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책위 성명서>
제 4차 공판에서 검찰측 증인의 진술 내용을
비판한다.
지난 12월 30일 송두율 교수 사건 제4차 공판에서 검찰측
증인으로 나선 김광동 박사는 송두율 교수의 여러 저술들의 내용이
친북ㆍ이적성을 강하게 띠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의 진술 요지는
다음과 같다.
첫째, 송두율 교수가 북한 사회를 분석할 때 적용한 연구방법론인
내재적 접근법은 신학이나 철학 등에서는 널리 활용되는 공인된
방법론이나 객관적, 실증적 분석에 기초해야 하는 사회과학에서는
성립될 수 없는 방법론으로서 북한 체제를 이롭게 하기 위해
송두율 교수가 의도적으로 고안해낸 무리한 방법론이다.
둘째, 송두율 교수는 내재적 접근법을 내세워 김일성, 김정일의
글이나 발언을 인용하는 방식으로 북한 체제를 간접적으로
선전하였으며, 기아 등 북한 사회의 부정적 측면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 등 편파적인 분석을 수행하였다.
셋째, 송두율 교수는 남한 사회가 이루어낸 경제발전과 민주화 등
긍정적 성과는 무시하고 부정적 측면만을 강조함으로써 남한
체제를 의도적이고 편파적으로 비난하였다.
이에 대해 우리 대책위는 다음과 같은 입장을 표명하고자 한다.
첫째, 우리는 무엇보다 검찰즉 증인으로 나선 김광동 박사가
송두율 교수의 저술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 적격자인가를
문제삼지 않을 수 없다. 김광동 박사는 1990년대 초에 북한 사회를
연구대상으로 한 석사논문을 집필한 이후 북한 사회에 대한
본격적인 학술 논문을 집필한 적이 없는 아마추어라 할 수 있다.
그의 박사 학위 논문은 남한의 산업정책에 관한 것이고, 그가
이따금씩 발표한 북한 관련 저술이라는 것은 아마추어적 에세이일
뿐 본격적인 학술논문이라 할 수 없다. 현재 김광동 박사는
학계에서 북한 문제 연구자로 간주되고 있지 않다. 이러한 점은
재판장에 의해서도 인지되어 재판장이 증인에게 “북한 문제
전문가로 보기 어려운 증인이 어떻게 하여 검찰측 증인으로
출두하게 되었는가”를 묻게 되는 상황을 연출하기도 하였다. 이는
학계에서 공인된 북한 문제 전문가를 검찰측 증인으로 내세울 수
없었던 검찰측의 궁색한 처지를 여실히 폭로하는 사태였다.
둘째, 내재적 접근법이 사회과학에서는 성립될 수 없는
연구방법론이라는 김광동 박사의 진술은 사실과 다르다. 예컨대
인류학에서는 서구인의 시각으로 원주민 사회를 분석하는 것의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우선 원주민의 시각으로 원주민 사회를
분석한다는 내재적 접근법이 활용된 지 오래이다.
셋째, 송두율 교수는 내재적 접근법을 북한 사회를 연구하기
위한 자기완결적 방법론으로 제시한 바 없다. 송두율 교수가
제시하는 내재적 접근법은 과거에 냉전 논리에 의해 왜곡되고
편향된 선험적 연구방법론을 정정하고 북한 사회의 발전 논리를
일단 북한 사회의 눈으로 바라보자는 지극히 상식적인 문제제기에
다름 아니다. 내재적 접근법은 북한 사회 이해를 위한 하나의
출발점일 뿐이며 북한 사회에 대한 종합적 분석과 평가를 위해서는
내재적 접근법 외에도 다른 연구방법론과 평가기준을 결합하여
활용할 수 있는 것이다. 송두율 교수는 결코 내재적 접근법만이
유일하게 타당하고 자기완결적인 방법론이라고 주장한 적이 없다.
넷째, 북한 사회나 남한 사회에 대한 평가와 관련해선 논자마다
충분히 다른 의견을 가질 수 있으며, 어떤 것이 보다 나은
평가인가는 학계에서의 충분한 논의를 통해 판정될 수밖에 없다.
모든 다른 학자와 마찬가지로 송두율 교수 역시 자신의 주관을
가지고 북한 사회와 남한 사회를 평가한 것이다. 송두율 교수가
북한 사회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측면만 보고 남한 사회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측면만 보았다는 주장도 사실과 다를 뿐 아니라, 북한
사회가 이루어낸 일정한 성과를 평가한 것은 과거에 학문적
분석이라기보다는 정치적 비난으로 점철되었던 북한 연구의 편향을
일정하게 정정한 것으로 평가할 수도 있는 것이다. 또한 남한
사회의 대미종속성이나 군사정권 시절의 정치적 독재와 인권탄압을
학문적으로 비판하는 것은 송두율 교수뿐 아니라 수많은 남한
학자들이 수행해온 일이며, 남한 사회의 문제점을 극복하고 남한
사회를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발전시키는 데 도움을 주는 비판으로
받아들이면 되는 것이다.
지난 4차 공판을 지켜본 우리는 학문적 연구성과를 공소대상으로
삼은 검찰의 무리한 행위가 앞길이 아직 창창한 증인의 학문적
위신과 인격적 존엄을 추락시키는 희비극적 결과를 낳았다는 점을
절감하게 되었다. 우리 학계 구성원의 대다수는 송두율 교수의
저술을 북한의 지령하에 북한을 이롭게 하기 위해 집필된 것으로
보리만큼 어리석거나 맹목적이지 않으며, 그 반대로 현재 송두율
교수가 처한 어려운 상황을 동정하여 그의 학문적 실천을
과찬하리만큼 부박하지도 않다. 그의 학문적 실천의 공과는 앞으로
학계에서 학문 자체의 논리에 따라 엄정하게 평가될 것이다.
이제는 검찰도 학문적 실천을 사법적 판단의 대상으로 삼는
시대착오적 마녀사냥을 중단해야 할 것이다.
2004. 1. 6.
송두율 교수 석방과 사상-양심의 자유를 위한
대책위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