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두율 선생님을 뵙고…

박영란

지난 일요일에 서울구치소에 다녀왔다.

‘식구들을 위해 밥벌이만 하고 살면 죄책감을 느낀다’는 지인이 내게 송두율 교수 면회에 동행할 생각이 있는가를 물었다. ‘면회 한번 가야지’ 생각하면서도 실행에 옮기지 못했던 나는 흔쾌히 길을 나섰다.

길 위에서 일행 중 한 사람이 자기는 ‘법 없어도 살 사람’이라서 교도소에 가는 게 처음이라고 했다. 나는 스무 살 때부터 재판정을 드나들고 틈틈이 교도소 문턱을 넘었는데, 부정한 시대를 만나 투사가 되었던 내 지인 몇 사람이 국가보안법으로 처벌받았기 때문이다. 1999년 2월 내 선배가 석방되자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된 사람을 면회하는 일은 없을 줄 알았는데 다시 면회소 문 앞에 서야 했다.

37년 만에 조국에 돌아와서 ‘해방 이후 최대의 간첩’으로 낙인찍히고 7년형을 언도받은 그분을 어떻게 위로할까. 그분이 슬프고, 우울한 표정이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맴돌았다.

면회실 문을 열자 투명한 칸막이 너머로 하늘색 수의를 입은 송 선생님의 얼굴이 보였다. 반가운 마음에 칸막이 앞으로 바짝 다가섰다.

그런데 송 선생님이 일면식도 없었던 나에게 “저번에 광주에서 저한테 책 보냈지요? 세 권..” 하는 것이었다.

내가 송 선생님에게 책을 보낸 것은 작년 11월 초순의 일이다. 구속된 송 선생님을 면회한 오마이뉴스 기자가 쓴 글을 읽고 마음이 아파, 부리나케 편지 한 통과 책 세 권을 보냈는데, 그는 면회 신청을 한 사람이 그 편지를 보낸 사람임을 알고 있었다.

“어머, 책을 보내긴 보냈는데, 그걸 기억하고 계세요?”

“내가 구치소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책을 받았거든요. ‘대한민국 헌법’을 보내줘서, 내가 처음으로 대한민국 헌법 전문을 읽어봤어요. 그런데 대한민국 헌법에는 통일을 지향한다고 돼 있대. 내가 답장을 하려고 했는데, 책만 받고 주소가 적힌 봉투를 못 받았어요. 그리고 편지에는 주소가 안 적혀 있어서 답장을 못 쓰고.. 답장을 써서 인터넷에 올려 달라고 할까 생각도 해보고.. 내가 우리 집사람한테도 책 받은 얘기를 했어요.

나는 그때 ‘인간 송두율’의 다정다감한 얼굴을 보았다. 마음씨 좋은 선생님 혹은 선배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그는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지인을 대하듯이 근황을 이야기했다.

“집사람은 직장 문제도 있고 해서 지난 4월12일에 독일에 갔고요. 둘째 아이는 의학을 공부하고 있는데, 논문발표 때문에 독일로 들어갔어요.

5월말에 항소심 재판이 있는데, 이번 주까지 최후 진술서를 내야 해서 그거 준비하느라 아주 바쁘게 지내고 있어요.

내가 여기 들어온 지 6개월이 되어 가는데, 이제 힘든 겨울도 지났고.. 지금은 운동도 열심히 하고, 책도 열심히 보고 있고요. 총선 결과 여당이 다수당이 되었으니까 좋아질 거라고 기대합니다.

일행 중 한 사람이 “선생님이 전남대에 강연하러 오신다고 한 날, 하루 종일 그 앞에서 기다렸는데 안 오시더라고요”라고 말했다.

송 선생님은 “그때 광주에 갈 걸 그랬어요. 그때는 모두 내가 구속까지 될 줄은 몰랐기 때문에, 좀 기다렸다가 가려고 했는데.. 광주는 내가 국민학교, 서중학교를 다녔던 곳이고요. 여기서 나가게 되면 광주에 꼭 가 볼 거예요.

아, 그리고 지난 4월15일에 독일 외무부 앞에서 내 석방을 촉구하는 집회가 있었어요. 인권활동가들이 많이 모였다고 하고.. 요슈카 피셔 독일 외무장관을 비롯해서 독일 정부 관계자들과 학자들이 내 문제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고 해요.

참여정부가 욕을 다 먹고 있지만, 대통령은 그래도 국회에서 나를 포용해야 한다는 얘기를 했고요. 나는 대한민국 사법부와 언론에 대해 실망이 매우 큽니다.

국가보안법은 꼭 폐지되어야 하구요. 내가 국가보안법의 마지막 고개를 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때 딩동댕 벨이 울리더니 다음 면회자의 신청서가 창문으로 넘어왔다.

예전에 안동교도소에서 선배를 만날 때는 1시간 혹은 1시간 반씩 얘기를 나눴는데, 서울구치소는 면회객이 많아서 그런지 면회시간이 10분쯤 밖에 안 됐다.(송 선생님이 나가기도 전에 다음 면회자가 면회실로 들어왔다)

송 선생님은 “먼데서 여기까지 왔는데, 길게 얘기도 못하고 미안해요”라고 말하고 손을 흔들었다.

10분은 몹시 짧고도 아쉬운 시간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슬프거나 우울하지 않았다. 송 선생님이 염려했던 것과 달리 너무 밝고 확신에 찬 얼굴이어서...

안동교도소의 선배도, 비전향장기수 선생님들도 늘 나보다 더 낙천적이면서도 강건했는데, 송 선생님도 꼭 그랬다. 하여 그를 위로하고 격려하러 간 우리가 오히려 더 큰 위로와 격려를 받았는지도 모르겠다.

집을 나선 지 열두시간만에 집에 돌아와 송두율 선생님이 쓴 1심 재판 최후 진술문을 다시 읽어 보았다.

“국정원 조사에서 시작해서 검찰의 심문조사를 거치며 지금까지 숨 가쁘게 이어져온 수차례에 걸친 재판과정을 통하여 국가보안법의 실체를 몸으로 터득하였다. 공안검찰은 실정법이라는 이유를 들어 국보법을 옹호하고 있으나 이 법은 지상유일의 분단국가가 통일된 민족국가로 나아가는 길을 가로막고 있는 반통일적 장애물이며 세계화의 기치아래 ‘세계 시민사회’를 지향하는 오늘의 국제현실과 너무나 동떨어져 있다”고 갈파하는 송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꿈에도 그리던 조국에서 ‘엄청난 충격’을 경험하였으나 “저의 문제를 계기로 해서 분단된 땅에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이 서로 화해할 수 있는 그러한 아름다운 나라로 다가서기를 간절히 바라”는 송두율 선생님은 하루빨리 석방되어야 한다.

국제엠네스티가 지적한대로 “표현과 집회의 자유를 평화적으로 이행한 송 교수는 즉각적이고 조건 없이 석방되어야 하고 가혹한 국가보안법은 적어도 폐지하거나 수정하여 형사법에 있어서의 원칙과 집회와 표현의 자유를 국제적인 기준에 도달할 수 있도록 해야” 마땅하다.

그리고 나도 송두율 선생님처럼 “도도히 흐르는 역사의 방향을 느끼면서, 바위를 뚫는 물 한 방울”이 되고 싶다.

(2004.5.2. 면회를 다년온 후에 작성한 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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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두율 선생님 주소:

(우편번호) 437-702 경기도 의왕시 포일동 산18-1 서울구치소

(우편번호) 435-050 경기도 군포우체국 사서함 20 서울구치소

65번 송두율

서울구치소 전자서신함 바로 가기:

http://www.moj.go.kr/corrections/seoul/minwon/minwon04.php

* 면회안내 : 천주교 인권위원회 이은희

  연락처 : 02-777-0641, silverly@jinbo.net

  면회는 평일 오전 10시 30분에 가능합니다.

'송두율 교수 사건 교수-학술연구자 비상대책위원회‘ 홈페이지: http://freesong.jinbo.ne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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