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두율 교수 사건 관련 재판부에 드리는 탄원서
존경하는 재판장님
지금까지 송두율 교수 사건의 진행과정을
지켜보면서 저희는 참으로 암담함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지난해 10월 제주를 찾은 노무현 대통령께서는 제주 4·3사건에 대하여 공식사과를
한 바 있습니다. 제주 4·3은 1947년에서부터 1954년까지 7년 동안 무려 3만여명이 희생당한 처참했던 한국 현대사의 결코 씻지 못할
비극이었습니다. 이 비극은 남과 북으로 갈린 민족의 불운이 결국 반인권적, 반인륜적 결과로 나타난 사건이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께서는 이날 "제주 4·3은 제주도민들이 국제적인 냉전과 민족 분단이 몰고 온 역사의 수레바퀴 밑에서 엄청난 인명 피해와 재산 손실을
입었어야 했던 사건으로, 이제야 말로 해방 직후 정부 수립 과정에서 발생했던 이 불행한 사건의 역사적 매듭을 짓게 되었다"고 하시면서 과거
국가권력의 잘못에 대해 유족과 제주도민들에게 공식사과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4·3사건의 소중한 교훈을 승화시켜 '평화와 인권'이라는 인류 보편의
가치를 확산시켜야 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그때 유족들과 제주도민들은 반세기 한을 비로소 풀게 되었다는 회한과 함께, 이제 분단과 이념대립으로
인한 더 이상의 인권피해는 없을 것이라는 기대감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이념간 대립으로 우리 사회는
얼마나 많은 희생을 치러왔습니까? 지금 우리 사회는 그러한 과거를 반성하고 또 그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고 다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칫 이 다짐을 잊고 혹여 과거로 회귀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우리 사회에서 확산되고 있습니다. 한 사람의 학자를 편향된 이념의
잣대로 재단, 구속 기소하고 거물급 간첩으로 몰아가면서 마녀사냥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희들은 반세기전 제주에서 있었던 4·3의 기억을 다시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2003년 10월 대통령께서 사과문을 발표하신 후 한껏 고무되었던 평화와 인권에 대한 기대감이 충격으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우리 사회가 민주주의로 나아가는 데 얼마나 많은 분들의 희생이 있었습니까? 그 중에는 많은
철학자들의 희생어린 노력이 있었습니다. 그 분들의 헌신적 노력이, 오늘날 한국 이 가장 민주화가 빠르게 성장하는 나라로 만드는데
일조하였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국가 보안법 위반이란 죄목으로 한 철학자의 사상을 재단하고 심판하는 우를 범하려합니다. 학자의
학문적 자유, 사상적 자유를 보장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가 앞으로 더 발전할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지금 이 사회가 진정한
민주사회라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더 이상 국가보안법 위반이란 낡은 죄목으로 한 철학자의 사상을 재단하고 심판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현재 과거 이념의 대립으로 인한 수많은 인권피해를 기억하며,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자고 다짐
다짐하며, 후세들에게 인류 보편의 가치가 평화와 인권임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저희들은 송두율 교수의
모습에 우리 민족의 슬픈 역사를 읽습니다. 그의 부모님의 고향은 제주입니다. 그런 그가 일본에서 태어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제주의 슬픈 역사
때문입니다.
그는 이번에 구속을 무릅쓰고 대한민국에 입국하면서 수십년만에 고향을 찾겠다는 희망을 간절히 피력한 바 있습니다. 아내와
자식들에게 아름다운 고향 제주를 보여주고 싶다는 소박한 희망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작은 바램조차 실현되지 못한 채 가족간 생이별과,
몸도 편치 않은 상황에서 차가운 감옥에서 한국의 겨울을 나고 있습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이제 더 이상 평화와 인권
운운하지 않으려 합니다. 그가 다만 사랑하는 가족들과 재회하고 아픈 몸을 치료할 수 있도록, 그리하여 꿈에도 그리던 제주땅을 가족과 함께 찾을
수 있도록 도와 주시기 바랍니다.
더불어 이번 재판을 통해 우리 사회에 상식과 정의가 살아있다는 것을 전 세계에 보여줄 수 있도록,
부디 현명한 판단과 숭고한 결단 부탁드립니다.
2004년 1월 20일
송두율 교수 석방과 귀향을 위한
제주모임(준)을 대표하여
임문철 (천주교제주교구 중앙성당 주임신부)
이정훈 (늘푸른교회 담임목사)
조성윤 (제주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