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신>
사랑하는 당신 그리고 린!
우리가 베를린을 떠날 때만해도 상상치 못한 상황 속에서 당신에게 처음 보내는 편지를 쓰고 있는 나 자신을 생각하니 이런 것을 < 운명의 장난>이라고나 할 수 있을지…….
그러나 월, 수, 금 오전에는 당신과 린이를 - 비록 체온을 서로 전달하지는 못할지라도 - 면회실 창을 넘어 바라보고 이야기 할 수 있어 큰 위안이라고 생각하오.
나보다 밖에서, 그것도 아직도 서울의 지리도 익히지 못한 상황 속에서, 여러 가지로 수고도 많고, 마음고생도 많을 것으로 여겨지니 가슴 한 칸이 무겁구려.
그러나 우리의 삶이 순수했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우리의 삶을 지지하고 성원하는 소리를 당신도 밖에서 듣고 용기를 얻으리라고 생각하오.
이곳도 마찬가지로, 사연은 비록 달라도 - 구치소에 들어온 내역을 일일이 물어볼 수 없지만 - 만나는 사람마다 “선생님 힘내십시오”하는 인사를 들을 때마다 지금까지 나의 삶이 헛된 것이 아니었고 그러한 길을 앞으로도 당당히 걸어가야만 하는 어떤 약속을 스스로와 하게 되는구려.
네루다(Neruda)의 Memoir의 제목처럼(Ich bekenne, ich habe gelebt: 내가 살았다는 것을 나는 고백한다) 나도 그러한 삶을 언젠가는 기록할 수 있기를 스스로와 약속하면서 시간 나는 대로 운동도 하고 요가도 해보고 (물론 아직까지도 책보고 연구해보는 단계지만) 독서로 빈 시간을 채우고 있지요. 너무나 잦은 검찰 출두로 본격적인 생활리듬을 찾지 못하고 있지만, 이 달 20일 경을 지나고 어떤 결정이 나오면 생활 규율도 전체적으로 조정해야 될 것 같소.
그리고 당신의 인터뷰 - 아마도 "Woman Sense"의 -를 이발소에서 읽었다고 검사가 얼마 전에 이야기하면서 우리들의 애들 교육이 참 성공했다고 부러워하더군. 물론 이 모든 것이 당신이 씨 뿌리고, 애지중지하면서도 그래도 절도 있게 키운 덕이라고 생각하오. 준이도 그렇고, 린이도 그렇고 다행히 부모의 처지를 이해하고 오히려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니 더욱 대견스럽고 용기도 얻게 되오.
좌우간 무엇보다도 건강에 유의하고 독일 생활공간도 이곳 못지않게 - 아니 이곳보다도 더 - 중요하니 직장 문제도 생각해보고 두 달 부재가 낳은 공백정리도 계획해보고 준과 린이도 내 문제로 신경 너무 써서 각자 갈 길을 소홀히 해서도 안 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소.
크리스만스키가 그렇게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이 곳을 찾아 여러 가지로 도움이 되었고, 처음 뵙는 백 선생님의 후의에도 감사의 생각을 우선 전하고 싶소. 언젠가 나가면 여러 분들을 꼭 찾아뵙겠다는 인사 대신 전해 주구려.
시간 나는 대로 계속 편지를 써 예상치 못했던 ‘생이별’의 찬 공간을 따뜻하게 채우려 하오. 그럼...
2003년 11월 9일 당신을 사랑하는 律
ps. 오늘 검찰에서 돌아오니 준이 편지와 자료를 받았소. 준이에게 아빠의 인사를 전해주오. 11월 10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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