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신인 : 송두율 교수 석방과 국가보안법 철폐를 위한
유럽대책위원회
Dr. CHOE Hyondok (Gesch?ftsf?hrerin des
Koreaverbandes)
Bullmannaue 11
45327 Essen Germany
수신인 ：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 제24부 이대경 부장판사님
서울특별시 서초구 우면로 100 (서초3동 1701-1)
송두율 교수 사건 1심 선고에 앞서 재판부께 드리는 탄원서
서울지방법원 형사24부 이대경 부장판사님! 그리고 배석 판사님!
저희는 이미 2차례에 걸쳐 독일 각계인사 2000여 명의 서명부와
탄원서를 접수시킨 바 있습니다. 저희는 지난 3월 9일
서울지방법원 417호 대법정에서 열린 송 교수 사건 1심
결심공판에서 검찰이 내린 징역 15년 구형에 반대하고, 재판부의
합리적 판결을 바라는 이 탄원서를 보냅니다.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부장 오세헌)는 70년대 법정을 연상시키는
시대착오적인 공안논리와 소설 같은 범죄적 상상력을 총동원하여,
송 교수에게 <반국가단체 구성과 가입 및 중요임무 종사>죄를
적용, 징역 15년이라는 중형을 구형했습니다. 더욱이 검찰의 중형
구형의 논거는 송 교수가 국가보안법이 적용돼 기소된 '최고위직
인사'로서 이른바 '경계인'으로 위장하여 대남공작활동을 펼쳤고,
여전히 '사과나 반성 등 개전의 정'이 없다는 점 등이었습니다.
과연 송 교수가 북한노동당 서열 23위 정치국 후보위원으로서
북한을 이롭게 하고 남한을 전복시키기 위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저술 및 연구 활동을 했고 남북학자들의 교류를 주선했는가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이미 지난 9차례의 공판 과정을 통해 충분히
반박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검찰은 황장엽을 위시한 소위
전향자들의 입소문만이 절대 진리인 양 주장할 뿐, 누구나가
납득할만한 구체적이고 명백한 증거자료를 전혀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이에 대해 북한 전문가들은 외국 국적의 학자가 서열
23위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임명된다는 것은 도무지 북한의
정치구조나 관행을 이해하지 못한 몰상식한 주장이라며 검찰의
공소사실을 전면 반박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또한 검찰은 공판과정에서 송 교수가 도대체 어떤
'대남공작활동'을 했는지, 어떤 '중요임무'를 수행했는지에
대해서도 전혀 밝히지 못했습니다. 만일 검찰이 송 교수의 저술 및
연구 활동과 남북 학술대회 참가를 '대남공작활동'이라고
판단했다면, 이는 학문과 사상의 자유를 전면 침해하고 힘겹게
조성된 남북화해의 길에 찬물을 끼얹는 것입니다. 송 교수가 북한
연구방법론으로 제시한 '내재적 방법론'이 북한을 찬양하거나
고무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이미 공판 과정에서 전문
학자들에 의해 충분히 입증됐습니다. 따라서 이 연구방법론의
학문적 엄밀성이나 타당성 논의는 법정이 아니라 오히려 학계에서
이뤄져야 할 것입니다. 송 교수는 남북한 학자 어느 누구도 할 수
없는 제３자의 중계자적 입장에서 남북 학술대회를 남한의
언론사와 기업의 후원으로 수차례나 성공적으로 이끌었습니다.
이것 또한 남북 학술대회에 참가했던 남한 학자들의 증언으로 이미
입증됐으며, 결코 국가보안법으로 처벌할 대상이 아닙니다.
저희는 검찰이 송 교수의 저작에 북한체제 비판이 없으니
'친북'이며 '이적표현물'이라고 규정한 대목에서는 그 황당함에
실소를 금할 수 없고, 검찰이 궁여지책 끝에 남북 학술대회도
북한의 지령으로 이뤄진 것이라 억지 주장하는 것을 보면서 분노를
금할 수 없습니다. 게다가 검찰은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경구를
인용하면서, 송 교수의 저술활동이 요인암살보다도 더 위험한
활동이라고 과대망상적으로 선전하고 있습니다. 과연 송 교수의 펜
하나에 체제유지를 걱정할 정도로 남한의 사회적 토대가 허술하고
학술·문화적 지형이 천박한지 반문해 봅니다.
특히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송 교수를 가리켜 '기회주의적 인간',
'해방 후 최대의 거물공작원', '혐의사실에 대해 변명만 일삼는
사람'으로 매도하며 원색적인 인신공격을 퍼부었습니다. 이를 보면
그간 검찰이 수사와 심문과정에서 '공안'이라는 미명하에 송
교수에게 얼마나 많은 인권유린의 말과 행동을 자행했는지 미루어
짐작하고도 남습니다. '개전의 정'이 없다는 검찰의 논고는 본인이
부인하는 혐의사실에 대해 자백과 반성을 강요한 명백한
인권침해에 해당합니다. 앞서 송 교수에 대한 국정원과 검찰의
초기 수사과정에서 변호인의 입회가 전면 금지되었고, 법원의 위헌
판결 이후에도 변호인 입회가 불충분하게 이뤄진 점도 공정한 심문
및 피의자의 인권보호 차원에서 다시금 비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게다가 초기 수사과정에서 국정원, 검찰, 한나라당
그리고 수구언론이 조사 중인 내용을 마치 사실인 양 발표하여
여론재판을 유도한 사실도 무죄추정의 원칙에 입각해서 비난받아
마땅할 것입니다.
북한의 유엔가입, 남북한 정상과 고위 당국자들의 회담,
이산가족상봉과 민간교류 그리고 남북한 경제협력 등 남북관계는
과거의 냉전적 대결구도가 아니라 화해와 협력의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따라서 새로운 시대정신, 특히 6?15
공동선언의 정신에 반하는 반역사적이고 반통일적인 구시대의
악법인 국가보안법은 반드시 폐지되어야 합니다. 일제의
치안유지법에 바탕을 둔 국가보안법은 역대 군사독재정권의 정권
안보에 기여했을지 모르나 무수한 민주·통일 인사들을 억압하고
탄압한 반역사적이고 반인권적 악법으로서 오래전부터 국내외에서
폐지 압력을 받고 있습니다. 저희는 국가보안법이 폐지되지
않고서는 대한민국이 명실상부한 민주공화국으로서 통일을 맞이할
자격이 없다고 확신합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송두율 교수는 암울했던 박정희 군사독재시절 민주화를 위해
해외에서 온몸으로 맞서 싸웠고, 남북한 학자들의 학술교류를 위한
노둣돌의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으며, 한반도 통일을 위한 학문
활동에 매진한 양심적이고 순수한 학자입니다. 꿈에도 그리던
37년만의 고국방문이 4개월이 넘는 구치소 생활과 9차례의 길고 긴
재판의 연속이 될 줄 누군들 짐작이나 했겠습니까? 저희는 오랜
심문과 재판과정으로 고초를 치른 송 교수가 이제라도 재판부의
합리적 판결로 무죄 석방되어 그토록 그리던 고국에서 학술활동을
자유롭게 할 수 있기를 진정으로 바랍니다. 송 교수 자신도 민족과
세계를 함께 생각하면서 걸어온 40년 학자의 삶이 이번 사건을
계기로 새로운 전기( ��를 맞아 재차 비상할 수
있도록, 용기와 힘을 주는 역사적 판결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저희들이 판단컨대,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학자인 송 교수의
자유로운 학술활동은 학문과 사상의 자유, 남북의 화해와 협력
그리고 사회민주화를 위한 초석이 될 것입니다. 바로 이런 이유로
하버마스 교수와 나르, 젱하스, 크리스만스키, 지그리스트,
알브레히트 교수 등의 세계적 석학들, 노벨문학상 수상자 귄터
그라스, 반전과 평화의 기수인 독일 녹색당 국회의원 슈트뢰벨레
등의 양심적 지식인과 정치인 그리고 독일 종교계(EKD, MWI)도 송
교수를 위해 재판부에 탄원서를 제출했다고 생각합니다.
저희는 냉전과 어둠의 시대를 만들어 자신의 존재를 알리려던
공안당국의 박쥐근성이 이번 송 교수의 재판과정에서 오히려
여실히 드러났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재판과정은 박쥐들의
젖줄이었던 국가보안법도 이제는 마지막 매카시의 비명과 함께 그
수명이 다했음을 만천하에 알리는 자리였습니다. 따라서 송 교수의
입국에서부터 9차례의 전 공판과정을 예의 주시한 저희는, 송
교수의 최후진술처럼 "이 나라가 깨어있고 또 건강해서 바로 그
때문에 사랑할만하다는 확신을 불러일으키는 계기를 마련해주는
무죄판결"을 재판부가 해줄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이제 온 나라와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만큼, 정치적
고려(정치재판)나 여론의 추이(여론재판)가 재판부의 판결에
장애물이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바라건대 재판부가 "분단된
땅에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서로 화해할 수 있는 그러한
아름다운 나라로 한걸음 더 다가서는" 미래지향적 시대정신을
가지고 현명하고 공정한 순수 법리적 판결을 내리시길 간곡히
간곡히 기원합니다. 저희는 재판부의 진지한 역사의식과 용기 있는
결단을 기대합니다. 저희２000명이 넘는 서명자들은 재판부가
민족의 장래를 생각하는 합리적 판결을 내리시기를 바랍니다. 송
교수에게 무죄를 선고하여 민주와 통일의 신새벽을 열 것을 두 손
모아 탄원합니다.
２００４년 ３월 １６일
송두율 교수 석방과 국가보안법 철폐를 위한 유럽 대책위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