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5월 31일 교수4단체 주최 ‘학문-사상의 자유 보장과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한 기자회견’ 자료

송두율교수사건 보고

- 작년 9월 22일, 재독한인학자인 송두율 교수가 민주화기념사업회의 초청을 받고 37년 만에 귀국함. (귀국 전 체포영장이 발부되었지만, 국정원에서 간단한 조사를 받고 민주기념사업회와 한국철학회에서의 발표, 성묘, 고향방문 등을 위한 2주 정도의 일정을 소화한 후 다시 독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안고 귀국했음)

- 귀국하자마자 국정원은 송 교수를 불구속상태에서 4차례에 걸쳐 조사함 / 10월 1일 국정원, 송 교수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함 / 10월 3일 검찰, 송 교수를 첫 소환함 / 10월 21일 검찰, 송 교수가 9차 검찰에 출두한 후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하고 송 교수를 서초경찰서에 인치함 / 국정원에서의 조사 이후 대대적으로 불어 닥친 여론재판을 통해 '해방 이후 최대의 거물급 간첩‘이자 ‘말 바꾸기나 행하는 부도덕하고 비열한 지식인’으로 매도당하는 엄청난 궁지에 몰린 가운데 11월 19일 송교수, 국정원과 검찰에서 조사받은 지 근 두 달 만에 국가보안법 위반 (북한을 위한 지도적 임무수행, 잠입-탈출, 회합-통신 등) 과 사기미수로 구속기소됨

- 2003년 12월 2일 오후 2시 서울지방법원 331호 법정에서 송 교수에 대한 첫 공판이 열림/ 이후 8차례에 걸쳐 공판이 열림/ 2004년 3월 9일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15년 징역형을 구형하고 변호인단은 무죄를 주장함 / 2004년 3월 30일 선고공판에서 1심재판부(재판장: 이대경 판사)는 ‘비록 실권 없는 명예직에 불과했지만 북한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임명된 적이 있다’,  ‘저술활동을 통해 북한을 위한 지도적 임무를 수행했다’ 등을 들어 송두율 교수에게 7년 징역형을 선고함.

일심 판결내용은 다음과 같은 문제점을 지닌다.

1) 황장엽의 전언, 김경필 파일의 증거 능력을 인정해 송 교수의 북한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 임명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황장엽의 전언이란 증거능력이 부족하고, 김경필파일이란 변조가능성이 높은데다가 변조되지 않았다고 할지라도 오히려 송 교수가 정치국후보위원이 아니라는 사실을 뒷받침하는 내용들도 들어 있다. 때문에 판결은 증거제일주의란 근대적 사법판결의 기본원리조차 어기는 것이었다. (이 재판 이전에 있었던 황장엽 관련 민사재판에서 제시된 증거들 이상의 것이 제시된 적이 없다. 당시 재판부는 증거불충분으로 송 교수의 정치국 후보위원 임명을 인정하지 않았다) 1심 판결은 송 교수가 정치국 후보위원이었다는 ‘선 판단’에 입각하여 죄를 엮어낸 판결의 성격이 강하다.

2) 1심 재판부는 내재적 접근법에 입각한 송 교수의 북한관련 저술을 단순히 친북적이라는 데에서 더 나아가 북한을 위한 지도적 임무를 수행한 구체적인 활동내용으로 들고 있다. 그러나 그의 내재적 접근법은 ‘내재적 이해에 기초한 내재적 비판’을 추구하는 연구방법론으로 오늘날에는 ‘차이의 인정에 기초한 상호이해’를 추구하는 ‘탈근대적 학문연구들’의 기본적인 연구방법론으로 정착하고 있다. 때문에 이 연구방법론의 옳고 그름은 오직 학문의 법정에서 다룰 문제이지 (‘친남이냐 친북이냐’만을 문제 삼는) 사법적 판결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나아가 그의 내재적 접근법은 남북한의 화해-협력을 추구하는 평화 지향적 통일운동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연구방법론이자, 남한에 처음으로 ‘북한학다운 북한학’이 탄생할 수 있는 결정적 계기를 마련해 준 연구방법론으로서 의의를 지닌다. 이런 점에서 일심판결은 ‘학문-사상의 자유에 대한 심대한 침해’로 보지 않을 수 없다.

3) 그의 북한관련이 단지 친북적이라는 데에서 더 나아가 그가 그것을 통해 북한을 위한 지도적 임무를 수행했다고 하는 것은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견강부회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저술활동을 통해 북한을 위한 지도적 임무를 수행했다는 판결은 학문-사상의 자유를 가장 심대하게 침해한, 국보법 판결 사상 최초의 사례로 꼽을 만 하다.

- 지난 5월 19일 오후 2시 서울고등법원 제309호실에서 2심 제1차 공판이 열렸고, 오는 6월 2일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제2차 공판이 열릴 예정이다. 재판이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7월 초순에 2심 선고판결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2심 재판은 1심 판결에 대한 비난이 국제적으로 고조되고, 총선 등을 거치면서 수구보수 세력의 영향력이 현저히 약화된 조건 속에서 개최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송 교수가 2심에서 설령 무죄석방이 아닐지라도 집행유예 등으로 석방될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감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 결과가 어떻던, 우리는 법원이 인권를 원천적으로 유린하는 국가보안법의 잣대로 학문적 저술을 재단하는 것에 강력히 반대하며,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다.

그런데 송 교수의 정치국후보위원 임명 부분이 증거불충분 등으로 무죄로 판결 받으면 그의 저술활동만으로 그가 북한을 위한 지도적 임무를 수행했다고 판결하는 것은 어려워진다. 역으로 그의 저술활동을 무죄로 인정하거나, 아니면 단순한 친북적인 저술활동 정도로 판결내리면 송 교수가 북한을 위해 지도적 임무를 수행했다는 것을 인정할만한 아무런 구체적인 활동내용이 없게 된다.

- 송 교수에게 적용한 법조항이 무엇보다 가장 무거운 처벌을 가할 수 있는 국보법 제3조라는 점에서 송 교수가 법원의 판결을 통해 석방될 수 있다면, 그 판결은 그간의 국보법 적용에서 탈피하는 미래지향적인 전향적 판결로서 평가받을 수 있을 것이다.

송두율교수 석방과 학문-사상의 자유를 위한 대책위원회