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메일(Black Mail)과 블랙 박스(Black Box): <북핵위기>의 해법은 없는가 "
연일 매체가 보도하는 북의 <핵문제>를 접하는데 있어서 자주 등장하는 단어 가운데 <공갈 Black Mail>이 있다.
미국은 북의 <핵공갈>에 의연히 대처하겠다고 하고, 북은 북대로 미국이 행사하겠다는 여러 가지 <위협>에 대하여 역시 결연히 응하겠다고 하고 있다.
이렇게 서로가 상대방의 이야기가 <공갈>이나 <위협>이라고 보는 판단은 기본적으로 우리의 사회생활 모든 구석에서 자주 확인할 수 있다.
왜냐하면 <나>도 <타자>도 기본적으로 자기의 체험공간 안에서만 스스로를 반성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나>에게 있어서 <타자>는 결국 <나의 타자>로서 남게된다.
따라서 <나>나 <타자>가 똑 같이 <블랙 박스>속에 갇혀 있기에 <나>와 <타자>사이에는 실망도 생기고, 이는 필연적으로 서로가 서로에게 위험부담을 줄 수밖에 없다.
이를 사회학과 심리학에서는 <이중적 우연성 doppelte Kontingenz>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필연적으로 <내가 하려는 것을 네가 해준다면, 네가 원하는 것을 내가 하겠다>라는 일종의 순환적 상황을 만들게 된다.
비록 이러한 상황이 안정된 상태를 의미하지는 않지만 바로 그 때문에 상호간에 기대구조를 조정시켜 <불가능성>을 <가능성>으로 변환시킬 수 있는 <상징적으로 일반화된 매체들 symbolisch generalisierte Kommunikationsmedien>이 필연적으로 등장하게 마련이다.
여기에는 <권력/법>, <학문적 진리>, <돈>, <사랑>, <예술>, <가치>등이 속하지만, 오늘날은 <정보 Kommunikation>가 이들을 가장 포괄적으로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
바로 오늘 날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정보사회>의 눈부신 발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불가사의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북미관계>라고 할 수 있다.
북은 먼저 미국이 북의 <체제안전>을 보장해야한다고 주장하고 있고, 미국은 미국대로 북이 먼저 <핵개발>을 포기해야만 북과 대화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서로가 먼저 <불가침조약>과 <핵포기>의 의사를 밝혀야 한다고 요구하는 일종의 순환논리적 상황이 조성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만들어 왔던 여러 고리들 - 부시의 <악의 축> 발언, 북의 고위관리가 미국 특사 켈리에게 했다는 <핵개발> 의사표명, 중유제공중단, <핵확산금지조약>의 탈퇴 등 - 이 계속 연결되면서 생기는 불안정한 상태를 종식시킬 수 있는 방법은 없는가.
상호 일치하지 않는 기대지평이나 구조를 조정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대화>이다.
<대화>야 말로 서로가 지니고 있는 관점을 바꾸어 보고 이를 통해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공통점을 찾아낼 수 있는 이성이 넘나들 수 있는 그러한 공간이다.
따라서 북과 <대화 Talk>는 할 수 있지만 <협상 Negotiation>은 할 수 없다는 말이 들어내는 자기모순은 한마디로 <대화>가 이성 보다 높거나 또는 낮은 어떠한 <제3자>도 용인하지 않는다는 합리적인 원칙을 철저히 부정하고 있다.
아마도 영어로 <대화 Talk>가 그리스어로부터 기원하는 <대화 Dialogue>처럼 둘이 만나 새로운 가능성을 찾는 뜻하기보다는 그저 너는 너하고 싶은 이야기하고 나는 나하고 싶은 이야기한다는 서로 책임감 없이 나누는 그러한 내용으로 이해되고 있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대화>가 아니라 오히려 <독백 Monologue>에 가깝다.
<북은 이미 한 두개의 핵무기를 가졌다>, <이라크전이 끝나면 북이 그 다음 공격 목표다>와 같은 <블랙 박스>의 언어와 정보들을 열린 <대화>의 장에서 서로 검증하고 책임질 수 있는 분위기를 먼저 만들어야 한다.
이러한 분위기 조성에 <국제사회>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남쪽의 역할도 결코 작지 않다.
그러나 <한미공조>인가, 아닌가라는 <양자택일>의 논리로서 남쪽의 역할을 제한하고 남쪽의 <중재자>로서의 역할도 아예 부정하거나, 아니면 전통적인 <우방> 미국을 저버리는 행위로까지 보려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분단된 반쪽이 안고있는 미국과의 갈등은 곧장 다른 반쪽에게도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 있기에 민족전체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동시에 <한미공조>가 주종(主從)의 관계를 의미하지 않는다면 미국에 대해서 자기의 입장과 견해를 분명히 해야한다.
이라크전에 참가하는 문제를 가지고 자기의 입장을 세우려는 독일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유럽의 노력에서도 우리는 그러한 열린 공간의 가능성을 볼 수 있다.
북이 제기하고 있는 <민족공조>가 남쪽을 <인질>로 잡아두고 있는 논리라는 비판도 있지만 이는 너무 피해의식에 사로 잡혀서 문제를 보는 태도다.
이는 전쟁도, 또 평화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에서 반세기 이상을 보내는 중에 늘 반복되는 위기적 상황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려는 발상의 전환이 정말로 필요한 이때, 아직도 과거에 너무 집착하고 있는 태도라고 밖에 할 수 없다.
남쪽사회도 분명히 그러한 발상의 전환점을 이미 지났다는 사실을 노무현정권의 등장이 보여주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해묵은 관성으로부터 여전히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세력이 존재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북은 말로는 <민족공조>를 표방하지만 이는 남으로부터 <경제원조>나 더 타내려고 하지 실제로는 미국과 협상을 통해서 <통미봉남 通美封南>의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는 비판이 많다.
그러나 북의 입장에서 볼 때는 미국과의 관계정상화 없이는 <국제사회>가 북을 향해 끈 즐기게 요구하고 있는 <개혁> 과 <개방>마저도 사실 어려운 이야기일 것이다.
물론 하나의 체제가 변화하기 위해서는 체제 내적인 변화도 주요하지만 이를 순조롭게 만드는 국제 환경도 중요하다.
머지 않은 미래의 위험한 도전자 중국을 의식한 미국이 한반도의 의미가 북미간에 <불가침협정>, 나아가 <평화협정>이 체결될 경우에 제기될 <주한미군>의 위상문제로 곧 연결될 것을 뻔히 알고 있기에 <체제보장>을 <서면>형식으로는 할 수 있으나 <협정>이나 <조약>형식으로는 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클린턴 정부 말기에 기대했던 북미관계의 정상화가 부시행정부의 등장과 함께 곧 무산된 경험이 있는 북이 그러한 <서면>형식의 약속에 동의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또 현재 일각에서 제기되는 <단계적>인 해결책도 북이 궁극적으로 요구하는 북미간의 <불가침협정>에 대한 일정이나 청사진이 들어 나지 않는 조건에서 곧 협상에 응하지 않을 것이다.
상호불신의 골이 깊어진 이러한 상황에서 그러면 아무런 일도 진전시킬 수 없는가? 그렇지는 않다.
북미는 먼저 1994년의 <제네바협정>의 재검토로부터 <핵문제> 그리고 <불가침문제>문제까지를 포함한 모든 안건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 <대화>와 <협상>을 시작하는 수순(隨順)을 밟아야한다.
즉 <일괄타결>이라는 기조 위에서 <대화>와 <협상>을 시작해야한다. 상대방이 먼저 <블랙 박스>에서 나와야 <대화>할 수 있다는 전제로부터가 아니라 북미가 동시에 각각의 <블랙 박스>에서 나와 모든 현안문제를 협상의 탁자에 올려 놓아야한다.
이 때 <국제사회>가 <대화>와 <협상>의 성공을 위한 불편부당(不偏不黨)한 분위기를 조성해야하는데 이에 대해서 사실 북은 지금까지 회의적이었다.
특히 <국제원자력기구>에 대한 북의 강한 불신은 94년의 위기 때에도, 그리고 최근에도 분명히 나타나고 있다.
북미간의 쌍무적인 문제를 <국제화>해서 북을 더욱 고립시킨다는 전략을 미국이 고수하고 있다는 확신을 갖고 있는 북을 안심시키기 위해서도 <안보리상임위>와 남한과 일본이 참여하는 이른 바 <5+2>안도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고이즈미 총리가 평양을 방문하고 약속한 북일 사이의 관계정상화 마저도 <일본인납치>문제로 전혀 가동 못하는 조건에서 남쪽은 몰라도 일본까지 끌어 드리는 그러한 <국제사회>의 보장에 북이 선뜻 동의하기 힘들 것 같다.
오히려 북미간의 협정 - 이는 현재의 <제네바협정>을 다시 확인 할 수도 있고, 이를 보강할 수도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완전히 새로운 협정일 수도 있다 - 을 <안보리상임위>가 보장하는 형식이 되어야 보다 효과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반도 평화의 틀을 공고하게 만들 수 있는 가능성과 이의 한계는 앞으로 이라크문제의 해결양식에서도 곧 들어 날 것이다.
<유엔>의 결의와는 무관하게 독자적으로 군사행동을 벌리겠다는 부시행정부의 대 이라크정책은 특히 한반도에서도 <타산지석>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석유재벌의 이해관계와 밀착된 부시행정부가 이라크유전에 대한 관심 때문에 한반도보다 이라크에서 먼저 승부수를 걸고 있지만 이의 결과가 따라 미국의 북에 대한 강온정책의 정도와 폭도 들어 날 것이다.
미국의 대 이라크전쟁이 몰고 올 파고의 심각성에 대해서 어느 나라보다 걱정해야할 우리가 아직은 너무 낙관적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북핵위기>도 국내에서 느끼는 것이 외국에서 느끼는 것보다 덜 심각하다는 이야기도 들리는데 이러한 분위기가 남북의 위기관리능력에 대한 믿음보다는 <잘 풀리겠지>하는 오래된 타성과 습관에 의존한다면 이 역시 큰 일이다.
<이라크 보다 북이 더 큰 문제다>라는 공공연한 한반도에 대한 상황평가는 어떤 의미에서 우리 스스로가 우리의 한반도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더욱 더 기우려야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바로 이렇기 때문에 한반도의 문제를 남북이 그의 주인된 입장에서 판단하는 것과 함께 한반도를 가공할 전쟁의 위험을 재생하는 구조로부터 하루 빨리 평화적 구조로 적극적으로 바꾸어야만 하는 과제를 제시하고 있다.
<자주>와 <평화>는 따라서 <블랙 메일>이나 <블랙 박스>에 갇혀 불안한 <분단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있어서 결코 포기할 수 없는 화두(話頭)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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