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래 성명서는 2003.11.27. 오전 10시반 서울지검 기자실에서 열린 '검찰의 송두율교수 구속기소 규탄과 공안당국의 피의사실공표에대한 고발장 접수 기자회견' 석상에서 발표한 글입니다. - 대책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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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두율교수의 구속기소를 규탄한다

 

 

그간 우리는 탈냉전과 민족화해라는 시대적 요구와 학문-사상-양심의 자유라는 인류의 보편적 권리의 관점에서 국정원과 검찰당국에게 송두율교수에 대한 처벌 반대 등을 강력하게 촉구해 왔다. 이러한 우리의 요구는 지난 11월 19일 검찰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등을 들어 송두율교수를 법원에 구속기소함으로써 무참하게 짓밟혀졌다. 검찰의 이번 기소는 역사와 양심의 법정에서 한 개인을 희생양으로 삼아 민주주의와 인권 및 민족화해의 진전을 가로막으려는 중대한 범죄행위로서 단죄받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검찰의 송두율교수사건 수사방식은 참으로 야만적이고 범죄적인 것이었다. 검찰은 객관적인 증거에 입각하여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 보다는 송교수를 애초부터 ‘거물급 간첩’으로 예단하는 가운데 송교수로부터 검찰이 원하는 진술을 받아내고 죄를 만들어 내는 방식으로 수사를 진행해 왔다. 그러한 진술을 받아내기 위해 검찰은 주요사실들에 대한 수사가 사실상 끝나고, 증거인멸과 도주의 우려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법원에 사전구속영장을 신청했으며, 구속피의자에 대한 변호인 입회권을 봉쇄하려고 안간 힘을 다했다. 또한 검찰은 조사과정에서 송교수에게 수갑과 포승 등 계구를 사용함으로써 헌법과 국제인권법을 유린했으며, 기자 브리핑 형식으로 피의사실을 연일 공표함으로써 헌법이 선언한 무죄추정의 원칙을 스스로 내팽개치고 송교수의 인권을 난도질했다. 게다가 언론에 ‘송교수가 정치국 후보위원임을 인정하는 참회수준의 반성을 하지 않은 한 송교수를 구속기소하지 않을 수 없다’고 공언함으로써 송교수에게 허위자백과 전향을 강요하는 만행까지도 저질렀다. 우리는 이런 야만적이고 범죄적인 수사를 행한 검찰을 송교수의 진술을 왜곡-과장해 송교수를 거물간첩으로 조작해낸 국정원과 더불어 민주주의와 인권의 이름으로 규탄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송교수를 기소하기 위해 검찰이 법원에 제출한 공소장이야말로 공소내용에 대한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뒷받침을 결여하고 있고 송교수의 활동과 사상을 시대착오적이고 매카시즘적인 색안경으로 색칠하고 있는 대표적인 반공파시즘적 문서라고 단정하지 않을 수 없다. 검찰은 공소장에서 송교수의 정치국 후보위원 선임을 입증할 객관적인 물증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송교수가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활동했다고 혐의지우고 있다. 또한 송교수가 학문적 양심에 따라 행한 북한관련 저술활동을 주체사상과 북한체제를 선전하기 위한 이적 행위로, 독일통일을 지켜보며 남북한의 화해를 갈구한 해외동포학자로서 남북 해외학자 학술회의를 준비하고 개최한 것 등을 북한 조선노동당의 간부 기타 지도적 임무에 종사한 행위로 매도하고 있다. 나아가 검찰은 송교수가 북한사회를 학문적으로 이해하고 남북 해외학자 학술회의 등을 조직하기 위해 북한을 방문한 것 등을 모두 국가보안법상의 잠입-탈출죄로 기소하고 있다.

우리는 검찰이 객관적인 물증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송교수를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기소한 데에 항의한다. 또한 우리는 공소장내용이 학문-사상-양심의 자유와 남북한의 화해협력 추구라는 시대적 요구를 근본에서부터 부정하고 있음을 규탄한다. 검찰의 그런 논리라면 북한을 객관적으로 이해하려는 모든 학문적 활동은 물론 남북한의 화해협력을 추구하는 모든 행위들이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하는 행위’로서 처벌받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나아가 우리는 검찰이 이런 저런 것들을 최대한 끌어 모아 송교수의 죄를 부풀리고 있는 것은 국가보안법을 적용할지라도 ‘확대해석하거나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부당하게 제한해서는 안 된다’는 현행 국가보안법 제1조 2항에도 위배되는 일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와 관련해 우리는 검찰의 이번 기소가 이미 송교수에 대해 행해진 광범위한 여론재판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이를 통해 죽어가는 국가보안법을 되살리기 위한 공안당국의 대반격의 성격을 지니고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우리는 오늘날 북한을 더 이상 타도나 흡수통일의 대상이 아니라 공존공영과 평화적 통일의 반려자로 인정하는 가운데 남북한간의 화해협력 관계를 증진시키기 위해 정부가 앞장서서 나서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남북한의 화해협력을 증진시키기 위한 노력은 그러나 정부와 정부의 허가를 받은 이들만의 몫이 아니라 우리 국민 모두의 몫이 되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6.15선언을 이끌어낸 김대중 전대통령이나 남북한의 공존공영을 주창하고 있는 노무현대통령의 노력이 칭송 받아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남북한의 상호이해와 화해협력을 온몸으로 실천해온 송두율교수의 노력 역시 정당하게 평가받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남북한의 화해협력과 평화적 통일을 앞당기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북한체제는 절대악으로, 남한체제는 절대선으로 보는 것과 같은 마니교적인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 북한사회를 내재적으로 이해하고 북한사회가 가진 긍정적 가치 역시 파악하는 것이 절실하게 요구된다. 실제로 그런 사고를 지님이 없이 남북한이 화해협력과 평화적 통일로 나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렇게 본다면, ‘이것이냐 저것이냐’라는 양자택일이 아니라 ‘이것인 동시에 저것’ 인 ‘~과~’의 세계, ‘생산적인 제3의 세계’를 추구해온 송두율교수의 경계인적 사고야말로 남북한의 화해협력과 평화통일을 추구하는 우리 모두의 철학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와는 달리 우리가 마니교적인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우리가 추구할 수 있는 길이란 남북대결과 흡수통일을 추구하는 길 이외에는 없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런 길을 추구하는 것은 우리가 그토록 탈피하려고 노력해 왔던 어두운 과거로 되돌아가자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런 점에서 검찰의 송교수 기소는 국민 모두를 분단체제에 묶어놓고 낡은 과거로 우리가 쟁취해야 할 미래를 파멸시키려는 반역사적 행위로서 비판받아야 마땅하다.

 

우리는 앞으로 진행될 재판이 검찰을 비롯한 공안당국이 저질러온 야만적이고 범죄적이며 반공파시즘적인 죄 만들기를 단죄하고, 탈냉전과 민족화해라는 시대적 요구와 학문-사상-양심의 자유라는 인류의 보편적 권리가 승리하는 장이 되기를 간절히 촉구하는 바이다.

 

2003년 11월 27일

송두율교수 석방과 사상-양심의 자유를 위한 대책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