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2신>
사랑하는 당신, 준과 린!
오늘 먼 시카고에서 면회 온 장수내외와 당신과 린을 보내고 방에 올라오니 교도관이 무슨 문서를 전해주어 받았소. 이미 지난 12일자 신문에 보도된 변호사 입회를 둘러싼 대법원 판결문이었소.
이 판결문 원문을 읽어보면서 문득 지난번 면회 때 바인호프 영사가 한 이야기를 떠올리게 되었구려. 1948년 대한민국 헌법제정 이후 수 차례 개정되었지만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들어있었던 민주적 권리의 하나가 드디어 2003년 11월 송 교수 때문에 빛을 보게 되었다는 이야기였지요.
어제 금요일은 예외적으로 검찰이 일찍 수사를 마쳐 처음으로 저녁식사에 맞추어 구치소에 도달했지요. 그런데 저녁식사를 감방으로 날라주는 청년 수감자가 혼잣말인지, 아니면 나보고 하는 말인지 모르게 “나는 대한민국이 정말 싫다”고 하더군요. 그 연유를 물을 수 없었지만, 종종 검찰출두 때 따뜻한 인사를 건네는 수감자들 중에 어떤 분들은 노골적으로 “뭐하러 한국에 오셨습니까? 고생이 너무나 많습니다”라는 이야기를 하는데, 이를 미루어 그 청년도 같은 뜻으로 말한 것이 아닌가 생각되오.
이야기가 조금 빗나갔지만, 오는 11월 20일로 검찰수사 만기일이 되니 어떻든 결론이 나오겠지요. 당신과 준, 린도 너무 기대하지 말기를 바라오. 명명백백히 진실을 법정에서 가리지 않고서는 국정원, 검찰, <조중동>, 그리고 한나라당으로 이루어진 <신성동맹>이 지난 두 달 가까이 펼친 추악한 <여론재판>에 대해 맞설 기회가 없기 때문이오. 이 <여론재판>을 끌어가는 논리가 과연 무엇이겠소? 한마디로 말해 내가 그토록 싫어하는 <이것이냐, 저것이냐>라는 양자택일의 논리지요. 이런 논리는 당연히 <국가보안법>의 축을 이루어 친북 <고무, 찬양>과 반남 <비방, 중상>은 같은 내용으로 해석될 수 밖 에 없지요. 또 이런 논리는 내가 항상 이야기해온 <경계인>을 이해하려는 노력보다는 <남이 싫으면 북에 가서 살아라>하는 일차원적인 사고에 머물려고만 안간힘을 다 쓰고 있지요. 이런 천박한 논리가 이른바 <언론>의 기조를 이루고, 이 <언론>에 용감히 글을 써대는 이른바 <지식인>의 지적 세계를 지배하는 현실은 분노와 함께 서글픔조차 느끼게 하고 있소.
얼마 전 이창동 문화부장관이 <한겨레>의 홍세화씨와 가진 인터뷰에서 이번 나의 사건과 관련 <지식인>이 과연 무엇을 했는가 라는 짧은 지적도 같은 맥락에서 나온 문제라고 생각되는구려. 당신이 잘 아는 화가 칸딘스키(Kandynski)가 이미 1927년에 현대는 계속 이것이냐 저것이냐 라는 양자택일, 그것도 빨리 해야 하는 양자택일의 비극에 시달리는데, 앞으로는 ‘이것인 동시에 저것’인 <~과~>라는 의 세계가 될 것이라고 했지요.
이런 지적 노력은 예술뿐만 아니라 철학과 현대물리학에서도 계속 추구되어 하이데거가 <사이, Zwischen>를, 멜로-뽕띠가 <혼합, milieu mixte>을, 그리고 쎄르는 <배제하고 통합하는 제3>를 이야기했지요. 이런 지적 노력이 현대 서구에서만 있었던 것을 결코 아니지요. 우리의 역사 속에서는 원효가 이미 <금강 삼매경론>에서 <같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고 非同非異>, 또 <같고 동시에 다른 亦同亦異> 세계를 이미 이야기했으니까요.
당신도 기억하지? 베를린에서 열린 국제영화제에서 상연된 <경계도시>를 보고 인터뷰를 한 베너가 인터뷰 기사의 제목을 <생산적인 제 3자 produktiver Dritte>라고 불렀던 것을…
바로 이 위치를 증오하고 비하해서 겨우 <기회주의자> 정도로나 매도하는 37년 만에 찾은 이 땅의 분위기에 실망도, 때로는 증오도 했으나, 그래도 나의 위치와 역할을 이해하고 뜨거운 성원을 보내주는 사람이 너무나도 많아 용기를 얻곤 하지요. 매일 한번도 보지 못한 사람들로부터 받는 따뜻한 편지들이 이를 증명하고 있지요.
오늘은 이만하고, 항상 건강한 몸으로 면회에서 만나기를 바라며…
2003년 11월 15일
당신을 생각하며 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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