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두율교수 저서 독후감 공모전
  제목    제2차 공판 변호인 반대심문과 송교수답변 내용
  글쓴이 freesong 글쓴날 2003-12-18 14:46:38 조회 2966

제2차 공판 변호인 반대심문과 송교수답변 내용

(일시: 12월 16일 오후 2시 30분)

 

 

<변호인 반대심문: 송호창 변호사>

 

*송교수께서 유학을 가게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 서울대학교에서 철학을 전공하였는데, 당시 60년대 우리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철학적 지식이 많이 부족한 것을 느꼈기 때문에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유학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송교수께서는 철학, 사회학 등 다양한 영역을 학문분야로 다루고 계신데, 주된 전공영역은 무엇인가요?

- 저의 원래 전공은 철학, 사회학, 경제사입니다. 그러나, 68년은 전세계가 보수와 냉전의 벽을 깨려는 분위기였는데, 그 운동의 사상적 지주였던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하버마스 밑에서 학위를 받았습니다. 그 후 여러 곳에서 저를 초청하였는데, 그 중에 제가 선택한 곳이 뮌스터 대학입니다. 그리고 뮌스터 대학에서 사회철학, 사회과학 이론, 그리고 문화철학, 사회학, 후진국 사회학, 비교철학 관련 강의를 30년 동안 하였고 관련 저서를 저술하였습니다.

그리고 70년대는 68년 운동의 영향으로 사회주의와 사회주의 철학이 커다란 관심을 끌던 시기였기 때문에, 맑스의 정치경제학, 맑스와 칸트 비교를 비롯한 강의들을 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소련과 중국의 자기중심적이고 도그마적인 사회주의에 대한 비판적 의식을 가지게 되었으며 어떠한 것이 정당한 사회주의인가를 중심적으로 연구하게 되었고 사회주의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의 문제를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소련을 선호하는 학자들은 소련을 올바른 사회주의라 주장하였고, 중국을 선호하는 학자들은 중국을 올바른 사회주의라 주장하였습니다. 전자는 소련의 맑스-레닌주의에 대한 연구를 주로 연구하였고, 후자는 문화혁명의 영향으로 중국, 북한, 쿠바, 알바니아 등을 새로운 대안으로서의 사회주의로 파악하고 연구하였습니다. 저는 그 당시에 로빈슨의 논문들과 브라덴 슈타인의 남북한 경제 비교 논문을 읽고 난 뒤, 외국인들도 북한을 왔다갔다하는 것을 보고 이에 자극을 받아 북한에 학문적 관심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73년 입북하게된 경위를 말씀해 주시죠.

- 사회주의에 대한 연구 중에 북한사회주의를 살펴보려는 생각이 들게 되었고 북한을 학문적으로 연구하고자 하였으나 북한의 대외적 폐쇄성으로 인하여 외부에 자료들이 많이 나와있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학문적 관심으로 자료수집과 북한의 실상을 눈으로 보고자 북한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현대성과 탈현대성]이라는 책을 저술하고 있는데, 5부작 예정이며, 현재 3부장을 집필하고 있습니다.

 

*송교수는 학문적 관심으로 방북하였다는 것이죠?

- 예, 저는 오디세이가 자기 고향을 찾기 위해 10년 동안 방랑을 하던 중 사이렌의 유혹을 떨치기 위해 자신의 몸을 배의 돛에 묶었듯이 자신도 학문을 하는 과정에서 여타의 유혹을 떨치고자 노력하였고 분단된 조국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조국이 아닌 타국에서 37년 간 살아왔습니다.

 

*학문연구의 과정을 좀 더 상세히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 저는 철학, 사회학, 경제학과 관련된 연구를 해왔으며, 박사학위는 [계몽과 해방-헤겔, 맑스, 막스베버에게 있어서 동양세계의 의의]라는 철학논문으로 취득하였습니다. 저는 학문의 시작은 철학에서 하였지만, 현실과의 거리를 좁히고, 구체성을 획득하기 위하여 교수자격 논문은 사회학 전공 논문을 썼습니다.

 

*사회주의 비교사를 연구하게된 배경은 무엇입니까?

- 소련, 중국의 자기중심적인 사회주의의 편향성을 극복하기 위해서 사회주의 비교사 연구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방법론으로 내재적 방법론을 적용해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내재적 방법론이란 먼저, 경험적 데이타에 근거해야 한다는 것이며, 둘째 비교사회주의를 채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재적이란 의미의 반대의미는 외재적이 아니라 칸트의 선험적 방법론이며, 비교사회주의란 역사, 사회발전 경향에 따라 사회주의는 다르게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소련에서는 소련의 특수한 상황에 따른 사회주의가 성립되었고, 중국은 중국대로, 북한은 북한대로 특이한 상황이 주는 제약성과 현실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방법론을 통하여 75년부터 방대한 양의 경험적 데이타를 이용하여 소련과 중국을 비교한 비교사회주의 연구논문(교수자격논문)을 썼습니다.

 

*송교수의 내재적 방법론은 완전히 독자적인 이론이 아니라 서양철학 특히 칸트에 의해 정립된 이론이라고 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 칸트의 선험비판론은 경험적 세계의 뒤에 있는 세계를 설명하고자 하는 것인데, 사회과학에 적용할 때 선험적 존재론으로 나타나는 문제점이 있습니다. 즉, 구체적인 것을 파악하는데 중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프로젝션, 다시 말해서 자기가 원하는 이념을 설정해 놓고 이에 의해 사회를 파악하고, 그 존재를 정당화하는 문제점을 노정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소련, 중국의 독단적 사회주의에도 나타나는데, 사회주의를 기존의 사회를 정당화하는 것에 중심을 두었습니다. 따라서 이에 저는 칸트의 내재적 비판을 사회과학 방법론에 적용하여 내재적 방법론을 주창하면서 기존 사회주의 시스템을 비교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송교수의 내재적 방법론에 따르면 대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대상 속에 들어가서 대상을 이해하려고 하는 것이 전제되어야 하겠군요?

- 예, 이러한 방법은 매우 당연한 것처럼 보이지만 자신이 대상이 아닌 이상 대상을 이해하는 것이 매우 어려우며 대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대상 자체의 언어로 이야기 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내재적 방법론은 동양의 장자의 사상과 서양의 해석학적 방법론, 그리고 우리의 원효사상과 그 맥을 같이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내재적 방법론에 따르면, 북한사회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직접 북한을 살펴보는 것이 필수적이겠군요.

- 예, 당시 중국과 소련에 대한 데이타는 많지만 북한의 데이타는 별로 알려져 있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외부적으로는 얻기 어렵기 때문에 직접 가서 살펴보고 데이타를 수집하고자 하였던 것입니다.

 

* 독일에서 이미 보았던 데이타와 북한에 직접 가서 얻은 데이타는 어떠한 차이가 있었습니까?

- 예를 들어, 사회주의 국가에서 소득분배 방식에 차이가 있었는데, 60년대 이후로 오면서 소련은 거의 현금분배 방식이었고, 중국은 80%이상이 현물분배 방식이었습니다. 그런데, 북한의 소득분배에서 현물이 차지하는 비중은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막연히 그 중간적 방식이 아닐까하고 제 자신이 추정을 해 보았을 뿐인데, 직접 가서 살펴보니 과연 그러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외부에서 대상을 보는 것과 대상 속에 들어가서 보는 것은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검찰이 내재적 방법론을 바라보는 태도는 북한을 이해하고 남한에 선전선동하는 도구로 사용되었다는 것인데, 송교수의 말대로 내재적 방법론이 모든 세계를 이해하는 보편적 방법론이라면 남한사회에도 적용해 볼 수 있겠군요?

- 예, 그 한 예로 제가 이번에 남한에 와서 겪어보니 과연 남한이 자유민주주의적인가라는 의심을 재판과정에서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내재적 방법론이란 대상을 대상 그 자체의 눈을 통하여 보는 것을 전제하지만, 그에 대한 비판까지를 포함하는 것입니다.

2002년에 교수신문 프로젝트에서 해방이후에 외부로부터의 수입이론이 아니라 남한의 자생적, 독창적 이론이 어떤 것이 있는 가를 한국의 교수들에게 앙케이트조사를 통하여 알아보았는데 그 중에는 함석헌 선생의 씨알사상, 안병곤 선생의 민중신학 등이 있는데, 그 20가지 이론 중에 내재적 방법론이 포함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현재 송교수에 대해 진행중인 재판에서 학문적 부분에 대해 국가보안법으로 기소하신 것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학문의 세계를 판단하는 코드는 진실이냐 허위이냐이며, 법의 코드는 적법한 것이냐 위법적인 것이냐입니다. 그렇게 다른 코드를 가지고 있는 법의 잣대로 학문의 영역을 재판할 수 없다고 봅니다. 사상은 자유로운 논쟁에 맡기고 법은 그 테두리 밖에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히틀러가 하이네의 책을 불태운 자리에 브레히트는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습니다. "책을 불태우는 자는 사람을 불태울 것이다" 나의 학문세계를 국보법 위반으로 기소한 것 역시 그와 같은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주체사상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요?

-비교사상사적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첫째, 바이마르 공화국때 독일 1차대전 패전 후 제국주의의 분할정책으로 고통을 겪는 상황에 처해 있을 때, 오스발 슈펭글러, 칼 슈미트, 에스트리히 융거 등이 주창한 민족볼셰비즘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어려움에 처한 바이마르공화국을 제국주의 분할정책으로부터 어떻게 지킬 것인가라는 문제를 민족이데올로기와 계급이데올로기를 결합시켜서 해결하고자 하였던 것입니다. 북한도 그와 비슷한 상황에서 그와 비슷한 사상적 고민을 한 결과 주체사상을 들고 나온 것이 아닌가합니다.

둘째, 보편과 특수를 바라보는 북한의 주체적 태도 때문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나폴레옹이 프로이센을 공격할 때, 피히테는 두 가지 명제를 제시하는데, 첫째 '나는 나다'라는 것으로서 나를 정립하는 문제이며, 둘째 '나는 비아다'로 비아를 정립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체철학과 관련된다고 생각합니다. 통일의 문제는 세계화를 주장하면서 동시성을 강조하는 남한과 주체를 이야기 하면서 비동시성을 강조하는 북한을 어떻게 통합할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저는 동시성과 비동시성을 어떻게 철학적으로 통합할 것인가가 저의 주된 관심이었습니다. 주체철학을 야만으로서만 볼 것이 아니라 긍적적 야만으로서 파악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어떻게 보면 촌스럽지만 그 속에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주체사상은 어려운 상황에 처한 그들의 대처노력의 일환이라고 생각합니다.

 

*주체사상을 평가해 주십시오.

- 그것은 변방의 세계가 자기를 긍정하는 철학입니다. 주체철학은 자기를 강하게 긍정하는 것이지만 자기를 긍정하는 순간 타자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가 문제로 떠오릅니다. 즉 북한은 국제적 환경에 어떻게 적응할 것인가의 문제를 보다 심각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저는 주체의 문제는 언어의 한계이며 세계의 한계라고 생각한다고 북한에서의 강연 도중에 지적하였습니다. 즉 북쪽의 폐쇄성은 변화하고 있는 세계에 대한 번역의 한계라는 점을, 그로 인해 주체철학만 주장하고 다른 것을 전혀 받아들이지 않는 자폐증이 대단히 큰 문제라고 그들에게 항상 강조했습니다.

 

*그 말의 의미는 무엇인지요?

- 중국에서는 각종 학회가 활성화되어 있습니다. 그를 통해 학문이 상당히 분화되어 있습니다. 북에서는 학문적 네트워크가 부족합니다. 그리고 국제적 채널이 부족하며, 따라서 대화가 부족합니다. 이로 인해, 학문간의 연동성이 약하며, 특히 사회학이 분화되어 있지도 못합니다. 저는 북한 사람들에게 외부와 채널을 만들고 대화해야 하며, 내부적으로도 대화와 채널이 필요하다고 충고하였습니다. 언어는 고립되어 있어서는 안되면 다른 언어와 만나서 대화를 하여야만 언어의 한계가 극복될 수 있습니다.

 

*북한에 주체사상의 폐쇄성 문제를 제기했나요?

- 예, 북한에서의 몇 차례 강연에서도 언급하였듯이 주체사상만으로는 세계를 이해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즉 부분(주체사상)만으로는 전체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지적하였습니다.

 

*방북해서 주체사상 이론가들과 대화를 하였다고 하였는데 어떤 내용의 대화가 오고갔나요?

- 앞에서 말했듯이 주체사상에 대한 제 생각을 밝혔지만 이에 대해 시간을 할애한 것은 얼마되지 않았고, 대부분의 시간은 최근 유럽의 학문동향, 페레스트로이카, 러시아 철학의 동향 등에 대해서 논의하였습니다. 북의 학자들은 제가 유럽 사상흐름에 대해서 얘기해주는 것에 대해서 무척 환영하였습니다.

 

*주체사상의 폐쇄성의 한계로 유럽사상조류에 대한 정보를 제공할 필요가 있었고 북의 이론가들도 그러한 필요로 인해서 송교수와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는 것인가요?

- 예, 그렇습니다.

 

*방북의 주 이유는 무엇입니까?

- 대부분 학문연구를 위한 자료수집이 목적이었으며, 90년대 중반이후부터는 통일학술회의 준비를 논의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주로 어떠한 자료들을 얻을 수 있었습니까?

- 북한이 중국과 같은 개혁개방을 할 것인가가 주요한 주제입니다. 중국은 4대 현대화노선에 입각한 외국자본 도입, 경제특구건설, 기술도입 등을 하였는데, 북에서도 합영법제정, 나진, 선봉과 같은 경제특구 건설을 하였습니다. 각종 개방프로젝트가 진행되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국의 몇몇 학자들이 북한의 개혁개방은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한 공동연구를 진행하자는 제의를 해왔습니다. 따라서 저희들은 북의 자료들을 많이 모으게 되었는데, 그 중에서도 법, 제도 등에 관한 자료들을 많이 모았습니다. 최근에는 개성공단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은 남북이 서로 자본, 기술, 노동력을 협력하여 공동의 발전을 모색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 아닌가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북한의 정체성은 어떠하다고 생각하나요?

- 북한의 정체성의 핵심은 정치적인 것이며,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경제적 정체성도 중요해지게 됩니다. 정치적 정체성은 반제, 반일에 있습니다. 70년대 중반까지는 경제적 측면에 있어서도 북한이 남한보다 우위에 있었습니다. 자본주의는 70년대 오일쇼크를 통해서 위기가 발생하였는데, 이러한 위기는 혁신을 통해 새로운 발전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사회주의권에서는 소련의 풍부한 에너지 자원으로 인하여, 오일쇼크가 없었기 때문에 개발, 혁신의 유인이 적었습니다. 그리고 중.소 이념 갈등 속에서 북한은 독자노선을 걷게 됩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경제의 하드웨어는 어느 정도 갖추어졌으나 소프트웨어는 그에 따라가지 못하게 되었으며, 사회주의권의 몰락으로 경제는 매우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경제적 어려움은 체제의 관료주의적 성격으로 인하여 더욱더 심각해지게 되었습니다. 북의 관료주의는 프러시아의 군사적 체제와 비슷한 참모체제로 규정할 수 있는데, 이는 하부단위의 자발성과 역동성을 가로막았습니다. 자본주의에서도 관료주의는 심각한 문제인데, 베버는 카리스마로 이를 해결할 수 있다고 하였고, 모택동은 문화혁명을 통한 하방운동으로 관료주의를 극복하고자 하였습니다. 하지만 북한에서는 분단상황 등으로 중국과 같은 방식으로 관료주의가 극복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그러한 철저한 개혁은 체제자체의 존립을 위태롭게 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2000년대에 들어서 적어도 경제분야에서는 관료적 체제가 약화되고 있는 징후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수령론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수령론은 맑스주의 자체의 산물은 아니고 이탈리아 맑스주의의 '당은 집단적 인텔리겐차가 되어야 한다'는 것과 유사합니다. 즉, 북에서는 집단적 인텔리겐차인 당이 '수령'으로 정식화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때 수령은 모든 문제를 관할하는 정점입니다. 따라서 수령론이 관료주의를 강화하였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한국에 들어올 수 없는 상황에서 경계인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하였는데, 경계인의 역할은 어떤 것이라고 할 수 있나요?

- 남한의 언론 등에서는 경계인을 회색분자, 기회주의자고 파악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기회에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경계인에 대해서 간략히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제가 말하는 경계는 3가지입니다. 남과 북 사이의 경계, 동양과 서양 사이의 경계, 제1세계와 제3세계 사이의 경계(저는 독일에서 발간되는 제3세계라는 잡지의 편집장입니다). 남한 사회는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선택, 그것도 신중한 선택이 아닌 즉각적인 선택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칸딘스키는 'und(and)'라는 글에서 '현대인은 이것이냐 저것이냐는 선택, 그것도 제대로 생각할 여유도 없는 빠른 선택을 요구받는 불행에 처해있다'라는 말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앞으로의 세계는 이것이면서 동시에 저것일 수밖에 세계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0과 1 둘중의 하나가 아니라 그 사이에 수많은 숫자들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사이에 오히려 엄청난 창조성과 생산성이 존재합니다. 독일의 한 기자는 저와의 인터뷰에서 저를 '생산적인 제3자'라고 하였습니다. 원효대사도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고, 같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다'라는 말을 하였습니다. 김지하 시인의 [생명철학]이라는 책에 나오는 '틈'(사이, 중간)론과도 일맥상통합니다. 예를 들어, 통일학술회의를 위해 어떠한 내용으로 할 것인가를 서로 제안하는데, 남과 북의 모든 제안들을 모두 전달할 경우 학술회의 자체가 어려움에 처할 수도 있기 때문에 약 70%정도의 내용만을 각 측에 전달해서 조정을 하였습니다. 저는 남한과 북한이 할 수 없는 남은 30%의 역할을 하였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제가 분단된 조국의 경계인으로서, 생산적인 제3의 영역에서  하고자 하였던 역할의 한 예입니다.

 

*. 이하는 변호인의 질문과 송교수의 간단한 긍정적 답변이 주를 이루었기 때문에 간략한 테마만 서술함 - 변호인 질문내용은 곧 다른 자료로 홈페이지에 올려 놓을 예정임)

 

<송호창 벼호사 질문>

*남북통일학술회의는 남과 북의 연결, 남북이 단독으로 할 수 없는 일을 하고자 중재와 조정의 역할을 맡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북한 개방 기여, 통일에 도움이 되고자 학술회의에서 그 역할을 하고자 하였습니다.

 

*공소사실 1항 관련

-91년 이전행적

73년 입북은 사회주의와 관련된 학문적 연구를 위한 것이었으며, 남한에서 남과 북을 객관적으로 비교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는 상황에서 해외민주화운동의 독자적 영역이 될 것으로 판단하고 북한의 실상을 바로 알고 남북을 객관적으로 비교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노동당입당은 북한을 방문한 자의 통과의례로 가볍게 생각하여 입당하였다.

-민건관련

-한민련관련

-한국학술연구원설립

-92년-94년 자금수수 관련

-오길남 입북권유관련

-유럽민협결성관련

-올림픽반대책자관련

-88년 9월 방북관련

-88.12월 북한바로알기 관련

 

<안영환변호사 질문>

-노동당정치국후보위원선임여부

 

<심재완변호사 질문>

-친북성향적 활동을 하였는가

-북한은 반국가단체 인가

-북한은 대남적화통일전략을 가지고 있는가

-학문활동, 사회활동

-내재적 방법론

-북한사회의 이해

-남한사회의 이해

-남북한 사회비교

-통일은 상호이해가 전제

-통일의 목적은 공존공영

-통일의 필요성

 

<진선미 변호사 질문>

-학술회의 관련(학술회의록 상세히 검토)

-공소사실 3항관련: 북한을 오고간 것은 사실이지만 반국가단체의 지령달성의 목적은 아니었다

-공소사실 2항(잠입, 탈출)관련: 학술자료 수집 및 학술회의 논의 목적

-회합.통신 관련: 형식적이고 의례적인 축전

-공소사실 5항(소송사기 미수)관련

 

<송호창 변호사 마지막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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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두율 교수의 옥중 편지::"미치도록 깨끗한 하늘이었습니다" (2003년 세밑에)
'후원의 밤'에 참석한 분들께 보낸 송두율교수의 편지(2003.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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