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세화·김형태(왼쪽부터)

김형태 변호사와의 대담

개혁과 진보를 표방하는 세력이 40여년 만에 국회에서 다수를 차지하게 됐다. 보수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한, 냉전·극우 세력이 의회를 지배했던 시대가 끝난 것이다. 시민·사회단체와 학계, 종교계, 재야 법조계 등은 ‘이번에는…’ 하는 기대와 각오로 국가보안법 폐지에 힘을 모으고 있다. 국가보안법 폐지야말로 냉전·극우 체제와의 확실한 단절을 뜻한다. ‘홍세화의 마주보기’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1심 재판에서 7년형을 선고 받은 송두율 교수의 변호를 맡고 있는 김형태 변호사와 함께 국가보안법을 두고 의견을 나눴다.

홍세화
“보안법이 한국사회를
반신불수로 만들어”

김형태
“탁! 쳐서 폐지하면
여론·의식도 따라갈것”

김형태 변호사는 20년 가까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자들을 변호했다. 전에는 재판정에서 검찰이 남북 대치 상태를 들먹이며 상황 논리로 밀어붙일 때는 “니들이 보기에는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 송두율 교수 재판 때는 “내가 왜 여기 있지, 울화가 치밀어 재판정이 앉아있고 싶지도 않았다”고 한다. 4·15 총선 이후 국가보안법을 없앨 수 있는 가능성이 커져서인지 지난 20일 만난 그는 활기에 차 있었다.

홍세화=열린우리당이 국회의 과반을 차지하고 민주노동당이 진입한 것은 역사적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이른바 민주세력이 의회의 다수를 차지한 상황에서 김 변호사를 만나고 싶었던 것은 지금까지 해결하지 못한 많은 문제들 가운데 국가보안법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탄핵정국에 묻혀 잘 알려지지 않았는데 송두율 교수한테 7년형을 선고했죠. ‘옛것은 사라졌는데 새것은 오지 않았다’는 말이 있지만 그런 상황이 아닌 것 같아요. 옛것이 사라지지도 않아 국가보안법 문제를 제기하게 됐습니다. 우선, 총선 결과를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김형태=국가보안법은 사실 법이라기보다 총이고 탄환이죠. 1948년 제정할 때 법무장관이 국회에서 그런 얘기를 했어요. 이것은 총이고 탄환이다. 아주 잘 표현했죠. 법이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기본도 안 되어 있는 게 보안법인데, 48년 남북 대치가 시작되고 물리적 힘으로 상대를 어떻게 제압하느냐의 상황이었기 때문에 물리적 힘을 법으로 포장한 겁니다. 보안법은 48년에 만들었는데 형법은 53년이예요. 특별법이 먼저고 기본법인 형법이 나중에 나올 정도였습니다. 몇십년 동안 우리나라는 보안법의 규정을 받았고, 헌법보다 위에 있는 법이었다고 할 수 있죠. 지금이야말로 그것을 정상화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봅니다. 남북화해의 시대는 총과 탄환은 필요 없다는 거죠. 이번에 선출된 의원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보안법으로 고생하기도 했죠.

홍/개폐는 90% 가까이 찬성인데
폐지 주장은 절반이 안 되는 것 같아
김/50여년 동안 헌법 구실‥
왠지 폐지를 꺼려하게 내면화

홍=보안법 개정과 폐지, 즉 개폐라고 할 때는 90%에 가까운 사람들이 찬성하는데 폐지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절반이 안 되는 것 같아요. 민주노동당은 폐지를 주장하는데 열린우리당은 개정에 무게를 두는 것 같아요. 제대로 보안법을 들여다보고, 보안법이 구체적으로 어떤 구실을 해왔는지를 알면서 개정을 말하는 것인지…. 개정과 폐지의 갈림길이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김=보안법의 핵심을 말하자면 북한을 금지하는 법이라고 요약할 수 있지요. 그런데 이제 시대상황은 완전히 바뀌었잖아요. 더 이상 북한을 금지할 수 없는 시대라는 점에서 명쾌하게 폐지 쪽으로 가는 게 맞아요. 과거 몇차례 개정도 해 봤죠. 보안법에 대해 말이 많으니까 헌법재판소도 죄형법정주의에 어긋난다, 너무 추상적이고 모호하다고 했어요. 그리고 북한을 적으로 보니까 헌법 전문과 4조의 평화통일 조항과도 배치되는 게 아닙니까. 헌법재판소도 그렇게 말하고는 끝에 가서는 이럽니다. ‘그런데’ 전쟁이 있었고, 아직도 대치상태가 계속되기 때문에 국가안전보장, 이런 것을 지키는 범위에서 한정적으로 헌법에 합치한다고. 앞에서는 법 논리를, 뒤에서는 ‘그런데’ 하면서 상황논리를 써놓은 거예요. 헌법재판소도 사실상 위헌 판정을 한 거죠. 그뒤 조문을 몇개 고치고, 불고지죄 등을 손질했습니다. 왜 아직도 개정 밖에 얘기하지 못하느냐, 보안법이 50여년 동안 헌법 구실을 했기 때문에 반북 이데올로기가 내면화된 것처럼 보안법 폐지 주장을 왠지 꺼려하는, 내면화된 무엇이 있다는 겁니다. 반국가단체 가입을 세 가지 경우로 나누는데, 수괴인 경우, 지도적 임무에 종사하는 경우, 기타. 그러면 어디까지를 수괴라고 할 건지, 어디까지가 지도적 임무인지. 송두율 교수사건은 후보위원이 문제가 됐었지요. 후보위원이라면 북한의 최고권력에 속한다고 보고 지도적 임무에 종사한 것으로 일단 추정할 수 있겠죠. 그런데 1심 판결은 후보위원으로 임명은 됐는데 후보위원에 걸맞은 활동을 했다는 증거는 찾아볼 수 없다, 명예직이라고 했어요. 지도적 임무에 종사한 적이 없다는 겁니다. 그러면 무죄가 나와야 하는데, 재판부가 이율배반적인 판결을 했죠. 수십년간 내려왔던 반북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지 못하니까 법 이론이고 뭐고 필요가 없는 거예요. 지금은 남한이 북한에 먹히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반공을 주장하는 극우집단에도 없을 거예요. 북한을 받아들일 것인가 말 것인가 어느 한쪽을 분명히 선택할 때가 되었다고 봅니다. 그래서 보안법은 폐지 아니면 존속, 둘 중 하나지 중간은 없다고 봅니다.

홍=유엔 인권이사회에서 신학철씨의 ‘모내기’ 그림을 국가보안법으로 처벌한 것은 표현의 자유를 침해했다며 그림 반환 등을 권고한 의견서를 냈습니다. ‘이적표현물’이라는 흥미있는 표현이 있는데 지금도 적용되고 있지요

김=이적표현물 제작·반포 죄가 있죠. 모내기 그림 사건을 보면, 사회학적 상상력이라는 말이 있듯이 우리나라에는 보안법적 상상력이 있는 것 같아요. 모내기 그림이 문제가 된 것은 이런 거예요. 그림의 위쪽에는 사람들이 평화롭게 둘러앉아 노래하고 있고, 밑에는 쟁기로 사회의 모순을 갈아엎는 것인데, 배치상 그렇게 할 수밖에 없어요. 쓰레기를 그림 위쪽으로 갈아엎을 수는 없잖아요. 그런데 검사는 평화로운 위는 북한이고 쓰레기를 밀어내는 아래는 남쪽이다, 이렇게 해석을 하죠. 그 풍부한 상상력이 놀라워요. 그것이 보안법이죠. 보안법적 상상력이 우리 사회 전체의 창조적 상상력을 막아버렸죠. 우리 사회의 상상력을 막았다는 것이 보안법의 가장 큰 해악이라고 봅니다. 보안법이 법의 꼴을 갖추고 있느냐를 떠나서 일정시기 동안은 남북이 대치했던 현상만을 보면 필요할 수도 있겠다는 주장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상황 논리를 동원해도 우리 사회의 상상력을 50년 간이나 막아 우리를 불구로 만든 해악은 보안법으로 감옥에 간 많은 이들의 억울함보다 크다고 생각해요.

홍/한나라당에서 상생을 말하려면
보안법 폐지가 먼저 아닐까요
김/자기와 다른 신념이면 미워하라
세상에 이런 법은 없죠

홍=이적표현물은 ‘적을 이롭게 하는 표현물’이라는 말인데 ‘표현되지 않은 것은 생각되지 않은 것’이라는 명제를 통해서 보면 이 한마디에 사상, 양심, 표현의 자유가 다 부정돼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4·15 총선 이후에 화두가 상생, 통합인 것 같아요. 수구세력이 먼저 그 얘기를 꺼내는 것도 흥미롭습니다. ‘한국의 민족민주운동사는 곧 국가보안법 위반사’라는 박원순 변호사의 말이 있는데, 한나라당에서 통합과 상생을 말하려면 먼저 보안법 폐지를 얘기하는 것인 올바른 순서가 아닐까요.

김=‘탄환’을 가지고 세상을 사는 사람들한테 ‘논리’를 들이대면 이상하죠. 오히려 상생, 화합할 의사가 있는지는 보안법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봅니다. 사회의 상상력을 막았다는 것과 함께 보안법은 미움을 강요합니다. 다양한 가치와 신념을 가진 사람들이 살아가야 하는데 자기와 다른 가치와 신념을 가지면 미워해라, 안 그러면 처벌한다, 세상에 이런 법은 없죠. 계급운동에서건 시민운동에서건, 생명·평화운동에서 봐도 다른 가치체계를 가진 사람을 미워하라는 법은 있을 수 없습니다. 생명 정신에 반하는 것이고, 종교적 교리에도 어긋납니다. 종교계에서 사형폐지 운동을 열심히 하고 있는데 생명을 미워하는 것을 막는다는 의미에서 보안법 폐지운동과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어요. 앞으로 전개될 생명·평화운동의 핵심 과제는 사형과 보안법 폐지를 같이 가지고 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홍=사회구성원의 의식 형성에 교육과정이 가장 중요하게 작용한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을 겁니다. 그런데 한국 사회구성원들은 오랫동안 반공의식, 안보의식 교육을 통해 인간에 대한 사랑을 배우기 전에 증오부터 배웠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런 부분을 종교계에서 당연히 문제 삼아야 했는데 왜 그러지 못했을까. 사랑을 강조하는 종교계의 일부에서 오히려 보안법의 요구에 충실한 기류가 있었던 탓이라는 생각입니다. 기독교계 일부가 보여주는 ‘예수천국, 불신지옥’이라는 이분법적 구도가 증오를 매개로 하는 보안법의 이분법적 구도와 결합해 한국 극우세력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리고 전 세계에서 극우파가 성조기를 흔드는 유일한 나라가 한국인데, 이런 왜곡된 모습의 중심축에 보안법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대담은 법조계의 문제로 옮아갔다. 지금까지 국가보안법을 유지시키는 든든한 기둥이 법조계의 보수성이라는 인식에서였다.

홍=17대 총선을 통해 정치는 많이 바뀔 가능성을 보여 주는데 비해 법조계가 갖고 있는 수구·보수적 경향, 물론 법을 해석하는 부문으로서 당연한 측면도 있지만, 보안법과 관련해 봤을 때도 사회 전체에 비해 법조계가 더 수구적이지 않느냐는 지적도 가능할 것 같아요.

김=보수라고 할 수도 없는 극우집단, 미움을 강요해서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집단의 보루가 몇 군데 있습니다. 정치, 종교, 교육이 있죠. 이들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하는 곳이 법조계라고 생각합니다. 보안법이 마지막으로 기대는 곳이 법조계고, 이곳이 바뀌면 다 바뀐다는 생각입니다. 법조계가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법조계가 국민하고 상관이 없기 때문이죠. 공부를 잘 하고 시험을 잘 쳐서 합격한 이들이 모인 집단이지, 국민이 선출한 것은 아니죠. 국민이 선출하면 국회도 바뀌고, 대통령도 바뀌죠. 대통령은 한 사람이니까 국회보다 더 바꾸기 쉽죠. 민주주의의 요체는 인민(people)의,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 정치이고, 헌법재판소도 인민이 권력을 줘서 있는 거죠. 그런데 헌법재판소나 법원 등은 국민이 뽑지도 않았고, 자신들에게 권력을 준 국민의 뜻과 상관없이 자신들 집단의 뜻과 이익에만 관심이 있었지요. 그런데 보다시피 헌법재판소가 국민의 뜻을 뒤집을 수도 있거든요. 국민이 민주적으로 법조를 통제를 할 수 있느냐가 향후 헌법의 과제라고 봅니다. 지난 번에 검사와 법무부 장관 사이가 시끄러웠을 때 검찰이 독립을 주장했는데, 검찰은 국민의 통제를 받아야 하고, 국민이 뽑은 대통령이 통제하는 겁니다. 대통령은 법무부장관을 통해서 하죠. 법무장관의 통제를 받지 않겠다는 것은 민주주의의 통제를 받지 않겠다는 겁니다. 겉으로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을 내세우고 있는데 지금까지는 이 독립이 국민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집단의 이익을 위한 것이었지요. 두고 보세요. 요즘 정치인들 수사한다고 검찰이 국민의 지지를 받고 있는데 우연히 맞아 떨어졌을 뿐이지, 그들은 집단의 이익에 철저합니다. 개별 사건에 대해서는 독립을 보장해야 하지만 인사, 감찰 등 여러 기능을 통해 계속 솎아내고 바꿔야지, 그렇지 않으면 검찰독재가 되거나 헌법재판소의 재판관들이 국민이 뽑은 대통령을 살리고 죽이는 상황에 빠질 수 있죠. 법조에 대한 국민의 통제는 꼭 필요합니다.

홍=탄핵사태가 헌법재판소로 넘어가면서 국민이 법조에 대한 민주주의의 통제를 새삼 인식하는 계기가 됐죠. 어떻게 보세요, 헌법재판소에 어떤 결정을 해야 할지. 저는 항상 상식적이어야 한다는 생각인데, 법이 상식이라는 공통 분모 위에 있는 것이라고 할 때….

김=전에는 저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일부 헌법 교수들까지 이번 탄핵이 가능하다고 하는 것을 보면서 법이 과연 상식인지, 심각하게 회의하게 됐어요. 왜냐면 이것은 가치관의 선택 문제가 아니거든요. 법 논리에 맞느냐 안 맞느냐 하는 것이고 정답이 있거든요. 그런데 마치 가치관의 차이처럼 포장하면서 다른 결론을 내요. 임금님이 벌거벗었는데 멋진 옷을 입었다고 일부 교수들이 말하는 것을 보고 정말 놀랐어요. 학생들이 뭘 배울까. 그들은 거짓말쟁이, 파렴치범이거나 좋게 말하면 법을 말할 자격이 없는 멍청이거나….

홍/사회전체에 비해 법조계가 더 수구적이지 않느냐는 지적도
김/권력을 준 국민의 뜻과 상관없이
자신들 집단의 뜻에 관심이 있었지요

홍=어떤 사회나 엘리트는 형성되기 마련인데 핵심은 엘리트로서 능력이 있는가, 그리고 엘리트로서 사회적 책임의식이 있느냐는 거죠. 우리는 그렇지 못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특히 법조계는 심각하지 않느냐는 거죠. 법조계가 오히려 보안법을 온존시키는 쪽에 있었고, 법조 엘리트를 형성하는 교육과정에 엄청난 문제가 있는 것 같아요. 인문학적 소양이 없는 것과도 관련된 것 같은데요. 인간을 모르는 채 사회를 말하고, 사회를 모르는 채 법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김=맞아요. 법조계의 사람들이 고교 때까지는 영어, 수학과 씨름하고, 대학에서 고시공부 하고, 합격하면 판사나 검사가 돼서 남의 생명과 재산을 좌지우지합니다. 개인적으로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면 대체로 인문학적 소양과는 담을 쌓은 사람들이라고 봐야죠. 송두율 교수 사건 때도 내재적 접근법이 문제가 됐죠. 자본주의의 잣대를 갖고 사회주의를 보면 평가가 안 되고, 거꾸로 사회주의의 잣대를 갖고 자본주의를 평가할 수도 없죠. 그 사회에 들어가 그 사회가 지향하는 기준으로 그 사회가 제대로 가고 있는지 어떤지 보자는 것이 내재적 접근법이죠. 이것은 모든 학문에서 해석의 기본이 아닙니까. 그런데 내재적 접근법이 북한을 이롭게 하는 방법론이라고, 여기까지 가면 소양의 문제를 넘어서서 부끄럽죠.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는 방법에 대한 두 사람의 의견은 일치했다. 국가보안법이 내면화한 상태에서 단칼에 보안법을 폐지하고 나면 사람들의 의식이 바뀔 것이라는 얘기다. 그런데 한국을 이상향으로 여기는 프랑스인이 있다는 얘기가 놀라웠다.

홍=프랑스의 재작년 대선에서 극우파가 18%를 얻었죠. 저는 극우파에 적극적으로 반대한 82%에 주목합니다. 한국에서도 보안법에 적극 찬성하는 사람은 18%가 안 될지도 모르겠어요. 문제는 프랑스처럼 절대 다수가 단호히 반대하는 모습을 한국은 갖고 있지 않다는 거죠. 극우파든 보안법이든. 프랑스 극우파의 제2인자가 브뤼노 골리슈라는 사람인데, 그에게 이상향이 있습니다. 바로 한국입니다.

김=예, 그래요 보안법을 그리는 거네요.

홍=바로 그거죠. 보안법이 한국 사회를 사상적인 반신불수로 만든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과거에 비해 노골적인 반공의식화는 줄었지만 사회주의든 사회민주주의든, 사회구성원들이 이것을 구분조차 못하면서 ’나쁘다’, ’현실에 맞지 않다’는 데는 동의하죠. 이런 모습이 한국사회를 반이성적, 몰상식하게 만드는 것인데 이에 대한 성찰이 너무 부족합니다. 국가보안법의 작용이 과거보다 엷어진 것은 사실이나 구도 자체에는 큰 변화가 없다는 생각을 합니다.

김=‘말 많으면 공산당’이라는 말이 있었죠. 말이 많다는 것은 이성으로 따져보자는 거죠. 그런데 따지면 다 공산당이 되니까, 따져볼 수도 없죠. 이성의 훈련이 불가능하죠. 한국전쟁을 겪은 세대는 원천적으로 화해나 상생을 말하기에는 불구인 세대죠. 그리고 보안법으로 큰 세대, 예를 들어 저 같은 경우도 어려서부터 그 영향을 받아서 불구인 지점이 있죠. 이런 상황에서 문제를 해결하려면 칼로 치듯이 탁! 내려쳐야 합니다. 내면의 족쇄에서 자유롭지 않는 사람들이 풀 수 있는 방법은 순간에 탁! 쳐서 폐지하는 거죠.

홍=과거의 반공교육에 비해 노골성은 줄었지만 지금도 ‘질서’ 교육을 매개로 여전히 관철되고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봉건사회의 신분질서를 깨부수기 위해 자유와 평등을 내걸고 싸워왔던 유럽에서 질서를 강조하는 것은 받아들여지지 않거든요. 우리는 지금도 교육과정에서 제일 강조하는 것이 자유나 평등이 아니라 질서입니다. 이것이 기존 체제와 질서, 안보, 국가보안법에 스스로 복속하게 만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아주 노회하게 질서를 매개로 이뤄지고 있다는 거죠. 교육계도 문제를 제기해야 하는데, 워낙 막혀 있어서 결국 탈출구가 국회 밖에 없는 건가 하는 거죠.

김=어느 나라에서건 사형제도를 폐지할 때, 사회구성원들한테 물어보면 폐지 찬성 쪽이 더 많은 곳이 별로 없어요. 프랑스가 대표적인 경우죠. 조사하면 사형 유지가 더 많았는데도 사회당에서 그냥 폐지해버렸죠. 그 다음부터 여론조사를 하면 사형 폐지에 찬성하는 사람이 훨씬 많아요. 국가보안법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어떤 정치집단이 딱! 끊어줘야 합니다. 그러면 여론과 의식도 따라가지 않을까 합니다.

홍=사형제도도 그랬고, 프랑스에서 동성애자에게 동거권을 줄 때도 처음에는 5대5로 의견이 팽팽했는데 통과되고 1년 만에 7대3으로 바뀌더라고요. 제도화를 통해서 의식이 바뀌는 것을 확인했죠.

김=스스로 풀지 못하는 족쇄를 누가 끊어주면 해방이 돼 제대로 볼수 있게 되는 거죠. 풀고 나면 그때는 ‘잘했구나’ 할 겁니다. 질서를 말씀하셨는데, 노자식으로 말하면 억지로 질서를 내세우니 무질서가 생겼다고 봐요. 어렸을 때부터 질서, 질서, 했지만 그것을 강조하지 않는 사회보다 더 무질서하죠. 자유와 평등, 생명·평화, 이런 가치를 어릴 때부터 가르치고,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면 질서를 강조하지 않아도 되죠.

홍=지금까지 교육과정에서 가르친 질서가 철저히 타율적인 질서의식이었죠. 그 질서의식이 내면화되면서 사회정의를 스스로 부정하게 만들고, 국가보안법 체제 유지에 분명히 작용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송두율 교수가 귀국한 뒤 노동당에 가입했다는 얘기가 나오자 주위의 사람들이 “모두 도망가” 김형태 변호사는 깜짝 놀랐다고 했다. 그만큼 국가보안법이 원형질처럼 한국인의 의식 깊숙한 곳에 들러붙어 있다는 얘기다. 길게 반박문을 써서 돌리자 한명 한명 다시 돌아왔다고 했다.

홍=송두율 교수가 7년형을 선고 받았는데 앞으로 어떻게 하실 계획인지….

김=지금 쟁점은 ‘후보위원’, ‘책을 쓰고 잡지에 기고한 것’ 두 가지죠. 우선 후보위원이 아니죠. 황장엽의 증언은 남이 말한 것을 전한 것이어서 증거능력이 거의 없거든요. 원진술자가 증언해야죠. 그런데 북한에 있다거나 죽었다고 핑계를 댑니다. 김경필 파일(전 독일 주재 북한 이익대표부 2등 서기관 김경필이 북한에 보고하기 위해 작성한 파일)이 있는데 김경필도 미국이 안 보내줘서 못 온다고 해요. 그 사람이 정말 그런 말을 했는지 안했는지 신빙성이 담보가 안 되죠. 형사소송법에 보면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가 없는 증명을 하라고 돼 있거든요. ‘쟤가 그랬대요’라는 식의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많은 황장엽, 김경필 파일을 가지고 후보위원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둘째는 후보위원이라고 가정하더라고 실제 지도적 임무에는 종사하지 않았으니까 도덕적 비난은 모르겠지만 보안법으로 처벌해서는 안 되죠. 보안법은 지도적 임무를 수행했을 때만 처벌하게 돼 있거든요. 세번째는 어디까지가 지도적 임무냐는 거죠. 노동당원이면 지도적 임무냐, 시·군 당위원장이냐 아니면 중앙당이냐. 아무도 알 수가 없어요. 법에 명확하게 써 있지 않아 죄형법정주의에 어긋납니다. 형사재판에 상관없이 헌법재판소에서 국가보안법 4조의 지도적 임무 종사라는 조항이 모호하고, 헌법의 평화통일 조항에도 어긋나기 때문에 당연히 위헌 판결이 나리라고 기대합니다. 1심에서 학술교류는 잘한 것이라고 하고, 책 쓴 것은 북쪽을 이롭게 한다며 7년형을 선고한 것은 판결 자체가 분열증적인 것이고, 형량도 지나칩니다. 항소심에서는 그가 후보위원이 아니고, ‘지도적 임무 종사’가 위헌이라는 점, 저술활동이 학문 활동의 범위이기 때문에 법으로 재단할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할 겁니다.

홍=국가보안법이 유지된 데는 수구언론의 역할이 크다는 생각입니다. 송 교수를 매도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을 텐데요.

김/어렸을 때부터 질서질서 했지만
그걸 강조않는 사회보다 더 무질서
홍/타율적인 질서의식이 내면화
사회저의를 스스로 부정하게 만들어

김=우리 사회 제일의 과제가 언론을 바꾸는 것이라고 봅니다. 언론이 바뀌면 정치도 바뀌죠. 송 교수 사건의 경우 언론이 ‘후보위원이냐 아니냐’ 선정적으로 몰아갔죠. 호기심을 증폭시키는 쪽으로만 사건을 몰고 갈 뿐 송 교수가 무슨 행위를 했는지 진실이 뭔지는 관심이 없더라고요. 보는 사람이 얼마나 재밌느냐 충격적이냐를 놓고 언론들 간에 경쟁이 붙죠. 한국사회를 좌지우지 하는 것이 언론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처음에는 난리를 치다가 끝에 가서는 보도도 안해요. 국민들은 몰라요. ‘후보위원이냐 아니냐, 아 후보위원 맞대’ 이렇게 끝나면 도대체 이 재판을 통해서 수구든 보수든 진보든, 무엇을 얻겠느냐는 거죠. 참 끔찍합니다.

홍=냉전 이데올로기의 화신이라고 할 수 있는 국가보안법이 21세기에도 살아 남아서 사회구성원의 상상력을 차단하고, 사상적인 반신불수 상태로 만들고 있는 게 비극이죠.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도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고 사진도 찍었는데….

김=북한과의 만남이 한쪽에서는 보안법으로 처벌받고, 한쪽에서는 남북교류협력법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죠. 통일부에서 접촉 승인을 내주고 안 내주고에 달려 있어요. 행정부 관료의 판단에 따라 보안법이 적용되고 안 되고, 그럽니다. 법 논리상 말이 안 되죠. 박근혜 대표가 김정일 위원장을 만나겠다는 것은 긍정적이라고 봅니다. 자꾸 만나면 한나라당 지지자도 ‘어, 그게 아닌가 보다’ 하는 교육적인 효과도 있지 않을까요. 법은 사회현상을 반영하는 것이고 권력투쟁의 산물이죠. 48년 보안법은 남북이 총칼로 싸우니까 그런 법이 가능했죠. 그런데 한번 법이 성립하면 역으로 현실을 귀속해서, 과거의 현실을 반영한 법에 바뀐 현실에 발목을 잡히게 됩니다. 17대 국회가 제일 먼저 처리할 일이 보안법 문제죠. 우리 사회 전체의 근간과 발전방향을 보여주는 핵심이요 상징으로서 현실을 옭아매는 보안법을 완전 폐지해야 합니다.

정리 황상철 기자 rosebud@hani.co.kr

사진 황석주 기자 stonepol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