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두율교수 저서 독후감 공모전
  제목    송두율 교수 인터뷰 (2003.5.) - 이용우기자
  글쓴이 freesong 글쓴날 2003-11-24 04:08:56 조회 3682

오는 8월23일(토) 토론토에서 교민들을 대상으로 강연회를 갖는 송두율(宋斗律·59) 독일 뮌스터대학 교수는 29일 오후 본보와의 전화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학문적 이력과 토론토를 방문하게된 소감 등을 담담하게 피력했다.

세계적인 철학자이자 「반독재 상징」인 송교수는 특히 자신이 이룩한 학자로서의 업적보다도 반정부·친북인사로 더 알려진 데 대해 아쉬움을 표시하면서 해외에서 40여년을 생활해온 지식인으로서 현재 한국정부에 대해 갖고 있는 솔직한 심경을 나타냈다. 인터뷰는 먼저 수일전 이메일을 통한 질의응답에 이어 29일 전화통화 순서로 이루어졌다. 다음은 송교수와 가진 인터뷰중 주요 내용만을 간추린 것이다.

*캐나다 방문은 이번이 처음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동안 독일을 떠나 다른 나라에서 해외동포들을 상대로 강연한 적이 있는지.

-캐나다 방문 강연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러나 전에 한국의 서울대와 고려대·충남대학생을 위한 영상강연을 했고, 미국의 여러 대학에서도 강연과 강의를 한 바 있다. 뉴욕·로스앤젤레스·워싱턴·샌프란시스코·오스틴 등지에서 동포를 위한 강연도 많이 했다. 유럽은 물론, 일본·중국에서도 자주 강연이 있었다.

*교수께서는 세계적인 철학·사회학자이면서도 학문적 업적보다는 반정부 지식인으로 더 널리 알려져 있다. 이 기회에 이 점에 대해 설명한다면.

-나는 1967년 대학 졸업 후 독일 유학길에 올라 프랑크푸르트대학의 하버마스(J. Habermas) 교수 지도 아래 공부를 했다. 독일에서 하버마스 교수를 만난 것은 내 인생에서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는 정통 마르크스주의와는 거리를 두면서도 현대자본주의 사회를 비판적으로 해석한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대표적 학자였다. 그는 특히 반전시위로 뜨거웠던 68년, 소위 68세대에 정신적 자양분을 공급하는데 큰 공헌을 한 인물이다.

72년 하버마스 교수의 지도로 박사학위 논문을 마친 나는 그로부터 「막스-플랑크연구소」 소장으로 자리를 옮기는 자신과 함께 뮌헨에 가자는 제안을 받았지만 정중히 사양하고 뮌스터대학에서 강의를 시작했다.

당시 나는 연구소보다는 독일 대학에서의 학사행정 경험을 살려 다시 서울로 돌아가 학문과 대학발전에 기여하겠다는 뚜렷한 목표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후 시대상황이 그 희망을 용납지 않았던 것이다.

본인에 대해 자랑하는 것 같아 쑥스럽지만 내가 지은 저서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즉, 우리말 저서로는 「계몽과 해방」 「소련과 중국」 「현대와 사상」 「전환기의 세계와 민족지성」 「역사는 끝났는가」 「통일의 논리를 찾아서」 「21세기와의 대화」 「민족은 사라지지 않는다」 「경계인의 사색」 등이 있다. 이밖에 7편의 독일어 저서와 수십편의 영어논문을 철학과 사회학전문지에 발표했다. 이같은 학문적 성취실적에 대해 굳이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교수께서는 한국정부로부터 친북·반정부 인사로 낙인찍힌 상태인데 과연 진실이 그러하다고 자인하는지.

-이 문제는 주로 나와 (북한 노동당비서출신인) 황장엽과의 재판기록을 중심으로 정리한 결론부분을 참고하면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뒤 엉뚱하게도 황장엽씨의 발언이 터졌다. 『송교수가 조선로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이며 권력서열 23위인 김철수라는 사실을 대남담당 비서였던 김용순에게 들었다』는 황씨의 검증 불가능한 주장이 한국언론에서 사실인 양 대서특필됐던 것이다.

나는 이에 대해 98년 9월, 황씨를 상대로 명예훼손에 의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3년 가까이 끌어온 재판은 2001년 8월 1심 선고가 내려졌다. 당시 서울지방법원은 『송두율이 정치국 후보위원 김철수라는 주장은 진실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결했다.

그러나 증거도 없고, 진실이라고 보기도 힘든 황씨의 주장은 현재까지도 본인의 입국불허 사유로 적용되고 있다.

*한국의 인권상황과 이른바 「준법서약서」란 제도에 대해 언급한다면.

-간단히 말해서 「준법서약서」는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비민주적 법이기 때문에 지금까지 거부하고 있다. 최근 한국의 새 정부는 국내의 공안사범에 국한해서 이러한 관행을 8월부터 폐지하지만 해외에 거주하는 과거 한국국적의 동포에게는 계속 적용한다고 밝혔다. 이같은 「반쪽짜리 개혁」에 대해 국내에서도 많은 비판이 일고 있다. 나는 이 문제가 전향적으로 해결되기를 바란다.

*북한의 인권상황과 향후 북한이 나아갈 길에 대해 간략히 전망해달라.

-북한의 인권상황을 단지 정략화하기 위해 거론하는 것은 반대한다. 인권과 생존권을 동시에 바라보는 균형감각이 필요하다.

*토론토 교민들의 이해를 위해 본인의 약력을 상세히 소개해달라.

-나는 해방직전인 1944년 10월12일 일본 동경에서 출생했으며 서울 중동고와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한 후 67년 독일로 유학, 하이델베르크대학과 프랑크푸르트대학에서 철학과 사회학·경제사를 전공했다. 72년 프랑크푸르트대학에서 하버마스 교수의 지도아래 철학박사학위를, 82년엔 뮌스터대학에서 사회학교수 자격을 받았다. 지난 72년부터 뮌스터대·베를린자유대·하이델베르크대·훔볼트대·미국 롱아일랜드대 등에서 철학과 사회학을 강의했으며, 현재 뮌스터대 사회학교수로 재직중이다. 지난 93년 8월 독일국적을 취득했다.

*토론토 교민들에 대해 하고싶은 말이 있다면.

-솔직히 다른 지역의 동포보다 정보는 적다. 그러나 과거 유신정권에 대항해 투쟁하셨던 김재준 목사님도 한동안 토론토에 계셨던 것으로 알고 있다. 많지는 않지만 몇 분의 통일인사도 알고 있다. 어디든지 그렇지만 21세기가 어떤 세계가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속에서 분단된 조국의 평화와 통일, 그리고 현재 살고 있는 지역사회의 건강을 항상 함께 생각하는 삶이 있어야 할 것이다.

현재 베를린 시내에 살고 있는 송교수는 지난 73년 프랑크푸르트대에서 독문학과 도서관학을 전공한 정정희(61·현 베를린예술대 사서)씨와 결혼했으며 부인과의 사이에 준(28·화학박사·독일 막스-프랑크 고분자화학연구실 연구원)과 린(27·의학박사·전문의 수련중) 등 2남을 두고 있다.
(이용우 기자 joseph@koreatime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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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5 남북공동선언>발표 3주년을 맞아 조국에 띄우는 글 "(2003.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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