시 김일성 주석의 말이 생생하다.
- 북한 방문 기간 중 선거에서 투표권을 행사했다는 주장이 있는데.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소리다. 내가 알기로 북한사회에서 투표권을 가지려면
‘공민’이여야 하고, 공민은 ‘공민증’이 있어야 한다. 북한사회가 아무리
엉터리라 하더라도 아무한테나 공민증을 발급해줄 정도는 아닐 거다. 지금껏
일생동안 투표라고는 한국에서 두 차례, 그리고 독일 국적 취득 뒤 독일 국내
선거 두 차례 등 모두 네 번밖에 하지 못했다.
- 황장엽비서가 송 교수를 ‘후보위원’으로 지목한 근거가 뭐라고 생각하나.
나도 너무 궁금하다. 다만 1991년 사회과락원에서 강의할 당시 많은 사람에게
꽤나 깊은 인상을 심어준 점, 특히 김일성 주석과 이례적으로 몇 시간 동안
사회주의 사회에 대해 깊은 얘기를 나눴고 <로동신문>에 크게 보도됐다는 점 등이
황장엽으로 하여금 송두율이란 사람이 대단한 사람이구나 하는 느낌을 갖게
했는지 모르겠다. 게다가 비록 해외에 머물고 있지만, 남한사회에 어느 정도
영향력이 있다는 사실 또한 생각해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설령 이것이
모두 사실이라 해도 그것은 나의 학자적 자질 문제지 결코 정치적 영향력 문제일
수는 없다.
- 지난 1988년 “북한사회를 평가하려면 북한사회 내부의 내재적 요구를
중점적으로 살펴보아야 한다”는 내용의 ‘내재적 접근법’을 제시해 국내에서
신선한 평가를 받았다. 이런 접근방법이 유효하다는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나.
내재적 접근법이란 예컨대 인류학(Ethnology)에서 알 수있듯이 하나의 일반적인
방법론에 지나지 않는다. 이미 학문영역에서 일반화된 방법론을 내가 북한사회
분석에 적용했다고 해서 곧바로 북한체제를 정당화하기 위한 술수하고 매도하는
것은 터무니 없는 비판이다. 자유민주주의 원리가 얼마만큼 구현돼 있는냐는
문제의식을 통해 드러나듯이, 이런 방법론은 남한사회 분석에서도 얼마든지 의미
있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 국내 일부 소수세력은 송교수의 ‘내재적 접근법’에 대해 “사회주의 이론이
위기에 몰리던 시점에 발표돼 국내 좌파 지식인들에게 국면 전환의 논리로
작용했다”면서 이를 송교수의 정체를 의심하는 한 증거로 삼고 있는데.
내재적 접근에 대해 입각해 사회주의 사회를 연구하기 시작한 것은 이미 1975년
무렵, 그러니까 대학교수 자격 논문을 준비하던 때부터다. 하지만 이미 1981년에
완성한 이 논문의 내용을 국내에 소개한 것은 1987년 한국사회에 몰아친 한 차례
변화 이후였다. 그때까지 국내에서 논문을 발표하고 싶어도 이를 못하게 막은 게
누군데.... 사회주의 이론이 위기에 몰리던 시점에 의도적으로 발표했다는 해석은
터무니없는 주장일 뿐이다.
- 일부에서는 송 교수가 독일 국적을 갖고 있기는 하지만, 북한 정부가 예우
차원에서 일방적으로 ‘정치국 후보위원’ 자리에 올렸을 가능성도 제기한다.
설령 일방적으로 ‘정치국 후보위원’자리를 주었다 하더라도, 그렇다면 최소한
당사자에게 통지는 해줘야 하는 게 아닌가. 솔직히 후보위원 자리가 뭐 그리
우스운 자리라고 당사자도 없는데 자기들끼리 박수치고 끝내겠나. 전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해외에서 활동하는 학자에게 예우상 권력서열 23위
후보위원 자리를 내준다면 평생을 사회주의 건설에 몸바쳤다는 황장엽 씨보다도
높은 서열아닌가.
- 곧 한국을 방문할 예정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이번 일로 고국방문이 또다시
좌절됐는데 심정은 어떤가.
3
0년 이상 고국 땅을 직접 밟아보지는 못했지만, 평생을 해외에서 몸바쳐 연구해
온 것들을 많은 독자와 항상 나누고 있다는 믿음만은 변함없다. 곧 [21세기와의
대화]라는 제목의 새 책이 국내에서 발간되기도 하고, 또 몇 군대 강의계획도
있고 해서 이번에야말로 고국 땅을 밟아볼 수 있는 좋은 기회구나 생각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솔직히 이제 더 이상 국내에서 책을 발행하는 일은 그만두고,
독일어로 좀 더 많은 책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제 웬만한 일에는
흥분하는 일도 없을 것 같고, 문제가 생기면 그저 냉정하게 법적으로 처리해야지
하는 생각이 들 뿐이다.
- 남한에서 처음으로 정권교체가 이뤄진 이번 일이 벌어졌는데, 어떤 생각이
드나, 아울러 남북한 정부에 진정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황장엽씨는 ‘문민정부’ 때 넘어온 사람 아닌가. ‘국민의 정부’라는 이
시대에도 여전히 옛날 사람 말 한마디가 그대로 사실이 되는 현실이 쉽사리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앞으로 10~20년 동안은 우리 민족에게 매우 중요한 시기다.
그리고 현재 남북한 사회 모두 매우 불안정한 위기 속에 빠져 있는 것 같다.
이대로라면 그것이 IMF위기든 체제위기든 한쪽의 불안정이 곧바로 상대방의
불안정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 양쪽 모두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말 그대로
발상의 전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