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두율 교수 면회를 다녀왔습니다
우리당? 국가보안법 어떻게 할지 지켜보겠습니다

지승호

참 오랜만에 쓰는 글입니다. 저는 이런 류의 글쓰기의 힘은 분노에서 나온다고 믿습니다. 자기의 생각, 삶, 글쓰기에 대한 부끄러움을 넘어서 는 분노의 힘이죠. 그런데 요즘은 그런 분노보다는 부끄러움, 슬픔이 더 많았던 것 같습니다. 제 글쓰기와 생각, 삶에 대한 부끄러움, 그리고 돌아가는 일들이 분노보다는 슬프게 느껴졌던 탓에 글을 못쓰고 있다는 자체가 더 길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얼마전 친한 좌파 자유주의자인 선배와 술자리를 했습니다. 대화를 나누던 중 그 선배가 “너희 노빠들은 그게 문제야. 대통령 탄핵에는 거품을 물면서 왜 송두율 교수 문제나 파병 문제에는 분노하지 않는거야. 그게 더 심각한 문제인데...“라고 해서 제가 발끈했습니다.

물론 저 역시 파병에 반대하고, 송두율 교수 건에 대해 분노하지만, 대통령 탄핵이라는 문제를 나랑 상관없다는 식으로 말하는 태도가 좀 불편했던 것 같습니다. 거기다가 조금 마신 술이 서로의 논쟁을 꼬이게 하다가 이내 ‘그만하자’로 결론을 냈습니다. 술자리에서 결론날 일이 아니니까요.

그리고 나중에 곰곰이 생각해보면 둘이 하는 얘기가 틀린 것이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대개 감정 싸움이 되는거죠. 그리고 두 사람이 바라는 세상과 상식이 큰 차이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대통령 탄핵이라는 건 절차적 민주주의를 실질적인 민주주의로 지속적으로 발전시켜온 우리 사회를 거꾸로 돌리고, 많은 국민들을 좌절에 빠뜨리게 할 수 있는 사안이니까 중요한 것이고, 송두율 교수 문제 역시 국가보안법 이라는게 특별한 사람이 아니고 모든 사람에게 적용될 수 있기 때문에 중요 할 것입니다.

그 선배는 다만 그런 문제에 대해서 좀 더 신경써줬으면 하는 차원에서 하는 말일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많은 국민들이 받아들이기엔 똑같은 무게로 다가올수는 없는 것이었겠죠.

우린 언제부턴가 그렇게 된 것 같습니다. 민주당을 지지하던 분들이 한나라당 보다 노무현을 미워하게 된 것처럼 본질이 뭔지를 잊어가는 것 같습니다.

“대통령 탄핵? 그거 노빠들의 문제잖아. 니들이 알아서해” “그래? 파병 문제, 국가보안법, 노동자 문제? 그건 진보의 문제잖아. 니들이 알아서해“

물론 일부겠지만, 언제부턴가 우리 마음 속에 이런 생각들이 조금씩 좀 먹고 있지 않았을까요?

탄핵 이후 많은 노무현 지지자들이(물론 탄핵 반대를 노무현 지지자들만 한 것은 아니지만) 생업을 포기하고, 자기 시간과 비용을 들여서 탄핵반대운동을 했습니다. 그런 분들에게 다른 문제에도 관심을 가져달라고 하긴 미안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런 현상이 심화되면 "노빠들은 노무현에 관련되지 않은 이슈에는 관심이 없어"라는 지적이 정당한 지적이 될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노무현 지지자의 희생은 과거의 희생에 비해 크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물론 역할을 나름대로 컸다고 생각하지만요. 그리고 많은 좌파들과 진보진영의 사람들이 그동안 희생했기 때문에 노무현 정권도 탄생할 수 있었던 배경이 되었다고 봅니다.

오늘 서울구치소로 송두율 교수 면회를 다녀왔습니다. 아웃사이더 편집장과 사장이 송두율 교수 특집이 실린 아웃사이더 17호도 전해줄 겸해서 면회하러간 자리에 따라가서 처음으로 인사드렸 습니다. 유리벽이 가로막혀있는 그 곳에서 짧은 5분간의 만남 이었는데, 주로 편집장과 송두율 교수가 대화를 나눴습니다.

아웃사이더는 17호를 내고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송두율 교수에게 징역 15년이 구형된 그날, 「아웃사이더」는 몹시 분했습니다. 아직도 우리가…… 지상 유일의 분단국가인 우리 나라가, ‘반통일의 장애물’에 걸려 또다시 넘어졌다는 게 너무나 분했습니다. 한줌도 안 되는 극우보수 세력에게 진 것이 분했고, 여전히 그들을 퇴출 시킬 힘이 부족하다는 사실이 분했습니다. 무엇보다도 똑똑하고 잘난 국회의원들의 정치놀음에 묻혀, 송 교수 사건이 사람들의 관심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 가슴 아팠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탄핵안이 가결되자 인쇄기를 멈추고, 탄핵에 관한 특집기사를 추가했습니다.

진중권 선생은 송두율 교수의 구속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는 이념적인 이유로, 이 기회에 다 죽어가는 반공 이념을 되살려 자신들의 존재 이유를 사회적으로 다시 확인 받으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정치적 성격의 것으로, 송 교수를 빌미로 그를 불러들인 정권을 공격하려는 것이다. 그들은 사건 자체보다는 그것의 정치적 효과에 더 관심이 많았다. 즉 정국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송 교수를 희생양으로 이용해 먹은 것이다.”

열린우리당이 과반수의 의석을 차지하고, 민주노동당이 원내 진출한 이 상황에서 다른 사람의 양심까지 재단하는 시대착오적인 국가보안 법이 폐지되거나 최소한 개정될 수 있을까요? 열린우리당이 열쇠를 쥐고 있을 것 같은데, 솔직히 낙관하지는 못하겠습니다.

국민의 뜻이라며, 시기상조론을 펼지도 모릅니다. 여론조사를 해보면 국가보안법 폐지 또는 개정에 찬성하는 사람이 70% 가까이 되는 것으로 나옵니다. 그런데 무슨 국민의 뜻을 얘기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아직도 레드 콤플렉스가 있는 걸까요? 백번 양보해서 50%의 국민만 찬성한다고 해도 폐지는 밀어붙일만 합니다.

촘스키의 말대로 찬성과 반대가 반 정도 되는 것을 법으로 만들고 나면 여론이 그쪽으로 움직이기도 합니다. 프랑스에서 사형제도 를 폐지할때도 찬반이 팽팽했는데, 법제화한 이후 사형을 반대하는 사람이 훨씬 더 많아졌다고 하는 것처럼요.

송두율 교수는 어쩌면 곧 없어질 법으로 인해 7년형을 선고받았고, 6개월째 감옥에 있습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음식물 같은 것도 '처음에는 힘들었는데 6개월이 넘으니 적응된다'고 하셨고, '건강은 비교적 괜찮다. 혈압이 높은 것은 약으로 컨트롤하고, 잠을 못자는 것은 수면제 먹는 것이 좋지 않아서 그냥 이겨내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5월 20일 2심 재판이 있는데, 재판 시작되면 바쁘기 때문에 책도 많이 읽고, 중국어 회화 책도 보고 있다고 하시더군요.

송교수는 "사법부의 문제도 보통이 아닌 것 같다. 국가보안법 등에 대해 얘기했는데, 사법부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했고, "이번 사건을 통해서 국가보안법에 대한 문제가 재고되었으면 한다. 우리는 국가보안법이 헌법 위에 있는 법이 되어 있고, 아직도 국가보안법이 힘을 발휘하는 비정상적인 상태다. 나를 계기로 국가보안법이 없어지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송두율 교수가 국가보안법의 마지막 희생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