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두율 교수의 옥중 편지 "미치도록 깨끗한 하늘이었습니다"
김세균 교수께,
구치소로부터 검찰청으로 호송되어 가는 버스의 좁은 창틈으로 보였던 그 푸른 은행잎들이 어느 새 황금 빛을 발하더니 이제는 모두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잔설이 붙은 앙상한 가지만이 눈에 들어옵니다.
오늘 새벽 불현듯이 꿈에서 깨어나 희미한 정신으로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방안의 모든 물건이 손에 잡히는 한 평 크기의 조그마한 공간 속에
제가 누워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조용히 누워 저는 지난 3개월의 서울생활을 돌이켜 보았습니다. 그 음산했던 국정원의 취조실, 수갑을 차고 또
포승으로 결박된 몸으로 공안 검사실에서 조사받았던 나날들, ‘거대야당’이라는 한나라당과 신문독자의 70%를 장악하고 있다는 ‘조중동’의
여론몰이, 그러한 신문에 날을 세우고 ‘말바꾸는 지식인’이라고 나를 난도질했던 이 땅의 이른바 ‘지식인’의 이름도 몇이 떠올랐습니다. 당연히
분노가 치솟았습니다. 구치소 생활 가운데 유일한 즐거움인 한 시간 가량의 운동시간을 떠 올리며 그러한 감정을 우선 달랬습니다. 운동장으로
나갔습니다. 정말 미치도록 깨끗한 하늘이었습니다.
이렇게 푸르고 깨끗한 하늘 아래서 그러한 야만적인 현실이 가능하리라고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말로는 그들도 21세기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물리학자 파울리가 이미 지적했던 ‘악마의 산술’인 양자택일의 흑백논리로써 중세 때나 가능했던 마녀사냥을 이 문명시대에도 벌이고 있는 그들과 함께
저 푸르고 깨끗한 하늘을 함께 하려고 37년 만에 이 땅을 찾았는가 하는 자책과 같은 물음이 떠올랐습니다.
그러나 “깨끗함은 화해와 기쁨으로 통한다”(淸通和樂)는 옛말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이 땅의 사람들을 그동안 직접·간접으로 만날 수 있었기에
절망과 후회를, 희망과 확신으로 바꿀 수 있었습니다.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이 화해하는 아름다운 세상을 갈구하고 이의 실현을 알게 모르게
앞당기는 많은 분들이 우리 시대의 과제인 민족화해와 통일운동에 동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남이냐 북이냐가 아니라, 남과 북의 화해를 지향하는
상생의 통일철학에 대해서는 지난 16일, 공판 때도 이야기했습니다. 부처님의 말씀을 빌어 그러한 철학 정립에 나의 역할을 간단히 표현한다면,
남북 사이의 ‘끈’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검은 소와 흰 소가 묶여 있는 것을 보고 보통 사람들은 검은 소가 흰 소에, 또는 흰 소가 검은
소에 묶여 있다고 합니다만, 사실은 검은 소와 흰 소가 ‘끈’에 의해서 서로 묶여 있는 것이지요.
어떤 분이 편지를 보내 왔습니다. 그 편지 말미에는 나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드는 구절이 들어 있었습니다. “이 복잡하고 문제투성이인 이
땅에 오신 것, 너무 너무 고맙습니다.”
이 편지를 받고 나는 나대로 베를린 지도를 가지고 서울 거리를 찾아 나설 수는 없기에 비록 늦었고 또 그간 사연도 많았지만, 이 땅에서
실망과 분노를 희망과 확신으로 바꿀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마련해 주신 여러분께 정말 고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오늘 오후 집사람이 독일로 돌아갔습니다. 남편 따라 두 아들 데리고 38년만에 고향을 찾았다가 난생 처음 경험한 이 땅의 폭풍 속에서
분노로 떨고 눈물도 참 많이 흘렸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남편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아내로서, 또한 강한 여성으로서 독일로 돌아갔습니다.
지난 22일은 우리들 결혼 30주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아내도 나도 분명히 이 날을 기억했습니다. 그러나 독일로 돌아가기 전, 마지막
면회 때 그녀는 이 날에 대해 아무런 말도 꺼내지 않았고, 나도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침묵이 서로를 위로하는 힘이었습니다. 우리는
분단된 조국을 찾았다가 ‘이산가족’이 된 셈입니다. 그러나 이번 일이 이 땅의 모든 ‘이산가족’의 아픔을 더는 그러한 계기로 삼아 더욱 열심히
살아가겠다는 각오를 굳히면서 세밑의 인사를 드립니다. 곧 밝아오는 새해에는 밖에서 꼭 만날 수 있습니다. 그 때까지 가내 건강하시기를 빕니다.
2003년 세밑에, 서울구치소에서
송두율 드림
추신 : 시간에 겨 정리할 시간이 없어 난필 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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