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두율 교수 사건 판결 유감
[한겨례] 2004년 04월 04일 (일)
일부 언론과 정치인에 의해 ‘해방 이후 최대의 간첩사건’으로까지 불려왔던 송두율 교수 사건에 대한 1심 공판이 지난 3월30일에 종결되었다. 재판부는 송 교수가 북한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선임된 바 있고 그의 저술 행위가 북한 당국과의 교감 하에 북한 체제를 이롭게 한다는 목적의식 아래 수행되었으며 대한민국의 국가안보에 큰 위협을 주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점을 들어 징역 7년 실형을 선고했다.
이러한 판결 내용은 크게 실망스럽다. 우선 이 재판의 가장 큰 쟁점인 후보위원 여부에 대한 판단과 관련하여 재판부가 제시한 증거들이 과연 증거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든다. 핵심 증거로 제시된 것은 귀순 인사 황장엽씨가 북한에 있을 당시 김용순, 림동옥 등 북한 노동당 고위 간부들로부터 송 교수가 정치국 후보위원이라고 들은 바 있다는 전언 진술과 전 독일 주재 북한 이익대표부 2등 서기관 김경필이 북한 당국에 보고하기 위해 작성한 컴퓨터 파일의 내용 등이다. 그런데 이러한 증거자료들은 김용순, 림동옥, 김경필에 대한 증언 확보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신뢰할 수 있는 증거자료로서 활용되기가 원천적으로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재판부는 이러한 점을 고려하여 여러 정황을 들어 증거자료로서의 신빙성을 주장하고 있으나 정황논리만으로 재판의 핵심 혐의사실에 대한 증거능력을 확보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필자가 비록 법률에 대해 아는 바는 적지만, 유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확실한 객관적 증거가 제시되어야 한다는 ‘증거주의’야말로 근대 사법원리의 핵심적 요소라고 알고 있다. 또한 황장엽씨의 법정 증언이나 김경필 파일과 관련된 증언은 모두 국가안보상의 이유를 들어 비공개로 이루어졌다는 문제도 있다.
또한 백 번 양보하여 설령 송 교수가 후보위원으로 선임된 바 있다고 가정한다 하더라도, 이것이 재판부도 인정한 바와 같이 특별한 권한과 역할이 없는 ‘명예직’으로서의 성격을 띤 것이라 할 경우에도 7년 실형이라는 중형을 내려야 하는가 하는 의문이 든다. 검찰의 공소장에서 송 교수가 후보위원으로서 역할을 수행한 사례로 거론된 것은 ‘남·북·해외학자 통일학술회의’ 중재 역할과 저술 활동을 통한 주체사상 전파 및 북한 체제 옹호인데, 재판부가 통일학술회의 중재 역할에 대해서는 무죄 판결을 내렸으니 남은 것은 저술 활동을 통한 친북행위뿐이다. 재판부는 송 교수의 저술 활동을 학자로서의 순수한 학문 활동으로 볼 수 없고 후보위원으로서의 자신의 임무에 대한 자각에 기초하여 북한 체제를 옹호하기 위한 의도로 수행된 정치활동으로 보고 있다. 또한 송 교수의 저술 활동이 남한 내 친북적 학생운동 등에 큰 영향을 미쳐 맹목적 친북주의를 크게 조장하였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런데 저술의 의도와 관련된 부분은 송 교수가 후보위원이라는 것을 전제로 한 판단이므로 앞에서 언급한 ‘증거주의’ 원리와 상충되며, 저술의 효과와 관련된 부분은 검찰쪽 증인의 증언 내용의 신뢰성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송 교수의 저술이 친북적 학생운동에 중요한 이론적 근거를 제공하였다고 증언한 검찰쪽 증인은 과거에 친북 성향의 학생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다가 나중에 전향하여 현재 반북운동에 종사하고 있는 인사다. 따라서 증언의 객관성, 중립성을 인정받기 어려운 위치에 있는 인사라 할 수 있다. 반면에 학계에서 공인된 북한문제 전문가인 변호인쪽 증인의 증언 내용은 판결에 거의 반영되지 않았다.
사법적 판결이란 늘 어렵고 무거운 일이다. 특히 송두율 교수 사건처럼 중요한 사건의 경우에는 유죄 판결을 내릴 때에는 무죄 판결을 내릴 때에 비해 훨씬 더 확고한 증거에 입각해야 한다. 그런데 이번 1심 판결은 이러한 핵심 요건을 충족시키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 변호인쪽과 검찰쪽 모두 항소할 뜻을 밝혔으니 머지않아 항소심이 진행될 것이다. 항소심에서는 ‘증거주의’라는 근대 사법원리의 핵심 요건이 제대로 지켜지길 고대한다.
신정완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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