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 4. 20(이코노미21, '전미래' 칼럼 글)
신자유주의 시대의 마녀사냥
강수돌(고려대 교수)
지구상 200개 국가 중에서 경제력 15위 이내임을 자랑하고 선진국 클럽인 OECD 회원국이기도 한 대한민국은 37년만에 귀국한 세계적 학자 송두율 교수를 6개월간 옥에 가둔 채 4개월간 재판하였다. 그리고 그 일차적 결론은 (국가보안법 위반) ‘유죄’이며 7년간 옥살이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놀라운 것은 그 판결을 근거짓는 방식이다. 예컨대 유죄를 입증할 객관적 자료가 없음에도 이미 무죄로 판명된 소송 내용을 갖다 붙이는가 하면 횡설수설하는 증언자를 ‘신빙성’ 있다고 받아들인 것, 나아가 ‘남북정상회담’의 연장선에서 사실상 죽은 국가보안법을 실정법이라 내세운데다 공인된 학술 저술들을 그 법에 저촉된다고 본 것, 또 아직도 ‘반성의 기미’가 없다는, 권위주의 태도 등이 그것이다.
많은 이들이 시대착오적 마녀재판이라 하고, 보수 언론의 편협성과 반동성을 나무라기도 했다. 그나마 한 가닥 기대를 건 ‘합리적’ 판결조차 물거품이 되자 역시 공안 검찰과 법원이 아직도 ‘냉전적 사고틀’에 갇혀 있다고도 했다. 송교수 자신은 “판사 한 사람이 진실을 심판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면서 ‘도도히 흐르는 역사의 방향과 지속적 투쟁 끝에 마침내 바위를 뚫고 마는 물방울의 힘을 믿는다’고 일차 소감을 말했다. 물론 보수 기득권 세력들의 이익연합체(정치-경제-언론)가 아직도 당당히 버티고 있기에 이런 수구의 성곽을 깨뜨리는 건 쉽지 않다.
그러나 4.15 총선 결과에도 반영되듯 이미 변화는 시작되었고 보수 기득 세력의 이익연합체도 내부로부터하나씩 허물어진다. 열린우리당이 과반석을 확보한 것을 집권당의 프리미엄이라고만 보기는 어렵다. 나아가 '진보 노선’을 내세운 민주노동당이 마침내 국회 입성에 성공한 것도 새로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 과연 이런 식의 ‘권력’ 장악과 그들을 통한 ‘이해 대변’이 얼마나 풀뿌리의 희망(자유, 평등, 민주, 자치, 해방 등)을 잘 반영할 것인지에 대해선 논란의 여지가 많다. 특히 ‘햇볕정책’의 김대중 정부와 ‘참여정부’의 노무현 정부 아래서조차 송교수에 대한 ‘마녀재판’이 진행된 것은 이런 의문을 강하게 한다.
나는 여기서 남아공의 만델라나 브라질의 룰라가 집권한 뒤 진행한 개혁 과정에서 민중의 기대와 달리 시장의 힘이 사회를 주도하고 효율성과 생산성, 경쟁력 등 경제적 합리성이 모든 것을 지배해간 현실에 주목한다. 결국 이것은 과거에 미국으로 이주한 양키들이 자신과 다르다는 이유로 원주민 인디언들을 ‘야만인’으로 규정하고 자기의 종교와 합리성으로 구조조정해나간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에 저항하는 자들은 결국 배제와 살육을 당한다. 오늘날 미국 정부가 이라크 등에서 그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하여 자본의 자유 활동을 보장하려는 와중에 저항 세력들을 ‘악마’나 ‘테러리스트’로 규정하여 학살하는 것도 매한가지다. 풀뿌리 민중의 손을 떠난 시장 합리성이란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
요컨대 공안 검찰의 냉전적 사고는 물론, 시장합리성 속에 민주주의를 찾으려는 ‘신사고’조차도 풀뿌리 민중의 자율성과 생동성을 믿지 않는 소외된 권력의 산물이며, 그런 점에 근본 인식의 전환이 없이는 진정한 민주 통일도 불가하며 송교수식의 ‘마녀사냥’은 거듭될 것이라 본다. 결국 근본 변화는 풀뿌리 민중이 모든 차원에서 독자적 정체성과 자율-자치 능력을 얼마나 회복하는가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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