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두율교수 저서 독후감 공모전
  제목    "내가 일본에 바라는 것 " (2003.6.4.)
  글쓴이 freesong 글쓴날 2003-11-24 03:20:32 조회 2406

"내가 일본에 바라는 것 "


지난 3월 26-27 이틀동안 평양의 <인민문화궁전>에서 <평화와 통일>이라는 주제 밑에 남북해외동포학자들이 만났다.

이라크전쟁이 바로 일어난 상황에서, 또 노무현정부가 이라크전쟁에 파병결정까지 내려 북측이 극도로 불쾌한 반응을 보였던 시점에서 열린 회의라 회의 시작 두 시간 전에야 회의의 개막이 확실시 될 수 있었던 그야말로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열렸던 회의였다.

1995년부터 베이징에서 매년 열렸으나 <6.15 공동선언>이 발표된 2000년부터 작년까지는 남북간에 당국사이에 비교적 활발한 교류가 가능한 까닭에 이러한 학자들의 만남의 의미는 오히려 그 전보다 퇴색되었었다.

예상을 뒤집고 노무현정권이 들어섰으나 <대북송금특별법>의 제정과 이라크전쟁이라는 악재를 만나 남북당국자간의 공식적인 접촉이 단절된 상황 속에서 이루어졌던 행사였기에 내외의 특별한 관심을 불러일으킨 학술회의였다.

남쪽의 공영TV인 KBS와 유력한 보수적인 일간지 <중앙일보>가 북쪽의 <조선중앙텔레비죤> 그리고 <로동신문>과 함께 매일 토론회에 대한 보도를 매일 내보낼 정도의 정치적 비중을 지녔던 학술회의였다.

남북사이의 <경계인 境界人>으로서 이 회의를 1995년부터 쭉 중재해왔던 나에게도 상당히 힘들었던 학술회의였다.

그러나 반세기이상 분단된 조국의 남과 북에서 따로 따로 형성된 <학문공동체 scientific community>가 서로가 상대방을 자기 속에 담을 수 있는 <언술(言述) discours>체계를 함께 만드는 것이 사회-문화적 통합의 핵심이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10년 가까이 통일학술회의를 중재해왔다.

그러나 많은 경우 서울과 평양으로부터 내가 살고 있는 베를린으로 날라 오는 통지와 연락사항의 일부는 양쪽에 전달되지 않아야만 남북의 만남이 성사될 수 있었다.

하나의 역설이다. 그래서 나는 <경계인>으로서 나의 입장을 남과 북을 <동시에 배제하고 또 동시에 통합하는 제 3>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라크전쟁을 보는 시각

김대중정권의 퇴장에 이어 <평화와 번영>을 국정지표로 내세운 노무현정권이 등장했지만 <6. 15공동선언>의 중요한 의미에 대해서는 남과 북 그리고 해외동포학자들 사이에 큰 의견차이는 없었다.

미묘한 차이라고 할 수 있다면 북측에서는 남측이나 해외동포학자들보다 <6.15 공동선언>을 보다 더 적극적으로 평가하였다.

이는 아무래도 김대중정권의 마지막 단계에서 들어 난 이러저러한 실정(失政)과 맞물린 <햇볕정책>에 대한 남쪽사회의 일부 비판적 분위기와는 대조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6.15 공동선언>은 정치적 상황에 따라 부침(浮沈)하기에는 너무나 귀중한 내용을 담고 있다.

물론 <6. 15 공동선언>의 제 1항의 <자주성>에 대한 남북간의 해석 차이나 제 2항에서 밝힌 북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와 남의 <국가연합> 사이에 있는 공통점에 관한 여러 가지로 의견과 해석상의 차이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6. 15 남북 공동선언>은 남북의 정상이 직접 서명한 문건이라는 형식을 떠나서도 남북이 화해와 공존공영단계를 거쳐 통일에 이르는 복잡한 과정에서 항상 등장할 수밖에 없는 기본적인 문제들을 직접 언급하고 있기 때문에 귀중하다.

이번 평양학술회의에서도 한(조선)반도의 평화정착의 틀을 <남북공조>냐 아니면 <국제공조>에서 찾아야 하는가하는 문제가 등장했었다.

<6. 15 공동선언>의 정신에 따라 현재 제기된 사안들을 <우리 민족끼리> 풀어야 한다는 북측의 입장에 대해서 남측과 해외에서 참가한 학자들의 대부분은 현재의 국제정치질서가 <국제공조>를 기조로 해서 움직일 수밖에 없는 체제라고 보았다.

또 <조미회담>으로 한(조선)반도의 긴장완화와 평화정착의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다고 보는 북측의 입장에 대해서 이는 결국 남측을 배제하는 것이 되고 따라서 북측이 주장하고 있는 <민족공조>의 원칙과도 상반되는 것이 아니냐는 반론도 제기 되었다.

또 초미의 과제로 등장하고 있는 북의 <핵문제>와 관련, 북은 이 문제를 매개로 미국과 직접 협상을 통한 체제보장을 받아내겠다는 입장이었다. 이에 대해서도 그러한 미국의 체제보장이 설사 가능하더라도 이를 확실히 보증할 수 있는 <국제공조> 없이는 불안한 체제보장이 될 수밖에 없다는 의견을 일부 남쪽 학자들이 제기했었다.

이러한 견해의 차이는 이라크전쟁이 담고있는 의미에 대한 평가와 직접 연결되었다.

이라크, 이란과 더불어 <악의 축>의 하나로 규정된 북이 이번 전쟁을 보는 입장과 가령 남이나 외국에서 보는 입장사이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

부쉬 행정부가 이라크전쟁을 준비하고 이를 실행에 옮기는 과정을 예리하게 지켜본 북으로서는 미국이 현재 추진하고 있는 신세계질서수립은 철두철미 군사력에 의거하고 있고 심지어 국제정치적인 지도력의 손상까지도 감수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따라서 사회주의체제의 붕괴이후 북이 내세운 <선군정치>의 정당성이 확인되었다는 시각에서 이라크전쟁을 우선 바라보고 있다.

일반적으로 북이 이라크보다 더 위험하다는 인식이 자리잡고 있는 배경에는 지난 십 수년간 고수해온 이러한 북의 정책에 대한 외부의 부정적인 평가가 자리 잡고 있다.

미국이 강하게 나오면 우리는 더욱 강하게 이에 대응할 것이라는 북의 입장에 대하여 남측과 해외에서 참가한 학자들은 그러한 강한 입장보다는 미국의 예봉을 우선 피하는 보다 유연한 정책이 더 효과적 대응일 것이라는 의견도 제시했다.

특히 남쪽의 노무현정권이 미국과의 새로운 관계를 정립하려는 시점에서 북의 유연한 대미정책은 남쪽의 입장을 강화시켜줄 수 있다고 주장했으나 그러한 여유를 가질 수 없는 것이 북의 현실이다. 특히 럼스펠트를 중심으로 한 강경파가 북의 <체제전복>을 공공연히 거론하는 상황이니 그러한 여유를 바라는 것 자체가 오히려 비현실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3자회담>의 장래는?

베이징에서 4월 23일부터 삼일동안 열린 북-미-중국의 <3자회담>에 남측이 배제된 것과 관련, 남쪽사회에 북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이 확산되었다.

이번 회담이 내용적으로 <조미회담>이며 중국은 중재자며 장소제공자에 지나지 않는다는 북측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민족공조>를 주장하면서도 현실적으로는 남측을 배제하는 북의 정책에 대한 비난이 현재 남측 정서를 지배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회담은 정말로 지루하게 진행될 협상의 출발에 지나지 않고 북도 곧 이어 중단되었던 장관급회담을 열 것을 제안, 조미회담과 남북대화라는 두 가지 대화를 병행한다는 기본 입장에는 변화가 없다는 것을 밝혔다.

미국은 미국대로 <3자회담>으로부터 배제된 남측과 일본이 참여하는 방향으로 <3자회담>을 앞으로 발전시키겠다고 이들을 설득하고 있다.

그러면 <3자회담>의 장래는 낙관적인가? 결론적으로 그렇지 못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북의 <핵포기>가 먼저냐, 북의 <체제보장>을 담보하는 조미간의 <불가침협정>이 먼저냐 하는 것을 둘러싼 논쟁을 뒤로하고 우선 한자리에 마주 앉았다는 점에서는 분명히 긍정적이지만 쌍방이 현안문제를 일괄적으로 타결한다는 대담한 결단 없이는 또 다시 지루한 회담이 될 것이다.

이라크전의 승리를 배경으로 미국은 북에 대해서 압박의 수위를 높일 것이고 이에 비례해서 체제위기를 더욱 더 절박하게 느끼는 북이 이에 저항할 수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한가지 희망적인 사항은 중재자의 역할을 자임한 중국이 조미양국으로부터 각각 양보를 얻어내 <북핵위기>의 해결과 함께 북의 <체제보장>을 동시에 타결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이 점에서 남측과 일본이 이 번 회의로부터 배제된 것 자체를 문제시하는 단견(短見)보다는 이 회의가 빠른 타협점을 찾을 수 있도록 대화분위기를 돕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래서 조미간에 타협의 결과를 후속적(後續的)으로 추인, 한(조선)반도의 평화 그리고 동북아의 안정의 기본틀을 다져야한다.

일본의 선택

이번 베이징 <3자회담>에서 빠진 한국정부가 이 회담의 형식보다도 그 결과가 더 중요하다는 반응을 보인데 대하여 일본정부는 회담형식에 신경을 더 많이 쓰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물론 중국의 한(조선)반도에 대한 영향력을 현실적으로 입증한 이번 회담을 바라보는 일본정부의 우려를 이해할 수는 있으나 일본정부는 좋은 기회를 한번 놓쳤다고 할 수밖에 없다.

작년 9월 17일의 조일정상회담은 조선(한)반도에서 미래지향적인 일본의 역할을 재정립할 수 있었던 전기를 마련했었다.

그러나 일본인 납치사건으로 야기된 일본사회의 여론을 대승적 차원으로 끌어올리지 못한 정치적 지도력 때문에 이전보다 오히려 조일관계는 더 악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과거의 불미스러운 사건을 솔직하게 시인하고 새로운 출발을 약속했는데 상대방은 그렇지 못한 상태이니 감정의 골이 더 깊어 질 수밖에 없다.

일제시기 강제로 연행된 조선인 문제에 대한 사죄 대신에 일본인납치문제로 조일간의 모든 현안을 잠재우려한다는 것이 북쪽 사회의 일반적 여론이다.



비교(比較)야 말로 모든 불행의 시작이라고 쇼펜하우어는 이야기했지만 납치된 15명의 일본인과 수십만의 강제연행된 조선인의 운명의 무게를 북조선사람들은 그래도 비교할 수 밖에 없다.

일본정부의 북조선에 대한 불신 못지 않게 북조선도 일본정부를 불신하고 있다.

북의 <대포동>미사일발사이후 일본열도의 긴장이 최근 일이라면 일본의 <군사대국화>에 대한 북조선의 우려는 상당히 오래 된 일이다.

따라서 북조선도 일본도 한(조선)반도에서 무력분쟁이 일어난다면 이는 당연히 일본을 포함된 분쟁이라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본이 유일초대강국 미국의 대북조선정책을 계속 추종하느냐 아니면 이로부터 어느 정도 거리를 취하면서 동북아에서 중국과 함께 나름대로의 장(場)을 만드느냐하는 선택 앞에 일본은 서있다.

이라크전쟁때 국민의 일반적 정서와는 반대로 일본정부는 미국을 지지했다.

일반적 정서가 이라크보다도 우호적이지 못한 북조선에 대해서 일본이 자신의 정책을 수립한다는 것은 확실히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러나 동북아 평화와 안정에 있어서 현재 <불안정한 중심>인 한(조선)반도에 대한 대담한 정책전환을 시작해야한다.

이러한 정책전환의 중심에는 조일관계의 정상화라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복수심>의 근거

조일관계의 정상화가 말처럼 쉽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독일과 폴란드가 화해하는 모습을 압축적으로 보여준 사진 한 장 - 1971년 12월 7일 브란트 서독총리가 바르샤와에 있는 2차세계대전때 희생된 폴랜드인의 추모비 앞에서 무릎을 꿇고 참회하는 - 이 전달하고 있는 그러한 진실이 두 나라 사이에 통한다면 관계정상화는 어려운 일이 결코 아니다.

얼마 전 서울에 다녀온 독일기자가 일제때 강제 연행된 조선인에 대한 공식적인 일본정부의 사죄와 보상을 요구하면서 일본 대사관 앞에서 매주 수요일마다 시위를 하는 것을 기사화 하면서 <정신대>로 끌려갔었던 황금주(83)할머니와 나눈 2시간이상의 대담을 담은 녹음 테이프를 보내왔다.

결론적으로 그녀는 금전적인 보상이 아니라 일본정부의 공식적인 사죄를 요구했다.

그녀도 위에 지적한 대로 강제 연행된 수십만의 비참한 운명에 대해서는 사죄를 하지 않고 어떻게 납치되었던 15명의 일본인의 운명만을 이야기할 수 있는가하고 물으면서 일본정부의 공식적인 사죄를 요구했다.



남북으로 갈라져 반세기 이상 갈등 속에 살아오고 있는 한(조선)민족의 대부분은 그들의 불행의 뿌리를 일본에 의한 조선 강점에서 찾고 있다.

니체가 <도덕의 계보(系譜) Zur Genealogie der Moral>에서 자기 자신의 절대 긍정을 담고 있는 도덕에 대해서 <밖>이나 <자기자신이 아닌 것>에 대해서 <아니다>를 주장하는 <복수(復讐) Ressentiment>의 도덕을 이야기한 적이 있다.

남이나 북도 이러한 의미에서 이러한 도덕을 키워 왔다. 사실 그러한 반작용의 힘이 남과 북에서 자기 긍정으로 전화된 것을 여러 형태로 확인할 수 있다.

남과 북에서 기회 있을 때마다 분출하는 <민족주의적> 흐름에 대해서 남쪽의 일부 지식인들 사이에 최근 <민족주의는 반역이다>라는 식의 자기 비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이러한 흐름을 자기긍정적인 동력으로 평가하고 있다.

특히 북의 <주체사상>은 그러한 흐름을 압축해서 표현하고 있다. <밖>이나 <자기 아닌 것>에 대한 저항과 복수심을 약화시키고 또 이의 방향을 바꾸기 위해 근엄한 <금욕적 사제(司祭)>는 <바로 너 자신에게 책임이 있다>는 식으로 유도하고 있다고 니체는 지적했지만 비슷한 논법은 북에게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평양에서 열린 학술토론회를 함께 주관했던 북측의 <사회정치학회>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서 남측의 <통일포럼>이 최신형의 노트북을 몇 개 선사하려 했다.

그러나 펜티늄급이상은 <전략물자>로서 규정되어 있고 또 많은 부품이 미국특허라 반출이 불가능하다고 해서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밖>의 세계에 대한 복수심만을 키우고 문을 안에서 단단히 걸어 메었기 때문에 북조선이 오늘과 같은 사회가 되었다고 이야기되고 있지만, 북은 오히려 미국과 일본이 주도하는 <밖>의 세계가 북이 밖으로 나오지 못하도록 대문의 빗장을 밖에서 비끄러맸다고 이야기한다.

역지사지(易地思之)

이러한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필자는 의사소통이 본질적으로 전제하는 합리성은 바로 관점을 바꾸어 본다는 데에 있다는 것을 먼저 생각하게된다.

그래서 필자는 미국, 일본 또는 남한이 북조선의 처지에 있다면 이들 나라들이 과연 어떠한 반응을 국제사회에 보일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특히 이라크전쟁이 끝나자마자 ?김정일은 후쎄인의 운명에서 교훈을 찾아야한다?는 기분 나쁜 소리를 듣고도 북조선이 그냥 조용히 있기를 바랄 수는 없을 것이다.

심지어는 영변의 핵시설에 대한 미국의 기습공격의 가능성에 대해서도 많은 보도가 나돌고 있다.

그러나 한(조선)반도에서의 전면전뿐만 아니라 동북아를 총체적인 혼란으로 빠뜨릴 그러한 위험한 도박을 부쉬 행정부가 할 수도 있다고 많은 사람들은 생각하고 있다.

북의 <핵카드>가 위험하다면 마찬가지로 미국의 <방어적 선제공격>을 골자로 하고있는 <부쉬 독트린>도 위험하다.



이러한 위험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우선 서로의 관점을 바꾸어 볼 수 있는 <대화>가 필수적이다.

언제 어떻게 끝날지 모르는 <3자회담>도 이미 시작되었고 남북간에도 당국차원의 대화가 다시 시작되었다.

그러나 중단된 조일간의 대화가 언제 본격적으로 재개될지 전망이 분명치 않다.

작년 9월 17일에 있었던 정상회담이라는 형식으로 돌파구를 마련했던 조일관계의 정상화가 이토록 난항을 겪는데는 일본이 조선반도를 포함한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한번 북조선의 입장에 서 본다는 <역지사지>의 미덕발휘에 너무 인색하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우선 필자는 하게 된다.

오부치 총리가 국정지표로서 <부국유덕 富國有德>을 내세운 적이 있다. 필자도 의미 있는 지표였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역지사지>야 말로 <유덕>의 시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필자는 하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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